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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예, 이제 어무이도 안 계시는데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
“괘안타. 내 혼자 잘 지내고 있다. 걱정마라. 이곳 시골에서 신선한 공기 마시고 흙냄새 맡으면서 지낼란다.” “아부지예, 신선한 공기고 흙냄새고 간에 아부지를 혼자 이곳에 두고는 제가 못 갑니더. 아부지를 여기에 두고 제가 어떻게 마음 편히 지내겠십니꺼?” 옆에 있던 사위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버님, 아무 부담 말고 저희 집으로 가세요. 잘 모시지는 못해도 우리가 먹는 반찬 같이 드시면서 저희와 지내세요. 그동안 아버님께서 저희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아주셨어요.” 아버지가 딸을 향해 대답했습니다. “내는 딸자슥한테 신세 안 질란다. 너희한테 부담을 안 줄라 캤는데 이렇게 되고 보이 마이 미안타.” --- <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 중에서 동생은 송아지가 엄마를 부르듯 형을 ‘엉아’라고 불렀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엉아”, 잠결에도 “엉아” 하고 소리를 내며 형을 불렀습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뒷간에 갈 때조차 형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10초마다 “엉아” 하고 불러댔습니다. 그럴 때면 형은 “알았어, 엉아 여기 있어. 냄새 나니 얼른 나와” 하고 대답해 주고는 했습니다. 심술궂은 동네 아이들이 괴롭힐 때마다 대신 혼내 주던 엉아, 항상 곁에 있어 주던 엉아, 노래를 불러 주고 책을 읽어 주던 엉아,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게 부족했지만 함께 놀아주는 엉아가 있었기에 동생은 행복했습니다. 농약을 마시려던 형은 자신을 부모처럼 믿고 따르는 동생을 생각하자 슬픔이 북받쳤습니다. 한참 동안 목 놓아 흐느끼던 형은 끝내 농약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은 다음 날부터 누워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변함없이 돌보며 학업과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 <엉아> 중에서 “절대로 가난에 굴복해서는 안 되는 기야.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거 아니갔어? 부모가 돈으로 물려준 재산은 도둑맞아 잃어버릴 수도 있갔지만 머릿속 재산은 남이 도둑질할 수는 없는 기야. 학비는 걱정 말고 서울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우. 알갔지?” 어머니가 여름날 땀방울을 쏟으며 꼭꼭 눌러 모은 학비를 내밀었을 때 아들은 목구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차마 두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일은 아들에게 평생을 담금질하는 채찍질이 되었습니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자고 있던 아들은 얼굴에 축축한 물기가 닿는 것 같은 느낌에 소스라치며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젖은 얼굴이 뺨에 맞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였습니다.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는 아들에게 끼고 있던 금가락지를 풀어주며 비상금처럼 지참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길을 떠날 때 눈이 쌓인 동구 밖 다리 위에서 어머니는 두 동생과 함께 서울로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세상에 꿈 뺏는 전쟁이라니> 중에서 아내가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하던 날, 딸은 막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교 2학년생이었고,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떠안아야 할 충격에 대해 신경을 기울이다보니 정작 아버지는 맘껏 슬픔을 토로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딸은 어른스럽게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속으로 삭이며 아버지와 동생을 위로했습니다. 그후로도 딸은 엄마 몫까지 감당하며 장녀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시간을 끌면 점점 힘들어지니 재혼을 서둘러야 한다고 권유했습니다.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당신의 인생보다 자식들의 인생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혼이 민감한 시기를 관통하는 자식들에게 혹시 또 한 번의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새장가를 드느니 차라리 자신이 엄마 몫까지 1인2역을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버님, 그게 아니고> 중에서 “동서, 만두 잘 빚지? 동서 얼굴처럼 예쁘게 잘 빚을 것 같은데….” 막내며느리는 마음속으로 진땀이 났습니다. 드디어 만두 빚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막내며느리는 만두를 빚기 위해 주물럭거리다 끝내 속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웃으며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호호호, 반죽이 좀 된가 봐요?” 그러나 손윗동서들은 만두를 예쁘게 잘도 빚었습니다. 만두 빚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막내며느리는 남편에게 줄 특별한 만두를 빚기로 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주물럭거리면서 하트 모양의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막내며느리는 하트 모양 만두를 소반 위에 올려놓은 다른 만두들 틈에 슬그머니 끼워 넣으려다가 큰동서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어머! 동서, 그거 뭐야? 역시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는 다르다니까.” --- <네 만두, 속 터졌다> 중에서 구김살 없는 성격을 가진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잘 따르고 집안의 소소한 일도 도우며 묵묵히 공부에 정진했습니다. 다만 아들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밝은 전깃불 아래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촛불 아래서라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마저 안 되면 호롱불 심지라도 최대한 올려놓고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호롱불 심지를 올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면서 호롱불을 아들 쪽으로 밀어 주었지만, 그래봐야 반딧불 밝기쯤 되는 불꽃이어서 글씨가 가물가물하게 보여 답답했습니다. 아들이 호롱불 심지를 조금이라도 돋울라치면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며 말렸습니다. 행상을 다녀오면서 소주병에 사 담아 오는 등유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촛불을 사용하는 건 아버지의 제삿날과 음력 섣달 그믐날뿐이었습니다. --- <그저 다 타면 좋은 거지> 중에서 평소보다 조금 작은 양의 식사를 했던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밥을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동생이 그날은 유난히 악착을 떨며 어머니가 남긴 밥을 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급히 상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동생도 만만찮았습니다. 동생은 상다리를 죽기 살기로 붙들며 어머니의 밥그릇을 낚아채려 발버둥 쳤습니다. 그 바람에 상을 든 어머니의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하면서 밥그릇이 엎어져버렸습니다. 어머니의 밥그릇 속에서 쏟아져 나온 건 밥이 아니라 큼지막한 무 토막이었습니다. 방바닥으로 튕겨져 나온 무 토막을 본 어머니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습니다. 밥그릇 깊숙한 곳에 쑥 들어가 밥이 많아 보이게 모양을 내 깎은 그 무 토막 위에는 밥알이 몇 알 붙어 있었습니다. --- <시간이 닿을 때까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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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박한 세상인심에 멍울진 우리의 가슴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가족 이야기!
