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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머리말 제1부 구조 1장 | 철학적 앎 1. 근원과 반성 2. 현상과 개념 3. 발견과 논리 2장 | 철학적 방법 1. 경험과 언어 2. 앎과 언어 3. 서술과 분석 4. 언어현상학과 언어철학 5. 현상학과 실존주의 6. 현상학과 인문사회과학 7. 현상학과 해석학 3장 | 철학적 해명 1. 삶의 세계와 삶의 양식 2. 의미화의 구조 3. 철학적 해명 제2부 전개 4장 | 현상학 1. 후설과 인식 a. 명증성의 추구 b. 의미대상과 초험적 자아 c. 상호주관성 2. 하이데거와 존재학 a. 존재의 문제 b. 인간존재 c. 존재와 시 3.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a. 실존과 자유 b. 자기기만 c. 타인과의 관계 d. 개인과 사회 4. 메를로-퐁티와 지각 a. 인식 b. 언어 c. 야생적 존재 d. 예술적 진리 5장 | 분석철학 1. 무어와 상식 a. 철학적 동기와 방법 b. 관념론비판 c. 상식과 철학 2. 러셀과 논리학 a. 과학적 철학 b. 논리원자주의 c. 철학적 과학 3. 카르납과 실증주의 a. 실증원칙 b. 이상언어 c. 경험주의의 독단성 4. 비트겐슈타인과 일상언어 a. 그림으로서의 언어 b. 언어의 용도의미 c. 언어의 한계와 신비 마무리 | 철학의 종말 주요 참고도서 목록 사항색인 인명색인 |
PARK, EEE-MOON,朴異汶, 본명:박인희(朴仁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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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은 어떻게 다른가
철학적 앎 현상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앎은 과학적 앎과 다른 근본적인 앎이다. 이것을 밝히는 것이 현상학이 말하는 철학의 기능이다. 반면 분석철학은 철학의 진정한 기능은 인식에 관한 여러 가지 진술 또는 언어표현에 대한 2차원 사고로 언어의 논리와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두 철학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현상’과 ‘개념’이다. 현상학에서 ‘현상’이라는 말은 물질적 혹은 비물질적인 대상이 의식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가리킨다. 이 경험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현상학은 이 과정에서 과학이 닿을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해서 명증성을 찾고자 한다. 이와 달리 분석철학은 한 언어가 무엇인가를 서술하거나 무엇인가의 느낌을 표현하는 경우, 그 언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다. 따라서 분석철학자들은 철학은 개념의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상학과 분석철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가 저자는 현상학과 분석철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철학이 아니라고 본다. 현상학은 언어로 개념화되기 이전 객관적인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려 했지만, 삶은 이미 지성 이전의 어떤 욕망이나 감성에 지배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현상학이 알 수 있는 존재는 언어로 해석된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학은 언어를 초월해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석철학은 언어의 의미만을 분석해서 이해하는 일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언어의 진정한 의미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와 개인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근본적으로 관계있다. 저자는 이러한 두 철학의 방법론을 액체와 고체에 비유한다. 물의 여러 상태가 이 두 개념으로 분명히 구별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들은 연속되어 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는 것처럼 고체와 액체 상태 사이에는 무한히 다른 연속된 상태가 있다. 결국 두 철학은 존재와 언어의 뗄 수 없는 현상을 두고, 각기 어떤 각도에서 그 현상을 얘기해보자는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대표 철학자와 주장 ― 현상학자 후설 어떤 사실에 대한 앎이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 그것은 정말 앎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후설에게 철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수학적 앎과 같이 확실한 앎, 즉 필연적 진리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밝히는 작업에 열중한다. 우리가 무엇이 있다든가 어떻다든가 할 때, 그것 자체로는 명증성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그 무언가를 의식 즉, 경험한다는 점이다. 현상학의 모토가 “사물로 돌아가라.”인 이유도 이와 같다. 여기서 ‘사물’이란 구체적으로 항상 의식하고 있는 경험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으로 앎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하게 했으며, 모든 앎이 구체적 ‘앎’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후설의 수제자였고, 후설의 현상학을 계승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존재학’이었다. 그의 주요 저서 『존재와 시간』은 인간 존재, 즉 다자인Dasein을 시종일관 다룬다. 하이데거의 ‘다자인’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단어로, ‘세계-내-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존재, 인간은 세계를 의식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특수한 이유는 의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이데거는 “다자인의 본질은 실존”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실존’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단 점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또한 그는 ‘기존조건성’을 들었는데, 이는 자유의 여건이다. 인간의 자유는 자신의 출생이나 과거 등 어떤 여건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는 시적 언어가 이런 존재를 가장 잘 서술할 수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롭고 깊은 철학적 이해를 이루었고, 과학적 지식과 현대기계문명에 대해 반성하는 데 공헌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르트르 사상의 독창성이나 철학적 공헌으로 볼 때, 사르트르는 후설이나 하이데거, 무어, 비트겐슈타인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나 사상가보다도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실존은 인간적 존재양식을 말하고, 실존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믿는 모든 사상을 말한다. 