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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 C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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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다른 누구의 마음도 진정으로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을 대할 때는 섣부르게 학습된 방식을 배려와 이해라 착각하곤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심는다. 그것은 주인공 미로가 그토록 원했던 ‘조화로움’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눈으로 볼 수 없을 때는 꿈꾸는 일이 쉽다. 상상력이 호박 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머릿속에서 펑, 하고 터진다. 나는 하루 종일 만지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꿈을 꾼다. 그것말고는 달리 몰두할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나는 과묵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수다쟁이에 가깝다. 아마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얘기를 많이 할 것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면 말이 필요하니까. --- pp.9~10 바로 그때, 소름끼치도록 끔찍한 할아버지의 비명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미로! 미로! 내 팔목! 놈이 내 팔목을 물었어!”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할아버지가 떨어뜨린 칼을 주우려고 바닥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볼로, 저리 비켜! 그리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곰치의 몸에 칼을 꽂고, 꽂고, 또 꽂았다. 곰치는 거대한 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입에 문 포획물을 쉽사리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곰치의 머리 위로 기어 올라갔다. 할아버지가 다른 한 손으로 어설프나마 방향을 일러 주었다. 나는 다시 칼을 내리꽂았다.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그러고는 재빨리 놈의 목을 졸랐다. 곰치는 완강하게 버티다가 마침내 할아버지의 팔목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몇 번인가 몸을 펄떡이더니 이내 꼼짝하지 않았다. 곰치가 죽었다. 볼로, 봤어? 곰치가 죽었다고. --- p.25 잠시 뒤 뤼카가 팔뤼슈 할아버지를 태운 커다란 카트를 밀고 나타났다. 이럴 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서둘러, 미로! 카트에 바짝 붙어 서서 나랑 같이 밀자.”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병원 정원 쪽으로 달렸다. 비로소 할아버지의 노란 얼굴에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게 되었다. 볼로, 절대로 짖으면 안 돼. 제발 부탁이야. 우린 지금 아주아주 무모한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까……. 난 순전히 뤼카만 믿고 달렸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 어떤 눈먼 자도 그렇게 뛰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숨이 턱까지 찰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 p.31 륀의 목소리는 그 문장들, 그 복도들, 그 높다란 천장들을 닮았다. 아주 유연하고 매혹적인 륀의 목소리는 나를 빨아들인다. 내 짙은 어둠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고, 선명한 윤곽을 그린다. “계속 읽을까?” “그거 무슨 책이야?” “파올로 파솔리니의 『인도의 향기』.” “처음 듣는 제목이야. 근데 그거 어디서 났어?” “우리 아빠 서재에서.” 륀은 계속해서 책을 읽어 나간다. 난 더 이상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고 오직 륀의 목소리만 듣는다. 내게는 목소리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 소리가 내게 에너지를 준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목소리에 어떤 얼굴을 맞추어 보려고 애를 쓴다. 이런 목소리에는 어떤 몸이 살 수 있을까? 어떤 눈이? 어떤 손이? 쓸데없는 짓이다. 뤼스는 은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고 뤼카가 말했다. 그러면서 거짓말이 아니라고 했다. 앞을 보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가끔 그들의 눈이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륀을 볼 수는 있어도 륀이 지는 고유한 목소리는 듣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다. --- pp.77~80 할아버지가 옷을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발코니를 넘어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담을 뛰어넘고, 마침내 니노의 오토바이에 앉는 일만 남았다. 이 모든 일은 아주 빨리 진행될 거다. 뤼카는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아 뒤따라오고, 니노의 오토바이 모터는 빠른 속오로 가열이 되겠지. 볼로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할아버지를 위해 백포도주를 준비했어?” 륀은 대답이 없다. 오토바이는 굉음을 내며 멈췄고, 자전거는 옆으로 미끄러지며 바닥에 멈춰 섰다. 자전거 앞바퀴는 여전히 공회전을 하고 있다. 앞서 들어선 건 니노였지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뤼카였다. “할아버지가 죽었어.” 볼로, 자니? --- pp. 96~97 나는 다시 몸을 곧추세운다. 두 발로 작은 돌멩이들과 해초들을 건드려 본다. 이곳 물은 맑을 것이다. 내 발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발과 륀의 발, 그리고 다리, 륀의 몸 전체, 물 밖의 얼굴, 나와 마주 선 그 얼굴도 보일 것이다. “뤼스.” 나는 그냥 이름을 불렀다. 그저 진짜 이름을 불러 보고 싶었다. 뤼카와 니노는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주를 하고 있다. 미친 듯이 물을 가르는 소리가 수면을 파고든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리던 볼로는 이내 모래 언덕 꼭대기로 사라져 버린다. 내가 널 잊었듯이 너도 날 잊고 있었구나. 나는 두 팔을 한껏 뻗어 륀을 품에 안는다. 내 품에 안긴 소녀. 내 예상이 맞았다. 기타를 품에 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셔 허파를 빵빵하게 부풀린 다음, 하나로 얽힌 두 몸을 천천히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힌다. 자, 이제 숨을 쉬지 않고 키스를 해 보는 거다. --- pp.148~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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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소년 미로가 꾸는 꿈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미로는 무엇이든 머릿속으로 상상하길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지만, 결코 자신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개 볼로와 사랑하는 부모님, 바다를 닮은 순박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누구보다 좋아하고 따르는 팔뤼슈 할아버지가 있다. 오랜 세월 어부로 살아온 팔뤼슈 할아버지는 미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인생의 스승이다. 그 여름 바다, 곰치와의 한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 일은 팔뤼슈 할아버지의 유일한 소일거리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흔들낚시는 미로에게도 큰 즐거움이다. 바닷물 위로 순풍이 부는 어느 날, 미로는 팔뤼슈 할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간다. 입질이 없어 무료해 지려는 순간, 할아버지의 낚싯대에 커다란 곰치 한 마리가 걸린다. 할아버지는 힘이 센 곰치를 간신히 배 위로 낚아 올리지만, 실수로 그만 팔목을 물리고 만다. 팔뤼슈 할아버지를 구출하라! 