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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역사교과서 개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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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기획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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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숙적에서 동반자고: 독일-프랑스 관계사 변천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파노라마

Ⅰ. 샤를마뉴 제국의 유산
Ⅱ.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대립
Ⅲ. ‘프랑스’와 ‘독일’의 대립
Ⅳ.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
Ⅴ. ‘민족의 숙적’-보불전쟁에서 양차 세계대전까지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와 유럽 통합

Ⅰ. 독일-프랑스 화해에서 유럽 통합으로
Ⅱ. 유럽 통합의 위기와 독일-프랑스 관계
Ⅲ. 엘리제 조약과 독일-프랑스의 동반자 관계
자료 : 독·프 우호조약 조약문(1963)

제2부 새로운 역사교육을 향하여 : 역사교과서 개선 활동

독일과 프랑스의 적대 관계와 역사교육

Ⅰ. 제1차 세계대전 이전
Ⅱ. 전간기
Ⅲ. 나치즘 시기

역사교과서 개선을 위한 독일과 프랑스의 협력

Ⅰ. 국제 역사교과서 협의 활동 일반
Ⅱ. 독일-프랑스 역사교과서 협의 활동

제3부 함께 쓴 역사 : 독일-프랑스 권고안과 역사교과서

권고안 들여다보기

Ⅰ. 절대왕정과 프랑스대혁명
Ⅱ. 보불전쟁과 알사스-로렌
Ⅲ.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독·프 관계
Ⅳ. 제1차 세계대전과 베르사유 조약
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Ⅵ. 나치 독일과 비시 프랑스, 제2차 세게대전
Ⅶ. 1945년 이후의 역사

역사교과서 들여다보기

Ⅰ. 독일-프랑스 역사교과서 권고안과 프랑스 역사교과서
Ⅱ. 독일-프랑스 역사교과서 권고안과 독일 역사교과서

책을 마치며

부록

독일-프랑스 역사교과서 권고안 번역
Ⅰ. 「1935년 합의안」
Ⅱ. 「1951년 합의안」
Ⅲ. 「1987년 권고안」
Ⅳ. 「1999년 권고안」
Ⅴ. 「2004년 편찬 지침」
독일-프랑스 관계사 연표

저자 소개

저자 : 김승렬
서양 근현대사를 전공하였고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저자 : 이용재
유럽 근현대사·프랑스사를 전공했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53쪽 | 655g | 153*224*30mm
ISBN13
9788961870467

책 속으로

1930년대부터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역사의 앙금을 씻기 위해 실로 끈질기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차례 만남을 통해 권고안들을 도출해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권고안은 두 나라의 역사교과서 편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두 나라 역사가와 교육자들이 지난 반세기 동안 나눈 만남과 대화는 공식적으로 1935년, 1951년, 1987년, 1999년 등 모두 네 차례의 합의안을 도출해냈으며, 이에 맞추어 두 나라의 역사교과서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서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는 점에서 볼 때, 1930년대 이전의 두 나라 역사교과서 내용과 1980년대 이후의 역사교과서 내용 사이의 차이는 도데의 『마지막 수업』과 아르테 방송의 알사스 드라마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역사교과서 개선을 위한 지난 반세기 동안의 노력은 급기야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가 고등학교용 역사교과서를 공동으로 집필하고 출판하는 실로 놀라운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미 2006년 가을 신학기에 첫 권이 출판되었으며, 나머지 두 권도 2009년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양국의 정치가들이 주도한 화해정책과 유럽 통합이 민족주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이 기회를 실제로 활용하고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양국 갈등의 뿌리에 바로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교육이 있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들의 공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조르주 라피에르와 쥘 이삭 그리고 독일의 게오르크 에케르트 등은 나치즘에 희생되거나 이에 저항했던 경험을 공유한 인사들이다. 이들의 불굴의 열의와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화합과 공영의 역사교육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협력 과정에서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1930년대에 쥘 이삭이 처음으로 선보인 소위 ‘두 가지 시각(deux points de vue)’ 의 방식이다. 그는 두 나라 사이에 상충된 해석과 분쟁의 소재를 안고 있는 사건들을 서술할 때 같은 페이지의 밑단에 해당 사건에 대한 독일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발췌해 실음으로써 “독일 학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것은 독일인을 ‘적’으로서가 아니라 대등한 ‘상대방’으로, 더 나아가 함께 할 ‘이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는 서술양식이며, 거꾸로 독일인에게도 프랑스인과 프랑스 역사를 이와 마찬가지로 대접해주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상충되는 서로의 입장과 주장을 교차시키며 역사의 진실을 가려내려는 이러한 접근 태도를 방법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인 바로 오늘날 서구 역사학계에서 널리 각광받고 있는 소위 ‘교차 접근(approche croisee)’ 또는 ‘교차 역사(histoire croisee)’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추진된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 노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교육의 역할이다. 19세기에 접어들어 근대 국민 국가들이 형성되면서 유럽 각국은 그동안 지역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던 인민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민족주의적 역사교육이었다. 그런데 ‘국민화 과정’은 타민족을 배제하는 과정과 동시에 수행되었다. 자국의 역사교과서에 의해 함양된 민족 정체성은 그 안에 인접국과의 분쟁의 씨앗을 이미 배태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국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타국의 결점을 부각시키는 자민족 중심의 역사교육은 두 차례의 자기 파괴적인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근본적인 반성과 청산이 요구되었다. 이제 유럽인들은 배타적인 민족 정체성 대신에 인권과 민주주의 및 다원주의에 기초하여 다양한 정체성들 사이의 조화를 찾고 있다. 이때 극복 대상이 되는 것은 타민족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이지 민족 그 자체가 아니다.

이제 민족 정체성은 유럽인, 기독교인, 지역 주민, 여성, 직업인 등 여러 다양한 정체성들 중의 하나로 자리잡을 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진행된 역사교과서 협의 활동은 이러한 변하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제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장본인이던 두 나라가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유럽 통합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본서가 독·프 역사교과서 협의 활동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의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바탕글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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