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권수정혜결사문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수심결 참 마음을 깨달으면 한 마디 말도 군일이다-진심직설 제 근기 감당하면 다른 아무것도 없다-원돈성불론 삼구 안에서 설법하고 삼구 밖에서 강요를 든다-간화결의론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이네-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처음으로 공부에 마음을 낸 사람은-계초심학인문 |
김달진의 다른 상품
|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권수정혜결사문
무릇 부처님과 조사님네의 말씀을 보고 듣고 외고 익히는 사람은 불법(佛法)을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으로, 제 지혜로써 가만히 이치를 비추어 보아 그 말씀대로 수행하면, 그것은 스스로 부처의 마음을 닦고 부처의 도를 이루어 부처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소행을 아침저녁으로 돌이켜 보면 어떤가? 불법(佛法)에 핑계하여 ‘나’다 ‘남’이다를 구별하여 이양(利養)의 길에서 허덕이고 풍진(風塵)의 가운데에 골몰하여 도덕은 닦지 않고 의식(衣食)만 허비하니, 비록 출가하였다 하나 무슨 덕이 있겠는가? 아아, 삼계(三界)를 떠나려 하면서도 속세를 벗어난 수행이 없고 한갓 사내의 몸이 되었을 뿐이요 장부의 뜻이 없어 위로는 도를 닦는 데 어긋나고 밑으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며 중간으로는 네 가지 은혜를 저버렸으니 진실로 부끄럽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한심스럽게 여겼었다. 마침 임인년(1182) 정월에 서울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석하였다가, 하루는 동학(同學) 10여 인과 약속하기를, “이 회를 파하거든 우리는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 속에 들어가 동사(同社)를 만들어, 항상 선정을 익히고 아울러 지혜를 닦기에 힘쓰며, 예불하고 경 읽기와 나아가서는 노동으로 운력(運力)하는 데까지 각각 제가 맡은 일까지 해나가서 인연을 따라 심성을 수양하여 한평생을 구속 없이 지내어 진인(眞人)의 높은 수행을 따르면 어찌 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깨달음이 더딜까 두려워하라-수심결 삼계의 고뇌는 마치 불타는 집과 같거늘 어찌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겠는가? 생사를 면하려 하면 부처되기를 구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부처되기를 구하는 데는 부처는 바로 이 마음이다.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을 것인가? 이 몸을 떠나지 않는다. 이 육신은 헛것으로서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마는,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온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물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지마는, 한 물건은 언제나 신령하여 하늘을 덮고 땅을 덮었다.’고 한 것이었다. 슬프다, 지금 사람들은 미혹해 온 지 이미 오래이므로, 제 마음이 바로 참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제 성이 바로 참 법임을 알지 못하여 법을 구하려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구하려 하면서도 제 마음을 관(觀)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 하고, 성 밖에 법이 있다 하여, 이 소견을 고집하면서 부처의 도를 구하려 한다면 티끌처럼 많은 겁을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깨뜨려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언제나 앉아 눕지도 않으며, 하루에 밥은 묘시에 한 번만 먹으며 나아가서는 대장경 전부를 다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수고만 더 끼칠 뿐이다. 참 마음을 깨달으면 한 마디 말도 군일이다-진심직설 어떤 이가 물었다. “조사들의 묘한 도를 알 수 있는가?” 나는 답하였다.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던가? 즉 도는 앎(知)에도 속하지 않고 모름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상이요, 모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기(無記)이다. 만일 참으로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면 그것은 마치 탁 트인 허공과 같거늘 어찌 구태여 이것이 아니다는 생각을 내겠는가?” 