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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모든 것을 이루는 힘
원영 대사의 염불수행을 권하는 법문
불광출판사 20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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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저자 : 원영 굉오(圓瑛 宏悟)
법명은 굉오(宏悟), 자는 원영(圓瑛)이며, 호는 도광(韜光)이다. 1878년 중국 복건성 출신으로 19세에 출가한 후 참선 수행에 전념하여 여러 경지를 체험하였고, 29세에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제40대 조사가 되었다. 그리고 36세에 극락세계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꿈을 꾸었는데, 그때 아미타 부처님께서 스스로 수행하여 다른 이를 교화하고 염불의 바른 법을 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참선과 더불어 염불을 함께 수행하여 입적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선(禪)과 정토(淨土)를 함께 닦았다. 정토수행과 관련된 경론을 강의하며 염불법문을 널리 알리는 한편 혼란한 시기의 중국 불교계에서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다. 중화민국 초엽인 1928년 창립된 '중국불교회'의 주석과 이사장을 일곱 번이나 역임하면서 이끌어왔고,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후에는 '중국불교협회'를 조직하여 중국 불교계의 단결과 불교를 보호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고아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교육하는 등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주석하는 사찰마다 면모를 새롭게 다듬으며 청규(淸規)를 엄격하게 세우고, 신도들이 서로 화합하는 데 힘썼다. 이 책의 저본인 『염불수행을 권하는 법문[勸修念佛法門]』은 대사의 세수 62세 때 원명강당에서 법문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역자 : 정원규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였고, 각산(覺山)은 법명이다. 경북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온 뒤 1987년부터 경남도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5년부터 3년간 중국 청도에서 경상남도 산동사무소 파견 근무를 하고, 2008년 초에 귀국하였다. 화두 공부를 하였으나 사회생활 속에서 한계를 느끼다가 1995년 정토삼부경을 읽고 염불수행에 믿음을 일으켰다. 주굉 연지 대사의 『죽창수필((竹窓隨筆)』, 영명 연수 대사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과 보조 국사의 『염불요문(念佛要門)』 등을 읽으면서 믿음이 더 견고해졌고 염불수행에도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 옮긴 책으로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2006, 불광출판사),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2007, 불광출판사)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틈틈이 큰스님들의 법문을 번역하는 한편 아미타불 염불을 늘 놓치지 않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7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47쪽 | 381g | 153*224*20mm
ISBN13
9788974795498

관련 자료

원영 굉오(圓瑛 宏悟, 1878~1953)

원영(圓瑛) 굉오(宏悟) 대사는 1878년 중국 복건성(福建省) 고전현(古田縣)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오(吳)씨이고 이름은 형춘(亨春)이다. 18세에 큰 병을 앓은 후 출가를 결심하고 19세에 고산(鼓山) 용천사(涌泉寺)에서 증서(增西)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21세에 복주(福州)에서 강소성 상주(常州) 천녕사(天寧寺)로 와서 야개(冶開) 선사를 모시고 6년간 선(禪) 수행을 했다. 여러 가지 선의 경지가 자주 나타나 보였고, 몸과 마음이 넓게 텅 비어있음을 선정에서 보고 게송을 남겼다. 26세에 영파(寧波) 천동사(天童寺)의 기선(寄禪) 스님께 의지하여 일심으로 참구하였다. 28세 겨울 수행하던 중 선정에 들어 공(空)을 체득하다. 1906년 29세에 대사는 영파 칠탑보은사(七塔報恩寺)에 주석하고 계시던 자운(慈運) 스님을 참배하고 직접 법인(法印)을 받아 임제종(臨濟宗)의 제40대 조사(祖師)의 법맥을 이어받게 되었다. 법명은 굉오(宏悟), 자는 원영(圓瑛)이며, 호는 도광(韜光)이다.
36세부터 정토의 기연이 성숙하여 영명(永明) 연수(延壽) 대사와 운서(雲棲) 연지(蓮池) 대사 등 많은 정토법문과 경전을 열람하면서 정토염불법문을 깊이 믿게 되었다. 그 이후로 40여 년 동안 선과 정토를 함께 닦았으며, 사염불(事念佛) 수행에서 이염불(理念佛) 수행의 경지로 들어갔다. 이것은 바로 연수 대사께서 『사료간(四料簡)』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다.

