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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을 통해 그림과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놓은 책
리타는 엄마가 둘이다. 그리고 왼손잡이다. 왼손잡이는 그림 그릴 때만 조금 불편할 뿐 리타에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리타에게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자신을 따뜻하게 인정해주고 감싸주었던 친엄마는 지금 같이 살지 않는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새엄마는 리타에게 늘 꾸중만 늘어놓는다. 리타는 혼란스럽다. 게다가 자신은 그림으로 1등을 하고 싶은데, 새엄마는 공부로 1등을 하길 바란다. 리타의 처지는 “무슨 소식을 전하려는 듯 이리저리 삐딱하게 선을 그으며 어려운 글자를 적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위의 소금쟁이와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리타가 소금쟁이의 글씨를 알아볼 수 없듯이 리타의 마음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이러한 리타가 교내 그림대회에 참가해 수상작 발표를 기다리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고민을 풀어가고 한 걸음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재미있고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언가에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호기심 많은 아이, 하지만 가슴 한가운데가 늘 허전한 아이 리타가 자신의 처지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성장해가는 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희망을 줄 것이다. 리타가 아빠의 ‘만세발가락’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보듯 말이다. 1993년 자전적 소설인 이 책을 처음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리타 페르스휘르는 이 작품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황금부엉이 상’을 받았으며, 또한 역시 자전적인 소설인 <낯선 땅>으로 ‘니엔커 반 히흐툼 상’과 ‘은빛 흐리펄 상’을 받는 등 네덜란드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도 비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지 2년 후, 암스테르담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해방 후 2년 동안의 평화’라는 주제로 미술대회가 열렸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던 리타는 전쟁 후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과 함께 평화를 환호하듯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아빠의 ‘만세발가락’을 그려 넣는다. 아빠의 만세발가락은 곧 평화가 올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데도 소시지나 야채수프를 만드는 것처럼 비법이 있는 것인지, 그림을 그려서 상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림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서명’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그려진 그림의 주제는 무엇인지, 가짜 그림과 진짜 그림은 도대체 어떻게 다른지 등등, 호기심 많고 생각이 깊은 리타는 학교에 자신의 그림을 제출하고 난 후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이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다. 또 리타가 보기에는, 새엄마의 책상 위에 있는 피카소의 <물고기 모자를 쓴 여인>이란 그림은 너무나도 이상하다. 그런데 엄마는 왜 그 그림에 대해 칭찬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리타는 그 그림보다 약사 일을 그만둔 뒤부터 조각품을 만드시는 외할아버지의 조각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피카소는 왜 여인의 머리 위에 물고기 모자를 그렸을까?’ 리타는 궁금하다. 언젠가 리타는 코끼리의 상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자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끌기 위해 코끼리 등위에 화려한 양탄자를 그려 넣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누구에게도 코끼리의 상아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칭찬까지 들은 경험이 있다. 이런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피카소도 잘못 그린 얼굴을 만회하기 위해 물고기 모자라는 엉뚱한 장치를 그려 넣은 걸 거라고 추측한다. 얼굴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자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것으로 쏠리게 하기 위해 화가는 여자의 머리 위에 물고기를 그려 놓았을 거라고. 그렇다고 해서 리타가 그 그림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아빠의 전혀 상반된 여러 표정―화를 내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속으로 웃고 싶어 하는 것 같았던―을 동시에 보았던 때를 생각하면서, 복잡하고 이상한 피카소의 그림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은 주인공 리타의 가족들(새엄마, 아빠, 지금은 아빠와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친엄마, 새엄마의 부모)과 심사위원인 학교 선생님들, 미술대회의 경쟁자들인 학교 친구들 이야기이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데다 무엇을 그릴지 몰라 쩔쩔매는 짝꿍 칼라. 그런데 리타가 알려 준대로 그린 그 애의 그림은 예선을 통과해 리타를 맥 빠지게 했다. 사과처럼 빨간 볼 때문에 리타가 상을 받게 될 거라고 말하는 친구, 그림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야채스프처럼 비교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친구, 모여서 수군수군 선생님에 대해 험담하는 아이들 등등. 어느새 시간이 흘러 수상식 날이 왔다. 그날 새벽에 리타는 자신이 수상자로 뽑히는 상상을 한다. 상상 속에서 새엄마와 아빠는 두 손을 잡고 속삭이고 있다. 리타는 자신이 상을 받지 못하면 아빠가 새엄마의 손을 잡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을 받는 것보다는 아빠의 손을 잡고서 아빠와 함께 자신의 그림을 보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삶의 암호를 찾아가는 아이의 성장일기 예선을 통과한 15명 가운데 한 사람에게만 주는 상을 놓고 그림을 보는 시각의 다양함, 그림에 대한 생각, 평가, 논쟁이 쉼 없이 전개된다. 그림 그린 과정을 모른 채 결과만을 놓고 실력을 평가해야 하는 그림대회의 맹점, 그림 이외의 요소에 의해 수상작이 결정되어질 수 있음에 대한 우려,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깊은 속내를 알아보는 방법, 유명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의 작품을 볼 때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는 그림에 대한 빗나간 자세 등등. 그림 평가에 얽힌 저자의 다각적인 생각을 읽다 보면 이 책이 그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생에 대해,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생각들은 리타는 거침없이 의문을 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내며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림 그리는 비법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리타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삶의 암호를 찾고자 노력한 것이 아닐까? 마치 리타의 일기를 보는 듯한 이 책은 경쾌한 이야기 전개와 함께 지극히 절제된 표현으로 조심스럽게 독자들에게 다가와 긴 여운을 준다. 또한 이미 정해져 있는 생각의 틀로 독자를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지런히 정돈된 독자의 마음 밭에 의문을 제기해 삶에 탄력을 불어넣어 주며 생명력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아빠의 만세발가락>은 2001년에 출간되었던 <피카소는 미쳤다>를 어린이 책으로 다시 펴낸 것이다. * * *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쉽게 구해지지 않는 암호를 찾아 헤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다.” - 유혜자(옮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