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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복원해가는 지적인 소설
남편의 비즈니스를 위해 자신의 예술적 갈증을 누르며 살아왔으나, 남편의 죽음 후 우회적이되 매우 폭발적으로 자신을 발산하기 시작한 한 예술가의 삶. 그녀와 교류해 온 18명의 인물을 내세워 매우 입체적이고 지적인 방식으로 한 사람의 내면을 복원해가는 놀라운 소설.
2016.03.29.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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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15
해리엇 버든 공책 C 31 신시아 클라크 40 메이지 로드 44 해리엇 버든 공책 C 52 오즈월드 케이스 72 레이철 브리프먼 84 13의 요약서 95 해리엇 버든 101 로즈메리 러너 115 브루노 클라인펠드 123 메이지 로드 138 스위트 오텀 핑크니 156 앤턴 시티 170 레이철 브리프먼 173 피니어스 Q. 엘드리지 190 예술과 생성의 몇 가지 의미들을 향한 알파벳 225 해리엇 버든 공책 B 228 브루노 클라인펠드 253 오즈월드 케이스 273 바로미터 299 메이지 로드 303 패트릭 도넌 321 재커리 도트문트 323 해리엇 버든 공책 K 325 해리엇 버든 공책 A 330 해리엇 버든 공책 M 335 해리엇 버든 공책 T 339 해리엇 버든 공책 O 345 레이철 브리프먼 376 피니어스 Q. 엘드리지 392 리처드 브릭먼 401 윌리엄 버리지 410 다른 곳에서 온 급보 423 해리엇 버든 공책 D 431 해리엇 버든 공책 O 435 메이지 로드 445 브루노 클라인펠드 451 티모시 하드윅 475 커스틴 라슨 스미스 480 해리엇 버든 공책 U 498 해리엇 버든 공책 O 505 해리엇 버든 공책 D 507 해리엇 버든 공책 T 516 스위트 오텀 핑크니 529 |
Siri Hustv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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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 자신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영원히 사라진 존재였고, 사라지는 게 그토록 수월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 모두와 맺은 내 관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 p.61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구름이 있고, 우리는 그 구름들에 이름을 달아주지만 그 이름들이 창출하는 분류가 언제나 실존하는 건 아니다. 해리의 내면에는 폭풍들이 살고 있었다. 사방으로 다니며 파괴를 일삼는 회오리바람과 토네이도들이 있었다. 그녀의 시련은 뿌리 깊었고 어른이 되었을 때 시작된 게 아니었다. 거울 앞에 서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던 그녀 모습이 기억난다. 아마 열다섯인가 열여섯 때였을 것이다. --- p.92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여자들이 바람직한 성적 대상으로서의 전성기가 지난 후에야 각광을 받았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여성 미술가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뉴욕 갤러리들이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작품을 훨씬 덜 다룬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갤러리들의 절반을 여자들이 경영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작품을 다루는 곳은 시내 모든 갤러리의 20퍼센트 언저리에 머문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들도 나을 게 없고, 현대 미술에 대해 다루는 잡지들도 마찬가지다. 여성 예술가라면 누구나 남성 기득권의 음험한 확산에 맞닥뜨리게 된다. 거의 예외 없이 남성의 예술작품은 여성의 예술작품보다 훨씬 더 값이 비싸다. 달러가 말해준다. --- p.118 그녀는 긴 손을 테이블보 위에 놓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는 있잖아요, 날아다니면서 불을 뿜고 싶었어요. 그게 내 절실한 소원이었지만 금지된 것이었죠. 아니, 내겐 금지된 거라고 느껴졌어요. 스스로에게 날아다니면서 불을 뿜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는 데까지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 p.133 피니는 내 허리에 팔을 둘러 안아주었다.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 따뜻한 제스처, 이 작은 선행을 기억하고말고. 그 순간, 나는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부했던 브루노 때문에 걱정한다. 어쩌면 피니의 손길이 브루노, 나의 거친 연인을 떠올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손길, 그 덜컹거리는 목소리, 그의 농담들로 다시 살아나지만, 그는 말했다. 그 미술계의 지랄이 끔찍하게 싫다고. 시의 세계도 상당히 안 좋은데, 그보다 더 나쁘다고. 하지만 시에는 돈이 없다고. 그저 자존심뿐. --- p.233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은밀한 삶에 대해 내게 말해줬어야 해, 펠릭스, 당신이 쫓는 은밀한 삶들. 그건 분명 나와 상관이 있었어. 당신이 틀렸어, 펠릭스. 하지만 당신은 아기들을 원했지, 그렇지? 그래. 그 아이들은 나보다 사랑하기가 쉬웠지. 문까지 뛰쳐나와서 잠옷 바람으로 팔짝팔짝 뛰며 흥분해서 헐떡거리던 메이지. 아빠가 왔어. 여기 왔어. 아빠! 아빠! 잡아도 잡히지 않는 아버지들.