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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 하
공과 과로 읽는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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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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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5

I부 자유민주 공화국 시대의 힘겨운 개막

1.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미 군정 3년 18
1) ‘무조건 항복’을 직접 말하지 않은 일본 천황의 「종전 조서」
2) ‘신탁통치’ 문제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가는 길

2. 일제 통치의 유산 “노예적” 빈곤, 미 국무부의 농지개혁 지원 41
1) 카이로 회담 후 국무부의 ‘번스 농지개혁안’ 준비(1943-1945)
2) 남조선 입법의원(立法議院) 설립과 농지개혁안의 ‘한국인화(Koreanization)’ 과정(1947-1948)
3) 이승만 정부로의 농지개혁안 이관과 미국 정부의 후속 지원

3.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이승만 정권의 행로 54
1)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제헌국회 성립까지
2)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내각책임제 원안에서 대통령 책임제로 바뀐 경위
3) 이승만 정부 초대 내각과 대통령 책임제

4.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이승만 정부 64
1) 한국전쟁 발발과 유엔군의 참전
2) 1952년 제2기 이승만 정부의 행로와 정치 파동
3) 자유당의 명암
사진과 함께 보는 6·25 동란 (한국전쟁) 71

5. 1953년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88
1) 2년여를 소요한 정전 협상
2)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6. 정전협정 후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 행로 96
1) 미국 원조를 통한 전후 경제복구
2) 이승만 대통령의 3선과 민주당의 등장
3) 진보당 사건

II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자력으로 세운 여정

1. 4·19 혁명, 새로운 시대의 시작 106
1) 1년 전부터 준비한 3·15 부정선거
2) 2·28 대구 학생 시위
3) 3·15 제1차 마산 시위-4·11 제2차 마산 시위
4) 4·18 고려대생 시위 및 피습사건
5) 4·19 혁명, 피의 화요일
6) 4·25 대학 교수단 시위와 이승만 대통령 하야
사진과 함께 보는 4·19 혁명 123

2. 4·19 학생 혁명 후 민주당 제2공화국의 단명 138

3.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과 사회변동 141
1) 5·16 군사 정변과 박정희 정권의 출범
2) 박정희 정권의 제1차 경제개발 계획(1962-1966)
3) 제2차 경제개발 계획 수립(1967-1971)
4) 제3·4차 경제개발 계획(1972-1976, 1977-1981)
5) 3선 개헌과 ‘유신’ 독재, 새마을운동
6)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10·26 사태—18년 집권의 종언

4. 1980년대 신군부 등장에서 ‘6·29 민주화 선언’까지 158
1) 1980년 신군부 전두환의 집권과 ‘광주 민주화운동’
2) ‘6·29 민주화 선언’과 제6공화국 시대
3) 1987년 헌법개정: 제헌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정신 구현

III부 민주화와 자력 경제시대의 혼돈

1. ‘진보세력’의 부상과 386운동권 세대 170

2. 자력경제 향상의 실황 176

3. 시민단체의 등장과 그 활약상 179

4. ‘중도’ 지향세력의 등장과 우파 보수 정치의 난맥 183

5.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치 동향 187

하권을 마치며: 대한민국 대통령, 왜 끝이 불행한가? 191

저자 소개 1

李泰鎭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역사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경북대학교 교양학부 및 사학과를 거쳐 1977년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부임하여 2009년까지 재임하였다. 조선시대 사회사, 정치사를 연구하다가 1992년부터 근대 한일관계사, 특히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의 불법성에 관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근대사와 한일관계에 관한 저서로 『고종시대의 재조명』,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조약 강제와 저항의 역사』, 『끝나지 않은 역사: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역사인식』 등이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연 이상 현상 기록 2만 5,300여 건을 뽑아 이를 분석하여 1490년부터 1760년까지 270년간이 이른바 소빙기(little ice age)의 재난 현상기란 것을 국제 천문학 저널에 보고하고, 『새 한국사』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를 천재지변 극복의 역사로 조명하였다. 『한국병합과 현대』(태학사, 2009),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지식산업사, 2019) 등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진단학회 회장, 한국역사연구원 원장, 역사학회 회장, 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일역사가회의 한국 측 운영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6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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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52*224*20mm
ISBN13
9791167072450

