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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수술대에서|취주악의 임금님|맨 뒤의 높은 곳|공룡|콩쿠르|검은 행진곡/비와 낙원|보이지 않는 고양이 소리가 거리에 울리다|보리밟기가 이 세상에서 취하는 다양한 형태|보은을 위한 사환 할아버지의 행진곡|눈깔사탕 주세요 제2장 지각하는 기관차|나비 아저씨|빨간 개와 눈이 보이지 않는 복서의 왈츠|10월 12일의 스크랩북에서|11월 3일의 스크랩북에서|12월 21일의 스크랩북에서(우편함에 넣지 않은 편지)|3월 23일의 스크랩북에서|여름의 맹학교|반짝이는 검은 날개가 당신을 신세계로 데려갑니다 제3장 빨래집게|쥐 사나이의 말로|보릿짚|고추 인연|여자 아이는 선박 여행을 기대한다 제4장 초록|거울 없는 정자에서|괴상함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5월 7일의 스크랩북에서|6월 12일의 스크랩북에서|복서들|환생한 남자의 짧은 추억|또다시 어둠 쥐|수술대에서|심전도|이 세상에서는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재떨이|7월 6일의 스크랩북에서|7월8일의 스크랩북에서|굉장히 몸이 큰 여성|보리밭의 쿠체 |작가의 말| 한국의 독자들에게 |옮긴이의 말|소년의 성장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교향곡 |
Shinji Ishii,いしい しん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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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눈을 감고 느끼는 거야”
잘 밟혀야 쑥쑥 자라는 보리처럼 시련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우리 시대의 우화 쿵 두둥 쿵, 쿵 두둥 쿵…… 나는 ‘고양이.’ 눈앞에 펼쳐진 노오란 들판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아이가 발을 구르고 있다. “뭐하는 거야?” “보리를 밟아.” “보리밟기?” 시쳇말로 ‘요즘 아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보리밟기. 1966년생 작가 이시이 신지에게도 진기한 풍경이었던가 보다. 꿈속에서 본 보리밭과 리드미컬한 소리에 반해 상상속의 인물 ‘쿠체’를 탄생시킬 정도였다면. 그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한 멋진 작품을 쓸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고, 그 결과는 어른 아이 모두를 공감시키는 작품에 수여하는 쓰보타 조지 문학상 수상으로 입증되었다. 목소리를 잃은 동생의 노트를 통해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소녀(『그네타기』)와 무언가에 한번 빠지고 나면 어리석을 정도로 몰입하는 남자(『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환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 작가는 이번에 “야옹야옹” 멋드러지게 소리 낼 수 있어 ‘고양이’라 불리는 한 소년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한다. 동네 취주악단의 팀파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할아버지, 소수(素數) 찾기에 몰두해 있는 수학자 아버지, 그리고 또래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키가 큰 까닭에 엄마가 자신을 낳다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는 나 고양이. 장편소설 『보리밟기 쿠체』에는 현실에서는 결코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슬프거나 외로울 때 주인공을 다독여주는 ‘쿠체’는 소설 말미에 드디어 밝혀지는, ‘이상한 누군가’를 일컫는 대명사에 불과한 환상 속 캐릭터다. 아이들 사이에서 둥둥 떠 있는 섬 같은 존재인 주인공은 취주악단의 악보 속 ‘고양이 소리로’에 등장해 ‘음악’으로 변주되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환 할아버지의 스크랩북에 열중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기사들로 가득 찬 스크랩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해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모모』의 주인공처럼, 고양이는 스크랩 속 사건을 현실에서 경험한다. 까만 쥐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고, 아버지는 쏟아진 쥐의 숫자를 세며 소수냐 아니냐를 고민한다. 게다가 쥐 비가 내린 날, 동네 사람 모두가 음치가 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면서 ‘고양이’는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 작품은 대다수 일본소설이 추구하는 감성적인 여성소설이나 유머러스한 풍자소설의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 본다는 점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비슷할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사람이면서 환상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가깝다. 그러나 환상과 현실을 두루 아울러 아이들의 성장과 인간의 존재 문제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는 어떤 소설과도 비교될 수 없는 작품성을 갖추고 있음을, 일본의 문예평론가 이시카와 다다시[石川忠司]는 “이 작품을 읽고 깊이 감명 받았다. ‘문학’의 영역에서 2002년 최대의 걸작”이라고, 또 철학자 고이즈미 요시유키[小泉義之]는 “생존하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문학”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어떤 이름이냐보다는 어떤 성격을 지녔느냐에 주목하는 작가는 인물과 사건 하나하나도 그에 맞게 형상화한다. 고양이?나비 아저씨?첼로 선생 등 별명이나 직업으로 불리는 인물, 큰 도시나 항구의 마을같이 특징만이 언급되는 장소, 바다의 공룡?환생하는 사람?쥐 비 등 개연성 없는 작품요소들은 마치 한 편의 우화소설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쿵 두둥 쿵” 귓가에 맴도는 쿠체의 발소리, 광활한 바다나 푸르디푸른 하늘 등 눈가에 머무는 색채의 묘사는 작품을 읽는 또다른 재미를 준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 모두 보리밟기와 같은 거야”나 “큰 것은 눈에 띄지만 너무 큰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아” 같은 선(禪)적인 쿠체의 언어들은 아리송하게 다가오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쯤에는 모든 건 때가 되면 알게 됨을, 다른 건 나쁜 게 아님을,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진실은 눈을 감고 느끼는 것’임을 하나씩 깨달아가는 주인공을 만나게 한다. 동화적 상상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일본에서는 이미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시이 신지. 성별·나이·지역에 상관없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의 신작 『보리밟기 쿠체』는, 이제 우리 독자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일본소설을 마음껏 누리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