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가. --- p. 240 하지만 오늘밤 여기 책상 앞에 앉아 강물을 내다보고 있자니-겨울, 밤, 빛나는 도시-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대상이 없는 비탄을 느낀다. 펠릭스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다. 방금 그것이 세차게 나를 덮쳤다, 뼈아픈 비탄, 하지만 무엇을 슬퍼하는 걸까? 단순히 내가 지나온 세월보다 내 앞에 남은 세월이 너무 적기 때문일까? 고개를 숙이고 걷던 해리엇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위해서일까? 내 앞날의 모습인 늙은 여자를 위해서일까? 야심의 분노가 그토록 두들겨 맞고도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어서일까? 내 안에 흔적을 남긴 유령들을 위해서일까? --- p.251 아니, 해리와 그 시를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에 대해 한 판 대결을 하고 나면, 나는 비실비실 기어 나와 길 건너 나의 굴에 처박혀 상처 난 리놀륨 장판 위에서 상처를 핥고는, 또다시 그녀의 침대와 이제까지 알았던 어떤 여자 보다 더 세게 안아주는 그녀의 근육질 팔 안으로 개처럼 기어들어 오곤 했다. 그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시에 대해서는 그 할망구의 말이 옳았다. 그 시는 나를 얼마든지 어두운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 갈 수 있었지만 결코 단테의 천국으로 데려가주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 시를 포기한다는 건 나를 포기하고, 나의 자아를 포기하고, 나아가 야구 경기가 끝난 날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펜스 너머로 날려버린 홈런을 다시 생각하던 열 살짜리 브루노 클라인펠드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 p.256 우리는 우리의 범주들 속에 산단다, 메이지, 그리고 그걸 믿지. 하지만 그 범주들은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아. 그 뒤죽박죽이 된 상태가 바로 내 흥미를 끌어. 그 지저분한 상태가 말이다. --- p.320 나는 불타오르고 우르릉거리고 포효하고 싶다. 나는 숨고 흐느껴 울고 우리 어머니에게 꼭 매달리고 싶다. 그리나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 p.338 그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한 번의 전시회에서 나를 입고 싶다 이거죠. ‘입는다’는 건 좋은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말했다, 바로 그거라고, 다만 그를 ‘입음’으로써 내 안에서 뭔가 다른 걸 찾아낼 지도 모른다고. 그게 내가 설명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는 이를 핥더니 그 무언가란 뭐가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모른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 p.355 펠릭스를 하늘처럼 우러러보고 사랑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죽은 남편에게 질투를 느끼는 브루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에게 맞서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건 그를 향한 그녀의 미친 사랑 때문이었다고. 펠릭스는 해리로 하여금 자신이 흥미롭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녀는 그가 원한다고 생각한 모습대로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었다. “이게 내가 하려는 말이야, 레이철. 우리는 뭘까? 펠릭스는 무엇이었고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내 안에 있었어.” 그녀는 언제나 펠릭스가 원하는 것들을 읽고 그녀 자신을 굽혀 그에게 맞추려 했으며,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이 내면 깊이로부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p. 388 “그래서 그 차가운 가면들이 내게 필요했던 거야, 알겠니. 차갑고, 딱딱하고, 무관심한 가면, 일어나서 멍청한 자들을 칠 제왕 같은 페르소나. 그는 내가 룬과 함께 있을 때 나와.” 그래서 그녀는 다중인격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왜냐하면 복수성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 p.390 거리로 나와 손을 들어 택시를 잡으려고 할 때도 나는 여전히 얼어붙은 채 내가 잃어버리는 것들, 도시와 하늘과 보도, 빠르고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의 색채를 경이로운 마음으로 돌아보면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모든 색채, 이름은 모르지만 충분히 인지하는 색까지도 너와 함께 사라질 거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상실. --- p.517 세상을 떠나는 우리도 여전히 머무르기를 바랄 수는 있다. 할 일이 더 있다. 내게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상이 있지만, 난 그걸 결코 보지 못하리라. --- p.