책 속으로

일본제국의 쇼와 천황은 불리한 전세를 감당하지 못하자 8월 14일 ‘종전조서(終戰詔書)’를 녹음하고 이튿날 이를 방송하였다. ‘옥음 방송’으로 불리는 이 방송에서 낭독된 조서는 「대동아전쟁 종결의 조서(大東亞戰爭終結ノ詔書)」란 이름이 붙었다(이하 ‘종전 조서’). 쇼와 천황의 ‘종전 조서’는 “짐은 제국 정부가 미·영·중·소 4개국이 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했다.”라고 했다. 이어 “무릇 제국 신민의 강녕(康寧)을 도모하고 만방 공영(共榮)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함은 황조황종(皇祖皇宗: 역대 천황)의 유범(遺範)으로서 짐은 이를 삼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은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東亞)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함과 같음은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침략을 지휘한 원수가 침략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 p.18~19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민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조직한 자유당이 의원 후보자 공천제를 채택하였고, 원내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도 후보를 공천하여 처음으로 공천제 선거가 이루어졌다.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시행하는 공천제로서, 정당정치에서 한 걸음의 형식상 발전이 이루어졌다. 의원정수 203인에 대하여 입후보자가 1,207명으로 경쟁률은 평균 5.9 대 1이었다. 제헌국회, 제2대 총선에서 보였던 정당, 사회단체의 난립 현상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선거 참여 정당의 수는 14개나 되었다. 아직도 무소속이 797명 출마하여 전체 입후보자의 66%를 차지하여 절대다수를 점하였다.
--- p.98

1960년 4·19 혁명으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민주당은 1955년 9월에 이승만 반대세력이 모여 만든 정당으로서 자유당과 싸운 투쟁 경력으로 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민주당은 한민당과 민국당 때부터 집요하게 추진하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였다. 아직 국회 다수당의 위치에 있던 자유당도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1960년 6월 15일 국회는 내각책임제 안을 의결하였다. 7월 29일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하였다. 그리고 8월에 윤보선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바로 이어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의원 내각책임제, 광복 후 제헌국회가 염원하던 국가원수 선출제 시대의 통치체제 아니던가? 아니 기원을 따지면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여망을 실현하기에는 정당 기반이 약하였다.
--- p.138

박정희는 제7대 대통령으로 부임한 뒤 1년 만인 1972년 8월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 명령’을 발표하고 10월에 ‘유신’을 선언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시계열상 ‘유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처럼 보였다. 왜 ‘유신’인가? 일본제국의 메이지(明治) 유신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메이지 유신은 당시 한국인에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서구화)에 성공한 역사를 뜻했다. 우리는 그러지 못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인식의 대명사 같은 것이었다. 민족중흥의 길 모색에 과거 강제 국권 상실을 국력의 우열로 보는 역사 인식을 동원하기까지 한 것일까?
--- p.153

