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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30개 구단 배치도
사진으로 보는 메이저리그 머리말 1. 야구의 기원 2. 야구의 아버지 채드윅과 최초의 공식 경기 △1846~1879년 3. 최초의 흑인 선수와 볼넷 규정 △1882~1892년 4. 투수판과 홈 플레이트 간의 거리 확정 △1893~1909년 5. 콥과 라즈와의 희한한 타격레이스 △1910~1919년 6. 베이브 루스의 트레이드 △1920~1923년 7. 매튜슨의 사망과 격동의 1920년대 △1924~1928년 8. 필라델피아 전성시대와 루스의 예고 홈런 △1929~1932년 9. 올스타 게임과 루스의 은퇴 △1933~1935년 10. 새로운 영웅 디마지오의 탄생 △1936년 11. 천방지축 디지 딘의 몰락 △1937년 12. 밴도 미어의 두 경기 연속 노히트노런 △1938년 13. 명예의 전당과 루 게릭의 슬픈 은퇴식 △1939년 14. 마침내 우승한 레즈 △1940년 15. 디마지오와 윌리엄스의 역사적인 기록들 △1942년 16. 2차 대전으로 황폐해진 야구 △2차 대전과 카디널스(1942~43년) △선수들의 참전과 판도 변화(1944년) △커브스 또 분루(1945년) △종전과 영웅들의 복귀(1946년) 17. 잭키 로빈슨의 등장과 미국 사회 개혁의 시작 △1947년 18. 되살아난 MLB의 인기 △1948~49년 19. 코니 맥 감독과 조 디마지오의 은퇴 △1950년 20. 최고의 라이벌 다저스와 자이언츠 △1951년 21. 전설의 투수 새첼 페이지 △1952년 22. 다저스의 양키스 징크스와 짜릿한 복수 △1953년, 1955년 23. 사상 최고의 외야수 윌리 메이스 △1954년 24. 싸이영상의 탄생과 월드시리즈 퍼펙트게임 △1956~57년 25. 서부로, 서부로 △1958년 26. 야구의 전국구 시대와 격동의 60년대 개막 △1959~60년 27. 깨진 루스의 홈런 기록 △1961년 28. 신생팀 메츠와 막강 좌완 코팩스 △1962~63년 29. 치열한 페넌트레이스와 애스트로돔 △1964~65년 30. 코팩스의 은퇴와 양대 리그의 영웅 프랭크 로빈슨 △1966년 31. 카디널스 전성기와 야스트렘스키 △1967년 32. 투수들의 전성기와 봅 깁슨 △1968년 33. 뉴욕 메츠의 기적 △1969년 34. 용감한 투사 커트 플러드 △1970년 35. 클레멘테와 1971년 월드시리즈 36. 스티브 칼턴과 변화의 시작 △1972년 37. 론 르플로어 - 감옥에서 빅리그로 △1973년 38. 새로운 홈런왕 행크 애런 △1974년 39. 조 모간과 1975년 월드시리즈 명승부 40. 빌리 마틴과 뉴욕 양키스 시대 △1976년 41. ‘10월의 사나이’로 탄생한 레지 잭슨 △1977년 42. 여기자의 클럽하우스 출입 허용 △1978년 43. 윌리 스타젤과 피츠버그 해적들의 득세 △1979년 44. 필리스의 영웅 마이크 슈미트 △1980년 45. 발렌주엘라의 등장과 선수 파업 △1981년 46. 천재 도루왕 리키 핸더슨 △1982년 47. 조지 브레트의 대폭발 사건 △1983년 48. 라인 샌버그와 커브스의 좌절 △1984년 49. 영욕의 피트 로즈 △1985년 50. 1986년의 역전드라마와 클레멘스의 20K 51. 홈런 시즌과 거포 맥과이어의 등장 △1987년 52. 다저스의 기적과 허샤이저, 깁슨 △1988년 53. 영웅 로즈의 추락과 월드시리즈 지진 사건 △1989년 54. 노히트노런 시즌과 신시내티 레즈의 이변 △1990년 55. 꼴찌들의 반란 △1991년 56. 캐나다의 득세와 MLB의 내분 △1992년 57. 조 카터의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과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 △1993년 58. 파업으로 날아간 1994년과 토니 그윈 59. 치유의 1995시즌과 칼 립켄 주니어 60. 홈런 시즌과 박찬호 △1996년 61. 약체 말린스의 우승과 인터리그 △1997년 62. 맥과이어의 70 vs. 소사의 66 △1998년 63. 콘의 퍼펙트게임과 두 명의 3000안타 멤버 △1999년 64. 박찬호 18승과 양키스 우승으로 시작된 뉴 밀레니엄 △2000년 65. 김병현과 다이아몬드백스의 2001년 66. 와일드카드 팀끼리 격돌한 월드시리즈와 배리 본즈 △2002년 67. 말린스와 커브스의 엇갈린 운명 그리고 서재응 △2003년 68. 밤비노 저주의 끝과 커트 실링 △2004년 69. 하얀 양말의 돌풍 △2005년 70. 2006년 타이거스의 영광과 좌절 71. 쏟아진 대기록과 스테로이드로 얼룩진 2007년 [부록] 미국 야구 연표 역대 월드시리즈 우승팀 역대 싸이영상 수상자 포스트 시즌 대진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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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는 1884년에 탄생했다. 당시 마이너 노스웨스턴리그의 톨레도 팀이 AA로 편입되면서 소속 선수이던 포수 모세스 플릿우트 플릿 워커가 흑인으로는 처음 빅리그 선수가 된 것이다. --- p.42