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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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소설의 전통이 쏟아낸 그 어떤 전형에도 귀속되지 않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지적인 사유와 성찰의 문학 노르웨이 계 미국인 시리 허스트베트는 시인으로 데뷔했으나 곧 소설가로 전향하여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고 수십 년째 미술평론을 쓰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로서의 필력과 미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미술전문가조차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어 해석해내는 독특한 관점까지 겸비하고 있기에, 그녀의 소설에는 미술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비중 있게 들어 있다. 주인공의 직업이 미술평론가랄지 아들의 친구가 화가랄지 전시회가 무대가 되어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이 몇 페이지에 걸쳐 계속된달지…. 이 책 《불타는 세계》에서는 아예 화가가 주인공이다. 화가였으나 수십 년 동안 뉴욕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미술상의 아내노릇을 하느라 자신이 화가임을 잊고 살았던 화가이다. 몇 번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거부 미술상의 아내라는 위치는 화가로서의 그녀에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남편의 비즈니스를 위해 그녀가 주최하는 수많은 파티에 얼굴을 들이미는 화가, 평론가, 에이전트, 클라이언트들은 그녀 기준에서는 그저 돈을 따라 움직이는 무식한 속물들이다. 미술에 대한 허기와 갈증을 누른 채 그림자처럼 살아온 그녀의 삶은 어느 날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달라지기 시작한다. 맨해튼의 미술계를 도망치듯 떠난 그녀는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하며 그동안 그녀를 철저히 무시해 온 사람들과 미술계에 대한 뜻밖의 반격을 계획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우회적인 방식으로. 시리 허스트베트는 이런 스토리를 매우 독특한 구성으로 엮어냈다. 우연히 잡지에서 그녀에 관한 기고문을 본 미술 평론가가 그녀가 생전에 쓴 여러 권의 공책과 그녀와 소통했던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녀의 삶을 다시 짜 맞추는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의 앞뒤를 연결해보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 그리하여 마침내 주인공 해리엇 버든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독자의 눈에 도달해서야 그녀의 삶은 오해와 수많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끝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예술가 해리엇 버든의 파편들은 안식을 찾는다. 소설이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지적인 사유와 예술적 감성을 가로세로 촘촘히 엮어 내니 안목 높은 독자들은 감탄을 하지만, 편집자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책을 출간할 때마다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이제까지 소설의 전통이 쏟아낸 그 어떤 전형에도 귀속되지 않는, 문학·예술·인문·신경과학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런 지적인 사유와 성찰의 문학을 알아봐 줄 독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이 더 이상 사유의 문학을 대표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치열한 사유와 서사적 감수성의 공조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아득한 통찰의 깊이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책을 출간할 때마다 고민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래서 이 귀한 작가를, 이 멋진 작품을 어떻게 알려야하나 의논들을 하다 보면, 회의 말미에 꼭 나오는 얘기가 있다. ‘그냥, 폴 오스터와 함께 있는 사진 넣은 띠지 확 두르죠~’. 그럴 때마다 편집자는 한결같은 대답으로 버틴다. 그건 작가 시리 허스트베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그녀는 누구의 부인임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그녀만으로 충분하고 넘치는 작가라고. “번역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은, 허스트베트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과 이번에 출간되는 《불타는 세계》처럼, 독자들의 지성과 독서 행위에 대한 헌신을 철저히 믿고 지적으로 훈련된 독자들이 투입하는 노력에 감동적으로 보답하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지성이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과부하가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연루되지 않을 길도 없다. 뇌와 심장이 함께 해결해야만 풀리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단한 해석의 노력은 텍스트에 대한 헌신으로, 나아가 독자와 텍스트의 진짜배기 관계로,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잊을 수 없는, 삶을 바꾸고 의미를 주는 애증의 연애로 이어지고 발전한다.” 는 번역가 김선형 씨의 시리 허스트베트 예찬론에 공감해 줄 독자가 많기를 기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