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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강록
도강록 서 6월 24일 6월 25일 6월 26일 6월 27일 6월 28일 6월 29일 7월 1일 7월 2일 7월 3일 7월 4일 7월 5일 7월 6일 7월 7일 7월 8일 7월 9일 요동 옛 성에 올라 요동의 백탑 관제묘 풍경 소묘 광우사 이야기 -성경잡지 7월 10일 7월 11일 예속재에서 만난 친구들 가상루에서의 아름다운 만남 7월 12일 7월 13일 7월 14일 성경의 사찰들 요동의 산과 강 - 일신수필 일신수필 서 7월 15일 7월 16일 7월 17일 7월 18일 7월 19일 7월 20일 7월 21일 7월 22일 7월 23일 망부석이 된 맹강녀 장대에 오르내리기가 벼슬살이 같구나 산해관에 올라 고금의 역사를 생각한다 |
朴趾源, 호 :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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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읽을 수 있는 고전으로 재구성한 『열하일기』!
<다른 판본과 차별화된 배치> 시작부터 창대하다. 사행단 구성과 여정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읽혀야겠다고 작정했음을 처음부터 천명하고 있는 책이다. 『열하일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사행이나 비장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고전에 익숙지 않은 모든 이들을 위한 편집의 일환으로 다른 판본과는 차별화된 배치를 하고 있다. 『열하일기』는 여정을 따라 가는 편년체 방식으로 쓰인 7편의 글들과, 여정과는 별도로 쓰인 기사체 글들이 공존하는 책이다. 기존의 배치대로라면 읽는 이들이 연암의 여정과 의식의 흐름을 밀도 있게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각 여정 편들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사건들에 대해 적은 기사체 글들을 그 뒤에 두어 시간의 흐름을 따름으로써 이해와 감정의 효율을 최대치로 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왕민호와 기풍액과의 인상적인 만남 이후 연암이 따로 「경개록」에 엮어 둔 그들에 대한 글을 「태학유관록」속에 넣은 것, 고북구를 떠나는 여정에「야출고북구기」가 따라 나오는 것, 열하에서 성승을 만나고 티베트 불교(황교)를 접하면서 그 뒤로 「찰십륜포」와 「황교문답」이 이어지는 배치.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배치는 자신의 호흡으로 직접 읽어본 이들만이 느끼고 행복해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가 갖는 편집의 힘이다. <생생한 문투>『열하일기』는 200년을 훌쩍 넘긴 텍스트다. 읽기에 수월할 리만은 없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연암과 이국 친구들과의 길고 긴 밤샘 필담 부분은 희곡 형식으로 처리했다. “형식적 구속 때문에 가슴속의 말을 자유롭게 쏟아낼 수 없다” 하여 시(詩)를 멀리했던 연암의 글답게, 형식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희곡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하여 예속재와 가상루에서 연암이 나누었던 필담의 희곡버전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을 박진감 넘치고 리드미컬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유머리스트’로서 연암을 파악하고 있는 역자들은 이 책에서 마치 연암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생생한 말투를 씀으로써, 연암이 보여준 기행(紀行) 속의 기행(奇行)과 그의 경쾌함을 거침없는 번역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암의 발견이자, 고전의 발견인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그렇게 고전의 리듬을 만들고 있고, 독자들에게 기꺼이 그 리듬에 몸을 맡길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여정로> 독자들의 얘기를 들어 보자. 『열하일기』를 읽을 때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답한다. ‘이날 어디서부터 몇 리, 어디까지 몇 리, 도합 몇 리를 왔다’는 장황한 여정의 설명을 읽는 것이 가장 힘들었노라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글의 시작부터 지명으로 가득 차 있는 까닭에 읽을 의욕이 떨어진다는 반응들. 앞서 읽히지 않는 것은 죄악이라 했던 우리의 다짐과도 같은 선언에 맞게, 편집 과정에서 생명력 넘치고 뜨거운 텍스트로 진입하기 위한 문턱을 조금 낮추었다. 바로, 그날 그날의 여정로를 간단히 정리하여 본문 박스로 처리한 것. 자, 이제 연암의 발자취가 한눈에 쏙 들어오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권두에 실린 여정도를 짚어가며 그의 길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숨은 재미다. 옛글을 읽으며 나는 묻는다. “이건 뭐지?” 굳이 몇백 년 전의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이 쓰지 않은 글에 대해 머릿속으로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옛글을 읽을 때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뭐지? 어떻게 생겼다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작동된다는 거냐고?” 이곳의 벽돌가마를 보니 벽돌로 쌓고 석회로 봉해서 애초에 불로 말리고 굳히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 높이와 크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 모양은 큰 종鐘을 엎어 놓은 것 같은데, 가마 위는 연못처럼 움푹 파이게 하여 물을 몇 섬이라도 부을 수 있다. 옆구리에 연기 구멍 네댓 개를 뚫어 불길이 잘 타오르게 만들고, 그 안에 벽돌을 놓았는데 서로 기대도록 해서 불길을 만들어 놓았다. 대체로 그 요점은 벽돌을 쌓는 데 있었다. -「도강록」7월2일자 벽돌가마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우리나라의 것과는 얼마나 다른 생김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 새도 없이, 본문에는 마치 연암의 설명을 듣고 그에 맞춰 그리기라도 한 듯 딱 들어맞는 사진과 그림이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식 벽돌 굽는 법과 기와 올리는 법, 구들 까는 법에 반해버린 연암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풍성한 자료들이 책장마다 가득하다. 