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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 글 - 지금 여기서
2. 우리 주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사과 지리산 바윗돌 빛 숭림사 손때가 묻은 오래된 것들 속도 소쇄원 밀레니엄 산천재 허위의식 병상서원 소외 송광사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 3. 나무처럼 자라는 집 상산마을 김선생댁 첫만남 상산마을 설계의 단서들 땅의 내력 집을 그리기 시작하다 첫번째 보고 나무가 살린 집 투명한 집 풍경과 마당 두 개의 속도 봄을 기다리는 동안 집을 짓기 시작하다 여름 동안 집이 자라기 시작하다 4. 닫는 글 - 집으로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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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산척면 상산마을, 부탁받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 땅을 보러 갔습니다.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국도에서 빠져 들어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나옵니다. 아주 한가한 시골 마을입니다.
그때가 8월의 중간 정도였고 한낮을 조금 비낀 시간이긴 했지만, 데문데문 초록을 비껴난 집들과 교회 창고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블록 담 혹은 토담 안에 마루는 텅 비어 있었고, 있으나마나 한 대문들만 문틀 한쪽에 덩그마니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참 동네를 어정거렸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극장에 들어가면 한참을 보내야 어둠에 눈이 익어 주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동네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집들이 길섶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집들이 따뜻한 양지에서 볕을 받으며 웃고 있습니다. 건강해 보여 좋습니다. 도시의 매연 속에서, 보도 블록의 좁은 틈을 비집고 피고 자라는 민들레를 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모르고 밝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길을 지나가며 혹은 빠른 속도로 국도를 지나가며 길가에 피어 있는 집들을 봅니다.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봅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의도가 없어 보이는 집들, 의도 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 그러나 유기적으로 소통되고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동네. 사는 것에 대한 욕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 그런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자연스러움만으로 구성된 집들, 무위의 집들. 산에 길이 나듯이 집들이 한 채씩 지어져 동네를 형성하고 길들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벽을 세우고 창을 뚫고 문을 만들고 마루를 깔고 표정을 주어가며 집들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건축가란 없습니다. 그러나 실명의 집입니다. 집주인의 기호가 보이고 재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보이고 무엇보다도 사는 사람들과 편안한 조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집을 그리고 싶습니다. 국도를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면 집들처럼, 서울이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에 뒤덮이기 전에 골목골목에서 만나던 건강한 집들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런 집 말입니다. --pp.94~96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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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길섶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집들이 따뜻한 양지에서 볕을 받으며 웃고 있습니다. 건강해 보여 좋습니다. 도시의 매연 속에서, 보도 블록의 좁은 틈을 비집고 피고 자라는 민들레를 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모르고 밝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길을 지나가며 혹은 빠른 속도로 국도를 지나가며 길가에 피어 있는 집들을 봅니다.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봅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의도가 없어 보이는 집들, 의도 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 그러나 유기적으로 소통되고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동네. 사는 것에 대한 욕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 그런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자연스러움만으로 구성된 집들, 무위의 집들. 산에 길이 나듯이 집들이 한 채씩 지어져 동네를 형성하고 길들이 만들어진 듯합니다. 벽을 세우고 창을 뚫고 문을 만들고 마루를 깔고 표정을 주어가며 집들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건축가란 없습니다. 그러나 실명의 집입니다. 집주인의 기호가 보이고 재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보이고 무엇보다도 사는 사람들과 편안한 조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집을 그리고 싶습니다. 국도를 따라가다가 만나게 되면 집들처럼, 서울이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에 뒤덮이기 전에 골목골목에서 만나던 건강한 집들처럼,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런 집 말입니다. ---pp.9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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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무엇일까. 건축가는 누구일까. 집을 지을 때 건축가와 건축주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그 역할은 어떻게 다를까? '러브하우스' 같은 오락 프로그램이나 '선물' 같은 드라마를 통해 부쩍 건축가란 직업을 자주 만나게 되는 요즘, 그 화려하고 자유분방해 보이는 외형 뒤에 감추어진 건축가의 진짜 삶은 어떤 것일까.
1부(우리 주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는 집 설계하고 짓는 일 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의 다양한 모습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깊은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란 저자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지 못했고 다만 내가 자라며 익숙하게 보아 편안해진 우리 것, 특히 들꽃처럼 자라는 우리 집들을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한다. 2부(나무처럼 자라는 집, 상산 마을 김 선생 댁)는 그곳 땅과 자연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끌어안고 어울려야 하는 김선생 댁의 집 짓기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김 선생을 처음 만난 때부터, 마침내 집이 지어지기까지 건축가의 일관된 생각은 "집은 단순히 비 피하고 바람 피하는 물리적인 껍질만이 아닌 자아의 실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며 글의 맛을 더해주는 삽화들은 건축가가 틈틈이 주변 동네, 오래된 기억들, 여행지 풍경, 또 집을 설계하기 위해 만났던 땅과 사람, 집 등등을 그린 것이다. 수십여 장의 스케치와 모형사진, 공사과정 사진을 통해 우리는 한 채의 집이 지어지기 위해 건축가의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알 수 있다. 딱딱한 일반 건축 도면과 달리 수채화나 목탄, 볼펜 등으로 표현된 편안한 그림들은,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 우리 자신의 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을 불러다 주는 이 책을 통해 건축가 또한 "지금 여기" 우리 시대를 함께 걷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며 생활인의 얼굴을 가졌음을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