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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류쳅스키 역사학과 『러시아 신분사』 ㅣ 조호연ㆍ오두영
제1강 강좌의 대상 신분 개념 신분적 권리 신분적 권리와 특전의 차이 신분적 권리와 직무에 따른 권한의 차이 신분적 권리가 정치적 권리와 민사적 권리로 구분된 일 신분들이 보유한 정치적 신분 권리와 민사적 신분 권리가 지닌 의미의 비교 신분적 의무가 인신적 의무와 물질적 의무, 그리고 직접적 의무와 간접적 의무로 구분된 일 제2강 신분적 차이의 점진적 소멸 - 유럽 역사의 공통적인 사실 오늘날의 유럽 국가들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 구조 법 앞에서의 세습적인 불평등 - 신분적인 분화의 근거 신분의 두 기원 - 정치적 기원과 경제적 기원 제3강 신분 평등 과정을 표현하는 공식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일련의 사회적 결합체 속에서 신분제 국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신분적 구분이 정치 질서에 미치는 영향 역사에 등장하는 역사적 과정들 신분사에 관해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사료로서의 법에 관한 고문헌들 제4강 러시아에서 신분사에 관한 문헌의 희소성 문헌이 빈약한 원인으로서 1830~40년대에 러시아 역사 연구가 처한 상황 러시아 신분사에 관한 중요한 문헌 목록 러시아 사회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1850년대에 일게 된 현상 또는 그 현상이 알렉산드르 2세 시대의 여러 가지 개혁 조치와 맺고 있는 관련성 러시아 신분사 연구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 서구와 비교해볼 때 러시아의 신분제적 과정이 지닌 일반적 특징 러시아 사회의 신분 구분 근거의 가변성과 다양성 러시아 신분사의 시대 구분 제5강 러시아 신분사의 첫 번째 시기의 연대적인 범위 첫 번째 시기에 사회가 정치적으로 구분된 최초의 근거로서의 정복 활동 키예프 공국의 군사ㆍ상공업적 기원 9세기와 10세기에 키예프 공후들에 의해 통합된 사회의 인종적ㆍ경제적 구성 10세기와 11세기 사회의 신분 구분의 흔적 제6강 『루스카야 프라브다』에 나타난 신분들 상급 친위대 평민 노예 노예 신분의 여러 기원 『루스카야 프라브다』에 나타난 신분 구분의 정치적 근거 다른 근거에 바탕을 두었으며, 좀더 앞선 시기에 존재했던 신분 구분의 흔적 오그니샤닌의 의미 정치적인 의미에서 중요한 계급들이 경제적으로 세분된 일 보야린 채무농과 자유농 영지관리인 이렇게 신분이 세분된 근거로서 경제적인 차이가 법적인 불평등과 맺고 있는 관련성 루시 사회의 첫 번째 시기에 신분이 성립된 세 단계 제7강 기독교가 루시에 전개된 초기 몇 세기에 루시 사회에서 교회가 처한 형편 교회 조직의 구성 교회 조직의 구성과 국가 조직 구성의 유사점 교회 조직이 체제 면에서 국가와 차이나는 점 교회의 신분 구분과 정치적 구분 사이의 관계 교회가 국가 사회의 구성에 미친 영향 교회가 루시의 노예 제도에서 일으킨 변화들 유언으로 노예를 해방하는 관행 무료로 해방시켜주어야 하는 경우 노예를 해방시켜주기 위한 강제적인 몸값 지불 노예제에 이런 변화가 생김으로써 노예의 인신적ㆍ경제적 형편에 초래된 결과 소결론 제8강 이 시기를 연구하기 위한 기초적인 사료들 분립영지 시기의 새로운 신분 관련 용어들 언뜻 보기에 분립영지 시대의 신분 구분이 그 이전 시기의 구분과 동일한 점 최고 권력의 성격 변화 정치적으로 복속민이라는 생각의 소멸 분립영지 공국의 정치적인 질서의 기반인 민사적인 계약과 사적인 복속 관계 보야린과 자유민 공복이 공후와 맺은 관계 제9강 흑민 또는 비공후령 거주민들이 분립영지 공후들과 맺은 관계 봉직자와 흑민 사이의 중간 계급이었던 '궁정에 사는' 공복 계약에서 유래된 공후에 대한 신분적 관계의 특성 계약이 사적인 복속 관계에 미친 영향 노예와 그들의 경제적 등급 자유민과 노예 사이의 중간 계급인 '피저당인' 분립영지 시기의 신분 구분과 그 이전 시기의 신분 구분의 관계 제10강 모스크바국에서의 관등 구분 출신지에 따른 봉직 관등 두마 관등 모스크바 관등 군장 관등 납세 관등 - 납세 성채주변도시민 관등과 납세 농촌거주민 관등 모스크바 시의 성채주변도시 주민들 제11강 앞 강의의 연속 농촌의 납세민들 흑민과 궁정 토지 농민 그리고 농노 면세자들 제12강 모스크바국의 사회 신분 구분의 정치적 근거 최고 권력의 의미 변화 모스크바 군주의 권력과 그보다 앞선 시대에 있었던 두 가지 형태의 최고 권력 사이의 차이 군주와 사회의 관계에서 생긴 변화 국가에 대한 의무를 신분별로 할당하기 위한 공통된 근거 소결론 제13강 계급들 사이에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할당하는 실제적인 방식 봉직자들 사이에 관등에 따라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 분립영지 시기의 모스크바 보야린 신분의 구성과 성격 제14강 두마 관등의 기원 궁내관 관등과 보야린 관등의 분리 두 관등의 계보적인 의미 두마 드보랴닌 관등의 기원과 의미 모스크바 관등의 구조 16세기의 모스크바 군주의 궁정 1550년 10월 3일의 법에 따라 수도에서의 