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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아서
어느 무신론자의 진리를 향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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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6
1. 상황 15
2. 타자 연습 41
3. 숲에서 나온 나무들 71
4. 장식 없는 땅 93
5. 나 홀로 남아 121
6. 론 파인에서의 조우 143
7. 붕괴 167
8. 변칙적 진동 191
9. 자살과 죄책감 223
10. 동족 속으로 243
11. 다시 탐색의 길로 267
12. 타자의 본질 289
-감사의 말 318

저자 소개 2

바버라 에런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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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Ehrenreich

미국의 사회 비평가, 정치 활동가,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다. 1941년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리드칼리지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록펠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이론물리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을 공부하고 세포면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시 관리예산실 정책 분석가로 일했고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NGO에서 활동했으며 여성 건강 운동에도 참여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올드웨스트버리캠퍼스 조교수를 지내다가 1972년부터 전업 작가로 나섰다. 첫 성공작이자 밀리언셀러에 오른 《노동의 배신》은 웨이트리스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삶을 직접 체험한 워킹 푸어 생존기로, 《
미국의 사회 비평가, 정치 활동가,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다. 1941년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리드칼리지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록펠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이론물리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을 공부하고 세포면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시 관리예산실 정책 분석가로 일했고 도시 빈민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NGO에서 활동했으며 여성 건강 운동에도 참여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올드웨스트버리캠퍼스 조교수를 지내다가 1972년부터 전업 작가로 나섰다.
첫 성공작이자 밀리언셀러에 오른 《노동의 배신》은 웨이트리스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삶을 직접 체험한 워킹 푸어 생존기로, 《가디언》이 발표한 ‘21세기 가장 뛰어난 책 100권’에 선정되었고, 신자유주의 시대 빈곤 문제를 다룬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 외 대표작으로는 화이트칼라 구직 현장에 뛰어들어 중산층마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보여 준 《희망의 배신》,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전방위로 파헤친 《긍정의 배신》 그리고 《오! 당신들의 나라》 《신을 찾아서》 《건강의 배신》 등이 있다.
《타임》 《하퍼스매거진》 《네이션》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라이프》 《마더존스》 등 언론 매체에도 다양한 이슈의 글을 기고해 왔다. 건강, 평화, 여성의 권리, 경제적 정의 문제 개선에 이바지한 공로로 미국 인본주의 협회 ‘올해의 인본주의자’ 상, 시드니 힐먼 상,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 창조적 시민을 위한 퍼핀/네이션 상, 루스벨트연구소 ‘결핍으로부터 자유’ 상, 포드재단 상, 구겐하임 상, 맥아더 상, 에라스무스 상, 이 책 《지지 않기 위해 쓴다Had I Known》로 2021년 펜 아메리카 문학상에서 ‘펜/다이아몬스타인 스필보겔’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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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 언론사 국제부에서 주로 일했고, 비영리재단인 푸르메재단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좋은 책을 찾고 번역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저서로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경제이야기』, 역서로는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 『오! 당신들의 나라』 『조금 달라도 괜찮아』 『숏버스』 『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 자녀 평생 설계』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무언의 속삭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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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26g | 146*210*30mm
ISBN13
9788960515154

책 속으로

나는 무신론자로 태어나 무신론자들 속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의 무신론은 모든 형태의 권위를 거부하는 노동계급의 자랑스러운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고용주의 것이든, 신부의 것이든, 신의 것이든, 악마의 것이든 모든 권위를 거부했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 우리 종족의 특징이었다. 우리는 믿지 않았다. 그건 내가 형이상학적 탐색을 시작했을 때 준비된 답이 가까이 놓여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 p.19

나는 사고를 통해 답을 얻고자 했다. 꿈꾸거나 상상하지 않고, 가상의 존재에게 기도하거나 애원하지 않고. 그러면 ‘상황’은 나의 절대적인 정신력에 굴복하게 될 터였다. 나는 A일 경우 B로 대응한다는 식으로 ‘체계적이고 기하학적인, 질서 정연한 공격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그런 방식이 통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개인으로서의 우리 존재가 그처럼 짧고 허망하다는 걸 알고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어째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을 때도 그 방식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날 일기에서 “지금 하는 생각이 정리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 p.50