☞‘타자하면 베이브 루스, 투수하면 싸이 영.’ 바로 그 전설적인 싸이 영의 본명은 덴턴 트루 영이다. 영은 통산 511승으로 다승 2위인 월터 존슨보다 94승을 더 거둔 전설 같은 투수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의 공을 받던 포수가 패스트볼이 너무 빠르다고 해서 ‘싸이클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기자들이 ‘싸이(Cy)’라고 줄여 부르면서 은퇴할 때까지 마치 그것이 원래 이름처럼 불렸다. --- p.63 ☞두고두고 화제와 논란이 되는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이 바로 1932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왔다. 리글리필드에서 벌어진 3차전. 동점인 가운데 5회초 볼 카운트 2-2에서 타석을 벗어난 루스는 배트로 센터 펜스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 루스는 루트의 5구째를 통타, 센터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을 뽑아냈다. 곧이어 루 게릭의 백투백 홈런이 터지면서 양키스가 결국 7-5로 승리했다. 그러나 루스가 전날 병상의 어린 팬에게 홈런을 약속하고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예고 홈런을 쳤다는 스토리는 시카고의 한 신문기자가 만들어냈다는 의혹이 짙다. --- p.96 ☞조 디마지오의 또 다른 신화는 마릴린 먼로와의 사랑이다. 여배우 도로시 아놀드와의 결혼에 한 번 실패했던 디마지오는 1953년 은퇴한 직후 막 떠오르는 은막의 스타 먼로와 만나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먼로의 배우 생활에 불만을 터뜨린 디마지오는 충돌이 잦았고, 결국 결혼 274일 만에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각각의 길을 갔지만 디마지오는 먼로를 잊지 못했다. 1962년 8월 1일 디마지오는 먼로에게 재결합을 신청하려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을 전할 새도 없이 8월 5일 먼로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충격과 비탄에 빠진 디마지오는 먼로의 시신을 인수해 직접 장례를 치렀으며 그 후 20년간 매주 세 번씩 장미꽃 6송이씩을 먼로의 무덤에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디마지오는 먼로의 사망 후 끝까지 독신으로 지냈으며 1999년 3월 8일 폐암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이젠 마릴린을 볼 수 있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겨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 p.111 ☞1951년에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8월 1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에디 가델이라는 대타를 기용했다. 구단주 빌 빅의 아이디어로 대타로 기용된 가델은 신장이 불과 108cm에 불과했다. 백넘버도 1/8 번을 달고 나온 가델은 구단주 빅의 의도대로 공 4개 만에 볼넷을 골라 진루했다. 그러나 빅리그 사무국은 즉각 가델의 출전을 불허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가델은 한 타석에서 볼넷 한 개를 고른 것을 끝으로 빅리그 생활을 끝내야 했다. --- p.165 ☞선발투수 5일 간격 등판의 유래 -1966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팬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당대 최고의 투수이던 샌디 코팩스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로 뛰기 시작한 61년부터 66년까지 6년간의 성적은 역대 어떤 투수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6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6년간 코팩스는 129승을 거둬 한 시즌 평균 21.5승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가 4일 간격이 아닌 5일 간격의 등판이 나온 것도 코팩스의 팔꿈치 통증 때문이었다. --- p.235 ☞노예문서인 보유조항을 페지하고 FA제도를 도입한 선구자 -커티스 챨스 플러드는 선수의 권리와 존엄성을 위해 싸운 용감한 투사다. 1969시즌 종료와 함께 카디널스와의 계약이 끝난 플러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됐다. 당시만 해도 MLB에는 ‘보류조항(reserve clause)’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번 드래프트된 선수는 모든 권리가 구단에 주어지는 조항이었다. 몇 년을 뛰었든 상관없이 구단에서 트레이드를 시키면 군말 없이 짐을 꾸려야 했다. 그러나 플러드는 보류조항을 정면 거부했다. 비록 플러드 본인은 소송에서 패했지만, 그가 처음 투쟁을 시작한 지 5년 뒤인 1975년 앤디 매서스미스와 데이 맥날리가 조정관 피처 시츠로부터 자유계약선수의 자격을 부여받았고, 결국은 보류조항이 무너지면서 MLB에는 FA 제도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됐다. --- p.269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개막전은 커다란 술렁임 속에 열렸다. 