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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제1부 제2부 해설 - G. K. 체스터턴 막심 고리키의 인생과 작품 세계 |
Максим Горький,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 Aleksei Maksimovich Pesh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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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투니코프는 정복자의 미소를 띠고 다시 여인숙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문 앞에 어떤 노인이 손에 막대기를 들고 등에 커다란 자루를 멘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넝마 같은 누더기 옷이 앙상한 몰골을 가리고 있는 끔찍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짐이 무거워서인지 등을 구부리고 턱은 상인을 받으려는 것처럼 가슴께까지 끌어당기고 있었다.
"당신 뭐야, 누구냐니까?" 페투니코프가 소리쳤다. "인간이야." 그가 거칠게 대답했다. 이 거친 어조가 페투니코프를 진정시키고 기쁘게 했다. 그는 미소 짓기까지 했다. "인간이라! 당신 같은 인간도 있나?" 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노인이 지나가도록 했다. 그가 걸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지, 신의 의지만큼이나. 나보다 나쁜 인간도 있어. 훨씬 더 나쁜, 정말이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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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고리키>의 인생과 작품 세계
막심 고리키(본명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쉬코프)는 1868년 3월, 러시아의 니주니노브고로트(1932년 고리키시로 개명되었음)에서 태어났다. 그는 러시아 자연주의 작가의 한 사람으로, 부랑자나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빈곤층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 주목받기 시작했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어려운 시기에 처하면서 어린 그에게도 가혹하게 대했다. 고리키는 그 자신이 고아였으며 소외 계층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대와 거부에 아주 익숙해졌다. 그나마 어린 그에게 정을 준 사람은 그의 할머니였다. 고리키는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가 11살 때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도록 강요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가의 심부름꾼, 증기선의 접시닦이, 구두방의 조수등 찾을 수 있는 모든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주인에게 매맞는 일이 흔했고 거의 굶주려 지내다시피 했다. 고리키는 이런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서광이 되었다. 대부분의 다른 유명한 작가들과는 달리 고리키는 교육도 받지 못했고 당시 하류층에 훨씬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본명보다는 고리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이 단어는 '견디기 어려운, 신랄한'이란 뜻으로 십대 초기에 지은 것이었다. 이 이름은 그의 어린 시절과 그가 종종 느꼈던 사고방식을 보여 준다. 1892년 고리키의 첫 작품이 출판되었다. 몇 해 동안의 곤경과 떠돌이 생활은 작가에게 강력하고 단호한 문체를 만들어 주었다. 그의 첫 대표작 <첼카쉬>(1895)는 그에게 엄청난 명예와 인정을 안겨 주기 시작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1899년 <26명의 남자와 한 소녀>가 출판되었다. 이 가슴 뭉클한 작품에는 한 도시에 있는 빵집의 비참함 노동환경이 소개되어 있다. 감동적이고 통렬한 고리키의 글은 톨스토이, 체홉과 같은 수준에서 비교되기 시작했다. 고리키는 소설과 희곡을 쓰면서 20세기를 맞게 된다.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은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일부러 줄거리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글 속에서 방황하기도 했기 때문에 비평가들로부터는 거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어머니>(1906)는 아마 이 시기의 그의 작품 중 가장 인정을 받지 못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가장 길고도 심층적으로 러시아 혁명 운동을 다룬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런 혹평이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에 이 작품은 대단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데 그것은 문체뿐만 아니라 러시아 하층 노동자들의 이상과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때문이기도 했다. 고리키의 가장 중요한 극작품은 <밑바닥>(1902)이다. 이 희곡은 고리키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난, 신랄함, 좌절의 전형적인 특징과 주제를 다루고 있다. 1차 대전 중 고리키는 러시아의 참전을 반대한 볼셰비키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1917년에 일어난 정부 전복과 로마노프 일가의 암살에는 반대했다. 레닌은 고리키가 새 정부의 가혹한 정책에 반대하여 과감하게 목청을 높이자 그의 출판물을 발행 금지시켰고 심하게 검열하였다. 혁명 후기의 초반에 가서 고리키는 동료 작가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값진 문학예술 작품들을 보존하기 위해 레닌의 요구에 순응했다. 이 타협의 시기에 고리키는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을 집필하기에 분주했다. 사실상, 이 작품은 러시아 최고의 자서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3년에서 1923년까지 그는 자전적 3부작 <나의 유년 시절>, <세상에서>, <나의 대학>을 썼다. 이 책들이 자전적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고리키 자신의 소년, 초기 성년 시절의 일부분을 차지한 많은 인물들과 서민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있어도 아주 간단했다. 그는 자신의 삶과 그에 관련된 사람들을 얘기하면서 분석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서 불굴의 정신의 중요성과 인간 학대의 경멸적인 성격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고리키는 당시 소련 연방이었던 러시아에 1928년, 60세 생일이 되던 해에야 돌아왔다. 성대한 공식 연회와 환대에 그는 무척 놀랐다. 당시 스탈린이 관좌에 있었는데 고리키는 정부의 환심을 사서 정치적인 꼭두각시로 이용됐다. 러시아 생존 최고 작가라는 그의 위치는 소련의 목표를 홍보하는 데 사용되었다. 1934년 고리키는 새로이 창설된 소련 작가 협회의 토대 회장이 되었는데 소련 정부를 위한 일종의 정치 선전 활동을 펼치는 작가를 지지하는 성격의 단체였다. 고리키는 거의 대부분 혁명 전의 시기를 다룬 작품을 계속 썼다. 고리키는 말년의 최고작으로는 <레스 톨스토이에 대한 회고>와 <작가에 대하여>가 있다. 동시에 그는 스탈린 정부의 잔악한 정책까지도 홍보 선전하는 광고문을 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소위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일컬어진다. 막심 고리키는 1936년 6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30년간이나 결핵을 앓아 오기는 했어도 그의 죽음은 갑작스런 것이었다. 사망 원인도 분명치 않다. 1938년 우파 운동가들에 대한 재판에서 전 경찰과장 야고다는 고리키의 친스탈린 활동 때문에 그를 암살하도록 지시했던 사실을 자백했다. 드러나지 않은 면을 살펴보면 막심 고리키는 비범함 명예를 얻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또한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압제와 학대에 끊임없이 대항했다. 그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의 문체가 다른 작가들, 특히 학식 있는 작가들보다 세련되지 못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그의 세련되지 못한 문체가 오히려 그의 주제에 사실성을 부여한다. 역사적으로 고리키의 작품은 러시아의 혼란, 혁명과 초기 소련 집권 당시 러시아 서민들의 삶을 가장 이해력 있게 설명해 주기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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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 서은주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라는 제목을 본 작품에서 그는 도시로 대변되는 중심부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일탈적인 삶을 통해 그의 사상, 종교에 대한 생각, 철학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분량도 길지 않으며 이야기의 구성도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도입부의 주변 환경 묘사 등을 포함해서 곳곳에서 마주치는 풍경 묘사는 자연 혹은 우주의 비정함과 인간 삶의 초라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설교하기 좋아하는 아리스티드 쿠발다의 입을 빌려 얘기되는 내용은 인간 삶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들을 아프게 들춰낸다. 이러한 면에서 고리키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쿠발다 대위가 상인인 페투니코프를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리키가 상업이나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본 작품의 재미는 고리키의 사상이나 철학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앞서 문장 하나하나가 안겨주는 감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