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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마라토너의 흡연 아름다운 날들 족제비 재판 정력가 돼지 손톱 해설 : 강유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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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는 출발 대포 소리와 함께 의붓아들의 인터넷 중독에 대해 생각했다. 또 종일 인터넷에 매달리는 아들의 습관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는 아내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전에 카드로 치른 술값이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으며, 어떻게 백만 원이 넘는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인터넷 중독과 아내의 아들 걱정과 카드로 치른 술값에 대해 그는 번갈아 가며 생각했다. 물론 어떤 결론이나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10킬로미터를 넘어설 무렵엔 그 모든 생각이 희미해졌다. 그따위 생각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25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바보처럼 달렸다. 왜 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그냥 달렸다. 마지막 2.1킬로미터를 남겼을 때 남은 거리가 꽤 멀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쯤에서 멈출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골인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골인 지점에는 아직 결승 테이프가 쳐져 있었고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채는 비교적 편안하고 여유 있는 얼굴로 골인했다. <마라토너의 흡연> --- p.63 어느 날 문득 김영부 씨의 아내가 지겹다는 말을 꺼냈다. 김영부 씨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지겹다니?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자고 일어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은 얼마나 복된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도 굶지 않았고 내일도 굶지 않을 것이 명백한 날들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니? 그만큼 아내의 삶이 복스럽다는 말이 아닌가? 김영부 씨는 내심 흐뭇해했다. 원래 제 복에 겨운 사람들이 지겹다고 하는 법이다. 아내가 지겹다고 말한다면 자신은 남편노릇을 잘해내고 있는 것이리라. 김영부 씨는 아내의 오만상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 pp.73-74 골목 입구는 한쪽으로만 나 있었다. 그래서 골목 초입은 마치 시골 마을의 동구 같은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자전거를 탔고, 노인들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햇볕을 쬐었다. 한쪽 끝이 막힌 골목이라 간혹 우편배달부와 택배 회사 직원들이 들락거릴 뿐 골목의 유동 인구는 대부분 이곳 주민들이었다. 낯선 이가 골목에 발을 들여놓으면 금방 눈에 띄었다. 그래서 도둑 걱정이 없었고 어느 집이나 대문이 열려 있었다. 누구 집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얼마나 취해서 몇 시에 귀가했는지 이튿날 오전이면 모두 알았다. 또 누구네 집 아들이 삼수 끝에 대학에 실패했다는 사실도 합격자 발표 당일 해가 지기 전에 모두 알았다. 그러니 50여 호에 가까운 이 동네에 비밀이란 존재하기 어려웠다. 십 수년 혹은 이십 년 넘게 이 골목에 살아온 사란들은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였다. 물론 서로가 서로를 훤히 알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죽었다가 깨도 모를 개인적 비밀 한두 가지쯤은 있었다. <정력가> --- p.156 말을 잃어버리기 시작하자 생각도 점점 구체성을 잃고 모호해졌다. 좀 전에 목적지로 정했던 곳을 깜빡깜빡 잊는 경우도 생겨났다. 목적지를 향해 종종걸음 치다가도 갑자기 멈춰 서서 멀뚱히 뒤를 돌아보는 일이 잦았다. 걸음을 멈추고 달려온 길을 돌아볼 때면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째서 그처럼 열심히 달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서서 코를 킁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멀뚱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때때로 돌아가는 그 길이 방금 자신이 지나쳐온 길임을 기억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돼지> --- pp.208-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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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이 나면 살맛도 난다”
