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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상의 낯선 곳
대[竹]를 심는 일 | 간이역에서 | 황홀 | 주소 유감 | 일상의 낯선 곳 | 우중 유감(雨中 有感) | 여름의 양식(糧食) | 돌과 사귀기 | 골짜기의 백합 | 모과 향기 속 | 어느 비 오는 밤 현동 용슬재(容膝齋)에 어떤 일이 있었다 | 성(聖) 물 긷는 소리 | 낮은 한가위 달 | 어둠에 새긴다 2. 음악의 심연에 뜨는 배 봄 들판 | 가을이 뭉텅 잘려나간 자리에서 | 겨울 풍경 | 어떤 정물, 귤과 매화와 책꽂이 | 찬 물소리 속 겨울 나그네 | 음악의 심연에 뜨는 배 | 음악의 축대며 저수지인 | 사철나무와 멘델스존과 상추 | 태풍과 빌헬름 캠프 | 가을 바람 | 「풍죽(風竹)」의 브람스 | 감나무와 함께 듣다 | 토지 대장 속의 클라리넷 3. 밤에 물소리를 듣고 초서가 아름다워졌다 노경에 대하여 |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적적히 | 밤에 물소리를 듣고 초서가 아름다워졌다! | 햇빛의 일 | 들판의 구절초 앞에 앉아서 | 한 장, 뱃고동의 지리부도 | 책과 버릇 | 집수리 음악 | 큭큭, 「논어」를 권함 | 연등 아래를 지나며 | 고양이에 대해서 | 무덤의 체험 4. 탁 깨우는 한 구절 연못에 물을 담다 | 시 「亭子」에 부쳐서 | 탁 깨우는 한 구절 | 해와 달의 이야기 | 겸손의 간단명료 | 인왕제색(仁王霽色)하였으나 | 선방 이미지 | 마음의 사천왕상, 고흐의 「해바라기」 | 오르막 산길 모퉁이를 꿰맨 흔적 5. 수묵 정원을 드나들며 소중한 인연 | 지붕 위의 청춘 | 따스한 위엄 | 수묵 정원을 드나들며 | 한 정직한 우정의 역사 | 유자나무 가지러 곧 영동에 가야 한다 | 꽃 피고 새 울어도 | 미당 선생 가신 아침에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천둥소리 뒤의 말들 | 조그만 집짓기 | 比喩·camera | 문청의 새벽들 | 도원은 노래한다 |
張錫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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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평범하고 가장 지루하고 가장 심심한 세계 속에 그러나 가장 긴장되고 가장 아프고 가장 깊은 세계가 한 겹 혹은 여러 겹 같이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은 일종의 마음의 혁명이 아닐까. 시라는 것은 그러한 세계를 되짚어주는 일일지 모른다.
개는 혼자 있을 때 산 위에 달이 떠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짖을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개가 바보라고 여길지 모른다. 심지어는 그 달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겁에 질려서 숨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지나면 곧 달이 뜨고 지는 것이 얼음이 얼었다 녹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달을 보면서 짖는 개를 시적인 그림으로 상상해 보면서 과연 달이 떠오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것은 짖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우주의 맥박이요 탄생이요 죽음이요 싸움이요 기쁨이다. 과연 목이 터져라고 짖어도 시원치 않은 무엇이 그 현상 속에는 있는 것이다. 그렇듯 시는 우리를 그러한 일상의 낯선 곳에 홀로 서 있게 하는 것이다. --- “일상의 낯선 곳” 중에서 새로운 나의 거처엔 잣나무들이 있어서 간혹 청솔모들이 잣을 떨어뜨린다. 그것들을 주어다가 돌 위에 놓고 작은 돌들로 깨보면 그 속에 벌써 여물어 들어가는 잣들이 가득 들어 있다. 다시 그것들을 깨보면 그 안에서 향기로운 솔향을 풍기면서 씨앗들이 나온다. 입에 넣어보면서 이 기름들이 다 어디서 온 것인가 생각해본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 아닌가. 땅 속 어디에 기름들이 있단 말인가? 저 햇빛 속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람 속 어디에 그것들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있으니 이것들이 맺혀진 것 아닌가. 그중 햇빛이 가장 중요한 일을 했을 것임을 과학자가 아니어도 직감으로 알 만하다. 내 입으로 들어간 것은 찬란한 햇빛의 알갱이들이요, 속삭임들이요, 때론 지난여름 볕의 그것처럼 불덩어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중략) 이불을 걷고 대신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린다. 그동안 젖어들었을지 모른 탐욕이나 슬픔이나 증오가 있다면 다 말려야 한다. 우리는 이 저녁빛을 따라 나서서 저 우주의 어느 골짜기로 끝내는 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의 발견은 햇빛을 바라보면서 해야 할 가장 큰 발견인지 모른다. 가을볕에 씨앗들을 말리듯이 또 젖은 이부자리들을 말리듯이 우리 마음들도 다 말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썩지 않게 우리를 살리는 것이므로. --- “햇빛의 일” 중에서 대합실에서 사람들이 짓는 표정은 여느 장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마중을 하는 사람이든 전송을 하는 사람이든 심지 아래에서는 뭔가 쉬 짐작키 어려운 감정의 즙액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짧게 “빵!” 하고는 화물차가 들어온다. 혹 딴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역무원을 깨우는 신호다. 다른 누가 들을 필요는 전혀 없는 소리이므로 그저 서로 아는 사이끼리의 인사라고 해도 되겠다. 그 짧은 기적 속에는 아주 긴 여운이 번져 나간다. 여러 다발의 이야깃거리들이 그 기적 속에서 느껴진다. 지난 명절은 어떠했는가, 노모의 건강은 어떠하신가, 새로 사귄 여자친구는 부인에게 들키지 않았는가, 지난번 언짢았던 일은 잊어주기 바란다와 같은 간절함에서 가볍고 싱거우나 또한 인생 전체로 보면 중요한 농담에 이르기까지 만화경 속처럼 여러 빛을 발하는 말들이 함축되어 그 속에 숨어 있다. 