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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서 고전에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 - 개강사를 대신하여 제1강 바쿠후 말기ㆍ메이지 유신기의 지식인 - 후쿠자와 유키치의 세대 제2강 무엇을 위해 논하는가 - 제1장 「논의의 본위를 정하는 일」 제3강 서양 문명의 진보란 무엇인가 - 제2장 「서양 문명을 목적으로 하는 일」1 제4강 자유는 다사쟁론 사이에서 나온다 - 제2장 「서양 문명을 목적으로 하는 일」2 제5강 국체ㆍ정통ㆍ혈통 - 제2장 「서양 문명을 목적으로 하는 일」3 제6강 문명과 정치체제 - 제2장 「문명의 본지를 논함」 제7강 문명사의 방법론 - 제4장 「일국 인민의 지덕을 논함」1 제8강 역사를 움직이는 것 - 제4장 「일국 인민의 지덕을 논함」2 제9강 중론의 구조와 집의의 정신 - 제5장 「전론의 속」 제10강 지적 활동과 도덕행위의 차이 - 제6장 「지덕의 변」1 제11강 덕육의 과신과 종교적 열광에 대하여 - 제6장 「지덕의 변」2 제12강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 제7장 「지덕이 행해져야 할 시대와 장소를 논함」1 제13강 어디서 규칙이 필요하게 되는가 - 제7장 「지덕이 행해져야 할 시대와 장소를 논함」2 제14강 유럽 문명의 다원적 연원 - 제8장 「서양 문명의 유래」1 제15강 중간계급의 성장과 영국ㆍ프랑스 양대 혁명의 배경 - 제8장 「서양 문명의 유래」2 제16강 일본에는 정부는 있어도 국민(네이션)은 없다' - 제9장 「일본 문명의 유래」1 제17강 제 영역에서의 '권력의 편중'의 발현 1 - 제9장 「일본 문명의 유래」2 제18강 제 영역에서의 '권력의 편중'의 발현 2 - 제9장 「일본 문명의 유래」3 제19강 메이지 유신 직후의 정신적 진공과 다양한 대응책 - 제10장 「자국의 독립을 논함」1 제20강 주권적 국민국가의 형성 - 제10장 「자국의 독립을 논함」2 맺음말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Masao Maruyama,まるやま まさお,丸山 眞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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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
일본 메이지 시대의 계몽사상가이자 교육자. 오사카 나카스 번에서 하급 무사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되던 1854년 나가사키에 유학해 난학(蘭學)을 배우기 시작해, 1858년 에도에서 난학주쿠(蘭學塾)를 설립하였다. 1860년 이후 바쿠후 견외사절로 구미 지역을 여행하며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되었고, 1966년 『서양사정』을 통해 서양의 문명을 소개했다. 1868년에는 난학 주쿠의 명칭을 게이오기주쿠(현 게이오기주쿠 대학)라고 개칭하고 교육과 저술활동에 전념한다. 1872년에 『학문의 권유』를 통해 일본의 문명화와 개인의 독립을 역설했으며, 1885년 「탈아론」을 발표하며 메이지 유신 후의 일본이 중화사상, 유교정신으로부터 탈각해 서양문명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창했다. 또한 만년에는 서구의 여성해방사상을 일본에 소개하며 남녀동등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저작과 번역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지식인과 대중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특히 ‘후쿠자와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 『문명론의 개략』은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필독서이자 애독서로 사랑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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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사상적 충격을 지닌 근대 일본의 영원한 고전
만 엔짜리 지폐에 초상이 실려 있어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바다 건너 우리나라의 근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잘 알려져 있는 사실과 같이 후쿠자와 유키치는 김옥균, 유길준 등 당시 ‘개화파’로 불리던 과거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과도 긴밀한 교류를 가졌으며, 그가 한자로 번역해 들여온 회의(會議), 연설(演說), 자유(自由), 권리(權利) 등의 단어는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쓰여지고 있다. 그의 “정신적 기력과 사색력이 가장 충실했던 시기의 산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문명론의 개략』은 후쿠자와의 사상에 대해서 남겨진 “유일한 체계적인 원론(原論)”이자 대표적인 ‘이론적 저작’이라 할 수 있으며,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와 함께 ‘후쿠자와 유키치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에 대한 주해를 시도하고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 책뿐 아니라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가치판단의 절대성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쿠자와가 계몽주의적인 역사의 진보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일반적인 통념에서마저 벗어나 “어떤 한도 내에서 ‘문명의 진보’를 가치적으로 긍정했는가에 대한 면밀한 음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말할 것도 없이 『문명론의 개략』의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는 메이지 유신 직후의 시대적 배경이나 후쿠자와가 의거했던 버클(H. T. Buckle)이나 기조(F. Guizot)와의 관련, 나아가 후쿠자와의 전 생애와 그 사상의 역사적 변천과 같은 문제 속에서 이 책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고전에서 배우기 위한 하나의 샘플로서 이 책을 다룰 것이며, 따라서 그런 역사적 배경의 천착은 일단 제외하고 독자들과 더불어 직접 원전에 부딪쳐가기로 하겠습니다”라고 서문에서 다소 겸손하게 밝히고 있는 것과 달리, 마루야마 마사오는 동서고금의 지식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문명론의 개략』의 각 장에 적절한 해설을 가한다. 탁월한 안내자이자 해설자인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문명권’의 만남/충돌로 특징지워지는 19세기 말이라는 격동기를 살아갔던 지식인이자 사상가로서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진지한 문제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에는 정부는 있어도 국민은 없다”라는 말로 독자적인 정체성이 없고 권력이 편중된 일본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일국(一國)이 아닌 ‘자국(自國)’의 독립을 과감하게 제시하는 그의 사상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질적인 서양문명이 동아시아의 띵에 어떻게 번역되고 수용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지식인들은 그러한 전환기를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갔는지 대략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