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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두고 온 것은 청춘 그해 여름은 지나갔다 연애의 바깥, 바깥의 연애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신 그냥 아침에 눈 떠지면 사는 거야 뻔한 세계 이런 사랑도 있다 그 여자를 어떻게 모르는 여자라 말할 수 있겠니 마감 없는 나라의 기자 사랑의 약자, 사랑의 강자 하얀 집의 공포 여름이 깊으면 언젠가는 끝난다 야반도주라도 하지 그랬소 나만의 오로라 자학과 질투, 때론 체념 우리가 오를 봉우리 예술가의 아내는 끊임없이 아기를 낳고 플라토닉한 위무 애국의 조건 당신이 훨씬 더 예뻐 가슴 맨 밑바닥의 자리 구부정한 뒷모습 혹은 고요한 정물 얼음처럼 시린 눈동자로, 소년은 사막을 건너간다 공주와 머슴 백일몽 착각 어떤 학원 노후 대책 사라진 포인트 유리문 커밍아웃 문학적인 것 꿈 오디션 현실 이방인 매력남 운명남 실무자 노처녀 욕망 조약돌 인권 길 그리운 것은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까 스물두 살, 내게 왔던 사춘기 빨리 티브이 틀어, 시작했다 기사도 정신 왼손은 거들 뿐 슬픈 무기여, 자본주의의 깜찍한 비밀 친구 사이 늙은 예술가의 초상 관계의 속살, 그 연하고 말캉한 맛 고통의 평등한 중량 투덜거리면서도, 기다린다 사랑은 맹목일까 비밀 프로젝트 낮은 언덕배기들 별, 별, 별 사각거리는 연필심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혼잣말의 호흡 푸줏간에 내걸리기 구태의연한 호명 손님의 눈길 우연이 아니다 키덜트 월드 당신 몇 살이야? 우리 오빠 희미한 불빛 지갑을 여는 이유 착한 딸과 나쁜 딸년 그녀의 전략 ‘여자’의 행복에 관한 몇 가지 사소한 중얼거림 |
鄭梨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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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과 대중예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나누는 이분법은 이미 오래전에 의미를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 소비자로서의 하나의 ‘개인’은 일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고, 부천필하모닉의 말러 연주회에 다녀오고, 황병승 시인의 새 시집을 읽고, 동시에 낄낄대며 <무한도전>을 보는 것이 바로 지금, 이곳을 사는 문화 향유자의 모습이다.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문화적 취향들이 진즉에 뒤섞여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등하고 열등한 취향인지 콕 집어 감별할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파닥파닥 살아움직이는 것은 자율적인 문화 텍스트들뿐이다.
--- p.188 몇 해 전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구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파 무침을 찍었다. 그다음엔 쟁반 가득 담겨 나온 생고기를 찍었고, 이어서 불판 위에 익어가는 고기와 그것을 뒤집는 젓가락을 찍었으며, 알맞게 구워진 고깃점을 입에 넣는 친구들의 만족스런 표정도 찍었다. 메모리 카드 안에는 모두 열두 장의 이미지가 저장되었다. 밥을 다 먹고 난 일행은 카메라를 동그랗게 둘러쌌다. “이건 흔들렸어.” “지워.” 삭제는 간편했다. 취사선택된 넉 장의 이미지는 노트북 ‘오늘의 일기’ 폴더로 옮겨졌다. ‘제목: 2002.12.1’의 이 파일은 곧 일행 모두의 이메일로 전송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빈틈없이 똑같은 기억을, 영원히 공유하게 되었다. --- p.209 이 동안 열풍 밑에는 어쩌면 무서운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젊은이들이 쓰고, 젊어지기 위해 쓴다. 불로주를 팔고 사는 소비 메커니즘의 쳇바퀴 속에서 사람들은 영원한 젊음을 간직하기 위해, 혹은 늙음을 끊임없이 유예하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아아, 모두 다 나의 부질없는 변명이다. 이 다크서클만 없애준다면, 입가의 팔자주름만 완화시켜 준다면 주머닛돈을 털어 당장 달려갈 주제에! --- p.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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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사랑을 위해 쓴 『풍선』, 외로운 너를 위해 쓴 『작별』
『풍선』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 현상, 작가의 유년과 청춘 시절, 생활 주변의 진실된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를 더 먹어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이라 느낀다는 작가는, 솔직한 느낌과 눈빛으로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이 시대 젊은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작별』에는 소설 작업 뒷이야기와 소설가로서의 고민,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내놓은 공감의 언어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냉소와 위악을 무기로 발칙한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소설 『오늘의 거짓말』에서 윤리적 감각과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과 사람살이의 숨은 결들을 보다 세심하게 바라보고 보듬기 시작했다. 그 소설집 사이의 성장과 변화의 시간을 어떤 경험과 사색으로 채워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진솔한 산문집의 내용이다. 『풍선』에는 71편의 글이 실렸다. 작가는 한 사회에 몸담은 소설가이자 생활인의 눈으로 영화, 드라마, 문화 현상을 투시하면서 동세대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글들 사이사이 ‘그땐 어땠을까’를 환기하며 ‘여기’와 ‘거기’를 넘나드는데, 작가의 8, 90년대 유년 시절과 청춘 시절의 모습이 비쳐져 나온다. 70년대 초에 태어나 8, 90년대에 십대와 이십대를 보내고 숨 가쁜 2000년대를 사는,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젊은이의 모습이다. 대체 소설가는 무슨 영화를 보았는가. 1부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와 2부 얼음처럼 시린 눈동자로, 소년은 사막을 건너간다에는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영화 이야기들이 있다. 작가는 여러 해 동안 본 43편의 영화를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하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라거나 “아니야, 그건 틀렸어!”라고 새침한 듯 꼼꼼하게 읽어낸다. 그때마다 작가의 속내와 사람살이의 시선이 묻어나므로, 이 매력적인 영화 보기를 통해 사랑, 나이 듦, 인생, 사회 통념을 읽을 수 있다. 시작되는 사랑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나 신비로운 마법의 시간은 곧 지난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더디게 부식한다. …… 두고 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청춘의 한 시절이다. 그들은 각각 그 시간을 통과해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성장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19~20쪽)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큰할머니의 한마디가 그제야 머릿속을 쾅 울린다. “사는 게 별거냐. 그냥 아침에 눈 떠지면 사는 거야.” 아아,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이 저릿한 영화를 어쩌면 좋으랴.(33쪽) 2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빨아 먹고, 3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아내리는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고, 40대의 여자는 아이스크림 산에 기어이 홀로 기어오른다.(65쪽) 왜 영화는 학생들의 시선을 빌려 그들을 어수룩한 마녀로 재현하는가? ‘올드미스 여교사’는 가족주의라는 울트라초강력 지배 이데올로기와, 10대 소녀의 로맨스라는 또 하나의 뉴파워 이데올로기 양쪽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146쪽) 3부 그리운 것은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시간일 테니까와 4부 사각거리는 연필심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에서는 동세대 여성들의 공감을 사며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내 이름은 김삼순>, <섹스 & 더 시티>와 같은 ‘노처녀 일상/연애 드라마’들에 열광하는 이유와 ‘디카-저출산-동안병童顔病-인터넷-문자통신-대중문화’시대의 풍속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