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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5
머리말 9 서설 15 1장 한국 근대 시민의 권리·의무 개념의 형성과 전개 37 2장 다산학과 동학사상의 연속성 75 1) 다산학의 ‘인(人)’과 ‘천(天)’의 발명 2) 다산학과 동학의 연속성 3) 제3기 유학과 동서문명의 통합 4) 제3기 유학의 구조와 성격: 자주지권 개념을 중심으로 3장 개벽 개념의 성격과 전개 구조 125 1) 개벽 개념의 등장과 전개 4장 개벽 제1파 동학농민혁명: 시민의 형성과 반봉건·반침략 혁명 143 1)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구조 2) 27개조 폐정개혁안의 성격 분석 3) 집강소의 실태 5장 개벽 제2파 3·1혁명: 탈식민지 해방운동과 민주공화혁명 185 1) 개벽 프로젝트 2) 레닌과 이동휘의 좌우합작론 연대 3) 손병희의 3·1개벽법설 발표 4) 개벽 프로젝트의 평화철학: 안중근, 칸트, 간디와의 비교 5) 한국의 건국 과정과 시민사회의 전개 6) 3·1혁명의 국제적 파급 7) 수안군 사례 8) 대종교 독립운동의 연속성 6장 개벽 제3파 좌우합작운동: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351 1) 한국 좌우합작운동의 기원과 6·10만세운동 2) 공산주의 파고와 독립운동 3) 여운형의 좌우합작활동 4) 신간회운동 5) 식민지 시민사회의 경제사적 조건 6) 중도통합론 맺음말 444 |
金泳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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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는 격변의 시기마다 고유한 개벽 과제를 안고 전개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반봉건적 인권질서와 국권질서를 세워 나가는 문명개화, 동학운동, 애국계몽운동, 동학농민혁명이 시대적 개벽 과제였다. 이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반식민 독립운동이 후천개벽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3·1혁명이다. 3·1혁명은 단순히 독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한말의 반봉건 과제를 계승하여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후천개벽의 역사적 시도였다. 상하이임시정부는 바로 이러한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 p.29~30 민본 개념은 맹자 이래의 추상적·명분적 개념으로 그 내용이 너무나 불분명하여 오랫동안 군왕 시대 전제정치의 추상적 명분으로 쓰여 왔기 때문에 민본과 민주의 구분은 다산학이 도달한 지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독립협회가 민권론(民權論)의 바람을 일으키고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가 민권론의 한 절정을 이룬다. 독립협회를 이끈 서재필은 1948년 귀국 때 한말 개화파의 대두 시절을 회고하면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인민의 권리를 세워 보자는 생각이 났단 말이야. 이것이 우리가 개화파로 첫 번 나서게 된 근본이 된 것이야”라고 하여 개화파가 대두하게 된 배경의 중심 개념이 “인민의 권리”이었음을 털어놓고 있다. --- p.51 한국 근대사의 주인공들인 시민은 하늘을 모시고 등장한 사람들이다. 다산도 최제우도 그리고 대종교도 사람들에게 하늘을 안겨 주고 하느님 되기를 권유하였다. 천주교 신앙인들도 기독교 신앙인들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안겨 주면서 동아시아 성리학(性理學)의 중세에서 깨어나 시민들이 새 하늘을 열게 했다. 그것이 한국의 근대였다. 한말 만민공동회의 개회 인사를 맡은 백정 출신 박성춘은, 전국의 백정 3만 명과 함께 승동교회의 무어 목사의 인도로 하느님을 만나 짐승과도 같던 신분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대우받게 되었다. 나아가 그는 승동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정부 대신들까지 다수 참석한 만민공동회의 개회 인사를 맡았다. 당시 만민공동회의 회장에는 쌀장수 현덕호가 선출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개벽 아닌가. --- p.85~86 동학농민은 자신들의 집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민회’로 의식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민회의 시대적 정당성을 서구 세계의 의회와도 연관 지어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각 지방에는 양반 유림층을 중심으로 주자학적 질서 속에서 교류하는 향회(郷會)가 존재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평민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의 실무적 문제나 민원을 논의하는 민회도 운영되어 왔다. 동학농민들은 자신들의 취회와 같은 집회를 이러한 민회와 연장선상에 있는 전통적인 행사로 인식하는 한편, 이를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의회와 유사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었다. 이는 농민들이 지니고 있던 시대의식의 정당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p.175~176 손병희의 개벽 프로젝트는 일제의 한국병합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는 이를 “만고에 없는 일”로 규정하고 “10년 안에” 민족독립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언전(言戰)에 대비한 인쇄 시설을 확보하고, 비밀 독립운동 거점으로 봉황각을 건립했다. 또한 49일 연성수련회를 일곱 차례 개최해 384명의 비밀 독립운동 요원을 양성했다. 