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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고공비행高空飛行, 노무현 시대의 하늘을 날다 나는 ‘낭만’ 혹은 ‘명랑’ 공산주의자다 대한민국에서 좌파란 과연 무엇인가 노무현 정권, 참여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 FTA로 망한 멕시코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래다 노무현의 진정성과 전두환의 진정성 사이에서 지식인은 왜 하중근 열사의 죽음에 침묵하는가 ‘민생’ 말하는 민주노동장, 철학이 빈곤하다 2부 인물열전人物列傳, 동시대의 각양각색 스펙트럼 왜 박노자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 우리 시대의 등대지기, 진중권을 위하여 우리에게 지율 스님은 어떤 존재인가 전투적 생타주의의 눈으로 본 강금실 오세훈, 공약 지키면 서울은 지옥된다 진보와 극우의 경계에 선 김지하 20대 예비 저자들을 위하여: 대기만성이 당신들의 길은 아니다 3부 녹색환경綠色環境, 우리가 꿈꾸는 세상? 오늘도 액셀을 밟고 있는가 버스노선으로 보는 정치공학과 도시학 광우병 공포, 양지머리를 허하라 건설교통부를 새로 건설하라 강남, 이러다 서라벌 꼴 난다 자동차, 섹슈얼 판타지, 그리고 공공의 적 ‘공영개발의 투명인간’ 세입자 ‘휴대폰 팔아서 쌀 사먹자’는 이들에게 ‘짜장면’ 혹은 ‘자장면’보다 더 중요한 것 농협은 농협답게 굴어라 지리산이 왜 명산인지 물으신다면 4부 세상단평世上短評, 21세기의 대한민국 스케치 중남미형 사회의 문턱에서 배가 산으로 가면 경제가 살아날까? 드디어 대망의 2만 불 국민소득? 박근혜 의원님께 껍데기에 미쳐버린 공화국이여 깡패들의 공화국이여 개헌과 FTA, 그리고 국민투표 한미 FTA, 국민투표를 활용하라 노무현-황우석 동맹과 강양구 동맹 이라크 파병, 보이지 않는 전쟁의 시작 승자독식 사회와 똘레랑스의 주검 작전명: 5267, 676, 5266 ‘방과후 학교’, ‘방과후 옥상’ 되다 6헥타르 정책만은 취소하라 저 가짜 아버지에게 짱돌을! 발문_‘명랑’ 좌파에게 건네는 전언|정성일(영화평론가) |
禹晳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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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은 4년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증오를 흩뿌렸던 아주 독특한 사나이이다. 이제 노무현은 대한민국 시스템의 최상위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를 정점으로 움직였던 지난 4년간의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 노무현의 개인적 삶의 평온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로 했다. 앞으로 이 땅에서 그 누구도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좌파든, 우파든, 가난하든, 부자이든, 남자든, 여자든, 혹은 한국인의 순혈주의에 슬퍼하는 이방인이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이제는 열어야 한다. ---'책머리에’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더 많은 축복을 나누기 위한 삶의 기초가 생활협동조합에 있다는 것이 2007년 내가 가지고 있는 잠정적 결론이다. 다른 곳에서는 어려운가? 교회마저도 권력기관처럼 서로를 저주하면서 지내는 지금, 그런 곳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본디 유혹에 약한 존재이다. 탐욕을 누르고 축복하는 것도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이 시스템에서는 따로 훈련하고 배우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다른 대안을 찾아낼 때까지 현재로서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축복을 동시에 구현하면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협동 진화의 틀 안에서 같이 진화하는 것이다. 골방에서, 술집에서, 백화점에서, 그리고 골프장에서, 축복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머리에’ 중에서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는 지율이나 시민단체 아니면 생명평화 세력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아서는 엄연한 현실처럼 보인다. 반드시 이 정부가 다른 정부보다 더욱 생태적 문제에 문맹인 개발주의 정부라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국책사업에 대한 평가 절차나 추진 절차가 지나치게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장치가 아니라 장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지율 스님은 어떤 존재인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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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많은 행복, 좀더 밝은 웃음, 좀더 큰 기쁨을 느끼는 사회를 위하여!
