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손'이라는 단일한 주제를 보는 이 책의 폭넓은 시각과 깊은 전문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손' 그 자체였다. '폭넓은 시각'과 '깊은 전문성'은 하나의 그릇에 함께 담기 어려운 문제이다. 양자 사이에는 원칙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 요즘 흔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소위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이다. 이 책을 실제로 읽어보면 그야말로 홍수가 나서 물이 여기저기로 흘러 넘치듯이 '손'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의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체육학, 수학, 음악, 미술, 철학, 문학, 종교 등등. 저자 마르코 베어는 서문에서 '손'이라는 현상이 현대에 들어와 너무 넓은 영역에 걸쳐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주제를 분야별로 나누어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글을 의뢰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손'의 새로운 발견이다. 손은 사실 우리 몸에서 가장 익숙한 신체기관이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손을 사용하고 있지만 손의 사용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손동작을 사람처럼 흉내낼 수 있는 로봇을 제작하는 것이 아직 내다볼 수조차 없는 미래의 일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지성의 게임이라는 체스경기에서 이미 인간의 두뇌를 오래전에 추월한 반면 그런 컴퓨터로 만들어진 손은 바닥에 떨어진 연필 하나조차도 제대로 집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의 두뇌 속에서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감각전달과정들과 그에 따른 손과 손가락의 근육 움직임을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컴퓨터에 차례로 입력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손동작 하나도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된 진화과정의 결과이며 고도로 발달된 신경조직과 운동기관의 협동작업의 결정체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손의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어간다. 어린아이가 물건을 손으로 잡으면서 사물을 이해하기 시작하듯이 우리의 조상들도 손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만약 손이 없었으면 언어도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이 책은 손이 수학의 발달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왜 사람들은 맹세를 할 때 오른손을 드는지, 결혼을 할 때 신랑은 왜 신부의 오른편에 서는지, 토마스만의 작품 <마의 산>에서 주인공이 그렇게 자주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이유는 무엇인지, 라파엘의 초상화에는 왜 손이 없는지 등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는다.
--- 번역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