아울러 학교 경영에 적극 참여하여 40여 개 이상의 학교를 운영했으며, 일설에는 박인호(제4대 교주)가 200개 전후의 학교를 경영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기반은 결과적으로는 3·1혁명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 p.201~202 레닌은 1920년 7∼8월 국제공산당 제2차 대회에서 「민족 문제와 식민지 문제에 관한 테제 초안」을 통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모든 공산당들은 후진국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해방운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좌우합작 노선을 제시한 것이다.이 대회에서는 레닌의 초안과 더 좌경적인 입장을 담은 인도의 공산주의자 M. N. 로이(M. N. Roy)의 결의물이 함께 채택되었다. 이러한 공식 채택 과정을 살펴보면, 좌우합작의 기원은 세계사적으로 중국의 국공합작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3·1혁명 이후 이동휘의 상하이임시정부 참여에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레닌의 민족자결 원칙은 유럽 중부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민족자결 원칙이 진화되었다면 다시 한국의 3·1혁명과 만나면서 제2의 진화 형태로 좌우합작이 된 것이다. --- p.217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5·4운동에 한 달 앞서 인도의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그 후 필리핀의 독립운동,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 이집트의 독립운동 등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 도미노식 연쇄의 출발은 3·1혁명이었으며, 또 각국의 독립운동 방식에 직간접의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는 직접적 영향과 간접적인 도미노 현상이 함께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횡적으로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반식민지에 걸쳐 세계사적인 하나의 독립운동사의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의 식민지·반식민지를 뒤덮은 먹구름을 걷어 내는 성전(聖戰)이 한국에서 최제우의 최저변 시민들의 시천주(侍天主) 혁명으로 시작되어, 최시형의 양천주(養天主) 혁명을 거쳐,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을 기반으로 한 개벽 프로젝트로 폭발한 것이다. --- p.318 6·10만세운동은 식민 당국의 평가처럼 단순한 소요가 아니었으며, 일부 좌파의 해석처럼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운동으로만 볼 수도 없고, 우파의 시각처럼 학생 위주의 제한된 민족운동으로 축소할 수도 없다. 이 운동은 상하이임시정부, 병인의용대, 천도교 구파, 조선노농총동맹,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조선공산당 및 임시 상하이부 등 다양한 세력이 연대하고 협력하여 추진한, 3·1혁명 이후 또 하나의 거대한 개벽 거사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최제우, 최시형의 개벽사상에 기반한 혁명이라면, 3·1혁명은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보조적으로 결합된 혁명이며,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은 개벽사상이 천도교의 틀을 일정 부분 벗어나 사회주의 사상과 제휴하면서 좌우합작의 형태로 전개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 p.395 천황 한 사람에게만 하늘을 직결시킨 천황제 파시즘의 식민주의에 맞선 한국의 반(反)식민지 투쟁은 기본적으로 하늘을 서민 대중의 각 개인과 직결시키는 천명(天命) 수행형 (“是天의 明命”) 독립운동이었다. 시천주(侍天主)하는 개인은 천권(天權)을 가진 존엄한 존재가 된다. 반면 천황제 파시즘 아래에서 인간은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다. 따라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하늘을 모시는 인간이라는 존재 방식 자체가 저항을 요구했다. 이 대립은 단순한 민족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천황제 파시즘과 시민사회 지향의 대결이기도 했다 --- p.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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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족의 역사에서 ‘시민의 역사’로
실학·동학에서 3·1혁명과 좌우합작까지, 한국 근대사를 ‘개벽’의 흐름으로 다시 읽다 한국 근대사를 국가와 민족의 관점이 아닌 개인과 시민의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서 식민지 시기를 거쳐 근대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는 한국사의 흐름을 ‘시민의 권리와 의무’, ‘개벽’, ‘중도통합’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개념으로 재구성한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사를 단순히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으로만 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 시민사회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사의 흐름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독립이 곧 개인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식민지에서 벗어난 많은 신생국가가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체제로 귀결된 것과 달리 한국은 시민사회의 성장에 힘입어 민주공화국의 길로 나아갔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한국 근대사의 중심에 ‘시민’을 놓다 그동안 한국 근대사의 주체를 국가나 민족, 혹은 특정 정치세력 중심으로 설명했다면, 이 책은 그 이면에서 성장해온 ‘시민’의 형성과 시민사회의 성숙 과정을 주목한다. 