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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이 없지 않은가?
살 만하겠냐? 살아야지요 넌 연애를 할 줄 몰라 공으로 돈 먹지 말라 노가다는 노가다답게 많은 생각들이 춤을 춰대는 곳 항상 번쩍번쩍 빛나도록 다 무슨 사연이 있는 명예도 모자라 인격까지 깻잎에 담긴 무게 질보다 양이 재는 이젠 열심히 할게 해설(서영인)_ 아직 추억을 말하긴 이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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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공부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많이 했으니까, 쉬엄쉬엄해도 좋아. 어른답게 행동한다면, 무슨 짓거리를 해도 좋아. 다만 데모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데모하는 날이 이 애비 눈에 흙 들어가는 날인 줄 알면 된다. 알지, 흙?” --- p.8
“전대협 출범식 때도 곰탱은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거의 미친 듯, 전대협과 전대협 의장님을 찬양하고 싶었다. 견디다 못해 입에서 절로 찬양의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진심으로는 끝내 찬양할 수 없었다. (…) 전대협이 아무리 뛰어난 조직이고, 전대협 의장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불과 스물네 살이신 그분이 훌륭하면 대체 얼마나 훌륭하다는 걸까?), 너무 지나친 떠받듦이나 우러름이 아닐까.” --- p.31 곰탱은 활짝꽃과 더불어 노을녘의 들판길을 걸어가고는 했다. 항상 바보 멍청이처럼 행동하는 곰탱은 활짝꽃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굳고 포부가 거대한 스무 살인 것처럼 굴었다. 곰탱의 포부는 망상급이었다. 예를 하나만 들자면, 제 나라의 위대한 작가들이 한 번도 받지 못했던 노벨문학상이 마치 저를 위해 예약된 것처럼, 말하는 거였다. “내가 노벨문학상 타면 상금, 누나 다 줄게. 상금이 겁나게 많대.” 제방을 넘어 새끼강 안으로 들어가, 갈대가 옥신각신하는 모래바닥을 헤쳐가기도 했다.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기도 했다. 곰탱은 활짝꽃을 자꾸만 쓰러뜨렸다. 안다리 걸기, 앞무릎치기, 배지기. 정신없이 넘어져대다가 활짝꽃은 울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자식, 넌 연애를 할 줄 몰라.” --- p.66 “근데 궁금한 게 있어. 왜 너를 곰탱이라고 불러?” “아, 그거. 그게 말하자면, 누나도 알지요? ‘동작 그만’이라는 코미디에 나오는 이봉원이. 이봉원이 고문관으로 나오는데, 이봉원 별명이 곰팽이거든. 나랑 그 이봉원이랑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죠. 생긴 것도 닮고 하는 짓도 닮았다나. 그래서 곰팽이 동생 곰탱이라고 부르는 건가 봐유. 뭐, 어쩌겠어, 부르고픈 맘이겠지.” --- pp.90~91 “김일성이 죽은 것하고 민자당 지키는 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경찰에서 최고 비상이 걸렸으니까, 경찰서에 있었다면 오 분 이내로 무장하고 출동준비라도 했겠지만 여기서는 비상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어쨌거나 명색이 근무지인 곳에 부동자세로 서 있기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 --- p.245 곰탱이 경찰서를 다녀온 이 년 새에, 세상은 획기적으로 변해버렸다. 새 시대의 척도로 매김되었던 타자기와 워드는 영광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새로이 등장한 컴퓨터가, 286시대를 벌써 과거로 만들고, 386시대를 구가하며, 곧 486시대를 맞은 조짐을 보이며,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 p.263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오?” “신세대소설 아닙니까?” “신세대소설,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어.” “영웅주의?” “아냐” “무협지?” “아냐.” “포스트모더니즘?” “아냐.”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정답을 말씀해주십시오. 시대가 요구하는 소설이 무엇입니까?” “포, 르, 노!” --- pp.297~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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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학번 71년생 곰탱의 포복절도 청춘기!
