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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hiro Iwasaki,いわさき ちひろ,岩崎 ちひろ,본명 : 마츠모토 치히로(松本 知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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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희 (candy@yes24.com)
『작은 새가 온 날』은 『창가의 토토』의 일러스트로 국내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이다. 스케치 작업 없이 곧장 물에 듬뿍 적신 듯한 붓으로 그려진 치히로의 그림에는 수채화의 맑고 투명함 그리고 따뜻함이 있으며, 수묵화가 주는 여백의 여유와 정겨움이 있다.
소녀는 심심하다. “엄마는 바쁘고 곰돌이는 말을 안 해” 소녀는 바란다. “난 작은 새가 있으면 좋겠어. 작은 새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그럼 난 정말 정말 기쁠 텐데.” 어느 날 작은 새가 날아와 “쪼르릉 쪼르릉 예쁜 소리”를 내고 있다. 한 소년이 모자로 작은 새를 잡으려 한다. “위험해, 작은 새야, 어서 달아나” 소녀는 생각한다. “난 저렇게는 잡지 않을 거야” 그래도 작은 새가 있기를 소녀는 바란다. “그래도 그래도 작은 새가 있었으면” 이런 소녀의 착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작은 새가 안 걸까. 작은 새가 소녀의 머리 위에 살포시 앉는다. “쉿- 작은 새다” 소녀는 놀라우면서도 기쁘다. 엄마한테도 자랑한다. “엄마 우리 작은 새 목소리 참 예뻐요. 노래도 얼마나 잘 하는데요.” 소녀는 작은 새가 날아 가지 못하게 새장 안에 넣어둔다. 그러나 작은 새는 저쪽만 보고 있다. 아무래도 작은 새는 자기 집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지. 소녀는 작은 새를 날려보낸다. “안녕 작은 새야 조심해서 잘 가. 작은 새는 자기 집이 좋은가 봐.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렇지 곰돌아.” 그런데 작은 새는 소녀를 잊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친구들을 데리고! “우와- 창가 좀 봐. 친구들을 데리고 놀러 왔어. 내가 참 좋대” 창가로 날아 온 새들을 보며 흐뭇함과 기쁨으로 미소 짓는 소녀의 얼굴이 참으로 예쁘다. 1973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그래픽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무척 쉽고도 간결하다. 그러나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은 소녀가 느끼는 감정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대로 느끼게 하여, 책이 주는 울림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작은 새를 갖고 싶어하는 소녀의 뒷모습에는 어린아이의 심심함과 작은 새에 대한 동경이 느껴지고, 조그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소녀의 얼굴은 작은 새가 날아온 것에 대한 놀람과 기쁨이 느껴진다. 그러나 작은 새가 집에 가고 싶어서 한 쪽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소녀가 물끄러미 앉아 보고 있는 장면은 유일하게 흑백톤으로 처리하여 소녀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작은 새가 떠난 후 서운하고 섭섭해하는 마음, 작은 새가 친구를 데리고 다시 찾아와 기뻐하는 마음....... 이러한 소녀의 마음이 모두 느껴진다. 『작은 새가 온 날』은 착하고 따뜻한 그림책이다. 이러한 착하고 따뜻한 정서는 어린아이의 쓸쓸함과 서운함, 대상에 대한 애틋한 심정과 더불어 있어서 더욱 설득력이 있고 빛이 난다. 너무 심심하고 쓸쓸하지만, 노래 부르는 작은 새가 너무 좋지만 다시 날려 보낸 소녀. 강제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대상을 배려하려는 소녀의 착한 마음. 1973년의 이 책이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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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작은 새다
엄마 우리 작은 새 목소리 참 예뻐요 노래도 얼마나 잘 하는데요 작은 새야 그거 꽃노래 맞지 왜 아까부터 저쪽만 보고 있니 작은 새야 곰돌아 어떡하지 그래 맞아 작은 새는 자기 집에 가고 싶은가 봐 안녕 작은 새야 조심해서 잘 가 --- pp.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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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사키 치히로의 이름과 작품 스타일은 일본 뿐만 아니라, 특히 유럽권에서 아이들을 위한 예술 세계를 접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치히로의 가장 주목할만한 업적은 어린이를 그리는 일을 계속했던 아티스트였다는 점이다. 그녀는 대강의 스케치 작업 없이 곧장 붓을 집어들어 물에 적신 후 종이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때문에 아이들의 피부를 실제로 부드럽고 탄력 있게 느낄 수 있게끔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치히로의 기법에는 잊혀지지 않는 카리스마가 있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무궁한 아픔과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연함과 고요함, 촉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 그녀의 작품에는 공감각이 함께 나타난다. 온화해 보이지만 촉촉하게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하며, 동시에 정신적으로 풍만한 양감을 발산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해맑게 뛰어 노는 아이들에게서 목젖을 내보이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살며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천진하지만, 그 뒤에 가녀린 떨림 같은 것이 보는 이를 아찔하게 만드는 묘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치히로의 그림이 서양에서 발달한 수채화의 한 흐름에 놓여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녀만의 예술관이 녹아든 동양적인 회화 기법의 짙게 보인다.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 적 서도를 배운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먹의 농담이 암시하는 색의 깊이, 빠르게 혹은 느리게 달려가는 붓의 놀림, 필압으로 생겨나는 먹의 풍부함은 수묵으로만이 제대로 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수묵의 깊이는 색채가 풍부한 그녀의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나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대상을 그리거나, 붓의 긁힘을 그대로 살리며, 색이 미처 마르지 않은 부분에 색을 덧칠하여 복잡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화풍으로 마치 색이 스며나오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녀는 어린이를 좋아했다. 전쟁의 가해자라는 죄의식 때문이었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에는 전쟁이나 슬픔 따위의 아픔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까. 치히로의 생활과 인생관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된 것은 전쟁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반 대해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의 실태를 알게 되고서 치히로의 마음은 죄의식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비록 당시에는 진실을 몰랐다고 해도 자신이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한다. 새로운 삶을 발견했던 치히로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때였다. 그녀는 인민신문의 기자를 하면서 ‘노동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화가가 되고싶다’는 일념으로 붓을 들었다. 치히로는 예전부터 직업적인 성공을 의식하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를 다치게 했던(첫남편의 자살) 젊은 날의 회한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리고 소녀 시절, 행복했던 생활 이면에 전쟁으로 상처받은 많은 아시아인들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가오는 수많은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타인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