직무를 위한 보야린 후보의 모집 모스크바 드보랴닌 신분 구성의 이중적 기원 모스크바 드보랴닌들이 공통적인 전투 의무 이외에 맡았던 두 가지 특별 임무, 즉 행정 임무와 군사 임무 모스크바 관등과 두마 관등 사이의 관계 제15강 도시 관등의 기원 토지에 따른 직무의 할당 분립영지시대의 궁정이 봉직을 가진 세습영지 소유자의 지방사회로 변모된 일 토지가 봉직에 따라 배당되고, 봉직을 맡은 지주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가 생긴 일 토지의 분여를 통해 위험한 국경 지역에 새로운 군인들을 정착시킨 일 토지에 따라 봉직을 할당하고, 봉직에 따라 토지를 할당함으로써 생긴 과제들 제16강 도시 보야린 후보와 이 관직의 기원 16세기와 17세기에 도시 관등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토지장부에 따라 직무가 할당된 일 봉직영지와 세습영지의 관계 봉직영지 배당토지와 봉직영지 다차 도시 관등 구분과 모스크바 및 두마 관등 구분의 차이 제17강 도시 드보랴닌과 납세민 사이에 있는 군장 봉직자들의 상태 봉직 계급과 납세 계급의 구성 방법의 유사성 국고의 위탁업무와 그 업무의 수행에 대한 책임 책임을 묻기 위한 중요한 보장 조치 신용 신탁 연대책임 지방의 선서 봉직의 기본 원칙과 수도의 고위 대상인의 관등 구분의 근거 제18강 조세 할당의 기본 원칙과 지방의 흑민들을 대상으로 한 관등 구분의 근거 16세기 후반부의 모스크바국의 사회 구성 사회 하층에서의 계속적인 신분 분화 민사법 분야에 국가적인 의무 이행의 원칙이 반영된 일 신고 노예 신분과 채무 노예 신분의 기원 제19강 채무 노예 신분이 농민의 대여계약서에 미친 영향 농노제의 기원 인구조사대장에 따라 계약에 의한 의무가 농노제로 전환된 일 농노제가 농민들의 구성에 미친 영향 납세 농노 신분의 형성 국가에 대한 봉사가 농노의 새로운 의무인 개인적 예속 상태로 대체된 일 농노 신분의 세분 피부양 농노의 기원 제20강 신분적 권리의 개념 15세기와 16세기의 모스크바국에서 이러한 개념이 없었던 현상 법률적인 관점에서 본 네 번째 시기의 출발점 모스크바국에서 신분적 권리에 관한 생각의 이중적인 기원 계급적인 의무 범위 내에 계급을 붙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분적 권리 관등에 따른 이익이 신분적 권리로 변모된 일 법에 따른 세 신분의 구분 제21강 신분적 권리의 근원인 '관등의 명예' 모스크바의 법 체계에서 '관등의 명예'가 지닌 최초의 의미 이러한 의미가 계속해서 법적으로 복잡해진 일 17세기에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신분 관련 법률, 즉 헌장 새로운 신분적 구분과 이전의 관등 구조의 관계 제22강 러시아 사회에서 관등 구조가 해체된 세 과정 통치 봉직에서 생겨난 변화들 모스크바국에서 가문에 따른 고위 봉직계급이 통합된 일과 1682년 1월 12일의 법 관등표 표트르 1세 시대에 행해진 지방 통치 개혁 1699년 1월 30일의 『칙령』 지방 통치 질서 속으로 귀족 신분이 편입된 일 지방군사장관에게 소속된 귀족협의회 지방협의회 지방 위원들 특별한 관등적 의무 사항이 신분 전체에 공통적인 의무 사항으로 변모된 일 군사적 의무가 납세민들, 성직자 자제들과 노예들에게 확산된 일 조세 부담이 떠돌이(굴랴쉬)들이나 간접적으로는 지주들에게도 확대된 일 첫 번째 인구조사 이후의 러시아 사회의 신분 구성 지금까지 행한 강의 요약과 주요 결론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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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자본의 힘이 정치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다른 힘, 예컨대 학문이나 지식에 자리를 내주게 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힘을 가지고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어왔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이러한 힘을 가동하게 될 국가조직 속에는 평등도 없게 될 것이며, 신분도 없을 것이다. 신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사람들은 '학위'를 가진 인물들로서, 재산에 의한 특권 덕분에 입법기관에 선출된 의원들이 물러나고 학위를 가진 학자 출신 의원들이 들어올 것이다."
