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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 상
여섯 가지 이슈로 다시 읽는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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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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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간행사|서문|감사의 말

1. 우리가 몰랐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 37

1) 자본주의 경제발달과 무관한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 선점론’
2) 운요호 사건, 조선에 시행해 본 ‘주변국 선점’ 정책의 최초 사례
3) ‘주변국 선점’ 정책, 대한제국의 자력 근대화 성과 파괴

2. 수구-개화파의 근대사 설명 틀, 과연 바른 것인가? 49

1) 연원으로서 ‘유교 망국론’, ‘세도정치론’
2) 임오군란(1882) 때 등장한 조선 개진당(開進党) 명단
3) 1884년 10월 갑신정변과 일본 수뇌부
4) 청일전쟁(1894) 전후 수구-개화 프레임 고착과 일본 역사 교과서
5) ‘민씨 세도’가 용납되지 않는 청년 군주 고종의 왕정 수련

3. 새롭게 주목해야 할 청일전쟁 중 이루어진 ‘국민’ 창출의 역사 110

1) 1894년 10-12월 동학 농민군의 근왕(勤王) 항일 투쟁
2) 동학 농민군의 분전에 답한 군주 고종의 「교육 조칙(詔勅)」 반포(1895.2.26.)
3) 「교육 조칙」으로 동학, 서학이 하나가 된 국민 탄생의 역사
4) 갑오개혁, 일본의 친일 개혁 강요에 맞선 조선 정부의 자주적 대응 성과
5) ‘국민 탄생’을 위한 한글 세계의 창출, 『독립신문』 창간

4. 대한제국의 ‘광무 토지측량[量田] 사업’, 그 계기와 성과 139

1) 동학 농민군의 「보국안민」 여망을 담은 이기(李沂)의 ‘토지측량[양전] 사업’ 건의
2) 워 싱턴 D.C.를 모델로 한 서울 도시개조사업-대한제국의 황성 만들기
3) ‘광무 토지측량 사업’으로 상승하는 대한제국의 재정 실황

5. 다시 살펴보는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의 안팎 175

1) 1909년 3월 15일 태황제 고종의 주권 이양 선언
2) 고종황제 ‘독살’에 대한 근왕 국민 대중의 거국적 항변3,· 1 독립 만세운동
3) 또 하나의 ‘근왕’ 국민의식 발현 역사 「대동단 선언(」1919.11.)

6. 임시정부 국권 회복 운동, 국제연맹(LN)을 움직였다 188

1) 대한제국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운동의 한계
2)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대표부의 국권 회복 운동
3) 1935년 국제연맹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판정
4) 1963년 국제연합(UN) 총회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판정 수용

상권을 마치며 231

[사진 차례]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 — 일본제국 파멸의 주범 요시다 쇼인 숭배의 현장 40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2 — 강화도 초지진에 나타난 운요호, 일본 국기를 달지 않았다. 44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3 — 1880년대 조선 왕궁(건청궁, 경복궁 북단)의 서양 전기 문명 시설 4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4 —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은 일본인 직원들이 불태우고 달아났다 62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5 — 구미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 7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6 — 이토 히로부미가 조종한 갑신정변, ‘대동아전쟁’ 선전 도구로까지 81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7 — 1902년 한국 역사 병합부터 먼저 한 일본제국 문부성 9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8 — 청년 군주 고종, 근대 서양 과학 지식을 읽다 10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9 — 메이지 천황을 격노하게 한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 사건 112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0 — 고종, 마침내 동학 농민군의 뜻을 끌어안다 116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1 — ‘국민 탄생’을 위한 한글 세계 창출, 『독립신문』 창간의 진실 134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2 — 워싱턴 D.C.를 모델로 한 서울 도시개조사업 14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3 — 서울에서 역사로 만나는 해학 이기와 버튼 홈스 156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4 — 대한제국의 국고(國庫) 은행과 중앙은행의 수난 168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5 —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대표로 떠난 김규식과 고종황제의 죽음 200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6 — 1935년 국제연맹의 ‘1905년 보호조약’의 불법 무효 판정 21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7 — 1905-10년 국권 피탈 조약 원본의 실태, 너무나 뚜렷한 강제의 증거들 225