저자는 조선 후기부터 신분적 평등과 국민주권, 참정권, 지역사회의 자치권, 시장에서의 영업의 자유, 토지에 대한 권리와 의무 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성장했다고 본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동학농민군, 국채보상운동과 애국계몽운동, 신민회운동 등에서 나타난 권리·의무 의식의 확산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면서, 조선 후기의 ‘백성’이 근대적 의미의 ‘국민’을 거쳐 시민적 주체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저자는 ‘국민’이라는 개념이 식민지배 과정에서 국민징용령·국민총동원령 등으로 동원과 통제의 의미를 갖게 된 역사까지 짚으며, 당시 새롭게 등장한 사회세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시민’에 주목한다. 실학과 동학은 서로 이어져 있었는가 2장에서는 「다산학과 동학사상의 연속성」을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다산 정약용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인’과 ‘천’의 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아 다산학과 동학사상의 연속성을 살펴보고, 유학과 서양문명의 접촉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사상적 흐름을 ‘제3기 유학’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는 한국 근대화를 단순히 서양 문명이 외부에서 유입된 결과로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근대적 인권과 시민의식이 외래 사상의 일방적인 이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부터 축적된 사상적 자원과 외부 문명의 만남 속에서 주체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3장의 ‘개벽’ 논의로 이어진다. 한국 근대사를 움직인 새로운 개념, ‘개벽’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벽’이다. 저자는 천도교의 개벽사상을 중심으로 대종교의 개천·중광 사상, 기독교의 천부인권과 민주주의 사상 등을 서로 연결해 살펴본다. 표현과 교리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 평화라는 방향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광의의 개벽론’은 주자학적 신분질서와 대립하면서 개인의 존엄과 권리를 강조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파시즘적 지배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나아가 사회주의의 도전 속에서는 좌우 세력의 협력과 공존을 모색하는 사상적 토대로도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한국 근대사는 하나의 거대한 개벽의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혁명으로 이어진 ‘개벽의 역사’ 저자는 동학농민혁명을 단순한 농민봉기나 반외세 운동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시민의 형성과 반봉건·반침략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4장). 27개조 폐정개혁안과 집강소의 실태를 분석함으로써 동학농민군이 제시했던 사회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핀다. 이를 통해 신분제적 질서의 해체와 권리의 확대를 요구했던 당시 사회의 움직임을 시민사회 형성이라는 장기적인 흐름 속에 위치시킨다. 5장에서는 이러한 개벽의 흐름이 「3·1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3·1혁명을 단순한 독립운동을 넘어 탈식민지 해방운동이자 민주공화혁명으로 규정한다. 특히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개벽 프로젝트’를 핵심적으로 다루면서 천도교·기독교·불교·대종교 등 종교·사상 세력의 연대, 민족대표 33인의 역할, 그리고 거리로 나선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함께 조명한다. 3·1혁명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준비된 혁명이었다 이 책이 3·1혁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존 설명을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3·1혁명의 중요한 외적 조건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3·1혁명이 윌슨주의의 영향을 받아 수동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고 보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제우에서 최시형, 손병희로 이어진 개벽사상의 축적과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사회세력의 연대, 그리고 독립을 준비해온 시민사회의 내적 역량을 3·1혁명의 중요한 동력으로 본다. 