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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해제_초상화 뒤의 초상 |
Ernest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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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여든네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처음 마흔 날 동안은 소년이 함께 배를 탔다. 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마흔 날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는 이쯤 되면 노인이 꼼짝없이 ‘살라오’, 그러니까 모질게 운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 p.11
“물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난 널 사랑하고 무척이나 존경해. 하지만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널 죽이고 말 거야.” 그리될 거라고 생각하자꾸나, 노인은 생각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 하늘에서 배를 향해 날아왔다. 휘파람새였다. 새는 물 위를 스치듯 날았다. 노인은 새가 몹시 지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는 고물로 다가와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다시 날아올라 노인의 머리 위를 빙 돌고는 낚싯줄에 앉았다. 거기가 좀 더 편안할 거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몇 살이니?” 노인이 새한테 물었다. “이게 첫 나들이인가 보구나?” --- p.69 “물고기야, 여태 지치지 않았다면.”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너도 아주 유별난 놈이다.” 노인은 이제 녹초가 됐고 이내 밤이 오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딴생각으로 머리를 채워 보려고 했다. 노인은 메이저리그를 떠올렸다. 노인한테 메이저리그는 ‘그란 리가스’였다. 노인은 뉴욕 양키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시합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후에고스의 결과도 모른 채 이틀이나 지났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져야 해. 발꿈치의 뼈돌기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걸 빈틈없이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해. 그런데 뼈돌기를 뭐라 하지? 노인은 자신에게 물었다. ‘운 에스푸엘라 데 우에소’. 우리한테 그런 건 돋지 않아. 발뒤꿈치에 싸움닭의 쇠 발톱이 박힌 것만큼이나 아플까? 나 같으면 배겨 내지 못할 거야. 한쪽이나 양쪽 눈을 다 잃고도 집요하게 싸우는 싸움닭처럼은 못할 거야. 커다란 새나 짐승에 비하면 인간은 하잘것없어. 나 같으면 차라리 바다 밑 암흑 속에 사는 저런 야수가 되겠어. --- pp.83~84 놈이 다시 한 바퀴 돌고 왔을 때 노인은 녀석을 거의 잡을 뻔했다. 하지만 놈은 다시금 자세를 바로잡고 천천히 헤엄쳐 가 버렸다.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심산이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그럴 만도 하지. 형제야, 난 이제껏 너보다 근사하고, 너보다 아름답고, 너보다 태연하고, 너보다 기품 있는 놈을 본 적이 없어. 자, 와서 날 죽여 봐. 누군가는 죽이든 죽든 해야 하니까. --- pp.109~110 너무 좋은 일이라서 오래가지 않은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 모든 게 다 꿈이라면. 저 물고기를 바늘에 꿴 적도 없고 그냥 지금 신문지가 깔린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거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야.” 노인이 말했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아.” 그렇긴 해도 저 물고기를 죽인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군. 아무튼 이제 고약한 시간이 닥칠 텐데 작살마저 없으니 어쩌지. 덴투소는 잔인하고 몹쓸 짓엔 이골이 난 데다 드세고 영리하기까지 한 놈들인데. 하지만 아까는 그놈보다 내가 더 영리했어. 어쩌면 아닐는지도 몰라, 노인은 생각했다. 그저 내 무기가 더 좋았던 건지도 몰라. “이 늙은이야, 객쩍은 생각일랑 집어치워.” 노인은 소리 내어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돼.” --- pp.123~124 낚시는 헤밍웨이에게 투우가 선사하는 실존적 희열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해 주었다. 투우 관람이 간접 경험이었던 반면, 낚시는 그에게 상대와 몸소 겨룰 수 있는 직접 경험을 제공했다. 그가 낚시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낚시와 글쓰기 사이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낚시꾼이나 작가나 꾸준히 해야 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당길 때와 늦출 때를 알아야 하고, 과감해야 하고, 성공에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실패에 지나치게 낙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와 낚시를 그렇게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가 바다와 낚시를 본격적인 소재로 삼은 소설은 『노인과 바다』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쟁터에 갔다 오면 소설 한두 편은 거뜬히 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바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바다는 싸움을 벌이는 인간이 가늠하기엔 너무나 광활하고 심오한, 그리고 철저하게 고독한 공간이었다. --- pp.17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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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부의 투쟁과 실존의 기록
독보적인 문체와 스타일로 20세기 현대문학계에 우뚝 선 명작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마지막 역작 『노인과 바다』는 1952년 《라이프》지 9월호에 수록되어 이틀 만에 5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곧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1953년 퓰리쳐상을 수상했으며 그 이듬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대성공 이후 발표한 소설 『강 건너 숲속으로』가 반응이 좋지 않자 헤밍웨이는 소중히 아껴 두었던 소재를 꺼내 든다. 바로 '낚시'였다. 헤밍웨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낚시를 배웠으며, 직접 주문 제작한 낚싯배 '필라호'를 타고 바다낚시를 다닐 정도로 낚시에 심취했고, 바다를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은 절대 쓸 수 없다고 믿었던 헤밍웨이가 낚시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은 그야말로 필연적이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어부들에게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멕시코 만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간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또다시 홀로 나선 바다에서 치열한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몰려온다. 노인은 상어 떼에 물어 뜯겨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를 배에 매단 채 항구로 돌아온다. 단순한 스토리를 작가 특유의 절제된 문장으로 형상화한 『노인과 바다』는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상어 떼 앞에서도 끝끝내 청새치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의 모습은 오랜 시간 성공작을 내지 못하고 비평가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상황에서 『노인과 바다』를 써 낸 작가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작가는 공개적으로 이 작품 안에는 어떠한 상징성도 없다고 공언했지만 소설은 기독교적 상징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부 출신인 예수의 제자 '야고보'를 뜻하는 산티아고를 비롯해, 소년의 이름 마놀린은 '임마누엘'이 변형된 것이다. 낚시를 마치고 무거운 돛대를 어깨에 걸치고 언덕을 오르는 노인의 모습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를 뚜렷하게 연상시킨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헤밍웨이가 "서사 기법에 정통하고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노인과 바다』는 감정을 절제한 하드보일드 문체 안에 작가의 철학을 담은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이다. 이 짧은 소설은 망망대해 위에 홀로 선 인간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바다로 나갈 꿈을 꾸는 늙은 어부를 통해 독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글맛 나는 번역, 최고의 전문가가 쓴 해제, 올컬러 일러스트로 만나는 꿈결 클래식의 『노인과 바다』 꿈결 클래식은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번역을 하는 동시에 충실한 해제로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꿈결 클래식에서 펴낸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 관련 서적을 번역한 영문학자인 백정국 교수의 결 고운 번역과 상세한 해제가 돋보인다. 기존 번역 판본의 오류를 최대한 바로 잡고, 60여 개가 넘는 각주로 작품 이해를 돕는다. 또한 꿈결 클래식은 올 컬러 일러스트를 삽입하여 기존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친 질감에서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흑미 작가의 그림은 고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는 고전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어 당대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독자들까지 사로잡는 고전의 힘. 꿈결 클래식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더하는 고전을 만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