저자 소개 1

李泰鎭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2만 5,300여 건을 뽑아 이를 분석하여 1490년부터 1760년까지 270년간이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의 재난 현상기란 것을 국제 천문학 저널에 보고하고, 『새 한국사』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를 천재지변 극복의 역사로 조명하였다. 『한국병합과 현대』(태학사, 2009),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 2019) 등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진단학회 회장,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역사학회 회장, 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6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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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52*224*20mm
ISBN13
9791167072443

책 속으로

이 모든 개혁의 성과와 노력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의 발발로 중단되거나 시설물들을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다. 고종의 근대화는 어디까지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정책’에 짓밟히고 저지된 것이지 근대화 지향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결단코 아니다. 조선·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의 진실 앞에 우리는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의 혼자 살아남기 침략주의의 잘못을 먼저 비판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후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 시대 ‘주변국 선점’ 정책의 잘못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크게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 p.46

『근세조선정감』을 열심히 읽은 나카 미치요는 1894년 청일전쟁 개전 직전에 일본 중등 역사 교육의 정비 강화를 제안하였다. 교과서의 이름이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으로 제멋대로 붙여진 것을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 셋으로 바꾸어 통일하고 그 내용도 문부성 ‘지침’에 따르게 하였다. 8년간의 준비 끝에 나온 결과물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동양사였다. 지나사(중국사)에 북방의 여러 유목민족사를 합친 동양사는 중원이 한족(漢族)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유목민족이 강성하면 중원을 차지하여 중국사의 주역이 된 점을 부각시켰다.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거쳐 만주를 지배하면 중원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사를 동양사가 아니라 일본사에 편입한 사실이다. 조선은 4세기 중반 진구(神功)황후 신라정벌 때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1902년 현재 일본제국은 한국의 역사부터 일본에 병합하여 제국 신민의 정신 무장의 효과를 노렸다.
--- p.95~96

기독교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 조칙」은 기독교의 입지를 확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호머 헐버트는 11년 뒤 1906년 7월 12일 자 순한글 신문 『그리스도신문』 에 「한국의 교육」이라는 글을 투고하여 심육(心育=덕육)·지육·체육을 현장의 교육목표로 제시하면서 전인(全人)교육을 통한 문명국가 건설을 강조하였다. 기독교 계통 학교뿐만 아니라 이제 동학 연원의 각지 소학교 등에서도 3육 교육론이 강령으로 자리를 굳혀 갔다면 이는 곧 새로운 국민 창출을 향한 기독교와 동학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p.123~124

국왕 고종은 농민 소유의 토지를 새로 측량하여 소유권을 법적으로 공인해 자영농 사회 기반 확립을 제안하는 이기의 개혁안을 수용하였다. 그의 건의가 국왕에게 전달된 것은 ‘을미년 봄’, 곧 1895년 상반기로 확인된다. 그러나 곧 왕비 시해 사건이 일어나 국정이 마비되어 시행은 뒤로 미뤄졌다. 앞서 살폈듯이 고종은 1895년 2월 27일 전봉준이 일본영사관에서 풀려나기 하루 전 「교육 조칙」을 반포하였다. 서민 대중을 국가의 주체인 국민으로 창출해 낼 목적이었다. 「교육 조칙」이 반포된 시기에 동학군 지도자 전봉준과 교류하던 실학자 이기가 올린 농민 경제기반 안정을 위한 ‘토지 측량[양전] 사업’ 건의를 국왕이 즉석에서 받아들이다시피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 p.140

대동단은 각 사회 계층을 망라한 대표 구성에서 3·1 만세운동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사회 각계 분류에서 황족을 앞세운 점은 근왕 의식을 그대로 유지한 운동임을 명시한다. 요컨대 대동단 운동은 3·1 만세운동이 이미 전 국민 만세운동으로 세계만방에 과시하였지만, 3·1 만세운동의 선언문, 곧 ‘기미 선언서’에 종교계 대표만이 표시되어 이에 더해 신분 계층 및 직업, 지역 대표를 표시하여 전 국민의 독립 자유 의지를 다시 표시하려는 것을 목표하였다. 「대동단 선언」은 이 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 p.183