특히 손병희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한국에 직접 적용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파악하면서도 이를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외부의 사상에 끌려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준비한 독립운동이 외부의 조건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민족대표 33인보다 더 넓은 시민사회를 보라 또한, 저자는 3·1혁명의 주체를 소수의 지도자에게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민족대표 33인과 거리 시위에 참여한 100만 명 이상의 시민뿐 아니라, 집에서 독립을 염원하고 성미를 내고 금주·단연운동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3·1혁명의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3·1혁명은 특정 지도자들의 사건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의 역량이 폭발한 사건으로 재해석된다. 동시에 한국의 3·1혁명이 인도·중국·필리핀·이집트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는 점도 살펴본다. 3·1혁명 이후 다시 등장한 ‘중도통합’의 길 6장은 「개벽 제3파 좌우합작운동」을 통해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을 조명한다. 3·1혁명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민족독립과 사회변혁이라는 두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자, 이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저자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좌우합작, 6·10만세운동, 여운형의 활동, 신간회운동을 이러한 ‘중도통합’의 역사적 시도로 해석한다. 중도통합은 단순한 정치적 타협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중도통합은 서로 다른 세력이 시민과 함께 건설적인 타협과 창조적인 절충을 이루면서 역동적인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한국 근현대사를 좌우 어느 한쪽의 시각에서 해석하기보다 중도통합을 지향한 시민세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역사적 위기에 대응했는가를 중심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150여 년의 ‘시민 개벽’, 한국 근현대사를 다시 묻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나 3·1혁명이라는 개별 사건 자체가 아니다. 저자는 반봉건, 반식민, 사회변혁, 민주공화국 건설이라는 시대별 과제가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개벽’이라는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중층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시민사회의 성장이 있었다고 말한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혁명으로, 다시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으로 이어진 시민적 역량은 해방 이후에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배경에도 근대 이후 축적된 시민사회의 내재적 역량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결국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서 ‘시민이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해왔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그 긴 흐름을 ‘개벽’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한국 근대사의 독특한 내재적 발전 경로와 시민사회의 역량을 새롭게 조명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난 150여 년 동안 축적되어온 시민사회의 역사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실패한 근대라는 통념을 넘어, 대한민국의 형성과 성장을 새롭게 읽는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7권 8책은 한국 근대와 현대를 하나의 연속된 역사적 흐름으로 읽어내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된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교양·학술 총서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종종 식민지화와 국권 상실로 귀결된 ‘실패한 역사’로 이해되어왔다. 이 때문에 근대와 현대를 함께 조망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통념을 넘어 대한제국과 독립운동,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는 물론, 시민사회와 과학기술,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다양한 역사적 동력들을 하나의 시야 안에서 살펴본다.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 중심의 서술에 머물지 않고 외교, 사상, 문화, 예술, 과학기술, 시민사회의 성장 과정까지 확장하여 해석한다. 이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관과 냉전적 인식을 넘어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역량과 창조성, 그리고 세계 속에서 형성해온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시리즈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만들어온 변화와 성취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 읽기의 길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