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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래도 살구의 노란색은 다른 노란색들과는 달라. 왠지 슬퍼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직 덜 익어서 그런 걸 거야. 더 익어야 하는 건데, 익을 수 없어서 그냥 노랗게 있는 거야.”
“익을 수 없기는…… 살구가 무슨 사람이라도 되냐? 익고 안 익고를 생각하게.” “사람만 생각하냐? 나무도 생각을 한다는 거 몰라? 네 아빠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면서 잘 키웠으니까, 그 사랑을 알고 이렇게 커서 열매도 맺고 하는 거지.” 예지는 이런 말도 했어. 살구가 다 익을 수 없는 이유는, 자기가 다 익으면 살구나무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익기 싫어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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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내 친구인 예지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장소 ‘다락방’을 좋아하는 산해라는 아이가 있다. 산해가 이처럼 다락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래된 나무냄새와 더불어 소설을 쓰는 아빠의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있지만. 정작 산해가 이 비좁은 공간을 좋아하게 된 사연은 이곳에만 오면 왠지 모르게 산해가 어릴 때 맡았던 엄마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서였다.
산해는 이 다락방을 “너무너무 행복할 때도 오고, 너무너무 슬플 때도 이곳에 왔다. 이 방이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고 엄마고 그런 곳.”이라고 믿고 있었다. 오늘도 산해는 그 작은 다락방에 있는 창문으로 ‘산해가 태어난 기념’으로 심은 살구나무를 살피고 또 살구나무 뒤로 혹시나 엄마가 오시지는 않나, 누군가를 살피고 있었다. 산해는 무슨 이유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벌써 4년째 아빠와 단 둘이 살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이곳 다락방에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순 엉터리’ 아빠를 미워하고 또 여러 공상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산해가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만나서 하룻밤을 함께 생활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엄마에게 중요한 일이 생겨서 오늘은 힘들겠다는 연락이 왔다. 대신 산해는 아빠와 함께 모처럼 목욕탕엘 가서 점점 좁아지는 아빠의 등을 보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산해는 엄마와 있을 때는 아빠 생각이 더 많고 또 아빠와 있는 때는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산해에게는 이제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일 생겼다. “산해야, 아빠랑 사는 거 좋아?” 의사이신 엄마가 아주 좋은 기회가 생겨서 미국에 있는 연구소로 가서 공부를 하고 올 계획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 참에 산해를 데려 갔으면 싶다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모든 선택은 산해에게 맡겨졌다. 산해는 말끝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위해서라고” 하는 그 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소한 자기를 이해한다면 그냥 예전처럼 살아주던지 아니면 최소한 옆집에서라도 살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이번 결정에 대해 고민한다. “답이 없는데 답을 고르라는 건 너무하잖아” 노랗게 살구가 익은 날. 아빠는 고민이 많은 산해에게 말한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가족이 아닐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영원히 네 아빠일 것이고, 엄마는 또 영원히 네 엄마일 거야.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으니까.” 산해는 이제 그 살구나무가 보이는 그 다락방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