어느덧 등단 십 년! 제2의 이문구와 성석제로 불리며 능수능란한 서사, 능청스러우면서도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문단의 기대를 모아온 소설가 김종광. 그가 새 장편 『첫경험』을 펴냈다. 71년생 90학번인 ‘곰탱’의 대학시절과 군대시절 이야기로, 곰탱과 함께 청춘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든, 싫든” “특별하든, 특별하지 않든” “간절하든, 간절하지 않든” 겪어야 했던 첫 경험들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어느덧 삼십대 후반이 되어버린 90학번들이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겪었음직한 모든 첫 경험들이 투박하지만 맛깔난 반찬들처럼 총망라되어 있다. 그동안 김종광은 이미 여러 단편들(『경찰서여, 안녕』)과 중편(『71년생 다인이』)에서 대학생 시절과 군대시절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첫경험』이라는 장편을 통해 그 시절을 또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절이 그저 ‘추억’으로만 그칠 수 없는데다가, 그 시절에 대해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추억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시절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깊었고, 폭력과 억압이 청춘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부조리가 일생을 지배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첫경험』은 어느 농촌 소도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느 70년대생들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며, 문학제도 진입을 꿈꾸는 자의 욕망을 다룬 하나의 습작기이기도 하고, 학교와 경찰서를 중심으로 여러 부조리한 대중들이 90년대를 통과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첫경험』에는 다채로운 군소 인물들이 넘쳐난다. “선배, 동기, 후배 구분 없이, 비주류, 피디파, 엔엘파, 순수문학파, 연애파의 구분 없이” 곰탱이 “자신의 방에 받아들이면서”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한 시절을 보내야 했던 인물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활짝꽃, 시공장, 순무, 김산디, 악어, 달달달, 건달장사, 젊은할매, 척척보이, 무녀리, 왕방울, 바위공, 빨간내복, 흑선풍, 비돈, 무음……. 별 볼일 없는 것 같으면서도 별 볼일 있는 인물들은, 곰탱의 친구이기도 하고 선배나 스승이기도 하며 라이벌이기도 하고 철천지원수이기도 하다. 곰탱이 그들과 엮어가는 소극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듯 익숙하면서도, 기발하고 찐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너를 왜 곰탱이라 불러? 1990년 청춘군에 자리한 청춘대학 문학과에 당당히 입학한 우리의 탱! 곰탱은 자랑스러운 농부의 아들이다. 스무 살이 되어,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곰탱에게 아버지는 준엄한 당부를 잊지 않는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공부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많이 했으니까, 쉬엄쉬엄해도 좋아. 어른답게 행동한다면, 무슨 짓거리를 해도 좋아. 다만 데모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데모하는 날이 이 애비 눈에 흙 들어가는 날인 줄 알면 된다. 알지, 흙?”(8쪽) 그러나 곰탱이 대학생활을 시작한 1990년, 새해 벽두부터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탄생된다. 당연히 곰탱의 대학생활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데모’였다. ‘합의 없는 일방적 고지서 발부 철회와 재단 전입금 확보를 위한 낙혈인 규탄대회’ ‘90학년도 학생자치기구 발대식 및 4월투쟁 선포식’ ‘연행학구 구속 수배 규탄 및 5월 광주순례 결의대회’ 등등. 곰탱은 입학하자마자 무어든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선후배와 어울리는 재미로, “무엇보다도 심심하지가 않’다는 이유로 강의를 빼먹고 데모에 참여한다. “해야겠는데, 무조건!”이라고 외치기는 했지만, 투쟁의 신심도 없이 그러고 다닌다는 것 때문에 괴롭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 동아리 수련회에 참가했다가 그들의 집단적 몰입을 경험하고는, 그들의 몰입이 데모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몰입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고 ‘데모’에 시들해진다. “전대협 출범식 때도 곰탱은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거의 미친 듯, 전대협과 전대협 의장님을 찬양하고 싶었다. 견디다 못해 입에서 절로 찬양의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나 진심으로는 끝내 찬양할 수 없었다. (…) 전대협이 아무리 뛰어난 조직이고, 전대협 의장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불과 스물네 살이신 그분이 훌륭하면 대체 얼마나 훌륭하다는 걸까?), 너무 지나친 떠받듦이나 우러름이 아닐까.”(31쪽) 곰탱은 기숙사에서 삼겹살 사주기 내기 고스톱을 벌이다 조교에게 걸리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대들다 기숙사에서 쫓겨난다. 순무의 자취방에서 빌붙어 살던 곰탱은 달달달로부터 바둑을 배우고 “누가 바둑 급수를 묻거든 ‘돌 놓을 줄은 압니다’라거나, ‘급수 같은 거 없습니다’라고 대답해라!”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거처를 옮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이 있듯, 곰탱에게도 첫사랑 활짝꽃이 찾아온다. 바보 같은 자식 넌 연애를 할 줄 몰라 곰탱은 활짝꽃과 더불어 노을녘의 들판길을 걸어가고는 했다. 항상 바보 멍청이처럼 행동하는 곰탱은 활짝꽃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굳고 포부가 거대한 스무 살인 것처럼 굴었다. 곰탱의 포부는 망상급이었다. 예를 하나만 들자면, 제 나라의 위대한 작가들이 한 번도 받지 못했던 노벨문학상이 마치 저를 위해 예약된 것처럼, 말하는 거였다. “내가 노벨문학상 타면 상금, 누나 다 줄게. 