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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사용한 용어와 정의 서문-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 1부 대한발, 비극의 서막 1876년~1878년 1장-빅토리아의 유령 2장-빈민은 그들의 집을 먹는다 3장-전쟁과 신앙, 엘니뇨를 뒤따르다 2부 엘니뇨와 새로운 제국주의 1888년~1902년 4장-지옥의 정부 5장-해골들의 축제 6장-천년 왕국을 갈구하다 3부 엔소, 잡히지 않는 흰고래의 정체 7장-계절풍의 수수께끼 8장-굶주림을 부르는 기후 4부 기근의 정치 생태학 9장-제3세계의 탄생 10장-인도, 빈곤의 현대화 11장-중국의 직무 유기 12장-브라질, 노르데스테의 인종과 자본 옮긴이 후기-‘자연재해’는 전혀 자연적이지 않다 |
Mike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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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 분 둘러보았을까, 나는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녀의 시신을 물고 흔드는 개 두 마리를 발견했다. 시체는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따라서 그게 아이의 시신이라는 것도 전체 신장을 통해서나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현지의 풍경과 냄새는 역겨웠고, 두 번째 시신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p.61
흉작도 원인의 일부지만 철도로 기근 지역에 원조 물자를 보내는 게 가능해진 뒤였다. 문제는 엄청나게 치솟아 버린 가격 때문에 곡물을 살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전에는 소규모 가게들이 흉작에 대처하는 방편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가게들이 사라지거나 대규모 시장으로 흡수되었다. 독점 자본가들이 사실상 상황을 장악했다. 곡물의 자유로운 유통은 그들 손아귀에 있었다.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 체계 아래 인도인 수백만 명이 죽었다.(33 조선에서 절호의 기회를 붙잡은 열강은 일본이었다. 북중국의 가뭄이 유사한 양상 속에서 조선의 곡창이었던 전라도로 뻗어 나갔다. 이 은둔의 왕국을 착취하려던 일본에게 가뭄은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은 열도의 쌀을 가져가라고 전했다. 조선은 쌀을 되갚을 능력이 없다고 했지만 일본은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언했다. 그러나 10년이 채 안돼 조선은 가뭄 속에서도 일본에 쌀을 수출해야 했다. 결국 전라도의 굶주린 농민들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 사태에 혁명적 불만을 토로한다. ---p.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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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빈민 대학살, 그 주범은 누구인가?│
조사에 따르면, 1876년부터 1902년에 걸쳐 엘니뇨가 발생했을 당시 세 차례의 가뭄과 기근으로 최소 3천만 명에서 5천만 명의 식민지 빈민이 사망했다. 참혹한 가뭄과 기근 사태를 목격한 기록들을 보면 마치 거대한 괴물이 나일 강에서 황해에 이르는 지역을 유린하며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당시는 자유 경쟁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 일컫는 때였다. 식민 모국의 관점에서 볼 때 제국의 영광을 밝혀 주던 19세기의 마지막 불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관점에서 보면 거대한 화장용 장작더미가 내뿜는 소름끼치는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경제사에 대한 전통적 지식과 상당히 모순되는 방식으로 이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가뭄 기근을 흔히 자연재해라고 치부해 버리는 기존의 역사 서술에 도전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생존을 맡기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가뭄 기근으로 인류사 최악의 흉작과 물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빈민을 구제할 잉여 곡물은 언제나 국가와 제국의 다른 곳에 넘쳐났다. 가뭄 피해자들을 구조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주의는 새로운 상품 시장과 가격 투기를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끔찍한 기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도 스미스주의적 신조와 냉혹한 제국주의적 사리사욕으로 곡물이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제국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그들의 야만적인 신 앞에서 구호 활동을 포기했고, 궁핍해진 빈민들은 엘니뇨의 파괴적인 위력 앞에 아무런 보호책도 없이 내던져졌다. │데이비스의 관점에서 본 동학농민운동│ 데이비스는 빅토리아 후기의 전 세계적 경제 변동과 기후 변화를 통해 동시대 조선의 상황도 재조명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실학의 대두로 평민 의식이 성장하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전통적인 설명 방식이다. 그러나 데이비스에 따르면, 동학 역시 전 세계 농업 인구가 신제국주의 질서에 순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자 벌였던 전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세포이항쟁, 의화단운동, 브라질의 카누두스 전쟁처럼 생존 및 환경 위기에서 생존권을 놓고 벌이는 기근 저항운동인 것이다. 제국주의는 종말론에 가까운 잔인함을 드러내며 이 천년 운동들을 철저하게 진압했다. 지금까지 일제강점기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문화사나 미시사에 치중하거나 한일 관계에 초점을 둔 측면이 크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전 세계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역사를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제국주의 시대, 엘니뇨는 어떤 역할을 했나?│ 가뭄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은 19세기 과학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였다. 196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태평양 적도대가 무역풍과 짝을 이뤄 작동하면서, 열대 지방 전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온대 위도대의 강수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적 돌파구가 열렸다. “엘니뇨 남방 진동(El Nin?o-Southern Oscillation, 간단히 줄여서 엔소ENSO)”이라고 부르는 열대 동태평양 지역의 급속한 가온 현상이, 계절에 따라 기단과 대양 온도 사이의 광대한 시소 현상으로 변동하면서 동시적인 가뭄 기근, 홍수를 불러오는 것이다. 1970년대에 취합된 엘니뇨 사태에 따른 믿을 만한 기록을 통해 엔소가 어지럽게 남겨 놓은 지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기근은, 그 기근을 발생시킨 각종 사회경제적 요소들의 온상이자 가속기였다. 엘니뇨는 그 기근을 확대 강화했으며, 제국주의의 방임 아래 사람들의 생존을 지속 가능하도록 보장했던 생태적 기반을 극심하게 파괴했다. │근대적 빈곤이 탄생하다│ 세계 각국의 전통사회는 가뭄과 기근을 방어할 수 있는 고유의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다. 공유자원과 사회적 안전망, 지역 우물과 관개 수로 등을 통해 적극적인 기근 방어 활동을 펼쳤고, 1740년대의 중국처럼 어떤 유럽 사회도 이루지 못했던 구호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했던 농경 사회들이 세계경제에 통합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유 시장경제로 전환된 생존의 뒤틀린 논리, 식민지 세입 양도의 결과, 금본위제를 제정하면서 일어난 충격, 재래식 관개시설의 파괴 등.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농민이 떠맡아야 했던 기여는 필수적이었다. 생산양식의 제국주의적 변형은 기후 요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양상을 극단적으로 바꿔 기근 취약성을 형성했다. 이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제3세계”라고 부르는 지역이자 상태를 탄생시킨 “발전 격차”, 즉 불균등한 수입과 부에서 기인하는 “근대적 빈곤”이 탄생했다. 이 격차는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가장 결정적으로 조성되었고 국가간 불평등이 계급 불평등만큼이나 깊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