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류성용과 임진왜란
양장
태학사 2008.06.20.
가격
26,000
10 23,400
YES포인트?
26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장 서애 류성룡의 생애와 사상·이성무

Ⅰ. 생애
1. 가계家系
2. 사환仕宦
3. 은거隱居

Ⅱ. 사상思想
1. 정치사상政治思想
2. 군사사상軍事思想
3. 경제사상經濟思想
4. 유학사상儒學思想

Ⅲ. 맺음말

2장 ‘누란의 위기’ 관리 7년 10개월·이태진

Ⅰ. 머리말

Ⅱ. 시대적 환경-외계 충격 현상으로 인한 자연 재난

Ⅲ. 의주 파천播遷에서 평양 탈환까지
1. 난 발생 1년 전-통수·인사권의 부여
2. 파천 길의 도체찰사부都體察使府
3. 도체찰사부의 평양 탈환전 준비

Ⅳ. 평양 탈환 후 입경入京까지
1. 평양에서 임진 동파東坡까지-제독 이여송의 패전과 퇴각
2. 동파 체류 중의 강화론과의 싸움
3. 입경入京 후 민생과 조정朝廷에 대한 응급조치

Ⅴ. 영남 전선에서의 구축 작전과 진구 대책 강구

Ⅵ. 경성·경기 군사력의 증강

Ⅶ. 전쟁과 기아의 재난 구제

Ⅷ. 맺음말

3장 역사가 낳은 명재상(1차 집담회)

4장 임진왜란을 이겨낸 리더쉽(2차 집담회)

찾아보기

저자 소개 2

李泰鎭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2만 5,300여 건을 뽑아 이를 분석하여 1490년부터 1760년까지 270년간이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의 재난 현상기란 것을 국제 천문학 저널에 보고하고, 『새 한국사』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를 천재지변 극복의 역사로 조명하였다. 『한국병합과 현대』(태학사, 2009),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 2019) 등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진단학회 회장,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역사학회 회장, 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6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태진의 다른 상품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를 거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연구교수와 독일 튀빙겐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를 지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남영학연구원장,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과거제도』 『조선 초기 양반연구』 『조선의 사회와 사상』 『조선양반사회연구』 『한국역사의 이해(1~7)』 『조선왕조사』 『조선시대 당쟁사』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를 거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연구교수와 독일 튀빙겐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를 지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남영학연구원장,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과거제도』 『조선 초기 양반연구』 『조선의 사회와 사상』 『조선양반사회연구』 『한국역사의 이해(1~7)』 『조선왕조사』 『조선시대 당쟁사』 『조선을 만든 사람들』 『명장열전』 등 다수가 있다.

이성무의 다른 상품

편자 : 이태진 등편
이태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
정만조 국민대학교 문과대학장
이헌창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오종록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스가와 히데노리 요코하마 국립대학 교수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6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528g | 153*224*30mm
ISBN13
9788959662371

출판사 리뷰

“어찌 나라 일이 날마다 잘못되어가고 백성들의 생활이 날로 피폐해지는 데도 이어서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이 모두 이전 재상들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죽은 류성룡을) 추모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의 백성들 또한 불쌍하다 하겠도다.”
서애 류성룡 서세(逝世)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류성룡의 죽음에 대한 민심의 반응을 설명한 당시 사신(史臣)의 글이 새삼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단순히 국난을 극복한 위인(위인)으로서 류성룡에 대한 존경심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국가적 사회적 위기와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모델로서 류성룡 같은 인물을 역사의 피안으로부터 우리에게 다시 불러올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2007년 서애 류성룡 서세 400주년을 맞아 학술 심포지엄을 연 것은 그러한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그때 발표한 기조연설문과 심포지엄에 참가한 학자들의 집담회 기록을 한데 묶은 『류성룡과 임진왜란』이란 책이 도서출판 태학사에서 출간된 것은 요즘과 같은 국가 위기를 맞아 우리가 다시 한 번 영웅 혹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에 걸친 집담회의 내용은 「3장 역사가 낳은 명재상」과, 「4장 임진왜란을 이겨낸 리더십」이라는 두 개의 장에 나누어 수록하였으며, 여기에서는 주로 “임진왜란의 성격”, “십만양병설의 진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의 원천”은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임진왜란의 성격
조선·일본·중국의 동아시아 국제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스페인 등 서구 상인들 간의 무역전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난의 명칭도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쵸의 역(役)’, 중국에서는 ‘항왜원조(抗倭援助)’, 북한에서는 ‘임진조국전쟁’, 미국에서는 ‘임진전쟁(Imjin War)'이라고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전투기술을 실험하는 전쟁이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즉 명나라의 척계광의 절강병법과 일본의 조총+단병전술(短兵戰術)의 대결이었으며, 여기서 절강병법의 승리였다고 하였다. 류성룡은 이를 보고 우리도 배워야겠다고 작심하고 훈련도감을 세우게 되었다.

‘십만양병설의 진실’
임진왜란 하면 쉽게 떠오르는 말이 율곡의 ‘십만양병설’이다. 그때 율곡의 주장을 따랐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과 함께 지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군대다운 군대가 존재하려면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만한 말을 먹일 목장이 없다는 데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므로 막연한 통념과는 달리 율곡과 같은 대학자가 이러한 주장을 했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호왈 십만이라는 말이 율곡 당대가 아니라 후세에 사계 김장생의 『율곡비명』이나 『선조수정실록』에 기록된 내용이 자꾸 부풀려져서 송시열의 비문에 구체적인 병력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류성룡에 대한 재평가
서애의 공부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우선 경전의 주석을 읽지 말라고 하였다. 『주자집주』를 읽어야 과거에 합격도 하고 학문적 권위도 인정받는데, “주석을 보지 말라. 원문을 중심으로 봐야 그 책의 본뜻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경전을 외우는 것보다는 사색을 위주로 공부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자성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은 류성룡의 독서와 아버지를 따라 지방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 및 당시 중국의 새로운 사조를 많이 접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