앞서 강조한 색다른 배치와 더불어,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하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어디다 쓰겠는가?” 했던 연암의 문장론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책장마다 비주얼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이다. 고전은 자고로 엄숙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그렇게 숨 막히는 비주얼로 ‘범범하고 데면데면’한 고전이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준비 기간 5년, 참고한 책만도 백여 종, 그 노력으로 탄생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는 고전이 현대와 만나는 ‘지금’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전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3. 『열하일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역자 고미숙은 조선왕조 오백 년을 통틀어 꼽는 단 하나의 텍스트로 『열하일기』를 들고 있다. 그것이 단순히 ‘오천 년 이래 최고의 명문장’이기 때문일까? 『열하일기』를 보면 연암은 자신의 지위에도, 머무는 곳에도 정착하지 않았던 진정한 ‘노마드’(유목민)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자 했던 삶과 그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꾸려가는 삶의 선택이나, 젊음의 특권인 용기를 상실한 지금의 청소년, 젊은이들에게는 없는 그 믿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고리타분한 우리에게 200년 전 연암의 삶과, 여행과, 기록은 긴 시간을 초월하는 ‘색다른’ 고전이 된다. 지금까지도 요동치면서 그 생명력을 자랑하는 『열하일기』를 새삼스럽게 지금 다시 불러온 이유는 바로 그것이 발산하는 다른 고전과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연암의 지식저장소를 훔쳐본다! 여행기를 읽다가 연암의 포복절도할 행각들에 잠시,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박지원’과 ‘이용후생’이 동급으로 암기되었단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수레와 수차, 도르레와 벽돌, 기와, 가마, 복식과 말 기르기 등에 대해 풀어 놓은 ‘실용적’ 입장에서의 관찰과 성찰을 읽고 있노라면, 비로소 그가 북학파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게 된다. 함께 길을 가다가 몰래 빠져 나와 남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기록해 놓은 그의 호기심과 열정은, 『열하일기』를 여타의 여행기들과는 차별되는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의 산물인 『열하일기』에서 우리는 ‘18세기 그때 그시절 박물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구들과 중국식 구들인 ‘캉’(?)이 어떻게 다른지 시시콜콜하게 적어 놓고, 깨진 기와조각을 마당에 박아서 진창을 예방하는 데 쓰임을 발견하여 그 감탄을 적어 놓은 이 책은 연암의 ‘지식저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열하일기』를 읽는다는 것은, 연암이 발로 뛰며 채워 놓은 지식저장소를 가만히 앉아서 훔쳐보는 조금은 뻔뻔한 일이 된다. 말똥과 수레를 찬양한 연암, 저잣거리에서 이야기를 채집하는 연암, 점방 벽에 적힌 재미난 얘기를 밤새 베껴 쓰는 연암, 그 모든 연암이 바로 이 책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속에 있다. 연암+철학+우정+자유=지루한 우리 삶의 해독제 “이질적 존재들의 시끌벅적한 향연을 즐긴 건 에피쿠로스를 닮았고,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우정의 정치학을 설파한 건 스피노자를 닮았으며, 웃음이야말로 삶과 사유의 동력임을 보여준 것은 니체를 닮았으며, ‘투창과 비수’의 아포리즘으로 통념의 기반을 가차 없이 뒤흔든 건 루쉰을 닮았구나!” 역자 고미숙이 박지원의 묘비명으로 바치고 싶다는 이 헌사에서 우리는 연암이 자신의 삶을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한 철학적 실천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신단 일행이 황제의 미움을 사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일이 더 흥미진진해질 것인지, 어떻게 하면 더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될 것인지를 끙끙대며 궁리하는 연암에게서는 범사회적 보편정서를 가볍게 훌쩍 뛰어넘는 경쾌함을 본다. 그리고 여기저기 거짓말을 하고 빠져나와 밤새 이국의 친구들과 정을 나누는, 우도(友道)가 최우선 가치인 연암에게서는 ‘인간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관계뿐’이라는 삶의 진리를 본다. 일류선비, 이류선비, 삼류선비를 이야기하면서 최고의 선비인 일류선비[上士]의 무능함과 무지를 스리슬쩍 비웃는 연암에게서는 세상의 통념에 길들여지지 않은 역설을 본다. 그렇게 연암은 삶 자체로 철학을 말하고 있고, 또 실천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며 성숙한다고 믿지만 사실, 나이듦의 다른 말은 온순해진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이 예상가능해지고, 너무 많은 것에 예의를 차리게 되고 열의가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마흔을 훌쩍 넘긴 연암에게서 보는 것은 모든 체면의 동시적 붕괴이자, 삶을 물어뜯는 강렬한 모습이다. 철저하게 비타협적인 연암, 그는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굴려가는 것, 그러니까 ‘내 멋대로’ 하는 거라는 진실은 현대의 경쟁 속에서,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천편일률 속에서 그래도 좀 괜찮은 삶을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클래식은 그렇게 현대의 유행과 만난다.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이들, 지루한 삶의 해독제가 필요한 이들, 지금 연암과 접속하면 가능하다! 연암 가라사대, “네 멋대로 좀 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