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비망록
알려지지 않은 한 마리 새처럼 공중을 날고 있는 어느 광대 두 번째 비망록 영혼 없는 사물들의 흉계 세 번째 비망록 천사의 현존 네 번째 비망록 도취 상태에서 벗어던진 두 개의 신발 다섯 번째 비망록 거의 유한한 영혼의 새들 옮긴이의 글 목소리 대 목소리의 대위법 배수아 해설 안투네스라는 ‘낯선’ 작가 김용재(한국브라질소사이어티 사무총장) |
Antonio Lobo Antunes
裵琇亞
배수아의 다른 상품
|
이 책은 파시즘과, 사람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1 “폭력, 억압, 공포, 불안 등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50년 이상 포르투갈 국민의 일상을 변화시킨 권력의 모습에 대한 책” 팔멜라에 대토지를 소유한 프란시스쿠는 독재자 살라자르의 오른팔이었으며, 그 누구 앞에서도 모자를 벗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었다. 그는 농장과 대저택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하녀들의 몸을 유린하는 소유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양병원의 침상에 누워 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이빨도 없고, 물론 벗을 모자도 없다. 그와 침상 몇 개를 사이에 둔 자리에는 그의 공범자이자 한때 무시무시한 악명을 떨친 비밀경찰 피데의 대장이었던 소령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프란시스쿠의 아내 이자벨은 살라자르 독재 시절, 프란시스쿠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총애를 받던 다른 남자 때문에 그를 떠나갔다. 소령은 프란시스쿠의 친구였음에도 그를 위해 이자벨의 정부에게 복수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프란시스쿠는 이별의 충격에서 일생 동안 회복되지 못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한 소녀를 만나게 된 프란시스쿠는 소녀에게 전 아내 이자벨의 낡은 옷을 입히고 보석을 주렁주렁 달게 하고 온갖 옛날식 애정 표현을 강요하여 웃음거리가 된다. 프란시스쿠가 임종이 임박해서야 자신의 혈육으로 인정한 하나뿐인 아들은 상류층 집안의 딸과 결혼했으나 불행한 이혼을 하고, 결국 무위도식하는 인생으로 전락한다. 2 “몰락하는 시대와 인물에 대한 거대한 파노라마” 이 책 [대심문관의 비망록]은 프란시스쿠의 아들인 무기력한 주앙의 첫 번째 진술, 주앙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는 가정부 티티나의 두 번째 진술, 프란시스쿠의 혼외자인 파울라의 세 번째 진술, 프란시스쿠의 정부인 밀라의 네 번째 진술, 그리고 부인에게 버림받고, 가정부 티티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로부터도 애정의 대상이 된 적 없이 쓸쓸히 알발라드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프란시스쿠의 다섯 번째 ‘진술’과 열네 개의 ‘추가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서 모두 열아홉 명의 인물이 각자의 목소리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들의 진술은 몰락해간 시대에 대한 거대한 파노라마를 이룬다. 역사의 격랑기를 살아온 각 증인들의 목소리는 저마다의 기억을 되살리고, 청산하고, 새로운 쇄신을, 혹은 구원을 간구한다. 그 과정은 곧 가부장적인 독재자인 프란시스쿠 개인과 그 가족의 몰락, 나아가 독재정권의 몰락과 궤를 같이한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진술, 어떤 때는 앞의 얘기를 부인하고 어떤 때는 보완하며 자신의 시선에 따른 진술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선으로 평행되는 이야기를 하는 다양한 목소리는 다성적으로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과거와 현재의 삶은 해체되고 분석되고 새롭게 구성되어 포르투갈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권력 담론이 해체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은 이렇게 무너져가는 권력과 권력 앞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의 허망함까지 강하게 전달해준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한 진실 읽기는 과거의 기억에서 스며 나오는 사실을 각 인물들의 현재 시선을 통해 보여주며 권력에 의해 강제된 질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로,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웃기며, 때로는 빈정거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증언을 통해 파시즘을, 살라자르 독재시대뿐만 아니라 74혁명 이후의 무기력한 사회를 고발하는 한 편의 우화로 다가온다. 3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음표를 활용하여 시적 산문이라는 다성(多聲)의 멜로디를 작곡한다.” 첫 문단부터 펼쳐지는 안투네스 특유의 문체는 그저 당혹스럽다. 불완전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처음 한두 개이던 구두점은 어느새 영영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불완전한 형체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장들,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단락 내부에서 뒤섞이는 목소리와 시점들, 마치 하나의 문장처럼 보이는 기나긴 모놀로그 안에 혼재하는 과거와 현재,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해서, 현실의 독백 중간중간에, 예고나 설명 없이 불쑥 끼어들어 떠돌다가 다시 사라져버리는 과거의 그림자들. 