1980년 5월 18일 광주시에 진입한 계엄군과 시민 사이의 충돌로 ‘광주 민주화운동(광주사태)’이 시작되었다. 5월 31일 신군부는 ‘국가 보위 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여 의장에 최규하 대통령을 앉히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이 상임위원장이 되어 전권을 쥐었다. 7월 4일 계엄사령부는 김대중을 ‘광주사태’와 연관하여 군법회의에 회부하였다. 8월 21일 전군 지휘관 회의는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8월 27일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국가 원수 자리를 차지하였다. 박정희 시대에서도 보지 못한 ‘정치권력이 군부로부터 나오는’ 특이 상황이 빚어졌다. 군부의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형세였다. 그간 경제발전으로 시민의 중심을 이룬 중산층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민주 의식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광주 민중항쟁 전후의 공포 분위기 속에 꼼짝할 수 없었다.
--- p.159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 곧 386운동권 세력이 급부상한 까닭은 무엇인가? 1987년 민주화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재확인하였는데도 그 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편의 진보 개혁 노선 표방 세력이 급부상한 것은 이변이다. 박정희 시대에도 그 기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힘이 아직 실리지는 않았다. 그 세력이 크기 시작한 것은 신군부의 엄혹한 통치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신군부 통치가 가지는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이 사회주의 이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철권통치 아래 조직이 지하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민주화 선언’ 이후 표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 p.175

‘보수’와 ‘진보’의 대결, 그리고 시민단체의 영향력 3자는 대한민국 밀레니엄 정국의 새 흐름이었다. 보수 깃발 아래 고소득층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대열 가운데 중도 지향세력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가는 추세가 나타났다. 이를 직시하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하였다. 중산층이 늘어난 데 따른 변화였다. 2000년 전후 중산층의 규모는 전인구의 66.9%에 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계급적 지위로는 중상계급(9.0%), 신중간계급(24.9%), 구중간계급(47.1%)을 더하면 81.0%가 중산층을 이룬다는 통계도 있다. 과거 자유민주주의 신봉으로 보수의 대열에 속했던 중산층이 이제 계층의식에 근거한 정치의식의 새로운 지향성, 곧 ‘중도’를 표방하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 p.183

정국의 진보, 보수의 대립 갈등은 마침내 2024년 12월 3일 현직 대통령 윤석열이 ‘진보’ 척결을 위한 비상계엄의 ‘반란’을 획책하다 거꾸로 탄핵을 당하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대통령 책임제 하의 대한민국의 정치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정황이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를 다투는 경제 대국의 대열에 올라서 있다. 그러나 정국의 비타협적 대립, 다시 말하면 정치가 실종한 상황은 1960년대 이래 어렵게 쌓아 올린 경제적 성취의 세계적 명성마저 잃을 위기를 걱정하게 되었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경제발전의 성과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이념 지향” 정치로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다.

--- p.207

출판사 리뷰

광복에서 진보·보수 대립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공과 과를 읽다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 하권은 1945년 광복의 환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경제개발, 민주화와 진보·보수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70여 년을 한 권에 담아냈다. 상권에서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을 짚었다면, 하권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대의 진보·보수 이념 대립 정국까지를 다룬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으로 재단하기보다, 주요 사건의 전후 맥락을 살피면서 ‘공과 과’라는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읽어내고자 했다.

책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가?”

저자는 국가원수를 세습하던 근대의 ‘근왕 국민국가’에서 광복 이후 대통령을 선출하는 자유민주 공화국으로 넘어온 뒤 한국 정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 3년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과정, 제헌헌법 제정, 이승만 정부와 한국전쟁, 한미상호방위조약, 4·19 혁명,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1970년대 민주화운동, 1980년대 신군부와 6·29 민주화 선언, 민주화 이후 진보·보수 세력의 부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광복의 기쁨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까지

I부 「자유민주 공화국 시대의 힘겨운 개막」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광복을 단순히 해방의 기쁨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제국주의 질서가 냉전 질서로 재편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광복 이후 3년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신탁통치 문제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과정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짚는다. 이어 일제 통치가 남긴 빈곤과 농지개혁 문제, 제헌국회의 성립과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당초 내각책임제에 가까웠던 헌법 구상이 대통령 책임제로 바뀌게 된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제도가 출발부터 어떤 선택을 거쳤는지를 설명한다.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전후 경제복구와 이승만 정부의 장기 집권 과정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4·19에서 경제개발, 민주화까지

