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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제31 보귀(寶龜) 원년 10월부터 2년 12월까지
권 제32 보귀(寶龜) 3년 정월부터 4년 12월까지 권 제33 보귀(寶龜) 5년 정월부터 6년 12월까지 권 제34 보귀(寶龜) 7년 정월에서 8년 12월까지 권 제35 보귀(寶龜) 9년 정월부터 10년 12월까지 권 제36 보귀(寶龜) 11년 정월부터 천응(天應) 원년 12월까지 권 제37 연력(延曆) 원년 정월부터 2년 12월까지 권 제38 연력(延曆) 3년 정월부터 4년 12월까지 권 제39 연력(延曆) 5년 정월부터 7년 12월까지 권 제40 연력(延曆) 8년 정월부터 10년 12월까지 원문 해설 옮긴이 후기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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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휘(諱)는 백벽왕(白壁王)이며, 근강대진궁(近江大津宮)에서 천하를 다스린 천명개별천황(天命開別天皇)의 손자이자, 전원천황(田原天皇)의 여섯째 황자다. 어머니는 기조신상희(紀朝臣橡姬)이며, 증태정대신(贈太政大臣) 정1위 제인(諸人)의 딸이다. --- p.3
신해, 칙하기를, “지난번 여러 경(卿)들이 아뢴 대로 천하에 상복을 입는 기한을 6개월로 정했다. 그러나 짐의 효성이 부족해 아버님 은혜[慈蔭]에서 영원히 멀어졌다. 서리에 맞아 색이 변한 나뭇잎[霜葉]을 사모하나 아버님 얼굴을 뵙던 날로 돌아갈 수 없다. 아득히 풍지(風枝)를 품어 보았지만 끝내 아버님 곁에서 시중들던[侍謁] 때가 사라졌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고통이 매번 심하고, 망극한 마음은 더욱 절절하다. 마땅히 이전에 정한 상복 착용 기간[服期]을 고쳐서 1년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 시행한 일은 오로지 이전의 칙에 따르라”고 했다. --- p.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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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
≪속일본기≫는 697년에서 791년까지 95년간의 역사를 40권의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 2년간의 역사를 1권 가까운 분량으로 서술한 셈이다. 이 사서는 797년에 완성된 동시대의 사료다. 그래서 비교적 상세하게 8세기의 일본사를 복원할 수 있다. ≪속일본기≫에는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이나 발해가 일본에 파견한 사신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기술이 적고, ≪속일본기≫의 신라 사신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고대사 사료를 보충할 수 있는 사서다. ≪삼국사기≫를 통해 신라사라는 숲을 볼 수 있는 정도라면, ≪속일본기≫를 통해서 일본 고대사라는 숲 속의 나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지역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웃 나라의 역사를 읽으면서 거꾸로 한국 고대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속일본기≫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속일본기의 마지막 기록 제31권부터 40권까지는 보귀(寶龜) 원년(770년) 10월부터 연력(延曆) 10년(791년) 12월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백벽왕(白壁王, 709∼782), 즉 광인천황(光仁天皇)의 즉위로부터 시작한다. 연력 원년에는 ≪속일본기≫의 최종 편찬을 명령한 환무천황의 시대가 열린다. 관찬 사서에서 재위 중인 군주의 치세를 다루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천조대신(天照大神)의 후손으로 자처해 왔던 일본 천황가의 혈통을 상대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전문적 번역 ≪속일본기≫를 번역한 역자 이근우는 일본 고대 사료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우리 학계는 ≪일본서기≫나 ≪속일본기≫와 같은 일본 고대 사료에 대한 학술적인 번역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일본서기≫의 한국 고대사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역시 일본 고대사 전공자에 의한 본격적인 번역은 없는 상태다. ≪속일본기≫의 출간으로 우리 학계의 학술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