노무현 시대의 시작과 함께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들을 내놓기 시작했던 필자는, 지난 4년 동안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며 다양한 논쟁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주류 매체와 인터넷 매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단상들을 쏟아냈던 우석훈의 글이 가진 강점은 기본적으로 그의 시각이 현실에 단단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일 터. 기업과 정부, 국제기구 등에서 활약했던 이력으로 미뤄보건대, 그의 글이 지닌 구체성과 현실성은 본인의 체험에서 우러난 것일 것이다. 경제학자답게 우석훈은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논리적 정합성과 통계를 덧붙여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 많은 지식인들의 글 중에서 그의 글이 유독 빛났던 것은, 고준담론의 논쟁에서 벗어나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발 딛고 사유하는 힘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런데 좌파든 우파든 노무현 시대에 대한 불만을 소리 높여 성토하는 동안, 그는 현실을 되짚어 분석하되 그 속에서 모종의 희망을 지향했다. 그가 지향한 희망이란, 사실 간단하다. 좌파든, 우파든, 가난하든, 부자이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 행복해지는 사회! 그는 희망을 위한 키워드로 ‘명랑’을 내놓는다. ‘명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말하는 ‘명랑’은 일종의 밝은 활력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말을 빌리자면, 우석훈의 명랑은 승리를 담보하진 않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는, 절망하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힘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정확히 문제를 되짚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는 지율이나 시민단체 아니면 생명평화 세력 모두에게 가혹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아서는 엄연한 현실처럼 보인다. 반드시 이 정부가 다른 정부보다 더욱 생태적 문제에 문맹인 개발주의 정부라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국책사업에 대한 평가 절차나 추진 절차가 지나치게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장치가 아니라 장치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_‘우리에게 지율 스님은 어떤 존재인가’ 중에서 이번 칼럼집에서는 우석훈이 노무현 시대에 벌어졌던 다양한 논쟁들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불붙었던 논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내 사그라졌지만, 그의 글들이 순전한 옛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의 칼럼들은 일종의 ‘노무현 시대의 비망록’으로서 동시대에 불거졌던 사회적 사안들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기록이다. 그가 새만금 문제를 비롯하여 천성산 문제, 황우석 사태,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서울시장 선거, 뉴타운 건설 등 최근 한국 사회의 굵직한 논쟁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도 분명 그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논쟁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미래에 놓여 있기에 더 유의미하다. 냄비처럼 뜨거워진 논쟁의 형국에서 한발 벗어나 좀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각 사안들을 되짚어보는 데 우석훈의 글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또한 이번 칼럼집에서는 각각의 이슈화된 사안들에 대한 글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지식인, 정치인 등 여러 인물들에 대한 필자의 단평들을 갈무리해보았다. 핵심적인 논쟁의 사안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박노자, 진중권, 지율 스님, 강금실, 오세훈, 김지하 등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우석훈 나름의 진단과 평가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함께 ‘협동 진화’하는 길, 그것은 구체적이고 조그만 실천으로부터! “아토피 없는 동네를 위해 무료 셔틀버스를!” 이야기하고 “안전하고 값싼 자장면!”을 원하는 그의 주장에는 분명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우석훈은 이러한 삶들의 희망을 일구기 위해 거대하고 높아만 보이는 어떤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들이 가진 현실성만큼이나 그의 대안 역시 구체적이다. 그것은 조그만 실천, 조그만 노력, 그것을 통해 단독적 개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협동 진화’이다. 혼자만이 나아가는 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나아가는 길, 그것은 어쩌면 아주 조그마한 데서부터 출발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얼핏 보면 사소해보일 수 있지만,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뿌려진 밀알일지 모른다. 이 소소해 보이는 밀알에 대한 신뢰와 지지야말로 바로 지금, 그 누구도 쉽게 긍정하지 못하는 현 사회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대안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