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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회했다
2장. 책이 나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3장. 독서의 기능은 다양하다 4장. 책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감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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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부드럽게 휘어진 팔걸이와 쿠션 달린 발판이 있는 커다란 안락의자가 있었다. 이 안락의자는 거실의 안락한 벽난로 옆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배부른 통 모양의 테이블이 있었다. 내 생각에 나는 언제나 이 안락의자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앙상하고 지저분한 다리를 팔걸이에 걸친 채 책을 읽었다. "날씨가 좋구나"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친구들은 모두 밖에 있단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밖에 있었다. 때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정상적인 어린시절의 유혹에 넘어가서,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정상적인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하고 싶은 존재의 약속에 구슬려 거리로 달려나가거나 개울가를 따라내려갔다.
나는 그런 종류의 생활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개울에서 바위를 들어올려 왕새우를 찾으려고 내일러 시내를 간지럽히고 다니던 것을, 트롤리가 지나가는 선로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가 트롤리가 지나가고 난 뒤 납작해진 동전을 주우려 달려가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 최상의 것은 언제나 집에 있었으며, 내 자리를 표시하듯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상상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그들의 생명을 되돌려받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얼한 사람들이 있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으며, 그곳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조용하고 어두운 바다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 철자 알아맞히기 시합에서 이겨 장서표를 받았는데, 그 장서표에는 금박으로 다음과 같은 몽테뉴의 격언이 적혀 있었다. "현명한 책이건 멍청한 책이건 간에 책을 읽을 때면 나는 그 책들이 살아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꼈다." ---pp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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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목적 없는 독서에 대해 내심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발전의 도구 이상으로 간주되는 독서를 의심하는 측면이 있다. 자신감을 좋아하지만 오만을 경멸하는 이 나라는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을 윈프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은밀한 우월감과 동일시한다. 또한 미국은 사회성과 공동체를 찬양하는 나라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인 도미노 효과가 수용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은 고독한 자로 연결되고 고독한 자는 패자로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국가적인 핵심 특징으로 보이는, 즉 밖으로 나가 함께 어울리는 정서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면 무엇이든 수상하게 본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이미지는 그들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데오도르 루스벨트는 사파리에 심취하고 케네디 대통령은 형제들과 함께 풋볼을 한다. 상습적인 독서에서 위안을 느끼는 유일한 인물이 링컨인데, 그는 불가에 앉아 고독하게 중얼거리는 인물로 되어 있다 "최상의 친구는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다"라고.
내가 자라던 시절 미국에서는 일종의 출세지상주의가 부상하고 있었다. 출세지상주의는 혜택이 되는 경우에만 독서를 인정했다. 전국에서 최고의 인문학부 대학에서 철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던 학생들은 끊임없이 "그 전공으로 뭘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지식을 위한 지식의 추구가 전성기가 끝나 현실의 압력에 굴했던 것처럼 말이다. 즐기기 위한 독서는 목적을 위한 독서, 엄격하게 자기 향상을 위한 독서의 일종으로 대체되었다. 반면 회사의 경영진은 <백경> <회색 플란넬 슈트를 입은 남자>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읽었을 만한 책은 <성공하느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일 터이지만. --- pp 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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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서 행위는 우리 자신에게 이름붙이는 방식을 찾아가는 진정한 길이다. 혹은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이방인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크루소와 프라이데이. 이슈마엔과 에이헙. 데이지와 게츠비. 핍과 에스텔라. 그리고 나에게, 나에게, 나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느낀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주는 단어에 둘러싸여 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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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다른 많은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나에게는 단지 책으로만 여겨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가 살았던 장소처럼 나는 그곳을 방문하고 또 다시 방문하곤 했다. 먼저 그곳에 서 살았던 축북받은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곳을 방문했다. 그린 게이블의 애너 헤이디, 제이 캐트비, 엘리자베스 베넷, 스카렛 오하라, 달과 스카웃, 미스 마플, 허클 쁘와로 등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리얼했다. 우리 집은 필라델피아 근교의 쾌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는 엔제나 다른 곳에 살았다. 나는 책표지 안에 살았으며 나에게 그런 책들은 어떤 실제 생활보다 더욱더 현실적이었다. 어쩌면 일상의 생활에 진정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에 매료당할 수 있다. 또 불안은 헌신적으로 문학에 몰두하는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 pp.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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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발간되었다. 우리가 기억하기에도 오래 전에 출간된 김현의 책읽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이외에도 최근에 출간된 이권우의 책과 다치나바의 책들이 있다. 이 책들은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목적론적 책읽기, 혹은 실용적인 책읽기라 말할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이 책들의 저자들 또한 엄청난 독서광들이기는 하지만, 이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직업적이거나 실용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 책 속에는 어린 시절의 책읽기가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거나 언급되어 있다 하여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1. 이 책은 체험론적 독서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의 독서가 성인이 되어서도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어린 시절 살던 도시의 분위기, 가족 이야기, 학교 생활 등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자신의 독서와 어떻게 조합을 이루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 때에도 언제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사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책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배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과 같은 구축함은 없나니/우리를 땅 저 멀리 데려가노니/페이지와 같은 강좌는 없나니 /활기찬 시위."