사르트르는 주체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자유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자유의 행사와 책임 사이의 고민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에 빠진 상태를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사르트르가 볼 때, 인간은 누구나 단순한 대상으로 전락되기를 원치 않고 소유하고 지배하는 주체로 남고자 하기 때문에 독립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철학이 구체적 삶과 현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인간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밝혀보게 했다.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문제는 하이데거나 사르트르보다는 후설의 것에 더 가깝다. 그것은 실존의 문제이기 전에 인식의 문제이다. 메를로-퐁티의 인식의 문제는 지각perception의 문제로 귀착한다. 그에 따르면 지각은 모든 형태의 앎의 근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각에 뿌리를 둔 앎은 육체에 의해서 이미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이다. 따라서 지각에서 주체와 대상은 애매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그로 하여금 언어 이전의 지각을 주장하게 하며, 언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전개하게 한다. 메를로-퐁티의 언어철학의 핵심은 언어의 의미를 지각의 단순화로, 지각의 의미를 인간과 대상과의 가장 원초적인 관계로 보는 데 있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언어는 비개념적이고 덜 추상적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과학논리보다도 더 충실하게 사물 혹은 현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예술적 서술이 과학적 서술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 지각의 현상학에서 메를로-퐁티가 이룬 것은 인식에 대한 경험주의와 주지주의의 독단성을 밝혔고, 사물과 육체와 의식과의 지속된 관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 분석철학자 무어 분석철학이라는 철학적 흐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는 비트겐슈타인과 카르납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류를 가장 먼저 마련한 사람은 무어였다. 그의 철학적 동기는 철학자들이 석연치 않다고 느꼈고, 그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철학이 명석한 것, 정확한 사고여야 하며,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밝혀주려 했다. 무어는 상식이야말로 가장 자명한 앎이라 해서 ‘상식의 옹호’를 한다. 예를 들어 “실재는 정신적인 것이다.”라는 철학적 주장에 반발하면서 만약 그것이 옳다면, 의자나 식탁 같은 물건들은 우리가 여태껏 믿어 왔던 것보다도 훨씬 더 인간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무엇보다도 무어의 성과는 완전히 새로운 철학적 영토를 마련했으며, 가장 덜 독단적이며 반형이상학적이고 따라서 가장 분석철학자다웠다는 것이다. 러셀 러셀의 철학적 공로는 기호논리학의 체계화와 그것을 통한 언어의 논리적 분석이다. 이로써 그는 사고의 엄격성과 정확성을 마련했다. 러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적 논리학이 명제함수논리학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며, 명제함수논리학은 그것에 사용되는 명제들이 수량화되었을 때 광범위한 논리를 풀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한 명제를 표현하는 언어가 명확하게 해명되지 않는 한, 그 명제의 진위는 혼동되거나 끝내 판단될 수 없고, 나아가 이런 불투명한 명제로 엮어진 이론의 진위는 결코 결정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러셀에 의하면, 모든 언어는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최소한의 의미적 단위인 원자적인 명제로 분석된다. 그 맥락에서 러셀의 논리원자주의는 모든 존재는 ‘사실’이라는 원자적 단위로 분해되고, 그것은 오직 그러한 원자적 사실로만 논리적으로 설명됨을 믿는다. 러셀은 기호논리학을 정리해서 정확한 개념분석의 틀을 만들었고, 혼동하기 쉬운 중요한 언어의 분석을 실증했다. 카르납 카르납은 1920년대 빈에서 그의 동료들과 논리실증주의 운동을 벌였다. 논리실증주의의 핵심은 실증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한 진술 언어는 그 진술이 실증되지 않는 한 엄밀한 의미에서 진술, 어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인식언어가 될 수 없다. 진술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자로서 카르납은 일상언어의 규칙만 가지고는 피할 수 없는 개념에 대한 혼란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그와 다른 하나의 ‘이상적인 언어’, 즉 인위적인 언어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의 후기 논리실증주의에서 ‘실증’은 어떤 진술이 옳고 그른가를 실증해서 결판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러한 진술이 맞는가 아닌가를 실험할 수 있다는 뜻에 불과하게 된다. ‘이상적 언어’로서 철학적 언어가 일상언어와 대치될 수 있다는 카르납의 생각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깨진다. 카르납의 ‘실증원칙’은 인식언어와 비인식언어를 구별하고자 하는 최초의 명석한 의식적 의도로 과학을 이해하는 데 둘도 없는 역할을 했다. 비트겐슈타인 후설을 빼놓은 현상학을 생각할 수 없듯이 비트겐슈타인을 빼놓은 분석철학은 이야기할 수 없다. 그의 철학적 문제는 과학적 문제와 달리 어떤 대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오는 일에 있지 않고, 다만 언어의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그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논리와 철학논고』에서 주장한 ‘그림으로서의 언어론’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탐구』에서 전개된 ‘용도의미론’이다. 언어가 사실을 표현한다는 말은 문장의 구조 및 그것이 표현하는 사실의 구조와 같다는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의 기능은 한 언어의 올바른 의미를 논리적으로 가려내서 문법구조 때문에 생기는 오해를 막는 데 있다. 그는 이 기준에 따라 모든 철학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10년 후 그 언어관의 오류를 깨닫고, 완전히 새로운 언어관, 의미론을 펼친다. 비트겐슈타인은 후기 이론에서 언어의 의미는 그 말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안다는 것에 있음을 밝힌다. 여기서 이른바 ‘용도의미론’이 나타난다. 각 언어의 용도, 즉 한 인간이 사용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그 인간의 욕망, 감정, 생활태도를 앎으로써 올바르게 이해된다. 비트겐슈타인 용도의미론은 오늘날 가장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일상언어철학으로 발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