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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소설어 사전》을 펴내며
일러두기 ㄱ~ㅎ 찾아보기 1: 고유 명사 찾아보기 2: 외래어와 외국어 찾아보기 3: 음역어(音譯語) 찾아보기 4: 관용구 찾아보기 5: 한자 표기 어휘 부록 1: 삼대 전문 번안 작가 약력 부록 2: 출전 소설의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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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소설어 사전》을 펴내며
한국의 번안 소설 십 년의 역사와 언어를 《번안 소설어 사전》으로 갈무리하여 펴낸다. 이 사전은 근대 문학이나 민족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애써 숨기거나 등 돌렸던 한 시대에 대한 발굴이자 답사다. 소설을 번안한다는 것은 낯선 방법이 아니면서도 1910년대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문화기획으로 거듭났다. 번안이야말로 새 시대의 정신과 상상력을 새 시대의 양식과 언어로 표현하려는 창조적 고투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왜 번역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대한 정답이기도 하다. 번안은 전문 작가들의 역량이 미치지 못해서나 세계 인식의 지평이 좁았기 때문에 내세운 대안이 결코 아니다. 번역으로는 근대 한국의 문화와 감성을, 근대 한국인의 삶을 일상의 언어로 생생히 호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안 소설은 지금 우리 시대의 맨 앞자리에 놓여 있는 역사적 연원이자 기념비가 된다. 특히 한국의 번안 소설은 첫출발부터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을 지향했고 내내 한결같았다. 이 사실은 근대 한국어와 근대 장편 소설의 언어를 창안하고 다듬어 나아가는 도정이 바로 번안 소설의 역사와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번안 소설어 사전》이 각별한 의미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전의 출전이 되는 소설은 삼대 전문 번안 작가 일재 조중환, 하몽 이상협, 우보 민태원의 대표작이다. 모두 7종, 11권에 달하는 장편 소설로서 200자 원고지 15,000매가 넘는 분량이다. 이들은 대개 1910년대의 유일한 한국어 중앙 일간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다만 조중환의 번역 소설 《불여귀》가 신문 연재를 거치지 않은 채 곧장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민태원의 《무쇠탈》이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을 뿐이다. 이 소설들은 1912년 7월부터 1922년 6월까지 꼭 십 년 동안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가작들이며,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한 대중 매체를 타고 공유된 대중문화의 진수이기도 하다. 번안 소설은 그 십 년의 연대를 풍미하는 내내 간단치 않은 생명력과 활기를 유지하며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으로 한국 근대 문학 백 년의 역사를 열어젖혔다. 따라서 정확한 뜻풀이와 실제의 쓰임새를 함께 보인 《번안 소설어 사전》은 한 시대의 정서와 풍습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역들의 삶과 언어를 같이 느낄 수 있는 최선이자 최적의 지름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건너뛰어 새로 읽기 위해서는 그사이 낯설어지거나 아예 사라진 말, 사투리로 걸러진 말 등을 되짚어 찾아내야 한다. 뜻이 바뀌거나 다른 어법으로 쓰인 말을 정확하게 바로잡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비롯한 순 우리말도 생생하게 되살릴 필요가 있다. 정확한 뜻과 쓰임을 고려하면 문맥과 정서를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말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사전은 다양한 갈래와 성격의 어휘를 엄격하게 가려 뽑고 용례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풍부하게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이 사전을 일별해도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줄곧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을 고수한 한국의 번안 소설은 한자 표기를 의식적으로 제한했지만 실제로는 한자어이거나 한자를 통해 새롭게 조합한 말을 많이 채용했다. 뜻밖에도 외래어와 외국어, 그 가운데에서도 일본 말이나 일본 말에서 영향을 받았음 직한 말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 데에 유용한 길잡이 구실을 맡을 사전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당대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쉽고 재미있게, 마치 그 시대를 함께하듯이 소설이라는 것을 즐기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전을 통해 한국의 근대 장편 소설이 어떻게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으로 발표되고 읽힐 수 있었는지, 지금 우리 시대의 문학 언어가 어떤 역로를 거쳐서 고안되고 가다듬어져 왔는지 한눈에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의 한국어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녹록치 않은 길을 걸어 왔는지 이처럼 잘 보여 주는 사례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번안 소설은 소설이라는 것, 그것도 ‘순 한글의 한국어 문장’으로 쓴 시대 양식으로서 근대 소설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근대 한국의 문학적 상상력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그 상상력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 내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번역이 아니라 번안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은 거듭 새겨 둘 만하다. 흔히 재앙과 저주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바벨탑의 신화를 축복의 주문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삼대 전문 번안 작가들이 빚어낸 연금술의 언어 덕분임에 틀림없다. 무릇 하나의 언어로 만들어지고 하나의 언어로 움직이는 세계란 얼마나 밋밋하고 지루할 것인가? 짐작건대 지극히 간단한 만큼이나 명료하기 그지없을 것이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의지도,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힘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번안 소설이란 그 길을 향한, 그 힘을 위한 긴 여정의 첫걸음이었던 셈이다. 《번안 소설어 사전》을 통해 지금 우리 시대의 말과 글에 스며 있는 숱한 땀과 지난한 역투의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당대의 사유와 인식의 자취, 그리고 풍속의 지도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불과 한 세기 전의 언어적 격동기이건만 이 시대의 언어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학술 연구가 충분히 쌓여 있지 않다. 이 사전을 계기로 정밀한 분석과 체계적인 연구가 뒤따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품값으로 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