이러한 자그만 간이역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란 없다. (중략) 조금씩 성애가 짙어져가는 대합실의 북쪽 유리창에 희미하게 반달이 걸렸다. 저 달은 여물어서 대보름이 된다. 헌데 나는 누구도 맞이한 사람이 없었으니 사람의 일생이란 참 이상한 국면도 있는 것이라고 뒤늦게 나는 중얼거린다. --- “간이역에서” 중에서 모든 좋은 시는 그렇다. 몸(체험)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 울림, 파동이 의식에까지 미칠 때 좋은 시다. 그때 그 시는 그 시와 관계된 생을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아니 엄밀하게는 그래야만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시에 관한 일체의 말은 다 필요 없는 이야기다. 그저 시가 ‘시’였다면 ‘이미’ 그러했을 것이므로. --- “조그만 집짓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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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물, 예술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다섯 권의 시집을 한국 문단에 선사하며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겨 중견 시인이 된 장석남의 산문집 『물 긷는 소리』. 8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산문집으로, 시인이 그동안 틈나는 대로 쓰거나 발표한 60여 편의 산문을 수록했다. “세상이치라는 것이 있다는 눈치맞 챘으나 여전히 힘겨움을 내려놓을 수 없”는 시인이 “알긴 하겠으나 되진 않는 것들에 대한 서글픔”을 담아냈다. 시인은 이 산문집에서 일상과 자연,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서 느끼는 막연한 감정들을 서정적인 언어로 잘 빚어내고 있다. 사람과 사물, 그리고 예술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기억 속의 물 긷는 소리가 “새삼 떠올라 그 무엇보다 성스럽게 여겨지”고 “그 소리를 닮고 싶다”는 시인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그리고 일상과 자연에서 끌어올린 깊은 사색을 담은 글들을 읽어 내려가멉 보면, 정우영 시인의 부러움 섞인 평가(“장석남의 귀는 요즈음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그 귀는 자연의 순리를 듣는다”,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인은 ‘돌 장난’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얘기하지만 ‘장난’이라고 하기에맞 그 수준이 상당한, 시인이 직접 돌에멉 새긴 판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물 긷는 소리』를 닮고 싶다 『물 긷는 소리』는 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서정적인 언어로 빚어낸 1부, 음악에 대한 감흥을 담은 2부,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3부, 예술 작품에 대한 감흥을 담은 4부, 시인 주변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적 자전이라 할 수 있는 글을 엮은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일상의 낯선 곳」에서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목이 터져라고 짖어도 시원치 않은 무엇”을 길어 올린다. 이를테면 대나무를 심으며 인류평화를 생각하고, 달을 보면서 짖는 개를 보며 우주와 시를 떠올리는 식이다.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과 사물들이 “모든 일상이 실은 보는 눈에 따라서는 보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눈에 걸려들어 재탄생, 재해석되는 것이다. 2부「음악의 심연에 뜨는 배」에서는 브람스니 바흐니 차이코프스키니 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고전 음악에 대한 감흥을 풀어놓는다. 그러나 시인의 음악 감상법은 범상치 않다. 말러의 가곡을 들으며 이백의 '비가행(悲歌行)'을 떠올리고, 브람스의 「무언가」를 들으며 백석의 '멧새 소리' 들리는 산골로 달려간다. 심지어는 “그 소리를 나 아니면 누가 들을 수 있으랴” 큰소리치며 토지 대장 속에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흘러나온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3부「밤에 물소리를 듣고 초서(草書)가 아름다워졌다」에서는 시인의 사색과 성찰을 담아낸다. 자신의 손바닥, 손등을 유심히 바라보며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혁신’을 생각하며, 빨래를 말리는 햇빛을 바라보면서는 도(道)를 생각하고 인간의 탐욕, 슬픔, 증오를 ‘말려 마음을 썩지 않게’ 해야 한다는 성찰에 다다른다. 4부「탁 깨우는 한 구절」은 시, 소설, 그림, 판화전 등 다양한 예술 작품과 그 예술가에 대한 글이다. 김소월의 '산유화', 배동환 선생의 그림, 고흐의 '해바라기' 등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풀어내고 있다. 5부「수묵 정원을 드나들며」는 시인을 “여기까지 더듬어” 올 수 있게 한 “시라는 지팡이”와, 시와 시인의 자세를 가르쳐준 선생님, 선배 시인, 동료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군. 내가 해볼 만한 것이군”, 이렇게 시인이 시를 처음 접하던 때부터 “내게 치욕을 안긴 인물은 문학에멉 실명으로 그려 넣어서 영원불멸의 치욕으로 되갚아 주겠다는 오기”로 문학을 꼭 붙들고 놓지 않던 시절,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맞 행복으로, 또는 고통으로 연결”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문학적 여정을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