국제연맹은 설립 초기의 여러 가지 국제관계, 특히 미국의 연맹 미가입과 같은 사태로 1919년 5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출한 ‘한국병합’ 폐기의 ‘청원’을 수용할 수 없었으나 1935년 국제연맹의 공식 사업으로 이루어진 「조약법 보고서」에서 ‘한국병합’을 가져온 ‘1905년 보호조약’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조약으로 판정함으로써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손을 들어주었다. 1905년 11월 17-18일 강제 체결 때부터 시작한 무효화 운동이 30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 p.213

출판사 리뷰

여섯 가지 쟁점으로 다시 읽는 한국 근대사
“우리가 알고 있던 근대사의 설명 틀은 과연 온전한가”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흔적부터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건설, 동학농민군과 ‘국민’의 탄생,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국제법을 통한 국권 회복의 노력까지. 한국 근대사의 주요 장면을 여섯 가지 쟁점으로 다시 살펴보며 기존의 통설과 역사 해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였다.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상): 여섯 가지 이슈로 다시 읽는 근대사』는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온 한국 근대사의 설명 틀을 다시 묻는다. 특히 일본제국이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어떻게 규정하고 왜곡했는지, 그 역사 인식이 일본의 역사교육을 통해 어떻게 재생산되었으며 이후 우리의 근대사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한다. 저자는 일제 식민주의 역사학의 문제를 단순히 ‘식민사관’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일본제국의 국가 정책과 역사학, 역사교육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살피면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근대사 해석의 틀을 다시 검토한다.

일본의 근대화는 ‘성공한 근대화’였는가

1장 「우리가 몰랐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은 일본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익숙한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의 자본주의와 근대적 국가제도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이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로 설명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의 근대화를 ‘성공적인 서구화’로 단순히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서구의 군사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오히려 주변국을 먼저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가 근대 일본의 국가전략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시다 쇼인의 사상과 그 제자 및 추종자들의 행보를 통해 일본의 근대화가 군사력과 주변국 선점을 우선하는 ‘침략주의적 근대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무비판적으로 성공 모델로 받아들이는 기존의 역사 인식을 다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수구-개화’라는 구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2장 「수구-개화파의 근대사 설명 틀, 과연 바른 것인가?」에서는 한국 근대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분법인 ‘수구-개화’ 구도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청일전쟁 당시 일본이 조선을 ‘문명국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기 위해 ‘문명 대 야만’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의 역사를 설명하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특히 일본제국의 역사교육에 주목한다. 저자가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제국시대 중등학교 역사교과서 40여 종을 조사한 결과, 1902년부터 사용된 역사교과서에서는 한국사가 동양사가 아니라 일본사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었다.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의 ‘신라정벌’에서부터 임진왜란, 갑신정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요 사건이 일본의 조선 진출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교 망국론, 당쟁 망국론, 세도정치론 등 오늘날에도 익숙한 조선 후기 역사 인식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러한 식민주의적 역사 해석과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동학농민군과 고종, 그리고 ‘국민’의 탄생

3장 「새롭게 주목해야 할 청일전쟁 중 이루어진 ‘국민’ 창출의 역사」는 동학농민운동과 고종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기존 역사에서 고종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고, 일본군과 함께 농민군을 진압한 군주로 흔히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관련 자료를 다시 검토하면서 이러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 이후 호서·호남의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항일 봉기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고종의 국정 방향에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그 핵심으로 제시되는 것이 1895년 2월 26일 반포된 「교육 조칙」이다. 고종은 이 조칙에서 덕양·체양·지양의 ‘3양 교육’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 정치제도를 발전시킬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저자는 이를 근대적 국민국가의 주체인 ‘국민’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으로 해석한다. 또한 국한문 혼용체의 사용, 능력 중심의 인재 등용 등 당시 추진된 정책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형성이 동학농민군의 ‘보국안민’ 정신과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을 일정 부분 계승한 과정이었다고 주장한다.

