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왜곡과 무지를 걷어내는 마호메트 평전의 결정판
|
|
1. 적, 마호메트
2. 알라가 보낸 사람, 마호메트 3. 자힐리야 4. 계시 5. 경고자 6. 악마의 시 7. 헤지라 : 새로운 방향 8. 성전 9. 성스러운 평화 10. 선지자의 죽음 부록 - 마호메트 가계도 - 5, 6세기 쿠라이시족 계보도 - 마호메트 이후의 이슬람 세계 - 이슬람 연표 - 7세기 초 아라비아와 주변 지역의 지도 - 참고문헌 |
李熙秀
이희수의 다른 상품
|
서구인들로서는 마호메트에 대한 살만 루시디의 픽션, 『악마의 시』를 향한 이슬람 세계의 폭력적인 반응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 권의 소설이 그토록 살인적인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어 보였다. 그것은 이슬람 세계가 지독히 편협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한 가지 반응이었다. 특히 영국 내 이슬람 사회가 아주 다른 이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음을 안다는 것은 영국 사람들에겐 몹시 불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서방 세계를 불편하게 하는 몇 가지 암시들을 엿볼 수 있다.
브래드퍼드에서 이 소설을 불태우는 이슬람교도들을 지켜보면서 영국 사람들은 혹시 지난 수세기동안 기독교 유럽이 불태웠던 수많은 책들을 떠올리진 않았을까? 가령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한 프랑스의 루이 9세는 1242년 유대교의 탈무드를 예수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탈무드는 금서가 되었고 왕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두 불태워졌다. 루이 왕은 프랑스 내 유대 사회의 이질성을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따져볼 의향이 전혀 없었다. 그는 일찍이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방법은 오직 "칼로 깊숙히 배를 찔러" 죽이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 이단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최초로 종교재판을 소집한 것도 루이 왕이고, 그들이 보는 책은 물론이고 수백 명의 남녀들을 화형에 처한 것도 루이 왕이었다. 그는 이슬람교 또한 증오했으며 이슬람 세계에 맞서 두 번의 십자군 전쟁을 이끌기도 했다. 그 당시 다른 종료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쪽은 서구의 기독교였지 이슬람교는 아니었다. 사실 이슬람과 서방 세계 사이의 씁쓸한 역사는 이슬람이 스페인을 정복했을 때 그곳에서 벌어진 마호메트 모독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pp.4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