와 같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다. 이런 이러한 이 책의 체험적인 독서론은 저자가 미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 사회는 목적 없는 독서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발전의 도구 이상으로 간주하는 독서를 의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윈프리의 예를 들면서 독서는 혼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사회에서 혼자라는 것은 고독한 자로 연결되고 고독한 자는 패자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말한다. "나는 우월감이나 발전을 위해, 심지어 배우기 위해 책을 읽지 않았다. 나는 이 지상에서 그 어떤 행위보다 책읽기를 사랑했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라"고 2. 이 책은 여성이 쓴 독서론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앞에서 언급한 책들과 다르다. 그리고 대단히 문학지향적 독서론이다. 여성의 독서론과 문학지향적 독서론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면 여성들은 문학지향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데, 함부로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여성이 쓴 독서론과 문학지향적 독서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부분은 문장이 대단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다는 사실이다. 이 책 속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나는 어린시절 여행을 꾸몄던 방식대로 오늘날 여행한다. 비행기 안에서 혼자 행복하게 책 읽는 것, 그런 것이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여행이다. 어린시절의 내 자아가 날개를 가질 수 있다면 오직 그녀의 영혼만이 높이 솟구쳐오르게 하고 싶다. 책이 비행기이며, 기차아며, 길이다. 책은 행선지이며 여정이다. 책은 집이다"처럼. 그래서 읽기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쉽게 책읽기에 빠져들게 한다. 게다가 문학지향적이기 때문에 이 책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이러한 사실 또한 이 책이 전혀 낯설지 않다. 3. 이 책 속에는 간략하긴 하지만 출판과 독서의 역사도 있다. 다시 말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것도 나열식이 아니라 작가의 비판적 안목을 곁들여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한번 보자.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독서를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책은 기껏해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 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이후 2500년 동안 그가 보낸 경멸이 활자화된 페이지 위에서 다시 불붙는 것을 보았다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읽은 일군의 독자들이 그들이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독서를 통해 배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그 위대한 사상가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라고 쓰면서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3장) "책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분명하다..... 우리가 단지 정보를 알기 위해 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맛보고 싶고 그것을 가지고 다니고 싶고 우리의 팔 아래서 책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4. 이 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저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계기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애너 퀼들런은 독서가 마치 두 개의 막대기를 비벼서 불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독서 행위와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단조로운 과업이 열과 빛을 가져다준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면 이점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멈춤이라는 신호판, 요리 비법, 동일한 문구로 복제된 편지, 포장할 때의 지침서와 같은 것의 신비에 수 년 동안 망해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상징이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감정과 장면을 만들고 마음의 눈으로 상상된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동화 작가인 로이스 로우리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그 때의 흥분된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각각의 글자가 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소리들이 모여 단어를 만들며, 그 단어들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았을 때의 그 흥분된 감정을 말이다" 그러면서 책이 드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사람들을 회상한다. 그 사람들은 책을 그나마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로푸르노 부인), 어머니가 좋아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축약본 이야기, 책을 빌려보았던 도서관 등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로푸르노 부인의 지하서가에서 책을 빌려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것이 열 살 무렵이었다고 밝히면서 그 곳에서 독서를 통해 키워갔던 꿈을 아름답게 펼쳐보인다. 5.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서의 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그녀는 독서의 기능에 대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암시한다. "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바로 그 책 자체였으며 또 다시 읽을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변했을 따름이다. 바로 이점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책을 우리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그 책의 유용성과 사회성 등등을 크게 다르게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든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논란을 많이 불러 일으킨 책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세대간 입장의 차이를 통해 독서의 기능에 설명한다. 이 책에 대해 사춘기 세대들은 그들 스스로를 보다 인간적으로 느끼도록 해주고, 스스로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엄청난 찬사를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대변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 책이 미국의 도서관 협회의 학교 도서관 금서 목록에 늘 올려져 있는 사실을 통해 독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저자는 교육 받은 자들의 독서에 대한 편견(독서에도 올바른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다는)과 문학비평가들의 역기능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며, 대학에서의 목적성만을 위한 독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다. 이와는 반대로 독서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서도 말한다. 독서의 경이감의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며(교육의 관점에서나 사회의 정신사회적인 측면에서나), 고독을 줄여줄 수 있다고도 한다. 책의 기능이 무엇이든 결론적으로 저자는 말한다. "멋지고 훌륭하게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 행위와 영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