대한제국은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4장 「대한제국의 ‘광무 토지 측량 사업’, 그 계기와 성과」에서는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건설을 구체적인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살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출범한 뒤 시행된 광무 양전사업은 토지의 면적과 소유관계를 근대적인 방식으로 파악하고 지계를 발급함으로써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세원을 확보하려는 사업이었다. 저자는 이 사업이 단순한 토지조사에 그치지 않고 농민의 경제적 기반을 안정시키고 중간 수탈을 줄이는 동시에 근대적 국가 재정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정책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독립신문』의 창간 역시 서재필 개인의 활동만으로 설명하기보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국민 형성 및 교육정책과 연결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서민 대중을 근대국가의 ‘국민’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3·1운동은 근대의 시작이 아니라 근대의 결실이었다

5장 「다시 살펴보는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의 안팎」에서는 3·1독립만세운동을 대한제국 시기의 근대국가 형성과 연결해 바라본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가 1919년 3·1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제국이 이미 자주독립의 근대 주권국가를 표방하고 제도와 국가 운영을 근대적으로 재편해나갔으며, 3·1운동은 이러한 근대국가의 ‘국민정신’이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폭발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3·1운동을 이끈 천도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에도 주목한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천도교와 기독교 인사가 다수를 차지한 사실, 그리고 천도교 지도자 가운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지역 지도자인 접주 출신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에서 3·1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속성을 살핀다.

국권 회복의 노력은 국제법의 역사에도 남았다

6장 「임시정부 국권 회복 운동, 국제연맹(LN)을 움직였다」에서는 국권 피탈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세력이 국제사회에 국권 회복의 정당성을 호소한 과정을 국제법의 관점에서 살핀다. 저자는 1905년 이른바 ‘보호조약’의 불법성을 국제법적으로 문제 삼은 프랑스의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의 연구와 1919년 김규식이 파리에서 작성한 청원서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당시 국제정세로 인해 대한제국과 임시정부의 주장이 즉각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연맹의 국제법 법전화 과정에서 1905년 ‘보호조약’이 국제법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조약의 하나로 거론되었고, 이후 국제연합의 국제법 체계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추적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과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단순히 국내 정치사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제법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에서 근대로’라는 익숙한 도식을 다시 묻다

‘여섯 가지 이슈로 다시 읽는 근대사’를 담은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주요 개념과 사건들은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는가?’ 일본의 근대화와 조선의 근대화를 대비하는 방식, ‘수구’와 ‘개화’로 조선을 나누어 바라보는 방식, 동학농민군과 고종을 대립관계로 보는 방식, 대한제국의 근대국가적 성격을 과소평가하는 방식, 3·1운동을 한국 근대의 출발점으로만 보는 방식까지 저자는 익숙한 역사 서술의 틀을 하나씩 다시 검토한다. 그 과정에서 동학농민운동, 대한제국의 개혁, 국민 형성,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권 회복 운동을 서로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새롭게 연결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일본제국의 역사교과서와 신문, 대한제국 시기의 자료, 동학농민군 관련 기록, 국제법 자료 등 다양한 사료를 검토한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 해석을 단순히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료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근대사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광복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식민주의 역사학이 남긴 역사 인식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상): 여섯 가지 이슈로 다시 읽는 근대사』는 그 흔적을 다시 들여다보며,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자체를 재검토하자고 제안한다.

“실패한 근대라는 통념을 넘어,
대한민국의 형성과 성장을 새롭게 읽는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7권 8책은 한국 근대와 현대를 하나의 연속된 역사적 흐름으로 읽어내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된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교양·학술 총서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종종 식민지화와 국권 상실로 귀결된 ‘실패한 역사’로 이해되어왔다. 이 때문에 근대와 현대를 함께 조망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통념을 넘어 대한제국과 독립운동,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는 물론, 시민사회와 과학기술,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다양한 역사적 동력들을 하나의 시야 안에서 살펴본다.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 중심의 서술에 머물지 않고 외교, 사상, 문화, 예술, 과학기술, 시민사회의 성장 과정까지 확장하여 해석한다. 이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관과 냉전적 인식을 넘어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역량과 창조성, 그리고 세계 속에서 형성해온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시리즈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만들어온 변화와 성취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 읽기의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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