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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ㅣ 작별의 문 앞에서
1.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 2.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3.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4.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 5.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6.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 7. 슬픔에 '종결'은 없다는 것을 알라 8. 상실의 밑바닥까지 발을 디뎌보라 9. 신의 이해를 구하지 마라 10.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ㅣ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실 데이비드 케슬러 ㅣ 상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다 옮긴이의 말 ㅣ 삶이라는 학교에서 배우는 상실 수업 |
Elizabeth Kubler 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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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일을 예감한다는 것은 가령 생일, 기념일, 휴가 같은 일들에 대해 기대를 더 높여주지만, 반면 불행히도 상실과 관련된 예감의 경우엔 그 가능성과 현실성 또한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든다. 인간은 자신이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유일한 종이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 모두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삶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을 느낀다.
어린 시절 문득 우리는 어느 날인가는 우리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도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상실의 예감'의 시작이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언젠가는 경험해야 할 고통이 미리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마치 우리를 준비시키기라도 하듯, 어린 시절 접하는 이야기와 영화들 속에서 예감은 줄곧 등장한다. "밤비의 엄마가 총에 맞았어요!" <아기사슴 밤비>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많은 소녀들이 울먹이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 세대는 그때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라이온 킹>에서 심바의 아버지가 죽는 순간의 느낌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우리는 부모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예깜한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존재함에도, 그런 일은 다른 누군가의 부모에게나, 다시 말해 아기사슴 밤비나 심바의 부모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며 우리 부모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 p.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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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한 <인생 수업>에 이은,
남겨진 자들을 위한 가르침 <상실 수업>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의 증거가 된다. 2006년 여름에 출간되어 출판계의 화제로 떠오르며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인생 수업>은 아직까지 수많은 독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4년에 작고한 <인생 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다. 그녀는, 제자인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만나왔고, 그네들로부터 듣게 된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하여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인생 수업>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상실 수업>을 다시금 한국 독자들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인생 수업>이 죽음을 맞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라면, <상실 수업>은 남겨질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인생 수업>이 죽음 앞에서 삶의 열정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상실 수업>은 죽음 뒤에 더더욱 타오르게 될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는 책이다. 중풍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힘겹게 살아온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가빠지는 숨과 점점 꺼져가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수십 년간 손수 연구해왔던 죽음과 남겨짐에 대한 정신적, 실천적 가르침을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공저자인 케슬러는 병상침대에 누운 스승 엘리자베스 옆에 앉아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을 뿐더러, <상실 수업> 원고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게 삶의 마지막을 품에 안아가는 그녀를 지켜봐야만 했다. 감당 못할 만큼 신은 가혹하지 않다는 것, 절망 속에서 속히 빠져나오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됐을 때 느껴지는 분노와 통곡, 혹은 원망과 자존심, 그밖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을 ‘제발 부인하지 말고 100퍼센트 드러내놓아라’고 저자는 부탁한다. 이는 삶의 마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상실은 ‘모두 끝났다’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증거에 다름 아니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마라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마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흘리고 나면 기분이 홀가분할 것이다. |충분히 슬퍼했다면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부분 자기 자신을 충분히 슬퍼하도록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픔은 항상 일어나며 또 언제나 치유된다. |올바르게 살면 고통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래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권리를 결국엔 놓아줘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두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를 꺼리게 되는, 즉 금기시되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더 소중해지는 것처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이상 금기시하거나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앞서 설명했듯 이 책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 수업>은 삶과의 작별을 눈앞에 둔 이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배우는 가르침과 지혜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아니 이 땅의 생명체로서 자신과 관계했던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겨진 자들에게도, 어쩌면 떠나는 이만큼의 정신적 충격과 절망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허무를 통틀어 ‘상실(loss)’로 일컫고 있다. 상실을 처음 예감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마침내 상실해버리고 말았을 때, 그리고 상실 이후 기약 없는 치유의 시간까지…… 저자는 수십 년간 호스피스 및 죽음을 연구해온 이력과 경험자로서 현실적인 도움 및 정신적인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죽음이 단순히 충격과 고통과 눈물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님을 다각도로 설명해가고 있는 점이 탁월하다. 가령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겪게 되는 분노와 타협, 수용 등의 단계적인 심리상태를 짚어주고, 상실 이후 사랑했던 이와의 기념일을 맞았을 때의 난감함, 유품을 보관하는 데서 생기는 갈등 등 미처 생각지 못한 이별의 사소한(그러나 절대 사소롭지만은 않은) 주변부까지를 건드려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상실의 원인 또한 질병뿐만 아니라, 사고, 자살, 피살, 자연재해 피해, 전사 등등 극히 현실적인 예화를 들어가며 그 치유의 경로를 살펴준다. 망연자실한 상실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자신을 탓하게 된다. 집에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었더라면? 아이들이 그 심부름을 하러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건강검진을 평소에 잘 받았더라면? 그녀가 정신적으로 외롭지 않도록 평소에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이 모든 후회와 괴로움들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의해 결과적으로 발생한 것이므로, 이제는 너무나 늦어버린 시간임에도 우리는 쓸데없이 자꾸만 ‘만일’을 연발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회할 만큼 후회하고, 미워할 만큼 자신을 미워하다가, 쓰러질 만큼 최대한 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저자는 몇 차례 강조한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 것,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둘 것, 그리고 슬픔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발을 디뎌볼 것.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상실이 ‘끝남’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명백한 증거로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