클류쳅스키, 러시아 역사학의 황금기를 개척한 중심인물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인들이 소련 시대의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역사를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정 러시아 말기의 대역사가인 클류쳅스키(1841~1911)와 그의 역사학이 지닌 의미는 매우 크다. 그는 러시아의 사회경제사 분야에서 중요한 저술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모스크바 역사학파'가 성립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러시아 혁명 이전부터 널리 명성을 얻은 학자였다. 클류쳅스키는 1841년 펜자 지방의 보스크레센스키 마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하급 성직자로 생활해오고 있었는데, 클류쳅스키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직접 농사일도 했다. 이런 생활을 통해 그는 하층민들의 생활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어릴 때의 경험이 그의 학문세계에도 지속적으로 반영되었다. 클류쳅스키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1850년대의 러시아는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러시아는 크림전쟁(1853~56)에서 패배한 충격으로 체제 개혁을 위한 필요성을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마침 그가 대학에 입학하던 1861년은 농노해방이 공포된 해로 농노문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20대 청년이었던 클류쳅스키는 당대의 많은 러시아 지식인처럼 러시아가 변혁되고 인민의 생활이 개선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는 카라코조프와 같은 과격 학생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비참여파로 남아 있었다. 비록 인민의 복리를 달성하려는 목적이라 할지라도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생에 걸친 그의 신념은 정치적 자유주의에 가까웠다. 러시아의 전제권력과 관료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들과 의견을 같이했지만, 그가 자유주의자들의 신념에 전적으로 동의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보수주의자들을 비판했던 것만큼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그의 저서와 논문, 편짓글 등은 소련 말기에 『러시아사 강좌』(전9권)로 출간되었으며, 요즘도 러시아에서 가장 빈번하게 영인본이 나오고 있다. 신분적인 불평등은 역사적인 현상이다. 『러시아 신분사』는 클류쳅스키의 '러시아사 강좌' 시리즈 가운데서도 널리 알려진 책이다. 클류쳅스키는 1886년 9월부터 12월까지 이 강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새로운 대학규정에 따라 이전의 2년 강좌를 1년 만에 끝내야 했기 때문에 제20강을 넘기지 못하고 끝마쳐야 했다. 그래서 '강의 요약과 주요 결론' 즉 제21강과 제22강은 강의가 끝난 뒤 제자 유쉬코프, 키제베테르(나중에 유명한 역사가가 됨), 스트로줴프에게 받아쓰게 했다. 이리하여 이것을 석판 인쇄한 것이 1887년에 처음 출간된 것이다. 클류쳅스키는 언제나 러시아 사회사, 즉 지배계급인 보야린과 드보랴닌, 그리고 농민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러시아 신분사를 강의하면서 본질적으로 기존 사회관계에서의 부당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회의 시분적 구분의 임시적인 성격에 관한 생각을 전개했으며, 그것이 지닌 잠정적인 의미를 강조했고, "신분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며 그것이 이미 없어지게 될 때가 온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그러한 역사적인 예로 서구 유럽의 역사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는 제2강의 "신분적 차이의 점진적 소멸 - 유럽 역사의 공통적인 사실"을 단락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는 신분적 불평등이 역사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그는 신분의 역사는 두 가지, 즉 아주 숨겨져 있지만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두 역사 현상을 드러내준다고 결론지었다. 한편으로는 공통된 이해관계가 창출되는 움직임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공통 이익을 위해 신분적 억압 아래 있던 개인을 해방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는 것이다. 클류쳅스키는 러시아의 긍정적인 역사 발전을 위해 이런 문제가 평화스럽고 점진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랐다. 