그는 또 물었다. “그렇다면 조사들이 세상에 나오심은 중생들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가?” 나는 답하였다. “부처나 조사들이 세상에 나와서는 사람들에게 따로 법을 준 것이 없고,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한 것뿐이다. 『화엄경』에 ‘모든 법이 곧 제 성임을 알면 지혜의 몸을 이룬다. 남에 의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나 조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마음을 아주 쉬어 제 본심을 보게 하였다. 제 근기 감당하면 다른 아무것도 없다-원돈성불론 나는 대답하였다. “이미 앞에서 다 말했다. 그러므로 다만 마음을 쉬어 다투지 말고, 생각을 비워 안으로 비추어 보아, 묘한 결과를 얻는 것이 중요하거늘, 왜 다시 묻는가? 그대가 이미 물었으니 나는 다시 말하리라. 만일 연기문의 서로 융합하는 이치로 논한다면 진실로 힐난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그 논주의 근본 취지는 부처의 지혜를 단박 깨친, 마음이 큰 범부들을 위해 모든 부처님의 보광명지의 결과인 일진 법계를 바로 보인 것으로서, 말을 떠난 가운데서 부득이 말한 것이다. 만일 그 말에만 고집한다면 같은 것 가운데에는 다름이 없고 다른 것 가운데에는 같음이 없으며, 자기를 말하면 남이 아니요 남을 말하면 자기가 아니다. 그러나 참으로 뜻을 알게 되면, 같은 것이 곧 다른 것이요 자기가 곧 남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참으로 뜻을 안 사람을 위해, 다른 형상을 갖춘 같은 형상과 남의 부처를 갖춘 제 부처를 말한 것이다. 삼구 안에서 설법하고 삼구 밖에서 강요를 든다-간화결의론 이른바 열 가지 병이란 증오를 구하는 마음이 근본이 되는 것이니, 만일 그 장애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왔으며, 별다른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은 전혀 성기(性起)의 덕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교문에서도 ‘일체의 장애가 곧 구경각(究竟覺)이니, 성공이나 실패가 모두 해탈이다.’ 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의리가 아무리 가장 원만하고 묘하더라도, 그것은 정식(情識)으로서, 듣고 알고 생각하는 한계이며 헤아림이기 때문에, 선문에서 화두를 참구(參究)하여 바로 지름길로 깨쳐 들어가는 문에서는 낱낱의 불법의 지해(知解)의 병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화두의 무(無) 자는 한 덩이 불과 같아, 가까이 가면 면문(面門)을 태우기 때문에, 불법의 지해가 붙을 곳이 없다. 그러므로 ‘이 무 자는 나쁜 지해를 부수는 연장이다.’ 한 것이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이네-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요즘의 선이나 교를 펴는 사람들은 다만 문자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으로써 업을 삼고, 관행으로 세상을 뛰어나려고는 끝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불법이 퍼질 시운(時運)이 돌아왔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날마다의 생활 활동에 분명히 밝게 아는 마음은, 번뇌의 성품이 본래 공하고 묘한 작용이 자재로와 법이 스스로 그러하거니, 그것이 시운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마명 조사(馬鳴祖師)도 말하기를 ‘이른바 법이란 곧 중생의 마음이다’ 하였으니, 그 어른이 어찌 사람을 속였겠는가? 다만 신심(信心)이 견고하여 알뜰한 관조(觀照)로 깨끗한 업을 쌓으면 비록 이 생에서는 크게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처가 된 바른 인(因)은 잃지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공부에 마음을 낸 사람은-계초심학인문 이미 출가하여 청정한 대중 가운데 참여하였으니, 유순하고 화목하기를 항상 생각하고 내가 잘난 체 뽐내지 말아야 한다. 큰 이는 형이요 어린이는 동생으로 생각하라. 혹 다투는 이가 있거든 두 사람의 말을 화합시키되 자비스런 말로 대하고 나쁜 말로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말라. 만일 동무를 업신여기거나 시비를 따진다면 그런 출가는 아무 이익도 없는 것이다. 재물이나 여색의 화는 독사보다 심한 것이니, 자기를 살펴 그름을 알아 항상 멀리해야 한다. 필요한 일이 없으면 남의 방이나 요사(寮舍)에 들어가지 말고, 으슥한 데서라도 굳이 남의 일을 알려고 하지 말라. 육재일(六齋日)이 되지 않았으면 속옷을 빨지 말고, 세수할 때에는 큰 소리로 코를 풀거나 침을 뱉지 말며, 음식을 돌릴 때에는 당돌하게차례를 넘지 말고, 거닐 때에는 옷자락을 헤치거나 팔을 내젓지 말며, 이야기할 때에는 높은 소리로 희롱하거나 시시대지 말아야 한다. 요긴한 일이 아니면 산문 밖에 나가지 말고, 병자가 있으면 인자한 마음으로 간호하며, 손님이 오거든 반갑게 맞이하고 어른을 만나면 공손히 길을 피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
