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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장 서애 류성룡의 생애와 사상·이성무 Ⅰ. 생애 1. 가계家系 2. 사환仕宦 3. 은거隱居 Ⅱ. 사상思想 1. 정치사상政治思想 2. 군사사상軍事思想 3. 경제사상經濟思想 4. 유학사상儒學思想 Ⅲ. 맺음말 2장 ‘누란의 위기’ 관리 7년 10개월·이태진 Ⅰ. 머리말 Ⅱ. 시대적 환경-외계 충격 현상으로 인한 자연 재난 Ⅲ. 의주 파천播遷에서 평양 탈환까지 1. 난 발생 1년 전-통수·인사권의 부여 2. 파천 길의 도체찰사부都體察使府 3. 도체찰사부의 평양 탈환전 준비 Ⅳ. 평양 탈환 후 입경入京까지 1. 평양에서 임진 동파東坡까지-제독 이여송의 패전과 퇴각 2. 동파 체류 중의 강화론과의 싸움 3. 입경入京 후 민생과 조정朝廷에 대한 응급조치 Ⅴ. 영남 전선에서의 구축 작전과 진구 대책 강구 Ⅵ. 경성·경기 군사력의 증강 Ⅶ. 전쟁과 기아의 재난 구제 Ⅷ. 맺음말 3장 역사가 낳은 명재상(1차 집담회) 4장 임진왜란을 이겨낸 리더쉽(2차 집담회) 찾아보기 |
李泰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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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나라 일이 날마다 잘못되어가고 백성들의 생활이 날로 피폐해지는 데도 이어서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이 모두 이전 재상들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죽은 류성룡을) 추모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의 백성들 또한 불쌍하다 하겠도다.”
서애 류성룡 서세(逝世)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류성룡의 죽음에 대한 민심의 반응을 설명한 당시 사신(史臣)의 글이 새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국난을 극복한 위인(위인)으로서 류성룡에 대한 존경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국가적 사회적 위기와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모델로서 류성룡 같은 인물을 역사의 피안으로부터 우리에게 다시 불러올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007년 서애 류성룡 서세 400주년을 맞아 학술 심포지엄을 연 것은 그러한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그때 발표한 기조연설문과 심포지엄에 참가한 학자들의 집담회 기록을 한데 묶은 『류성룡과 임진왜란』이란 책이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출간된 것은 요즘과 같은 국가 위기를 맞아 우리가 다시 한 번 영웅 혹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에 걸친 집담회의 내용은 「3장 역사가 낳은 명재상」과, 「4장 임진왜란을 이겨낸 리더십」이라는 두 개의 장에 나누어 수록하였으며, 여기에서는 주로 “임진왜란의 성격”, “십만양병설의 진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의 원천”은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임진왜란의 성격 조선·일본·중국의 동아시아 국제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스페인 등 서구 상인들 간의 무역전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난의 명칭도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쵸의 역(役)’, 중국에서는 ‘항왜원조(抗倭援助)’, 북한에서는 ‘임진조국전쟁’, 미국에서는 ‘임진전쟁(Imjin War)'이라고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전투기술을 실험하는 전쟁이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즉 명나라의 척계광의 절강병법과 일본의 조총+단병전술(短兵戰術)의 대결이었으며, 여기서 절강병법의 승리였다고 하였다. 류성룡은 이를 보고 우리도 배워야겠다고 작심하고 훈련도감을 세우게 되었다. ‘십만양병설의 진실’ 임진왜란 하면 쉽게 떠오르는 말이 율곡의 ‘십만양병설’이다. 그때 율곡의 주장을 따랐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과 함께 지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군대다운 군대가 존재하려면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만한 말을 먹일 목장이 없다는 데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므로 막연한 통념과는 달리 율곡과 같은 대학자가 이러한 주장을 했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호왈 십만이라는 말이 율곡 당대가 아니라 후세에 사계 김장생의 『율곡비명』이나 『선조수정실록』에 기록된 내용이 자꾸 부풀려져서 송시열의 비문에 구체적인 병력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 서애의 공부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우선 경전의 주석을 읽지 말라고 하였다. 『주자집주』를 읽어야 과거에 합격도 하고 학문적 권위도 인정받는데, “주석을 보지 말라. 원문을 중심으로 봐야 그 책의 본뜻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경전을 외우는 것보다는 사색을 위주로 공부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자성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은 류성룡의 독서와 아버지를 따라 지방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 및 당시 중국의 새로운 사조를 많이 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