상금이 겁나게 많대.” 제방을 넘어 새끼강 안으로 들어가, 갈대가 옥신각신하는 모래바닥을 헤쳐가기도 했다. 모래밭에서 씨름을 하기도 했다. 곰탱은 활짝꽃을 자꾸만 쓰러뜨렸다. 안다리 걸기, 앞무릎치기, 배지기. 정신없이 넘어져대다가 활짝꽃은 울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자식, 넌 연애를 할 줄 몰라.”(66쪽) 곰탱이 자신의 밥벌이는 자신이 하겠다고 나선 아르바이트. 건달장사와 젊은할매가 하는 ‘할매주막’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곰탱은 허둥지둥하다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돈이 떨어지자 왕방울과 함께 노가다 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노가다는 노가다답게 해야 하는 겨. 일당 이만이천 원짜리가 일당 육만 원짜리처럼 일하면 못쓰는 겨” 라는 어른들의 말을 새겨듣고 한겨울을 노가다로 보내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는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할 뿐 지불되지 않는다. 어정쩡하게 대학생활을 보내던 곰탱은 군대에 입대하고, 대학교가 있는 청춘군 청춘경찰서에 배치된다. 그가 하는 일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무면허운전이나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일. 눈 가리고 건수를 채우고, 재수 없게 걸린 운전자들이 내민 지폐를 나눠가지고 바둑을 두거나 책 따먹기 고스톱을 치기로 어영부영, 지루하고 무기력하게 군대생활을 버텨나간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단속 건수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고,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때문에 톨게이트 초소를 떠나 민자당사 앞을 지키기도 한다. “김일성이 죽은 것하고 민자당 지키는 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마는, 경찰에서 최고 비상이 걸렸으니까, 경찰서에 있었다면 오 분 이내로 무장하고 출동준비라도 했겠지만 여기서는 비상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어쨌거나 명색이 근무지인 곳에 부동자세로 서 있기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245쪽) 복학생 곰탱, 386시대를 맞아 글쓰기에 매진하다 무사히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로 돌아오지만, 그곳에는 첫사랑 활짝꽃이 없다. 대폭 늘어난 고독한 시간에 복학생 곰탱은 컴퓨터를 붙잡고 열심히 소설 쓰기에 매진한다. “질보다 양이 재능”이라 믿으며. 곰탱이 경찰서를 다녀온 이 년 새에, 세상은 획기적으로 변해버렸다. 새 시대의 척도로 매김되었던 타자기와 워드는 영광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새로이 등장한 컴퓨터가, 286시대를 벌써 과거로 만들고, 386시대를 구가하며, 곧 486시대를 맞은 조짐을 보이며,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었던 것이다.(263쪽) 워낙에 파벌의식이 없는 곰탱은 순수문학파인 시 동인 작인과 엔엘파인 동아리 진군나팔에 동시에 가입되어 있으며 피디파의 술자리에 끼어서도 술을 얻어 마시고, 비주류인 녀석들과는 바둑과 설 동인을 매개로 맺어진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면서도 씀씀이가 헤픈 곰탱은 최소한 술값만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석 달을 하고는 졸업여행을 가자는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 그만둬버린다. 96년, 꿈에도 소원하던 컴퓨터를 덜컥 구입한데다 계절학기 등록금 때문에 급전이 필요해진 곰탱은 포르노 소설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소설이 무엇입니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오?” “신세대소설 아닙니까?” “신세대소설,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어.” “영웅주의?” “아냐” “무협지?” “아냐.” “포스트모더니즘?” “아냐.”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정답을 말씀해주십시오. 시대가 요구하는 소설이 무엇입니까?” “포, 르, 노!”(297~298쪽) 곰탱은 열이틀 만에 원고지로 천다섯 장을 완성하지만, “이게 소설이야? 기본이 안 돼 있잖아. 기본이. 도대체 문학과 사 년 다니면서 뭐 한 거야? 문장이 아니라 낙서잖아!”라며 출판사 편집장으로부터 호되게 면박만 당한다. 이젠 열심히 할게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곰탱은 후배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쳐보기도 하지만, 한심한 자신의 청춘에 대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그리고 마침내 석 달 간의 학원강사 생활을 끝으로, 곰탱의 청춘군 유람은 장장 칠 년 만에 막을 내린다. 97년 5월, 서울에 취직자리를 얻은 곰탱은 1톤짜리 이삿짐센터 트럭에 짐들을 싣고 청춘군을 떠난다. 트럭은 곰탱이 “부개검문소 시절 건수 없을 때 오토바이 탄 농부들을 잡으러 왔던 들판을 지나, 민자당 사무실이 있는 읍내 도로를 지나, 전경이 입초를 서고 있는 경찰서 정문을 지나”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떠난 이들이 변하듯, 남아 있는 이들도, 풍경도 변하는 것이 숙명”이듯 곰탱과 그의 일당들이 헤집고 다녔던 청춘대학 주변 풍경도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옛 자취를 감춘다. 곰탱, 어영부영 얼렁뚱땅 어른이 되다 ‘마이너스 시력에 키도 작고 싸움도 더럽게 못 할 것처럼 생긴’ 곰탱. 곰탱은 영웅적인 운동권 학생도, 기막힌 연애꾼도, 열공파도, 그렇다고 멋진 아웃사이더도 아니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무기력하게 대학시절을 보낸 격인 곰탱은 대학교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어영부영, 얼렁뚱땅 어른이 된다. 곰탱이 90년부터 97년까지, 칠 년 동안 겪은 첫 경험들이 ‘시대와 일상’의 위력에 눌려 너무나 사소하고 잡다했기에, 소설로서라도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채’다.『첫경험』은 그래서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