II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자력으로 세운 여정」에서는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간 과정을 살핀다. 3·15 부정선거와 2·28 대구 학생 시위, 마산 시위, 고려대생 시위, 4·19 혁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뒤, 제2공화국의 짧은 실험과 5·16 군사정변을 거쳐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제1차부터 제4차 경제개발계획, 새마을운동, 3선 개헌과 유신체제,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10·26 사태를 함께 다룸으로써 경제성장의 성과와 권위주의 정치의 문제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함께 바라보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이어 1980년대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 민주화운동, 6·29 민주화 선언, 1987년 헌법개정까지를 통해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문턱을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세계가 주목한 경제성장,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또 다른 갈등

III부 「민주화와 자력 경제시대의 혼돈」에서는 1987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다룬다.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과 386운동권 세대가 부상하고 시민단체가 등장하는 과정, 경제의 자력화와 향상, 중도 지향세력의 등장과 보수 정치의 난맥,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치 동향 등을 차례로 짚는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민주화 이후 정치적 갈등은 오히려 격화됐다고 진단한다. OECD 가입과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의 성장이라는 성취 뒤에서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비극이 반복되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타협보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현실에 주목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왜 끝이 불행한가?」라는 글을 별도로 실었다. 여기서는 부실한 정당 기반과 ‘제왕적 대통령’ 출현의 문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성공과 교육·사회·문화적 강제의 명암,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보수 양극화가 불러온 대통령 수난사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핀다. 저자는 이를 통해 역대 대통령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나 특정 정파의 관점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역사적 시각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시사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새 역사가 되었다”

1943년생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성주의 작은 광산촌에서 태어나 광복 전후의 풍경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광산촌에서의 생활,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동생의 기억, 광복 후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발견했던 순간 등이 그의 기억에 남아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포항과 경주 일대를 피란했고, 이후 이승만 정부와 4·19 혁명, 5·16 군사정변, 1960년대 대학가의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학생과 교수의 신분으로 직접 경험했다. 저자는 당시에는 ‘시사’라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시간이 지나 모두 ‘역사’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현대사를 바라보는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된다. 다만 저자는 현대사 전공자가 아니기에 광복 이후의 역사를 연구 결과로 새롭게 해석하기보다 연표를 바탕으로 주요 사건을 선별하고 관련 자료와 연구서를 참고해 사건의 앞뒤 맥락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광복 이후 70여 년의 주요 사건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그리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가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 하권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찬양하거나 부정하는 어느 한쪽의 서술에 머물지 않는다. 광복 이후 자유민주 공화국의 출범, 한국전쟁을 거쳐 국가를 지켜낸 과정,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성취, 독재와 장기 집권의 폐해, 민주화의 성과, 그리고 민주화 이후 심화된 진보·보수 갈등까지 서로 다른 성격의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바라본다.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현재와 미래를 향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무엇을 이루었으며, 무엇을 놓쳤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를 바탕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읽기』 하권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직접 살펴보고 답을 함께 찾아갈 수 있는 ‘역사의 광장’을 지향한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7권 8책은 한국 근대와 현대를 하나의 연속된 역사적 흐름으로 읽어내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된 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교양·학술 총서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종종 식민지화와 국권 상실로 귀결된 ‘실패한 역사’로 이해되어왔다. 이 때문에 근대와 현대를 함께 조망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통념을 넘어 대한제국과 독립운동,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는 물론, 시민사회와 과학기술, 음악과 미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다양한 역사적 동력들을 하나의 시야 안에서 살펴본다.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정치사 중심의 서술에 머물지 않고 외교, 사상, 문화, 예술, 과학기술, 시민사회의 성장 과정까지 확장하여 해석한다. 이를 통해 식민주의 역사관과 냉전적 인식을 넘어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역량과 창조성, 그리고 세계 속에서 형성해온 문화적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근현대 한국사 새로 읽기』 시리즈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만들어온 변화와 성취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탐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 읽기의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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