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말
일생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 다치바나 다카시 읽기와 듣기, 지금 왜 필요한가 ― 가와이 하야오 읽기와 듣기는 어디까지인가 ― 다니카와 순타로 강연 ― 첫번째 읽는다는 것, 듣는다는 것, 산다는 것 ― 가와이 하야오 강연 ― 두번째 인간의 미래와 읽기, 듣기 ― 다치바나 다카시 앤솔러지 책 읽는 사람은 ― 다니카와 순타로 심포지엄 ― 읽기의 힘, 듣기의 힘 책과의 만남 읽기와 뇌 듣기의 다층성 인터넷 공간에서 ‘읽기, 듣기’ 지식과 체험을 잇는 것 인터넷이 낳은 새로운 세상 기계와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 언어 이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후기 옮기고 나서 |
Takashi Tachibana,たちばな たかし,立花 隆,본명 : 橘 隆志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른 상품
이언숙의 다른 상품
|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본능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마음(‘novelty’를 좋아하는 취향)이다. 이러한 본능 덕분에 인류는 지금까지 진화할 수 있었다. 그 본능에 충실하면 항상 새로 나온 책에 손이 먼저 가지, 결코 예전에 읽은 책에 다시 손이 가지는 않는다. ‘예전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진화가 아닌 퇴화의 길을 걷게 되므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늘 바라고 있다.
--- p. 14 |
|
‘듣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침묵을 듣거나 송풍(松風)을 듣거나 향을 피워 냄새를 맡을 때에도 ‘듣다’라는 단어를 쓴다. 즉 인간의 의식에 호소하는 내용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움직임을 ‘듣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는 것, 듣는 것의 범위는 매우 넓다고 할 수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이는 상당히 미심쩍은 말이다. 눈은 귀보다 더 쉽게 속아넘어갈 때가 많으니까.
--- p. 20 |
|
요컨대 나 자신에게 ‘정보를 투입하는 과정(Input)’과 ‘밖으로 꺼내는 과정(Output)’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을 일반적으로 ‘IO비’라고 합니다. IO비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 많은 자료를 투입하여 적게 배출하면 그 압박비가 높은 만큼 많은 정보가 쌓여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럼 일반적으로 적정한 IO비는 얼마일까요? 예를 들면 책을 한 권 읽고 바로 책 한 권을 썼다면, 이것은 1대 1의 비를 갖습니다. 이는 전혀 내용이 없는 책이 되어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 p. 50 |
|
책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머리로 읽는 것입니다. 머리로 읽고 만족한다고 할까요. 그 정도로 만족하는 시기가 지나면 점차 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테니스의 경우, 테니스 입문서를 아무리 읽어도 테니스를 잘 치지는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해봐야 합니다. 너무 단순한 예일지도 모르지만, 책 또는 머리에서 빠져나와 몸으로 옮겨오는 그런 느낌입니다.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몸을 움직여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 p. 146~147 |
|
미국의 선주민도 문자를 갖지 않았습니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세련된 감각입니다. 한 번 보고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고 무엇이 약초인지도 쉽게 가려냅니다. 역시 우리와 전혀 다른 감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성은 문자를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문자문화가 우수한 면을 갖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수한 문자문화 속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p. 164~165 |
|
일본 최고의 지성 3인이 풀어놓는 읽기와 듣기의 무한한 힘!