책 전체가 오묘한 대위법의 복합 화음으로 넘쳐흐르는데다, 거의 모든 문장이 불완전한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여러 층위의 현재와 과거들의 중첩, 감정과 감정, 목소리와 목소리들이 혼재된 이러한 진술은 마치 합창단원들이 서로 다른 가사의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한편, 원근이 철저하게 배재된 평면적인 풍경화, 시간의 여러 층위를 이루는 사건들을 동시에, 시제를 전혀 구분하지 않고 병렬시키는 방식으로, 비현실적으로 고요하며 비극적인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외국 리뷰 영어본 서평들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와 멜빌의 『모비딕』과 달리, 이 책 『대심문관의 비망록』은 지난 세기 최악의 독재자들 가운데 한 명을 불러내, 그 삶에 대해 가차 없이 탐구한다. … 제어되지 않는 권력을 향한 길고 긴 고질병에 걸린 포르투갈의 변종(variant)에 대한 복합적이고도 치명적인 묘사가 쉼없이, 거침없이 진행된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든다. - 『뉴욕타임스』 “성, 폭력 그리고 타락으로 넘쳐흐르는 이 소설은 베르톨루치적인 영웅담을 떠올리게 한다.” -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 안투네스는 ‘프란시스쿠’라는, 마치 리어왕같이 간사하고 맹목적인, 그러면서도 이기적이고 무심한, 너무도 섬세한 인물을 창조해냈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대심문관의 비망록』은 그 인물들의 독특한 목소리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그리고 욕망과 절망적인 상황 사이에서의 갈등이 빚어내는 멜랑콜리한 유머도. - 『Review of Contemporary Fiction』 포르투갈의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는 페르디낭드 셀린느, 윌리엄 포크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임스 조이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토마스 핀천, 이탈로 칼비노를 뒤이어 내러티브 콜라주 기술의 21세기 상속자다. 그는 천재다. - Alan Kaufman, 『San Francisco Chronicle Book Review』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는 최상급의 소설가다. 아이러니로 가득 찬, 무섭도록 집중해야만이 향유할 수 있는 그의 소설들은 도덕과 정치 문제를 연관시킴으로써 그를 콘래드와 포크너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했다. 영어권 독자들에게 새로이 탐구할 미지의 세계가 성큼 열렸다. - George Steiner, 『The Death of Tragedy』『Grammars of Creation』의 저자 말 그대로 독창적이다. 안투네스처럼 글을 쓰는 작가는 없다. ··· 놀랍도록 강렬한 산문과 페이지들이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함께 생생히 살아 있다. - Margaret Jull Costa, 『The Times Literary Supplement』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생존작가 ··· 그는 전쟁에 의사로 참전하여 셀린느에 비교되곤 했고, 문체의 복잡성에서는 프루스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환상성의 힘과 은폐된 폭력을 그려낸 이 소설가에게서 혹자는 말콤 로리나 코맥 매카시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 『보그』(파리) 대심문관의 비망록 포르투갈 신문 서평 (...) 작품 도입부터 나를 흥분시키는 건 리듬이다. 독서의 리듬을 그렇게 강제적이며 뚜렷하지 않게 우리에게 강요하는 비망록 같은 작품은 드물다. 거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 째, 글이 전개되어가며 사실이 기록되는 스타일, 다시 말해, 반복되는 몸짓이 누적되어감에 따라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이 아니라 팩트라고 말한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건은 시간이라는 천을 찢는 것이고,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선을 그린다. 로부 안투네스의 인물을 포용하고 팩트들은 인물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찢는 팩트가 아니라,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간(비생산적, 반복적, 공허한, 괴로운, 담에 둘러싸인, 허를 찌르는)을 만드는 팩트로, 황폐할 정도로 평범한 존재에 대해 열린 창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팩트를 담론적으로 만들어 가는 건 작품 속에서 진행되는 심문의 형태에 맞는 긍정적인 문체를 강요하고 있다. 심문인지 종교재판인지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두 번째로, 열거(현실에 대한 사악한 증식, 열거로 발전한다)하고 있는 문체는 인물을 에워싸고, 인물을 벽에 밀어붙이고, 인물을 파괴하는 경찰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인물과 우리에게 가혹한 리듬을 가져다준다. 그 무엇도 이 진실을 규명하는 기계를 멈출 수 없기에 가혹하게 느껴진다. 작품 전체를 살펴볼 때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가, 인물에 질문하는(어떤 인물은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대답한다, 기억하는 게 피곤하고, 잊을 수 없어 지친 채 안락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걸 쳐다보기를 원하지만, 항상 대답하고, 계속 대답한다)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작품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인물들에게 다른 대안을 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본질적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 이 작품에서는 두려움이 모든 걸 지배한다. 모든 등장 인물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박해당하고 괴로운 존재이며, 추적당하는 동물들이다. 항상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 있고, 어두움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여자들이 있다. 그러나 여자들은 자신들의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있고, 언젠가 남자들을 잃어버리고, 남자들로부터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고독에 대한, 사랑의 괴로움에 대한, 인생의 평범함에 대한, 감정의 메마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무엇보다 자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로부 안투네스의 작품은 말 그대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같다:“나는 그저 프라사 두 칠레 거리를 내다보며, 계산대 앞에 앉아, 내 그림자가 가게 바닥을 이동하여 선반에 가 당신만을 기다릴 뿐이고,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서 창의 덧문을 닫고, 가게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이 작품이 파시즘(멜루 안투네스에 헌정하고 있다)에 대한 책이라면, 작품 속 인물들은 파시즘(여기에서의 파시즘은 그저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폭력의 연장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해 행사하고 있는 권력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르다. 