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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_ 위대한 제국, 고구려의 혼
프롤로그 _ 광개토태왕릉비, 하늘 아래 우뚝 서다 1장 가장 위대한 군주가 잠든 곳 아주 특별한, 국내성의 거대한 무덤들 / 여기는 광개토태왕의 무덤을 만드는 현장 / 강한 나라,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 / 과학돋보기1 _ 태왕릉의 구조와 축조 기술 2장 장엄한 역사가 기록된 비석, 광개토태왕릉비 탱왕의 업적을 새길 큰 돌을 찾아라 / 고구려 역사를 새긴 바위책을 완성하다 / 과학돋보기2 _ 역사를 알려주는 비석 3장 용맹한 군사를 이끌고 백제와 왜구를 정벌하다 선봉에 선 태왕, 한달 만에 10여 개 성을 차지하다 / 백제의 철옹성, 관미성을 함락시키다 / 마침내 항복한 백제 / 육지에서도 바다에서도 왜구를 물리치다 / 과학돋보기3 _ 고구려의 농업의 발전과 제철 기술 4장 동북아 최강의 나라를 건설한 광개토태왕 후연과의 전쟁,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자 / 동부여를 점령하고 동북아 최강의 나라로 우뚝 / 과학돋보기 4 _ 고구려의 군대 조직과 탁월한 무기 에필로그 _ 긴 세월이 흘러도 위해한 군주의 역사는 이어진다 테마학습 _ 동아시아 대제국 건설의 주인공, 광개토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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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성한 나라를 만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광개토태왕이 고구려를 이끌었던 시기, 즉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반을 얘기한다. 391년 열여덟 나이에 고구려 제 19대 왕위를 이어받은 ‘청년 담덕’은 자신의 원대한 꿈을 하나씩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새롭고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과 기상은 재위 기간 내내 주변 국가들을 정벌하고 동북아시아 최강의 대제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392년 백제 관미성 함락을 시작으로 백제 정벌, 거란족 속국화, 숙신 정벌, 신라를 구하고 가야와 왜 정벌, 후연 공격으로 패망하게 만듦, 동부여 정벌 등 20여 년의 재위 기간 동안 동북아 최고의 대제국을 건설했다. 뿐만 아니라 태왕은 재위 22년 기간 내내 백성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고, 백성들의 경제 생활 향상을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철제 농기구 개발과 농업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생산력이 높은 ‘내실있는 국가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동시대 최고의 국가 경쟁력을 갖출 만큼, 태왕의 국가 경영 능력은 탁월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그는 위대한 군주이며 국가 CEO였고, “나는 우리 고구려를 당당한 국가, 세상의 주인 되는 나라로 만들 것이오.” 라는 그의 꿈을 실천한 개혁가이기도 했다.
1883년 일본군 사카와 가게노부 중위가 만주 지역을 정탐하던 중, 집안 지역에서 엄청나게 큰 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높이 6.39미터에 무게가 무려 37톤이나 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석을 본 것이다. 놀란 사카와는 비문의 탁본을 떠서 일본으로 가져가게 되는데, 일본의 고대사 일부가 고스란히 기록된 그 비문으로 인해 일제는 이 비석을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군함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일본은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는 비문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그 비문은 광개토태왕의 업적과 고구려의 역사 그리고 수묘인에 관한 법령을 밝히는 1,775의 ‘커다란 바위에 새긴 역사 기록’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장엄한 역사의 기록이 되어 우리 역사의 주춧돌로서 광개토태왕의 업적과 고구려 역사는 온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강한 나라,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를 꿈꾼 ‘청년 담덕’ 그 꿈들을 실현하면서 위대한 태왕이 되다. 1,775자가 새겨진 광개토태왕의 비문에는 고구려의 역사, 태왕의 업적, 수묘인에 대한 법령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들인 장수태왕이 2년 여 기간을 준비하여 만든 것이다. 그 비문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고구려 시대의 생생한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그분의 은혜와 혜택은 하늘에 가득 찼고,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다. 옳지 못한 자들을 없애고 백성들의 생업을 편안하게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며 오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비문의 서문은 광개토태왕을 흠모하며 기리는 장수태왕과 고구려 백성의 절절한 마음이 흠뻑 묻어 있다. 이어 비문에는 추모왕이 건국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태왕의 행적을 적은 후,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소상히 적고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 395년 거란의 비려 토벌 - 396년 백제 아신왕의 항복을 받다. - 399년 신라의 청병 - 400년 신라를 도와 왜적을 궤멸 - 404년 대방계에서 왜군을 물리치다 - 407년 후연을 치다 - 410년 동부여 토벌 이러한 광개토태왕의 ‘강한 국가에 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고구려 백성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만큼, 그 시대의 고구려는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북방민족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생존경쟁이 ‘운명’일 수밖에 없었던 고구려가 능동적으로 타국가를 압도하고 동북아의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것이 ‘고구려의 유일한 선택이자 최상의 국가 과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태왕의 행적은 700년 고구려 역사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뒤를 이어 왕위를 이어받은 장수태왕의 시기, 고구려는 대륙의 중심국가로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고 빛나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된다. 태왕을 중심으로 뭉친 고구려 백성들의 기상과 힘 그런데 고구려의 강성함이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으로 인해 넓어진 강역, 즉 영토의 크기를 기준으로 보는 것은 고구려 역사를 표피적으로 보는 관점이 아닐까 한다. 위대한 군주의 등장은 훌륭한 백성을 필요로 하는 역사의 필연 같은 것. 광개토태왕의 꿈은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이었고,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태왕의 재위 기간 동안 농업기술을 향상시키고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한 흔적을 많은 곳에서 엿볼 수 있다. ‘백성들의 힘을 한곳에 모아야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태왕의 리더십은 백성들의 절대적인 호응과 참여를 이끌어냈고, 이 힘이 곧 동북아 최강의 국가 건설의 원동력이 되었다 할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정복전쟁만으로는 고구려가 강성한 나라가 변모할 수 없는 사실은, 태왕이 다져놓은 국가 경쟁력이 후임 왕인 장수태왕에 이르러 더욱 높아져 화려한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 사실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광개토태왕의 곁에는, 정확한 사료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태학과 경당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이 많았다. 철제 기술 또한 주변 국가 중에서 가장 뛰어났고 농업 기술 또한 상당 수준이어서 높은 생산력을 갖춘 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태왕을 중심으로 ‘진취적이며 강한 기상으로 무장한’ 백성들의 힘들이 주변 국가들을 압도할 정도의 통합적인 국가 에너지가 넘쳐흘렀던 것이다. 위대한 태왕의 등장으로 시작된 고구려 역사의 장대함이 고스란히 새겨진 광개토태왕릉비의 존재는 우리 후손에게 의미있는 좌표 역할을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태왕의 용기와 실천,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도전과 꿈의 실현,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쉼없는 전지, 대제국을 만든 고구려인의 열정과 투혼..... 거기에 후손들의 자긍심이 겹쳐진 생생한 역사의 흐름이 거대한 비문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우리 역사를 대하는 데 있어 광개토태왕릉비의 거대함은 그 크기 이상으로 넓은 안목으로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는 보석 같은 지표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역사의 주인으로 우뚝 섰고, 그 위대한 업적이 하늘 아래 비석으로 우뚝 선 태왕과 태왕릉비의 존재는 ‘땅은 잃었지만 역사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함을, 앞으로 배우고 만들어갈 역사의 롤모델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