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1장 강박증의 박물관 마음의 고고학 | ?늑대인간의 개인사 박물관 | 메타 고고학으로서의 정신분석 | 루브르의 강박증 | 허무를 가두는 감옥 | 신경증적 문명의 역사 | 로마네스크와 고딕, 공백의 사냥 | 르네상스, 포획된 공백 | 진리, 공백, 욕망의 변증법 | 미노타우로스와 다이달로스 2장 히스테리의 박물관 안나 O., 공백을 보는 여자 | 히스테리의 논리학 | 애도의 문명 | 하데스의 노래 | 히스테리적 이미지, 뒤틀리는 신체 | 낭만주의의 병리적 회화들 | 홀바인과 아르침볼도의 왜상 게임 | 오귀스틴의 뒤틀리는 신체 | 히스테리의 담화에서 분석가의 담화로 | 작품의 히스테리화 3장 멜랑꼴리의 박물관 문명의 우울 | 애도의 미술, 로코코 | L., 부를 수 없는 애도의 노래 | 신화의 기능, 하얀 마술 | 프로이트적 승화 | 제리코와 [메두사의 뗏목]? | 환멸, 욕망의 0도 | 라깡적 승화 | 횡단의 횡단 4장 성도착증의 박물관 V. B. 여인, "비단이 신음하고 있어요." | 성도착의 고유한 구조 | 법과 위반의 논리학 | 칸트의 법, 사드의 법 | 드 클레랑보 박사의 응시 | 다비드와 고야의 시선 게임 | 관음증의 박물관 | [세계의 기원]과 신경증자들의 불안 | 라깡의 덮개 에필로그 |
|
이 책은 박물관의 무의식의 지형도를 담아내려고 한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박물관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론’ 따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박물관이 세워지고 유지되고 향유되는 구조의 모든 토대에 숨겨진 근본적인 장소의 위치를 드러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박물관의 중심에 위치한 공백의 검은 구멍이며, 그로부터 발산되는 공허와 불안이다. 박물관의 무의식은 바로 이곳을 억압하고 은폐하기 위해 복도를 만들고 천정을 높이며, 그 주변을 화려한 작품들로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의 유물들에 붙여진 세밀한 이름표들의 연대기적 질서는 그것들 너머에 숨겨진 유령을, 모든 종류의 명명에 저항하는 불안의 대상을 사로잡아 가두기 위한 문명의 임시변통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이 은폐하는 구조의 지형도를 그려내는 과정 속에서 은폐의 대상인 불안의 공백으로, 검은 구멍인 그곳으로 접근하는 길을 찾아내려고 한다.--- p.12~13
박물관과 문명을 지탱하고 있던 환상 너머에서 독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박물관으로부터 기대했던 것, 고귀하거나 영원한 가치는 아니다. 그곳에는 보다 완고한 환영이 보다 교활한 방식으로 삶의 비루함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텅 비어 있는 흰 벽의 공허를 참을 수 없어 그곳을 장식하여 감추려고 물감을 칠하듯, 문명은 세계의 허무를 견딜 수 없어 예술이라는 환영을 발명해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장 드라마를 보며 넋을 놓는 것과, 위대한 예술 작품에 취해 마음이 고양되는 것 사이에는 조금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모두 삶의 진실을 은폐하는 기능 속에서 서로를 속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 p.296 필자는 이 모든 논리적 지형들이 미술사와 박물관학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이라는, 단지 사변적 성격에 한정되지 않기를 또한 희망한다. 왜냐하면, 박물관이나 정신분석 임상실이라는 토포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우리 자신, 매일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 책을 가득 채우는 문자들이 우리의 일상적 사유를 간지럽히는 벌레와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일종의 병원균이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아토피와 같은 것 말이다.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찾아와 존재를 간지럽히는 피부병. 토포스의 경계선들을 위반하고 횡단하여 범주과 규범의 권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존재의 간지럼증과 같은 것. 그리하여 우리를 좀 쑤시게 하고 마침내는 자리(topos)에서 일어나 움직이게 만드는 비장소(atopos)의 피부병인 아토피(atopy)와 같은 책이 되기를 필자는 희망한다. --- p.18~19 |
|
박물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책은 박물관이라는 숭고한 장소를 정신병동으로, 그곳에 전시된 유물과 예술 작품들을 병리적인 증상들로 간주하며 도발적인 탐사를 시작한다. 문명의 빛나는 유산들이 주장하는 가치를 한낱 병리적인 효과들로 환원시킴으로써 박물관은 과대망상증의 화려한 부산물로 전락하는데, 저자는 이러한 ‘신성모독’에 대해서 이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라고 말한다. 예술가의 천재성과 예술 작품의 영원성이라는 신념은 인간의 유한성을 감추려는 낭만주의적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박물관에는 우리가 기대했던 그러한 것, 고귀하거나 영원한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곳에는 보다 완고한 환영이 보다 교활한 방식으로 삶의 비루함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텅 비어 있는 흰 벽의 공허를 참을 수 없어 그곳을 장식하여 감추려고 물감을 칠하듯, 문명은 세계의 허무를 견딜 수 없어 예술이라는 환영을 발명해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장 드라마를 보며 넋을 놓는 것과, 위대한 예술 작품에 취해 마음이 고양되는 것 사이에는 조금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모두 삶의 진실을 은폐하는 기능 속에서 서로를 속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박물관이 세워지고 유지되고 향유되는 구조의 토대를 밝혀나가면서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자체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박물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 작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아가서, 박물관의 유물들과 작품들이 인간에게 주는 쾌락은 어떤 종류의 쾌락이며, 이들이 우리로부터 은폐하려는 대상은 무엇인가?” 