-윤문원 지음 『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출간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더욱 간절하게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가까이 있기에 사랑한다는 말조차 자주 해주지 못한 우리의 가족들이다. 『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는 《월간중앙》에 <작가 윤문원 에세이 내 마음의 가족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장장 16개월 동안 절찬리에 연재된 글에 네 편의 에세이를 추가해 펴낸 책이다. 이 책은 먹을거리조차 부족했던 6,70년대 보릿고개 시절부터 21세기에 접어든 최근까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의 가족 이야기를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아버지가 내려놓은 지게의 풀 짐 속에서 물씬 풍기는 단내와 함께 꺼내들던 개똥참외, 비록 가진 것 없어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소리치며 뛰어놀던 달동네의 골목길, 마을 어귀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식이 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어머니의 주름 잡힌 얼굴이 그들먹한 그리움과 함께 다가선다. 2007년, 우리나라는 WEF(World Economic Forum)가 발표한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당당 11위를 차지할 만큼 괄목할만한 국력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비약적인 물적 성장이 곧바로 삶의 풍요와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최근의 우려할 만한 사회 풍조를 통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죽은 지 열흘이 넘어서야 발견된 노인의 주검, 인면수심의 어린이 유괴, 잇따르는 존속 살해, 세계 1위로 치닫는 자살률은 우리 사회가 굳건한 사랑과 신뢰의 바탕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사례들이다. 저자는 궁핍한 삶을 영위해가면서도 자식을 위해, 형제를 위해, 부모를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를 통해 가족 사랑의 소중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6,70년대의 암울한 사회상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가족이라는 따스한 보금자리가 있었기에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루어낸 비약적인 성장 동력 역시도 가족구성원들의 굳건한 사랑이 기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글들은 자식들에게 밥을 더 퍼주기 위해 자신의 밥공기에 커다란 무 토막을 넣고 밥을 담았던 어머니, 서울로 모셔가려는 딸과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자하는 아버지의 밀고 당기기, 아들에게 스웨터 한번 떠주지 못해 연탄공장에서 배달원들에게 지급된 옷의 실을 풀어 아들의 스웨터를 떠주는 연탄배달부 어머니, 전신화상을 입고 몸져누운 어머니와 집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심성 착한 형아 등 그 어느 한 편도 눈물 없이는 읽어 내려갈 수 없을 만큼 가슴 뭉클한 감동을 담아내고 있다. 6,70년대와 최근까지 시대와 상황은 달라졌어도 우리 곁을 지키는 가족은 우리가 힘들고 지쳐갈 때 몸을 기대고 쉴 수 있는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들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름 아닌 우리 주변의 가족 이야기들을 옮겨놓은 것들이다.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그리움이 다가서고, 궁핍한 시대를 관통했던 따스한 인정이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또한 이 책은 늘 곁에 있기에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2. 가족 사랑을 새롭게 발견하는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월간중앙》연재 감동과 화제의 에세이 이 책에 실린 22편의 에세이를 통해 저자는 ‘부모란 무엇일까’, ‘자식이란 무엇일까’, ‘부부란 무엇일까’, 형제자매란 어떤 사이일까’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부분 저자가 지난 시절 간접 체험했거나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건져 올린 글들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덕지덕지 화장을 해 윤색한 글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 울려오는 생생한 숨결과 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탓에 글맛이 자연스럽고 담백하다. 저자는 ‘가족이란 언제나 함께 하기에 그 소중한 의미를 잊고 사는 공기와 같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 책이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책의 말미에 적고 있다. 핵가족화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족의 의미는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가족의 품은 여전히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기대어 쉴 수 있는 언덕이자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보릿고개와 호롱불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이 벌써 중년의 삶을 맞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시절 호롱불 아래서 삯바느질이나 행상을 하며 자식들을 거두었던 어머니, 술잔의 절반을 한숨과 눈물로 채워도 끝내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피땀을 쏟았던 아버지, 먹을거리를 굶주린 동생에게 서슴없이 양보했던 형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 보게 한다. 요즘에는 보따리 행상이나 삯바느질, 연탄배달 따위를 해가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도 허언처럼 되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요즘 세태에 더 걸맞을지 모른다. 투자가 교육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졌던 지난날 우리 부모 세대의 희생은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의미가 각별했다. 가정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밝고 따스하게 만드는 근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늘 가까이 있기에 사랑한다는 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우리들의 부모, 형제, 자매를 새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족 사랑이 기반이 되어 우리 사회가 보다 따스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몇 번이고 곱씹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