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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연대기
1장 왕조와 전사 엘리트 켈티케: 정착지와 영토|군주들의 기원과 6세기|군주 거주지의 절정: 호헨아스페르크|구주들의 영웅적이고 영원한 지위|지배층이 특권을 누리던 곳: 호이네부르크|지중해와 북반구 사이의 기타 축: 라인 강과 센강, 그리고 라수아 산|50년 후: 글라우베르크|새로운 사회: 군주정에서 전사귀족정치로|켈트 예술의 새 장|수레차가 발굴된 상파뉴 무덤: 솜비온|수레차가 발굴된 무덤: 뒤른베르크|포도주에 대한 켈트족의 열정과 포도주의 역할|의전용 전차 2장 전사와 농부 기동성과 확장|기원전 4세기의 알프스 이북, 서부와 카르파티아 산맥 사이|발달게샤임에서 발견된 여인 무덤|기원전 4세기의 예술|이탈리아를 향하여|고대 이탈리아와 켈티케의 관계|마지막 확장|전쟁 기념 성소|기원전 3세기의 예술: 조각 양식|예술작품으로서의 칼집|이탈리아에서 철수하는 켈트족 3장 변방의 켈트족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켈트족|켈티베리아인의 역동성 4장 섬 지역의 켈트족 브리튼의 공동묘지와 정착지|아일랜드의 켈트족 5장 거대 도심의 탄생 요새|유럽 최초의 도시들과 공예 중심지|오피둠과 주화|드루이드: 종교와 문자|켈트족의 역법|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맺음말 용어설명|찾아보기|참고문헌|도판저작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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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의 땅 켈트, 정복의 대서사곡과 예술의 미를 되살린다!
켈트 민족은 문명사회의 적으로서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자면 단결되기 어려운 민족이었으나 켈트족의 여러 부족들은 용맹한 전사, 용병, 정복자로서 하나의 언어와 사회구조를 함께함으로써 전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무자비한 전사로서, 농부와 기술자로서 수세기에 걸쳐 유럽 대륙과 도서 지역, 소아시아 변방에 이르기까지 점령을 거듭했다. 다양한 부족들로 이루어진 켈트족은 지역적으로 매우 다양한 미술품과 공예품, 무기와 도구들을 생산했으며, 유럽 대륙의 서부 할슈타트 문명과 후기 라덴 문명, 이베로-아틀란틱 문명군, 그리고 북서 이탈리아의 골라세카 문명을 낳았다. 특히 그들은 대형 조각품보다는 소작(小作)에 치중하였으며, 이러한 ‘비고전적이고 반고전적인’ 조형작품들은 특정 자연을 바라보는 일시적이고 환상적인 시각을 형상화하여 영적이고 주술종교적인 세상을 반영했다. 또한 로마와 기타 민족들에게 정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켈트족의 정체성과 언어, 종교, 신앙은 중세가 시작될 때까지도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을 주로 연구하는 학자들로 인해 오랫동안 이류민족 취급을 받았던 켈트족은 새로운 고고학 유물들을 선보인 대형 국제전시회들을 거치면서, 오늘날 가장 많이 연구되는 고대 민족 중 하나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