“선(禪)이 있고 정토(淨土)가 있으면, 마치 뿔을 가진 호랑이와 같이 현세에서 사람의 스승이 되고, 내세에는 부처님과 조사가 될 것이다(有禪有淨土 猶如帶角虎 現世爲人師 內生作佛祖).”

원영 대사는 1935년 가을 상해에 원명강당(圓明講堂)을 창설하여 경을 강의하고 가르침을 설하면서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였다. 일찍이 『아미타경요해』,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대승기신론』,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 『성암대사 권발보리심문』 등 많은 정토법문의 경론을 강의하였다. 아울러 위와 같은 경론을 세상에 유통시키면서 중생들을 유익하게 하였다. 이 『권수염불법문』은 대사의 세수 62세 때 원명강당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28년 처음으로 전국불교대표 대회가 상해에서 열렸고 여기에서 ‘중국불교회’가 창립되어 비로소 전국 불교도의 통일조직이 성립되었다. 대사는 일찍이 일곱 번이나 중국불교회의 주석과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후 대사는 조복초(趙?初), 허운(虛雲), 거찬(巨贊), 진명추(陳銘樞) 등과 공동으로 발기하여 중국불교협회를 조직하였으며, 아울러 제1대 회장(주석)으로 선출되었다. 그 후 대사는 국가가 혼란한 가운데서 중국 불교계의 단결과 불교를 보호하는 데 노력하였으며, 전국 불교도의 존경과 추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대사는 50여 년 동안 시종일관 ‘승가는 불교를 진흥시키고 중생을 교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승려 교육에 평생을 바쳐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대사는 선종의 종지뿐만 아니라 경전에도 통달하였고, 해(解)와 행(行)이 상응하였으며, 변재에 걸림이 없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써서 국내외로 두루 다니시면서 경을 강의하였다. 1952년 세계불교협회 회의가 부산에서 열렸을 때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주로 『능엄경』, 『법화경』, 『반야심경』, 『금강경』, 『아미타경』, 『아미타경요해』, 『대승기신론』 등의 경전을 강의했는데, 늘 법석이 가득 차고 듣는 사람마다 법열을 느끼고 찬탄하였다.
또한 대사는 오래되고 유명한 여러 사찰에 머물면서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다듬었다. 청규(淸規)를 엄격하게 다시 세우고, 신도들이 서로 화합하게 하였다. 또한 고아원을 세우고, 주변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교육하는 등 자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에는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하여 한때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때 옥중에서 너무도 의연하게 대처하여 오히려 일본 헌병대장의 존경과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대사의 업적은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사는 1953년 음력 8월 12일에 세수 76세로 원적하였다. 그는 병이 깊어졌을 때에도 염불을 놓지 않았다. 그때 주변에서 간호하던 여러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겼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늘 안락하고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다. 출가수행자는 생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병으로 수행을 도와야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을 ‘삼구당(三求堂)’ 주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내가 평생토록 복을 구하고(求福) 지혜를 구하고(求慧) 정토왕생을 구하는 것을(求生淨土) 종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복과 지혜는 이미 얻었고, 마지막으로 단지 정토왕생만이 남았다. 너희들도 이 세 가지를 구하는 것으로 수행의 지침을 삼도록 하여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들도 이 세 가지를 구하는 것으로 불법의 진정한 종지로 삼기를 바란다.”
대사는 말을 마친 후 게송을 읊었다.

오직 중요한 일이 하나 있으니,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하여
극락정토를 구하여
상품의 자금대에 왕생하는 일이네.
唯有一宗事 但念阿彌陀
求生于淨土 上品紫金台

어느 날 저녁 제자들이 대사를 위하여 조념염불하고 회향을 하고 난 뒤였다. 대사는 그들을 침상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이런 부촉을 남겼다.
“너희들이 염불할 때 늘 마음을 안으로 거두고 생각을 깨끗이 하여(攝心淨念) 자성(自性)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물어보겠다. 방금 너희들이 염불할 때 염불하는 한 구절의 소리가 어느 곳으로 떨어졌는지 아느냐? 빨리 답해라! 빨리 답해라!”
원영 대사가 병석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이 법문을 거듭 읽고 그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근세 중국의 혼란기에 참선과 염불 수행을 함께 하며(禪淨雙修),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자선사업에 힘써 중생구제를 도모하며, 청규를 다시 세워 승가교육의 맥을 되살린 근세 중국불교의 큰 스승이며, 자운(慈運) 대사로부터 법인(法印)을 받은 중국 임제종의 제40대 조사이신 원영(圓瑛) 굉오(宏悟) 대사의 사자후