강박증적 문명과 히스테리적인 예술 작품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를 추적해가면서 문명은 강박증적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역사든 인류 문명의 역사든 모든 문화의 중핵에는 통제가 불가능한 ‘충동’ 또는 ‘카오스’가 존재하는데, 문명은 이것을 중심으로 억압의 테두리를 구성하게 마련이다(정신분석이 강박증이라고 부르는 증상은 이러한 억압의 테두리가 특정 생각을 중심으로 반복되는 기능장애를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건축물이 보여주는, 자연의 변화와 혼돈의 양상들을 기하학적 패턴의 조화 속에서 철저히 통제하려는 의지가 바로 강박증적인 증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박물관은 이런 위협적인 충동을 공백의 형태로 길들여 가두는 거대한 미로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박물관이 기도하는 것은 단지 공백들을 길들이는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그곳을 찾는 관람객을 길들이는 것이다. 충동을 길들이기 위해서 인간이 문명의 다양한 형식들(철학, 예술, 문학 등)을 창조해냈지만, 그렇게 탄생한 문명은 반대로 인간 자신을 길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백을 길들인다는 것은 주체를 길들인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저자는 이러한 길들여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박물관에 포획된 예술 작품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로잡힌 공백을 해방시키는 길을 찾고자 한다. 인간과 문명을 이해하는 세 가지 지형도 라깡학파의 정신분석은 우리의 마음을 세 가지 토포스(topos, 장소)로 규정하는데, 신경증, 정신병, 성도착증이 그것이다. 유아기의 인간은 말을 배우는 단계에서 이들 세 영역 중 하나로 편입된다. 이 책은 박물관의 예술 작품들을 이 세 가지 지형도 속에서 분석하면서 박물관이 문명의 불안을 억압하거나 드러내는 세 가지 유형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지는 루브르의 정신분석적 지형도의 중심에서 발견되는 것은 공백으로서의 검은 구멍인데, 이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구조와 기원에 위치하는 중심이며, 개인의 차원에서 집단적 문명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말하는 인간’의 쾌락과 불안을 결정하는 무의식의 결정자이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 작품들의 히스테리적, 멜랑꼴리적, 성도착적 이미지들이 어떻게 공백이 자신을 포획하는 문명으로부터 빠져나가는지, 또한 그러한 빠져나감을 통해서 어떻게 인간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이 출현하는지 고찰한다. 라깡과 루브르, 인간과 문명에 대한 이해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한 점의 회화가, 조각 작품이 제작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됨으로써 박물관이 건설되었던 무의식적 원인을 이해하게 되며, 마찬가지로 문명 일반이 건설되는 기본적인 패러다임과 원인 또한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서 이러한 이해는 우리 자신의 자아에 관련된 환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명과 자아는 동일한 구조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프로이트와 라깡이 행했던 작업에 대한 역방향의 탐사라고 말할 수 있다. 정신분석의 창안자와 발전적 계승자였던 프로이트와 라깡이 20세기 문명에 주었던 선물은 개인의 심리적 구조와 원인을 밝힘으로써 인류 문명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도입한 것이었다. 반면 이 책은 문명의 양상들이 가진 무의식적 구조와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만들었던 인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향을 취한다. 그러나 이 둘은 방향만 다를 뿐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자신을 이해하고 넘어서는 것이다. 내용 소개 1장 [강박증의 박물관]에서는 신경증의 첫 번째 유형인 강박증의 구조를 통해서 문명은 왜 강박증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러한 강박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루브르 박물관의 역사를 통해서 추적해본다. 2장 [히스테리의 박물관]에서는 신경증의 두 번째 유형인 히스테리적 구조 속에서 박물관의 작품들이 불안의 구멍을 은폐하거나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양상들이 그려진다. 3장 [멜랑꼴리의 박물관]에서는 정신병의 한 유형인 멜랑꼴리의 구조가 어떻게 불안의 공백에 사로잡히는지 묘사된다. 4장 [성도착증의 박물관]에서는 성도착의 구조가 공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또 다른 환상의 베일로 포획하는 특별한 방식이 예술 작품들의 분석을 통해 설명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실제 환자들을 먼저 소개했다. 강박증 환자, 히스테리 환자, 정신병적 멜랑꼴리 환자, 성도착증 환자의 실제 기록들을 통해 정신분석의 토포스를 선명히 드러내고, 이를 다시 박물관과 예술 작품들의 토포스에 겹쳐지도록 한다. 이러한 토포스의 중첩은 이 책을 읽는 하나의 방법인데, 그것은 먼저 제시된 환자의 증상과 구조를 그대로 박물관과 작품들을 이해하는 틀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