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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김영민(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획의 말- ‘한국의 번안 소설’을 펴내며 일러두기 해왕성 상 1~83회 낱말 풀이 《해왕성》 연재 예고 번안 작가의 말- 이상협 독자의 소리- 연재소설 애독자 《암굴왕(巖窟王)》 머리말- 구로이와 루이코(黑巖淚香) 번안 소설과 원작의 주요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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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소설의 번안 시대를 마감하고
‘재미’에 초점을 맞춘 ‘색다르고 낯선’, 서양 대중 소설의 번안” “세계적인 대중 문학의 진수를 날것 그대로 보여 주는 동시에 한국인의 입맛과 역사의식에 걸맞게 잘 익혀 차려 낸 대서사시” 어릴 적 숨죽이며 책장을 넘기던 바로 그 이야기, 원작의 태생지 프랑스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의 독자들이 함께한 통쾌한 복수의 대하드라마 《몽테크리스토 백작》(알렉상드르 뒤마). 인간의 시간을 암흑 속으로 밀어 넣는 끔찍한 이프 성의 모험, 그리고 꿈결 같은 낭만과 무한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 무인도이자 보물섬 몽테크리스토에 관한 이야기……. 아직까지도 일본인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가리켜 훨씬 더 음침하고 스산한 이름인 ‘암굴왕(巖窟王)’이라 부른다. 지금 우리 시대의 한국인 역시 이 이름이 더 낯익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초기의 한국인은 훨씬 더 신화적이며 장엄하고 상서로운 이름으로 그를 일컬었다.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자 유피테르(Jupiter)의 형제 넵투누스(Neptunus), 그러니까 제우스(Zeus)의 형제 포세이돈(Poseidon)을 가리키는 ‘해왕성(海王星, Neptune)! 일본의 번안 소설《암굴왕》은 원작과 두드러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번안 소설 《해왕성》이라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요컨대 이상협은 구로이와 루이코의 번안 소설을 지렛대 삼아 아예 ‘동아시아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창조해 냈다. 즉 1815년 나폴레옹의 엘바 섬 탈출을 배경으로 숨 가쁘게 펼쳐지기 시작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혹은 《암굴왕》이 아니라, 1894년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 발발 전야의 국제 도시 상하이에서 출발하여 1917년 가을 베이징을 발칵 뒤집어 놓은 역정의 세월 속의 《해왕성》인 것이다. 그 길 위에서 한국의 독자는 동아시아 근대사의 산증인 ‘해왕 백작’의 운명과 만난다. 《해왕성》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마르세유와 파리에서 ‘청나라 밖의 청나라’ 상하이와 스러져 가는 중화(中華)의 수도 베이징으로 그 무대를 옮아온다. 마땅히 그것은 겉보기만큼 간단한 시기상, 지리상의 변환으로 그치지 않는다. 근대사의 주요한 정치적 고비에 해당하는 연대이자 제국주의 열강의 전방위적인 침탈이 펼쳐진 지역이라는 점에서 철저하게 역사적인 시간이요 역사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번안 소설 《해왕성》은 원작과 견주어 때로는 갈음되기도 하고 때로는 겹치거나 포개지기도 하면서 한결 미묘하고 복잡한 역사음을 울린다. 에드몽 당테스(몽테크리스토 백작)와 똑같은 운명을 타고났으면서도 전혀 다른 신탁을 받은 장준봉(해왕 백작). 그는 세기 전환기의 격동을 온몸으로 견뎌 낼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의 ‘역사적 개인’이다. 요컨대 평범한 프랑스 인에게 들씌워진 파란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는 유럽 질서의 동요와 재편은 《해왕성》에서 장준봉이라는 동아시아인이 감당해야만 할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화의 역사로 신중하게 번안되었다. 《정부원》이라는 잠재력의 저수지를 통과하면서 한국의 번안 소설은 비로소 남성적인 색감과 규모, 속도감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다. 《정부원》에 곧이어 선보인 이상협의 후속 연재소설 《해왕성》은 한국의 번안 소설을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질감의 대작이라 할 만하다. 이상협이 일종의 사명 의식으로까지 삼은 새로운 소설 유형의 개척이란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근대 소설이 성취해야만 할 다양성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학적 세련성의 영역이기도 했다. 《정부원》과 《해왕성》을 통해 한국의 번안 소설은 남성적인 색채의 규모와 상상력으로 급선회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의 근대 소설이 한층 다변화되는 한편 독자층의 폭과 외연을 과감하게 확대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해왕성》은 번안 소설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값진 창조적 성과다. 일찌감치 소설의 흥미에 역점을 두고 새로운 소설 유형의 실험과 개척에 앞장선 전문 번안 작가 이상협이 공언한바 그대로 가정 소설이라는 오랜 관성과 정면으로 겨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왕성》은 처음으로 ‘장편 소설’이라 명명된 연재소설이니 실제로 여느 소설이 섣불리 필적할 수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의 근대 소설이 여러 갈래의 가능성과 풍성한 활력을 두루 갖추게 된 계기가 이처럼 대담하고 통 큰 필치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기억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전 세계적인 대중 문학의 진수란 어떠한 것인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 주는 동시에 한국인의 입맛과 역사의식에 걸맞게 잘 익혀 차려 낸 대서사시 《해왕성》. 《해왕성》은 한국의 번안 소설이 자가발전을 통해 성취해 낸 꼭짓점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