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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경주왕릉에서 신라 천년의 역사를 만나자
prologue | 마침내 거대한 왕릉이 세워지다 1장 신라의 가장 거대한 왕릉 황남대총 7만여 개의 유물이 나온 황남대총 / 왕과 함께 무덤에 묻힌 궁녀/ 죽어서도 함께한 왕과 왕비/ 과학돋보기 1 | 황남대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장 우리나라 최초로 금관이 발굴된 천마총 천년의 역사를 만나는 왕릉 발굴 / 신라의 미술을 알 수 있는 귀한 유물, 천마도 / 하늘을 나는 한 쌍의 천마(기린) / 과학돋보기 2 | 발굴된 유물은 어떻게 보존할까? 3장 찬란한 신라 문화를 증명하는 왕릉의 유물 아름다운 비단벌레로 꾸민, 왕의 말안장 / 신라의 대표 유물, 금관 / 신라의 모든 기술이 총망라된 칼, 환두대도 / 과학돋보기 3 | 신라의 유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4장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신라의 왕릉 동해를 지키리라 - 문무대왕 수중릉 /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리라 - 진흥왕릉과 순수비 / 불심으로 나라를 지키리라 - 선덕여왕릉 / 과학돋보기 4 | 천년 전 경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pilogue | 신라 천년 역사로 통하는 경주 왕릉 테마학습 | 천년 왕국 신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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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거대한 왕릉이 세워지다]
왕의 행차 소식을 들은 신라 백성들은 새 왕과 새로 만들어진 왕릉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서라벌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며칠을 걸어온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왕의 행차를 따르는 백성들은 단 한 번이라도 왕의 용안을 보기 위해 애를 썼다. 도대체 어떤 왕이기에 이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궁금해 했다. 드디어 왕의 행렬이 새 왕릉 앞에 도착했다. 어좌에서 내린 왕은 이미 마련된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왕릉은 마치 산을 연상시켰다. 푸르른 서라벌 하늘 아래 들어선 높고 우람한 왕릉, 백성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것이 왕릉이란 말인가? 저렇게 큰 왕릉을 만들어 낸 우리의 새 왕은 도대체 어떤 분이란 말인가? 어리지만 현명한 새 왕은 왕릉 앞에 절했다. 모든 백성들이 함께 절을 올렸다. 길고 엄숙한 왕의 참배가 끝나고 왕은 백성들 앞에 나섰다.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새 왕은 백성들의 함성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았다. 이제 새 왕은 저 백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신라를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어 갈 것이다. - [7만여 개의 유물이 나온 황남대총] 굽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경주 한가운데. 그곳을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훌쩍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의 소나무들은 유난히 굽은 것이 많다. 곧고 바른 소나무들은 모두 궁궐이나 큰 기와집, 그리고 절을 짓는 데 다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금 남은 소나무들은 굽은 소나무들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대능원에서 가장 큰 무덤은 바로 황남대총이다. 커다란 두 개의 능선이 붙어 있는 듯한 황남대총은 부부의 묘로 알려져 있다. 남쪽 무덤에는 남자가, 북쪽 무덤에는 여자가 묻혀 있었다. 아직도 누구의 무덤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라 왕국을 다스렸던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황남대총은 엄청난 유물을 갖고 있었다. 1973년부터 3년간의 발굴에서 무려 7만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순금 금관, 청동 금관과 멀리 아랍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 등과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안 말갖춤 유물까지, 그야말로 황남대총은 신라의 타임캡슐이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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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천년 역사로 통하는 경주 왕릉! 신라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만난다.
천년 동안 고대 국가를 발전시켰던 신라의 수도 서라벌(경주)에는 수많은 왕릉이 있다. 크기 또한 거대한 왕릉들은 경주의 한가운데에서 오랜 세월 비밀의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경주의 거대한 무덤들에는 과연 누가 묻혔으며, 발굴된 유물들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천년 왕국 신라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나라를 발전시키면서 찬란한 고대 문명 국가를 만들어 간 유례가 없는 나라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신라는 고유한 문화를 일으키고, 도시를 발전시켰으며, 국가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수립해 갔다. 또한 한반도와 중국 일부를 아우르는 삼국통일도 이루었다. 기원전 1세기에 영남지방에서 작은 나라로 시작한 신라는 세계의 고대 문명권의 한 축을 담당한 문명국가였다. 이 신라의 수도 경주 한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왕릉은 그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증거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왕릉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만나본다. * 천년 왕국 신라의 역사와 문화의 보고, 거대하고 신비로운 경주의 왕릉! - 신라의 가장 거대한 왕릉, 황남대총 신라의 왕릉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황남대총에서는 무려 7만 개가 넘는 유물이 나왔다. 표주박 모양을 한 황남대총의 주인은 누구였는지, 발굴된 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거대한 크기의 무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왕릉 건축과정과 발굴된 유물에 담긴 신라인의 과학적 지혜를 살펴본다. - 우리나라 최초로 금관이 발굴된 천마총 경주 155호분으로 처음 이름 붙여진 천마총. 천마도가 발견되었다 해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 무덤에 담긴 흥미로운 역사를 알아본다.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는 과연 무엇인지, 천마총 발굴과정의 이야기와 함께 알아본다. 그리고 왕릉을 비롯한 무덤에서 발굴되는 유물의 원형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과학적 기술도 살펴본다. - 찬란한 신라 문화를 증명하는 왕릉의 유물 천년의 문화를 자랑하는 신라의 유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대표적인 유물로 비단벌레로 장식한 왕의 말안장과 금관, 그리고 지방세력에게 신라의 중앙 정부에서 하사한 것으로 보이는 환두대도 등의 유물에 담긴 역사와 발달한 제조기술에 대해 알아본다. 특히 금관은 정말 왕이 평상시에 썼던 것이었는지, 발굴 당시에 놓여 있던 상태를 살펴보며 알아본다. -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 신라의 왕릉 신라의 왕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호국의 염원을 무덤에까지 이어간 경우가 많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의 수중 대왕릉, 불심으로 나라를 발전시키고 다스리고자 했던 선덕여왕의 능, 신라의 국가 기틀을 마련한 진흥왕의 소박한 무덤 등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소망을 담은 왕릉들에 대하여 알아본다. 그리고 신라의 전성기에 경주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역사적 고증을 거쳐 살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