나는 손을 들고 ‘-1의 제곱근’이라는 개념은 터무니없다고, 적어도 지금까지 수학에서 배운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지적했다. 내 입장에선 일종의 공공서비스였다. 교사는 아주 살짝 눈을 깜박여 흥미로운 지적이라는 걸 인정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던 얘기를 이어 갔다. 학급 친구들은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경고하고 싶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허수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남들이 무엇을 목구멍에 쑤셔 넣든 그대로 삼키게 될 거라고. --- p.52

아메바에게도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산소 원자는 수소 원자에게 실제로 욕정을 느낀다고 과학이 시인했다면, 나는 아마도 덜 외로웠으리라. 하지만 과학의 목표는 과학적 관찰자 외부의 생명체에게서 자율성과 의도를 말살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제시된 우주였으며, 상대성 이론이라는 풍문이 그런 관점을 더욱 강화했다. 상대성 이론에 의해 만물은 시공의 주름 위를 굴러다니는 입자들로 축소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 물리학의 당구대를, 머나먼 죽어 가는 별에 있는 빛이 들지 않는 바다의 부드러운 물결처럼 침울하고 광활한 지형으로 확장시켰다. 그 모든 것들은 ‘왜?’라는 질문을 더 긴급한 것으로 만들었다. 왜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보편적 무의 완벽함이 왜 무언가의 일시적인 흐트러짐과 혼란에 의해 훼손되는가? 모든 게 이미 죽었거나 결정된 상태라면, 왜 의식적인 인간의 삶에―최소한 나의 의식적인 삶에―미미한 동요가 일어나는가? 왜, 도대체 왜, 우리는 그냥 잠이나 자러 가지 않는가? --- p.119~120

꿈에는 하나의 이미지만 나타났다. 인간의 뇌였다. 교실 같은 곳에 설치된 스크린에 나의 뇌가 비치고 있었다. 빽빽하게 주름진 둥근 것?모든 것, 내가 가진 유일한 도구, 나의 진정한 전모?이 줄기 같은 것에 붙어 있었다. 거기에 나는 우주를 담고자 했던가? 뜻이 정확히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인 듯 자막인지 음성인지 설명까지 나왔다. “이것이 바로 너다.?막으로 둘러싸인 조직낭(囊), 다른 것들처럼 단순히 물질일 뿐이다.” --- p.151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결국 나는 “신을 보았어.”라고 내뱉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잔인한 표정이 떠오르는 걸 보며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지독하게 난처한 입장에 몰렸다. 표절 행위로, 더 정확히는 골동품 절도 혐의로 체포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어쩌자고 나는 론 파인에서 대면한 힘 또는 에너지에 저 고대의 닳고 닳은 관념인 “신”을 갖다 붙였을까? 내가 거기서 본 것은 종교화 속의 그 무엇과도 전혀 닮지 않았건만. --- p.174

나는 내가 거부한 유신론은 일신론, 특히 그 “유일신”, “진정한 신”이 완벽한 존재여서 전능한 동시에 전적으로 선하고 자비롭다는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 특유의 일신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틀로 보면, 일신론의 신은 자신을 보살펴 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부모에 대한 아이의 인식이 투사된 것이다. 내게는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구축할 본보기가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10대에 쓴 일기에 ‘부모와 같은 신’에 대한 경멸이 표현되었을 것이다. --- p.285

몇 년 전에 TV 인터뷰에서 내 무신론이 주제로 떠올랐을 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라고만 했다. 그 말 자체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을 알고 있으니까. 당신들이 생각하는 신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일종의 신을 알고 있으니까.”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 내 말에 설득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영리하고 의연한 무신론자인 마샤 고모가 전화를 걸어 와, TV를 보다 내 대답에서 회피하려는 듯한 희미한 떨림을 감지했다고 한 걸 보면 말이다. --- p.288

나는 우리와 정신적 접촉을 해서 신비체험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믿는다는 것은 지적인 굴복이다. ‘믿음’은 자발적인 자기기만이다. 나는 인체의 기본적인 감정, 욕구 등을 관장하는 대뇌 변연계로 파고 들어올 수 있는 흡혈귀류의 생물체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지각을 교란해서, 그 결과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광란 상태건 지극한 아름다움이건 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실증적 경험?은 내게 열린 마음을 요구한다. 또한 내가 책을 쓰는 유일한 이유인 인간적 연대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촉구한다.