나는 일찍이 꿈속에서 극락세계와 아미타 부처님을 뵈었고, 설법도 들었다. 그때 아미타 부처님께서 나에게 스스로 수행하여 다른 이를 교화하고 염불의 바른 법을 수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36세부터 선과 염불을 함께 닦았고, 삼귀의계를 줄 때나 경전을 가르치는 법회에서 대중에게 발심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라고 권하여 왔다. 수행 가운데 염불수행이 가장 온당하다. 그러니 마땅히 지명염불(持名念佛)로 정행(正行)을 삼고, 여러 가지 선업을 닦는 것은 조행(助行)으로 삼아야 한다. 정행과 조행을 함께 행하면 순풍을 만난 배에 노를 젓는 힘이 더해지는 것이니, 극락정토에 왕생할 뿐만 아니라 그 품계도 높을 것이다. --- 원영 굉오 대사

염불수행법은 크게 실상(實相), 관상(觀想), 관상(觀像), 지명(持名)의 네 가지로 나뉜다. 그 가운데 지명염불법은 『아미타경』에 근거한 염불법으로, 아미타불의 명호 여섯 자를 굳게 지녀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 된다(執持名號 一心不亂). 가장 간단하고 익히기 쉬운 수행법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명염불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법과 우수성 그리고 공능과 영험이 높이 평가받지 못한 면이 있다. 원영 대사는 지명염불의 올바른 수행법과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세 가지 자량을 찬찬히 설명하면서 지명염불이 뛰어난 수행법임을 교학적 근거를 들어서 증명하고 있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를 옮긴 각산(覺山) 정원규(鄭源奎) 선생이 전하는 염불수행의 요체와 참뜻 그리고 신심(信心)이 저절로 우러나는 영험 이야기

* 염불수행의 요체 - 일심(一心)
염불수행의 요체는 일심(一心)에 있다.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염하여, 입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만약 마음으로는 염하지 않고 입으로만 염한다면 그 공덕을 이루기 어렵다. 그러나 입으로는 염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만 염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생각생각이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게 하여야 한다.

* 염불수행으로 삼업(三業)이 청정해진다
염불수행은 세 가지 업을 청정하게 한다. 깊이 믿으며 진실하게 발원하여 일심으로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면 명호 하나하나가 마음에서 일어나고 입에서 염출한다. 구절마다 이와 같아서 생각이 끊어짐이 없으면 다른 망념이 모두 사라진다. 망념이 그치면 의업이 청정해진다. 이렇게 마음을 단속하니 몸으로 업을 짓지 않게 되므로 신업이 청정해지고, 또 입으로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염할 뿐 다른 망령된 말을 하지 않으니 구업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이다.

* 염불로 업장을 소멸한다
경전에 이르기를 “염불 한 번으로 능히 80억 겁 동안 지은 생사의 무거운 죄가 소멸된다.”고 하셨고, “업장이 많은 중생은 염불관(念佛觀)을 하라.”고 하셨다. 업이 무겁고 장애가 깊으면 염불을 해도 망상이 어지럽게 일어난다. 발심이 간절하지 않고 염하는 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업장에 대적하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더욱 염불에 전념해야 한다. 온 마음을 다해 염불하면, 여러 부처님의 호념을 받게 되고,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을 받아 저절로 명훈 가피를 입어 업장이 점차 소멸되고 선근이 날로 자라나게 된다.

* 임종시에는 정념(正念) 유지가 중요하다
일생동안 염불 수행하여 비록 깊은 믿음과 간절한 발원, 진실한 수행의 세 가지 자량을 갖추었지만 아직 일심불란(一心不亂)을 얻지 못했다면, 임종의 자리에서 마땅히 조념염불(助念念佛)로 정념(正念)을 유지해야 한다. 임종에 다다랐을 때 갖가지 복잡한 일과 얽힌 인연이 염불행자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러면 정념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정토왕생이 어렵게 된다. 이때는 수행을 함께 해온 도반과 가족들이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알고 그를 도와주는 조념염불을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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