신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사람들은 학위를 가진 인물들이다 클류쳅스키가 신분사 강좌를 하고 있던 1886년은 알렉산드르 3세의 반동정치가 강화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반(反)개혁 움직임이 가시화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 강좌의 내용은 시의적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국자의 관심을 끌지 못해서 금지조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특히 신분사 강좌에서 그가 미래의 러시아에 대해 내린 해석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클류쳅스키는 법제사가들과는 달리 자신이 살고 있던 당시의 국가구조가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자유주의적 법치국가의 형태야말로 궁극적인 국가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신분사 강좌에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반복해서 드러냈다. 나아가 그는 『러시아 신분사』의 서론에서 그가 공감하는 미래의 유토피아적 청사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보이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는 자본의 힘이 정치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다른 힘, 예컨대 학문이나 지식에 자리를 내주게 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힘을 가지고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어왔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이러한 힘을 가동하게 될 국가 조직 속에는 평등도 없게 될 것이며 신분도 없을 것이다. 신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사람들은 '학위'를 가진 인물로서, 재산에 의한 특권 덕분에 입법기관에 선출된 의원들이 물러나고 학위를 가진 학자 출신 의원들이 들어올 것이다. 클류쳅스키는 더 나아가 현대사회는 개인의 정치적 비중이 투표의 양에 달려 있고, 또 투표의 양은 '주식의 보유량'에 의해 정해지는 주식회사 형태로 자신의 국가지배를 성립시키게 된다고 보았다. "미래의 국가는 교사와 학생으로 구분되고, 학생은 상급학생과 하급학생으로 다시 나뉘는 학교의 형태로 건설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은 더 이상 사회의 동력이 될 수 없게 되고, 지식의 권위로 대체될 것"이다. 민중생활사를 역사 무대의 가운데로 이끌어내다 그러면 『러시아 신분사』에 나타난 클류쳅스키의 논리는 어떤 것일까? 계층의 형성과정과 신분의 발생과정 사이의 상호관계가 러시아 역사발전 과정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그는 일반적인 역사적 법칙과 점진적인 신분의 균등화를 지적한다. 모든 신분적 구분의 기원은 이전의 구분에서 초래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는 '계층' 또는 '사회계층', '신분'이 지닌 본질적인 성격을 설명하면서 지배계층뿐만 아니라 하위계층(농민)에게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정치사가 아닌 '민중생활사'를 역사 무대의 가운데로 이끌어낸 결과다. 그는 각 계층을 차별화시킨 주된 도구로서 각자가 소유하는 생산수단의 형태와 사회에서 담당한 기능을 지적한다. 클류쳅스키의 역사학은 농노 해방과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당대 러시아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따라서 그는 제정 러시아 후반기의 사회경제사 연구를 통해 러시아 역사의 기본 구조를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정리된 연구업적은 오늘날 러시아 역사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소련 시기에는 그가 부르주아의 이익만을 대변한 대표적인 부르주아 역사학자로 평가받음으로써 그의 역사학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제약이 되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가 제기한 다원적인 역사 이해가 포괄적인 러시아사 이해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러시아 신분사』는 러시아 역사에 대한 클류쳅스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 고전적인 저술이다. 이 책은 그의 방대한 저술 가운데서도 사회사에 대한 학문적 시각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 저서라는 의미에서 그의 역사학적 특징을 잘 보여주지만, 본격적인 의미에서 클류쳅스키 역사학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폭넓은 주제를 다룬 그의 저서는 결코 쉽게 읽을 수 없으므로, 다양한 분석을 통해서만 그의 역사학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