그 술렁임은 야구장뿐 아니라 미국 야구계 전체, 나아가서는 미국 사회를 커다란 변화와 발전의 방향으로 이끈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니거(nigger)’라는 흑인에 대한 경멸의 단어가 아주 당연히, 장소 구분 없이 사용되던 시절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이 다저스의 1루수로 개막전에 출전한 것이다. ‘우리 야구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는 죽음을 각오해야할 것’이라는 식의 살해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 p.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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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통해 본 미국, 미국인, 미국의 문화사
미국은 가히 ‘스포츠의 천국’이다.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바탕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가 활발하게 행해지며 미국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렇게 수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메이저리그 야구(MLB)를 ‘전 국민의 여가놀이(national pastime)’라고 부를 만큼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대중적이고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스포츠가 바로 프로야구다. 미국인들에게 야구가 이렇게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세월과 역사가 뒷받침됐다. 1778년 독립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이미 야구에 대한 기록이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1840년대에는 최초의 야구팀이 생겼고, 1846년에는 최초로 공식 경기가 벌어졌다. 그리고 1869년 최초의 프로팀이 결성됐으니 미국 프로야구의 역사는 2009년이면 꼭 140년째가 된다. 메이저리그를 모르고서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미국인들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포츠라기보다는 그들에겐 야구가 삶의 일부분이다. 미국 야구를 알면 미국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와 삶, 사고방식, 생활의 습관 등도 야구 안에서 느낄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1994년 박찬호의 LA다저스 입단 이후 한국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팬을 확보하며 폭발적인 붐을 이뤘다. MLB에는 총 30개 팀이 있으며, 각 팀당 연간 162게임씩의 정규 시즌을 치른다. 2007년 시즌 MLB 야구장을 찾은 유료 관중의 숫자는 무려 7950만2524명이었다. MLB는 최근 4년 연속으로 관중동원기록을 갈아 치우는 최고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그만큼 프로야구는 스포츠라는 경지를 넘어서 미국인들 생활의 일부이고, 야구장은 가족 나들이나 친구, 친지들과의 놀이터, 애인과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은 한국 언론 최초의 메이저리그 전문기자로 활약해온 저자의 20여 년에 걸친 취재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지난 1990년부터 스포츠조선의 미주 특파원을 지내면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LA다저스 입단식과 1990년대 후반기 이후 맹활약하던 시절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 땅을 밟은 김병현과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 등 많은 우리 선수들의 미국 프로야구 도전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1년에 50차례 이상 비행기를 탔고, 매년 200차례 가까운 경기를 보려고 미국 전역의 야구장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언젠가는 미국 야구의 역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네이버 MLB 코너에 65회에 걸쳐 연재한 칼럼과 함께 미국 야구를 만들어온 70명이 넘는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보강해 인물과 사건이 어우러진, 200년이 넘는 미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