‘읽기’란 단순히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듣기’는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보통 ‘읽기’와 ‘듣기’를 단지 글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정도로 여겨 ‘말하기’나 ‘쓰기’보다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각?청각의 관점에서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를 보거나 그저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 외에 좀더 능동적이면서 주체적인 의지가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가와이 하야오는 이렇게 말한다. “‘읽다(讀)’라는 말에는 시를 읽거나 글의 뜻을 파악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듣다(聽)’라는 말에는 질문을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읽기와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행위이며, 나아가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15쪽) 다시 말해 ‘읽기’와 ‘듣기’에는 단순히 책을 읽거나 소리를 듣는 것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 가령 시낭송을 할 때 우리는 눈으로 시를 읽으며 입으로 소리를 낸다. 이는 ‘읽기’와 ‘듣기’가 공존하는 것이다. 또한 인쇄된 활자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표정을 읽고, 축구 경기의 흐름을 읽으며, 바둑의 수를 읽는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 읽고, 듣고 있다. 즉 ‘읽다’와 ‘듣다’라는 말에는 분명하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비언어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는 ‘읽기’와 ‘듣기’가 없었을까? 그들은 별자리를 읽고 길을 찾거나, 구름의 움직임을 읽고 날씨를 예측하고, 들짐승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사냥감을 쫓았다. 이렇듯 이 책은 ‘읽기’와 ‘듣기’의 개념을 확장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읽기’와 ‘듣기’를 어떻게 활용해서 세상과 소통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제공해 준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언제나 만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배후에는 산다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가와이 하야오 이 책은 크게 강연과 심포지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 부분에서는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읽기’와 ‘듣기’의 필요성과 개념, 우리의 삶과 미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심리학과 과학, 문학 전반에 걸쳐 살펴본다. 심포지엄에서는 ‘읽기’와 ‘듣기’를 시작한 시점부터 과학의 발전이 ‘읽기’, ‘듣기’에 미치는 영향, 인터넷 공간에서의 ‘읽기’와 ‘듣기’, 인류 시원부터 있어왔던 ‘읽기’와 ‘듣기’ 등의 주제를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쏟아내고 있다. 첫번째 강연에서 전문 카운슬러인 가와이 하야오는 자신의 다양한 상담 경험을 통해 얻은 ‘읽기’와 ‘듣기’,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 즉 소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운슬러는 얼핏 보기에 듣기만 하는 것 같지만 ‘듣기’에는 ‘읽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상담하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의 내면, 즉 그의 심리 상태나 내면의 울림을 조심스럽게 읽어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자신을 온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조언에 그칠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두번째는 다독가이자 많은 책을 저술해 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강연으로, 저술가인 만큼 ‘IO비’(정보를 투입하는 Input과 밖으로 꺼내는 Output의 비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한 권의 책을 저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대 1의 IO비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즉 읽기와 듣기를 통해 자료와 정보를 충분히 확보해야 충실한 글이 될 수 있는 의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 강연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읽기’와 ‘듣기’는 ‘이해하기’라는 점이다. 그의 저작물 중 3분의 1이 과학 관련서인 만큼 구체적인 예를 들며 ‘이해하기’에 도달하기 위한 ‘읽기’와 ‘듣기’를 과학의 발전과 연결시켜 인간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아이들의 감성이 뛰어난 것은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과 직접 소통하기 때문이다."― 다니카와 순타로 ‘책 읽는 사람’ 편에서 일본 현대시의 개척자 다니카와 순타로는 자작시 중에서 ‘읽기’와 ‘듣기’, 그리고 ‘책’을 주제로 한 시들을 묶어 소개하고 있다. 순타로는 ‘읽기’란 단순한 읽기를 넘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니카와 순타로의 시를 ‘읽음’으로써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시란 활자 외의 것들을 읽어내는 것으로, 행간과 행간, 시어와 시어 사이에 살아 숨쉬는 시인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다니카와 순타로는 자신의 시로 ‘읽기’와 ‘듣기’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읽기와 듣기, 그리고 삶에 대한 유쾌한 지적 수다 읽기와 듣기의 힘에 대해 삼인삼색, 유쾌한 지적 수다를 풀어놓는 심포지엄에서 저자들은 독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현대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 언어 이전의 시대 등을 살펴봄으로써 ‘읽기’와 ‘듣기’에 대한 사유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발전과 보급으로 인간의 ‘읽기’와 ‘듣기’의 양상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오히려 정보의 힘에 인간이 압도당해 버릴 우려가 있다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결국 현대인의 과제는 언뜻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 능력을 어떻게 공존시켜 균형을 잡는가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는 능력과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란 실제로 삶을 살아온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에 의한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156쪽) 이제 ‘읽기’와 ‘듣기’로 세상과 소통하라! 인간이 인간임을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언어, 그 언어를 구성하는 문자는 장점만 있는 것일까. 저자들은 문자가 그 편리성만큼 인간의 심적 움직임을 제한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진보를 이루는 만큼 감성은 퇴화한다는 것이다. 문자가 가진 우수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피력한다. 머리로만 무언가를 읽거나 어떤 것을 듣는 행동에서 벗어나 감성을 되살려, 언어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말하기와 쓰기 못지않게 중요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말하기, 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읽기와 듣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다양하며 우리 인생에 풍요와 깊이를 가져다준다. 세 사람이 나누는 유쾌한 지적 수다에 선입견 없이 빠져들어 보자. 이 책은 ‘읽기’와 ‘듣기’의 놀랍고도 무한한 힘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