--- p.310

출판사 리뷰

나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을 ‘알고’ 있으니까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은 말년에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책, 『신을 찾아서』의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뼛속까지 무신론자라면? 더욱이 『긍정의 배신』을 쓴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면? 그가 말하는 ‘신’이 결코 우리가 아는 그 신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을 찾아서』는 ‘무신론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진리’를 찾아가는 탐색의 기록이자,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본 회고록이기도 하다.

책의 발단은 일기였다. 2001년 유방암에 걸린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봉투 안에 담아 두었던 10대 시절의 일기를 꺼낸다. 거기에는 기억 저편에 봉인한 한 ‘사건’이 담겨 있다.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라는 자신의 이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명성에 해가 될 수도 있는 사건. 그랬기에 한 번도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거나 글로 쓰지 못했다. 그러다 저자는 16살 때 쓴 일기와 마주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나중에 이걸 읽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과 똑같을까? 이 글을 쓴 이후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더 이상 그 일을 회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저자는 풀지 못한 숙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일기를 정리하고 추적한다. 그 중심에는 17살에 겪은 일종의 ‘신비체험’이 자리잡고 있다.

진리는, 누군가에겐 ‘헛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답’을 찾으려 한 어느 무신론자의 여정


그 텅 빈 거리에서, 나는 탐색을 시작한 이래 계속 찾던 그 ‘무엇’을 발견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언어의 관할권에서 벗어났다.

그 일이 있은 뒤 지금까지 줄곧, 나는 ‘표현할 단어가 없다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왔다. 자칫하면 ‘영성’이라는 진흙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영성을 운운하는 것은 이성에 대한 범죄일뿐더러, 남들에게는 내가 간밤에 꾼 꿈만큼이나 관심 없는 ‘헛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158쪽

누군가에겐 ‘헛소리’로 들릴 저자의 신비체험은, ‘궁극적인 진리’를 찾겠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여정은 13살 즈음에 시작되었다. 어쩌면 부모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10대에 눈이 맞아 저자를 낳은 부모는 책을 많이 읽고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현실주의자’였다. 카메라 같은 기억력을 지닌 아버지는 작은 광산촌의 광부 출신으로, 계속 상급학교에 진학해 대단한 신분 상승을 이룬다. 갱도에서 실험실로, 나중에는 기업체의 고위직에까지 오른다. 저자에게 과학에 대한 열망을 심어 준 것도,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가르쳐 준 사람도 바로 아버지였다. 소설과 잡지를 즐겨 읽던 어머니는 냉정하고도 예민했다. 성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배란이니 나팔관이니 하는 어려운 말로 설명해 주었지만, 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줄은 몰랐다.

저자 역시 부모처럼 사고를 통해 ‘답’을 얻고자 했다. 꿈꾸거나 상상하지 않고, 가상의 존재에게 기도하거나 애원하지 않고. 당연히, ‘가상의 수’인 허수의 개념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공상과학소설부터 낭만적인 시에 이르기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뭐든 읽으며 저자는 삶의 의미,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또 해답이 비밀스런 형태로 주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을 감안해 모든 것에서 패턴을 찾아내려 했다. 애너그램(철자 순서 바꾸기), 숫자의 순서, 무리의 형태, 우연의 일치까지. 반면 종교 쪽에서는 해답을 찾지 않았다. 증조할머니부터 아버지까지,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 집안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으므로.

지적이고, 합리적이고, 세상사에 밝아 보였던 부모는 그러나 알코올중독자였고 종종 거짓말을 했다.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결국엔 어떤 것도 신뢰할 수 없는 법. 따라서 저자의 탐색은 자신 외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와 똑같은 물음에 직면했던 철학자 데카르트에게는 모든 상황을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가 있었지만, 14살짜리 무신론자 소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거대한 사고실험의 강박 때문인지, 해리 상태가 찾아온다. 한순간, 돌연 모든 관념과 언어와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어느 날인가는 함께 수다를 떨던 친구가 물처럼 녹아서 흘러내린다.