|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다시 내며
왜 또다시 사상전집인가? 한 나라의 문화는 오랜 시간 쌓아온 지식의 보전과 계승으로부터 시작된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수많은 석학들이 이루어 놓은 학문과 그 결실의 소산인 고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문으로 기술된 저서들을 오늘날 읽고 공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언어는 바뀌었더라도 우리 후손들에게 조상이 남긴 고전은 서양의 어떤 명작들보다도 값지고 위대한 유산이다. 나라가 독립하였다고는 하나 문화가 독립하려면 우선 이 고전들부터 현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출판계의 숙원이었다. 이에 동화출판사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여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발간하였다. 당대 최고의 석학들로 이루어진 편집 기획진은 많은 시간을 들여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거의 공동작업으로 선정과 번역에 착수하였고 이름이 기술되지 않은 많은 문인들이 원고의 교정, 교열에 참여하여 이 기념비적인 출판물이 나온 것이다. 사상대전집이 출간된 후 한국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도 이 책들이 기본으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절판된 뒤에도 재출간에 대한 요청이 빗발친 사실은 이 책들의 가치를 증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다시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재편집된 한국의 사상대전집을 출간한다. 부디 한국의 얼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이 책은 선과 교가 대립각을 세우던 상황 하에서 그에 각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본격적인 수행의 이론과 실천이란 면에서 기치를 들었던 보조국사 지눌의 어록이다. 오늘날 불교의 사상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보조국사어록의 의미는 실로 크다. 1182년 보제사(普濟寺) 담선법회(談禪法會)에 갔던 어느 날 지눌은 동학 10여 인과 함께 회를 파한 후에 정혜사를 맺어 습정균혜(習定均慧)로써 업무로 삼을 것을 서로 약속한다. 그 당시의 선객을 고요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선(守?之痴禪)이라 하고 또 교학자는 문자에 심취하여 알음알이에만 치우친 자(尋文之狂慧子)라고 하였음에 비추어 당시 선교의 폐해를 짐작할 수 있는 동시에 이 폐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혜를 쌍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정혜쌍수란 교학과 수행을 겸하여 닦는다는 의미이다. 지눌의 이와 같은 사상과 선언은 당시의 일대 혁명적 선언이었으며 이후 이 학풍이 계승되어 현대에도 맥맥히 흘러오고 있다. 사람은 대개 편견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지눌시대의 불교계는 선과 교가 서로 대립상쟁을 일삼았다. 이를 경계하여 지눌이 쓴 저작이 이 책에 수록된 『정혜결사문』『수심결』『진심직설』『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등이다. 이 저술은 모두 동일한 사상을 발표하기 위해서 저작된 듯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정혜결사문』은 깨어 있는 불교인으로서의 그의 불교관과, 앞으로 취해 나아갈 태도를 밝히는 서론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본론에 해당하는 것은 불교의 모든 문제의 핵심을 진심(眞心)으로 보고 이것을 밝힌 『진심직설』인데, 진심을 밝혀 성불을 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리고 이 성불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 곧 『원돈성불론』이다. 그러면 실제로 성불을 하자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니 이 취지에서 『수심결』이 나온 것이요, 수심을 하는 데 있어서는 실지로 여러 가지의 의심과 난관이 있을 것이니 이러한 문제에 해답을 주는 의미에서 『간화결의론』이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