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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hiro Iwasaki,いわさき ちひろ,岩崎 ちひろ,본명 : 마츠모토 치히로(松本 知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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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온 아이는 어떤 애
옆집에 사는 아이는 어떤 애 뭐야- 여자 아이잖아 인형놀이라면 난 싫어 치- 이상한 아이야 딴 데만 쳐다보고 좋아 나도 놀아 주지 않을 거야 야호- 너 이런 거 할 수 있니 야호- 너 엄마 뾰족구두 신고 다니면 넘어진다 나도 할 수 있어 그런 것쯤 그치만 난 지금 외출하느라 바빠 그리고 너 위험하잖니 신발을 아무 데나 던지고 미미 저런 사나운 개랑은 절대 같이 놀면 안 돼 어두워지니까 집에 가자 --- pp.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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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치히로의 이름과 작품 스타일은 일본 뿐만 아니라, 특히 유럽권에서 아이들을 위한 예술 세계를 접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치히로의 가장 주목할만한 업적은 어린이를 그리는 일을 계속했던 아티스트였다는 점이다. 그녀는 대강의 스케치 작업 없이 곧장 붓을 집어들어 물에 적신 후 종이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때문에 아이들의 피부를 실제로 부드럽고 탄력 있게 느낄 수 있게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치히로의 기법에는 잊혀지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무궁한 아픔과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연함과 고요함, 촉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 그녀의 작품에는 공감각이 함께 나타난다. 온화해 보이지만 촉촉하게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며, 동시에 정신적으로 풍만한 양감을 발산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에게서 목젖을 내보이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살며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천진하지만, 그 뒤에 가녀린 떨림 같은 것이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드는 묘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치히로의 그림이 서양에서 발달한 수채화의 한 흐름에 놓여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녀만의 예술관이 녹아든 동양적인 회화 기법의 짙게 보인다.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 적 서도를 배운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먹의 농담이 암시하는 색의 깊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달려가는 붓의 놀림, 필압으로 생겨나는 먹의 풍부함은 수묵으로만이 제대로 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수묵의 깊이는 색채가 풍부한 그녀의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나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대상을 그리거나, 붓의 긁힘을 그대로 살리며, 색이 미처 마르지 않은 부분에 색을 덧칠하여 복잡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화풍으로 마치 색이 스며나오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녀는 어린이를 좋아했다. 전쟁의 가해자라는 죄의식 때문이었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에는 전쟁이나 슬픔 따위의 아픔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치히로의 생활과 인생관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된 것은 전쟁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반 대해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의 실태를 알게 되고서 치히로의 마음은 죄의식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비록 당시에는 진실을 몰랐다고 해도 자신이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한다. 새로운 삶을 발견했던 치히로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때였다. 그녀는 인민신문의 기자를 하면서 ‘노동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화가가 되고싶다’는 일념으로 붓을 들었다. 치히로는 예전부터 직업적인 성공을 의식하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를 다치게 했던(첫남편의 자살) 젊은 날의 회한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 시절, 행복했던 생활 이면에 전쟁으로 상처받은 많은 아시아인들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가오는 수많은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인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