저자는 한편으로 이 세계 속에 중첩되어 숨겨져 있는 다른 차원을 엿보는 특권을 얻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정교 신자인 친구에게 “종교와 무관한 영적 통찰력이 있다”고 했다가 핀잔만 들은 뒤, 이런 일은 혼자 간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햇빛 찬란한 캘리포니아로 이사하고서 해리 현상은 더 심해진다. 저자는 극단적인 유아론에 빠져,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세상에 혼자만 남아 있다는 공상에 종종 사로잡힌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외로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이동을 따라 11번이나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도 없었고, 가족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간 스키 여행에서 ‘그것’과 맞닥뜨린다. 불퉁한 친구 때문에 마음을 닫고, 스키를 타느라 온몸이 지친 상태에서, 활활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을 목격한 것이다.

“초월적인 진리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진리’를 찾는 한 소녀가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길―시, 철학, 과학―을 가 보았고,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기에 기묘한 감각 변화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진리가 추하고 비열한 것으로 드러나거나, 진리를 아는 것이 삶을 영원히 파괴한다 해도 알고 싶으냐는 물음과도 씨름했고, 그래도 알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리가 그녀 앞에서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거기엔 두 가지 단서가 붙어 있었다. 첫째, 이 일에 대해 너는 절대로, 심지어 너 자신에게도 말할 수 없다. 둘째, 너는 절대 그때의 경험을 완벽히 재현할 수 없다. -162쪽

‘현현’ 이후 저자는 혼란에 빠진다. 탐색은 끝이 났다. 친구에게 “신을 보았다.”고 얘기했다가, 난처한 입장에 처할 뿐이다.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길이 없었으므로 그 일을 침묵 속에 봉인한다. 그리고 분명한 답을 찾아 과학도가 된다. 과학은 “하나의 돌 위에 다른 돌을 얹어 균형을 잡으면서 일정 높이에 도달할 때까지 쌓으며 끈기 있게 버티면 위대한 질서와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약속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까지, 저자는 “엉덩이가 무겁다는 걸 의식하는 방문객처럼” 질린 기분으로 살았다. 봐야 할 건 이미 다 보고 말았다.

그렇게 지내던 대학원 시절, 우연히 반전운동에 뛰어들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사회운동가로 나선다. 유아론에 빠져 있던 소녀는, 이제 타인과 세상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사건’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속에서의 삶을 선택한 저자가 다시 탐색의 길로 복귀한 것은 중년에 찾아온 우울증과 유방암 투병 때문이었다. 먼 길을 돌아온 그는 자신이 만난 타자를 ‘신’이라고 다시 한 번 규정한다. 그것이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아닐지라도.

인도학자 하인리히 침머는 “가장 훌륭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초월적인 진리는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표현이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과학과 영성의 완벽한 결합”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우주적인 회고록


『신을 찾아서』는 과학, 종교, 인간을 아우르는,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우주적인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 저자로,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신’이니 ‘현현’이니 하는 이 책이 누군가에겐 영성이라는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과 영성의 완벽한 결합”, “에런라이크 최고의 책”이라는 아마존 독자들의 찬사에서 보듯, ‘지성’을 통해 ‘영성’을 설명하려는 저자의 여정은 존경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그것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토록 끈질기고 철저하게 짚을 수 있는 것은 분명 바버라 에런라이크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동시에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용감할 정도로 솔직하게 기록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냉랭한 가족과 잦은 환경 변화로 인해 마음을 닫고 ‘유아론’으로 자신을 지켜야 했던 소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동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웠던 부모, 일종의 ‘초자연적 비전’을 갖게 된 기묘한 경험, 10대 후반에 겪은 정신의 붕괴, 부모의 자살 시도 등 “끈적끈적한 부분들”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오늘날의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추천사

재미있고, 직관적이고, 똑똑하다. 과학과 영성의 완벽한 결합. ―아마존 독자 서평
저자의 여정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종교적 문제에는 예민한 회의주의를, 무모한 믿음에는 긍정적인 적의를 견지하는 반면 열성적인 무신론자가 사로잡힐 수 있는 편협한 접근을 피한다.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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