《도모유키》 작가 조두진이 마련한 환상적인 술자리, 한판!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조두진의 색다른 빛깔을 엿볼 수 있는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현대인들의 일상의 이면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는 《마라토너의 흡연》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장편 역사소설 《도모유키》와 《능소화》와는 다른,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위트와 유머와 허무가 뒤섞인 인물들의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혹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경찰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 이야기부터 담배를 피기 위해 마라톤을 하는 남자의 이야기, 설날에 집으로 들어온 족제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손톱에는 암이 없다고 투덜대는 의사들의 이야기 등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말이 안 된다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좇아가다보면, 그만의 조근조근한 입담에 어느샌가 공감하고 빠져들게 된다. 〈7번 국도〉는 가출소를 앞둔 소년원 아이들의 행사에 동행하게 된 경찰 서장과 어린 검사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회를 먹으러 가는 그들에게 교통위반 딱지를 떼는 대신 돈을 요구하는 교통경찰이 나타난다. 결국 작은 돈 때문에 차에서 내려 난리를 친 서장은 교통경찰의 명찰을 떼고는 가버리고, 교통경찰은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통사정하며 쫓아온다. 검사는 그 일련의 사건들을 흥미롭다는 듯 구경하며 이죽거린다. 〈마라토너의 흡연〉의 주인공 ‘채’는 돈이 거의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할 수 있다며 마라톤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써브 쓰리’(두 시간대의 완주)를 위해 식사 조절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까지 챙겨 먹지만, ‘채’는 영양소가 많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맛이 없다며 거부하고, 몸에 안 좋다는 커피까지 열심히 마신다. 그러나 마라톤만은 열심이다. 왜? 그는 기록이 아니라 담배를 더 맛나게, 평생 피우기 위해 달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날들〉은 순박한 농투성이 김영부 씨와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돈을 많이 준다는 터널 공사로 어느새 귀가 멀어버린 김영부 씨. 시골이 지겹다고 말하던 아내도 떠나고, 싸움꾼 큰아들도 조직원이 되어 도시로 나간다. 트렘펫을 잘 불던 착한 둘째 아들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동네가 물에 잠길 때 김영부 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동생이 죽었을 때도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고향에 오지 못했던 큰아들은 한 손을 다친 채 이제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 동네를 찾아온다. 〈족제비 재판〉은 설날에 집으로 들어와 손자의 손에 상처를 낸 족제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재미로 시작한 족제비와 진돗개의 싸움 이벤트. 그러나 김영부 씨네 마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끼리 격한 논쟁이 벌어진다. 족제비를 풀어줘야 한다는 야생동물 보호협회의 송종호와 사법시험에서 계속 낙방했으나 나름의 논리를 펼치고 족제비 사건에 대해 말하는 박형조, 이 이벤트를 기삿거리로 만들고 싶은 한강이남 최고일보의 양상대까지 나서면서 사건은 커져 실제로 재판까지 열린다. 〈정력가〉는 이사 간 동네의 골목에 사는 정력가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틀니 2개를 해주면 정력의 비법을 말해준다는 영감과 그 비법의 효력이 있는지 염치없는 방법으로 확인하려는 나 사이의 묘한 심리전이 벌어진다. 영감의 비법을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110만 원을 들여 영감의 틀니를 해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비기를 듣게 된다. 〈돼지〉는 공원 앞에서 몸을 팔았던 갈보의 이야기이다. 힘들게 술과 몸을 팔아 딸 둘을 시집보내고 근근이 살던 그녀에게, 딸들은 더 크고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결국 그녀의 살까지 잘라서 가져간다. 상처 입은 그녀는 어느새 말도 생각도 가게도 잊어버리고, 결국 돼지가 되어 공원 근처를 헤맨다. 〈손톱〉은 고등학교 동창생 기호와 동조, 정수가 손톱에 관해 설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손톱이 피부과냐, 정형외과냐부터 마지막엔 왜 손톱엔 암이 없냐고 술에 취해 진심을 말하는 피부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 삶에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부인의 힘에 눌려 살지만, 최근 뒤늦게 빠진 연애에 정신이 팔려 술자리 내내 문자질을 해대는 성형외과 의사 이야기까지. 독자들은 이처럼 일곱 편의 환상적인 ‘술자리’에서 ‘살맛’이 밴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주요 내용 ○ 얼마나 난감한 순간인가. 〈7번 국도〉 ○ 마라톤의 적은 담배, 담배의 우군은 마라톤. 〈마라토너의 흡연〉 ○ 저 착하고 태평한 황소를 어떻게 싸움 붙일까. 〈아름다운 날들〉 ○ 난 바쁘게 걸었을 뿐인데, 네가 밟혀 죽었구나, 할 수 없지……. 〈족제비 재판〉 ○ 110만 원짜리 정력 강화 비법, 그 비법을 팔아 틀니를 했다. 〈정력가〉 ○ 돼지로 변한 늙은 창녀의 죽음. 〈돼지〉 ○ 빌어먹을, 손톱과 머리카락에 암(癌)이 없다니! 〈손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