파시즘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고, 자신에 대해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에두아르두 프라두 코엘류, 『불 켜진 창문의 신비』 in 푸블리쿠(Publico: 일간지), 1996년 11월 2일자 독일에서 로부 안투네스의 작품 다섯 권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인 크리스토프 부흐발트(Christoph Buchwald)는 ‘진정한 세계적 문학’작품이 성공을 거두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 카피탈(A Capital: 일간지). 1997년 10월 21일자 거의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안투네스의 리얼리즘은 인물, 배경, 상황 등에 대한 캐리커처로서, 거의 언제나 원래의 목적을 넘어서는 또 다른 리얼리즘으로 구현되고 있다. 여기서 캐리커처는 전형화된 요소나 특징을 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심문관의 비망록에서는 병치와 무질서한 누적이라는 장치를 통해 언제나 넘칠정도로 지나치게 채워지는 세계가 표현되고 있다. (...) 내레이션은 교대하며 나타나는 인물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소설은 그러므로 다성적인 목소리와 상이한 관점이 상호 충돌하는 담론적 재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이스프레수(Expresso: 가장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1996년 10월 26일자 (...) 한편의 서사시와 같다. 그러나 모든 게 반대인 서사시이다. 상승 대신 추락, 위대함 대신 미천함이 드러나는 서사시이다. 배경이 되는 장면은 한 집안과, 그 집안의 권력과 몰락이다.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늙은 가부장보다 더 역겨운 건 남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다. 아니 제국의 상징이다. 『대심문관의 비망록』은 또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불행하고 그로테스크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성과 반이성이 뒤섞여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와 미래 또한 뒤섞여 있다. 한편 종종 감각이 동시적으로 살아있다. 정체성 상실이라는 부서진 거울에서 비춰지는 기억의 필라멘트이다. - 조르날 드 레트라스, 아르트스 이 이데이아스(Jornal de Letras, Artes e Ideias: 격주간지, 문학예술비평지), 1996년 9월 25일자 (...) 『대심문과의 비망록』이라는 고발에 내포된 씨줄은 그 자체로 아주 정교한 소설적 구성을 통해 지배자인 아버지라는 인물과 그가 후견하는 집안이라는 배경 속에 고착화된 한 가족의 전설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부재한 어머니의 환상이 드리워져있고, 세월이 강요한 변화와 변형은 그늘진 또 다른 전설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살라자르주의, 4.25 혁명, 부패한 기업인,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소시민, 거친 군인, 수동적인 지식인, 애정의 환멸과 올가미, 충동적 섹스 등 이런 모든 게 소설의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일시적인 모양새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생각 내면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병치되고 있는 시점이 실제적 소통 관계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복수적이 되고 있을 뿐이다. - 조르날 드 레트라스, 아르트스 이 이데이아스(Jornal de Letras, Artes e Ideias: 격주간지, 문학예술비평지), 1996년 11월 6일자 축사 E para mim uma grande honra ser traduzido e publicado no vosso pais. 당신들 나라에서 제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는 건 제게 큰 영광입니다. Faz-me recordar os navegadores portugueses que ha tantos seculos chegaram ao mundo inteiro. Eram poucos, e pobres, mas o seu lema era “navegar e preciso, viver nao e preciso”. 수세기 전에 전 세계로 뻗어나간 포르투갈 항해가들을 기억나게 합니다. 많지 않았고 보잘것없었지만, 이들의 구호는 “항해는 정확하나, 삶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Neste momento tenho a impressao de que os meus livros sao caravelas que conseguiram alcancar o que para mim era inimaginavel. 이 순간 저는 제 책들이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곳에 도착을 한 범선이라고 느껴집니다. Espero que os leitores coreanos compreendam que o homem e o mesmo em toda a parte e que os seus problemas fundamentais - o sentido da vida, a angustia existencial, a maneira de lidar com os nossos dramas e alegrias interiores sao os mesmos. 저는 한국 독자들이 인간은 어는 곳이든지 동일하고 근본적인 문제들 - 삶의 의미, 존재론적 고뇌, 우리 내적 즐거움과 드라마를 다루는 방법 -은 동일하다는 걸 이해 해주기를 바랍니다. Desejo, do coracao, que aquilo que vos dou atraves da palavra escrita encontre um eco indulgente nos vossos coracoes. 제가 글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것들이 여러분들의 심장에 부드러운 메아리로 울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Agradeco reconhecidamente a quem teve a generosidade de me traduzir e de me ler, salvando-me desse modo da solidao essencial do homem. 제 작품을 번역하고 읽어주어 인간의 본질적 고독으로부터 저를 구원하는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에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