곰치에게 팔을 물린 팔뤼슈 할아버지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몸이 너무 약해져서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미로를 비롯한 친구들은 작전을 세워 할아버지를 병원에서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팔뤼슈 할아버지가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뒤다. 가까스로 병원을 빠져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할아버지는 결국 요양원에 들어간다. 미로와 친구들은 팔뤼슈 할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을 찾아가 할아버지를 부탁하지만,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아온 그녀는 할아버지를 거부한다. 미로, 사랑에 빠지다 팔뤼슈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륀이라는 여자 아이가 이사를 오고,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된다. 미로는 자신과 유난히 마음이 잘 맞는 륀에게 여태껏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성에게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이었다. 륀을 향한 사랑은 미로에게 더 깊은 내적 충만과 성숙을 가져다준다. 오래된 기억과의 이별 팔뤼슈 할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을 하며 점점 지치고 병들어 간다. 미로와 친구들은 하루하루 지루한 생활을 하고 있을 할아버지를 위해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한다. 파티를 열기로 한 날, 미로와 륀은 할아버지를 위한 백포도주와 음식을 준비하고, 다른 두 친구는 할아버지를 모시러 요양원으로 향한다. 얼마 뒤 두 사람은 할아버지의 부음 소식만으로 가지고 힘없이 돌아온다. 미로, 마침내 바다를 보다! 팔뤼슈 할아버지는 결국 한 줌의 재로 남는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은 유골이 든 상자를 미로에게 건네준다. 미로는 팔뤼슈 할아버지를 바다로 보내주기로 마음먹는다. 햇살 가득한 어느 날 오후, 미로는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품에는 할아버지의 유골 상자를 꼭 안고서.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를 떠나보낸다. 다시 뭍으로 돌아온 미로와 친구들은 해변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륀을 만나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때 륀은 미로에게 같이 수영을 하자고 제안한다. 미로는 팔뤼슈 할아버지도 가르쳐 주지 못한 수영하는 법을 륀을 통해 배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또 한 뼘 자라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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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눈먼 소년의 마음으로 세상 보기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는 푸른숲 청소년 문학 시리즈 ‘마음이 자라는 나무’의 열일곱 번째 책으로,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눈먼 소년 ‘미로’의 맑고 섬세한 성장 이야기이다. 팔뤼슈 할아버지와의 나이를 초월한 우정,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륀이라는 소녀에게서 느끼는 알싸한 첫사랑의 감정 등 잔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삶의 기쁨이 가득 담겨 있다. ‘시각 장애’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 미로의 시선은 발칙하리만큼 당당하고 자유롭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꿈꿀 수 있다고 믿는 미로의 모습은 타인과의 관계,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일의 의미를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동·청소년 작가인 알렉스 쿠소는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미로의 내밀한 독백을 통해 ‘사람을 자라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준다. 긍정할 때 비로소 빛나는 삶의 가치 살면서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리 삶이 불행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기꺼이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세상과 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십대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 역시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에 있다. 사실 ‘장애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의 분위기는 대개(적어도 초반에는) 침울하거나 슬프기 마련이다. 그리고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어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는 그런 이야기들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이 가볍고 경쾌하다. “장애가 어쨌다는 거야? 난 그저 눈이 안 보일 뿐이라고!”라며 당당히 대꾸하는 주인공 미로의 모습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경계심 어린 시선과 고정관념을 무장 해제시킨다. 미로는 자신의 장애를 거부하거나 극복하려는 대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더 큰 삶의 의미를 알아 나가뼉 노력한다. 그것은 바로 타인, 더 나아가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이러한 미로의 성장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일러줄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이 책을 통해 오히려 통해서 삶을 긍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미로는 여느 평범한 십대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행동에도 거침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소심해지는 사춘기 소년의 감성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이런 미로에게 장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항상 눈을 감고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 미로의 긍정적인 사고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주억이게 한다. 사실 우리는 다른 누구의 마음도 진정으로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을 대할 때는 섣부르게 학습된 방식을 배려와 이해라고 착각하곤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우리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심는다. 그것은 미로가 그토록 원했던 ‘조화로움’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프랑스의 어느 바닷가, 아이완의 손끝으로 다시 태어나다 이 책에서 ‘바다’는 아주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이다. 바다는 팔뤼슈 할아버지와의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장소이며, 훗날 그와 작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미로가 팔뤼슈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여자 친구 륀과 수영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 무엇과도 자연스럽게 한데 섞이는 물처럼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싶은 미로의 욕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다시 말해 미로의 세계인 셈이다. 『워터보이』, 『구멍』 등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이완의 일러스트는 그런 이 책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 풍경은 물론, 눈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는 미로의 시선을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내었다. 일러스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그의 일러스트는 이 책에 마치 팔딱거리는 물고기처럼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