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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s Kazantza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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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이 지혜의 왕으로 지칭된다면, ‘알렉산더 대왕’은 ‘징기즈 칸’과 함께 정복자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다.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기원전 334년부터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10년 만에 서구문명의 대부분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복자라는 인식엔 약탈과 파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르게 마련인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알렉산더의 정복과정을 물리적인 아닌 사상적인 정복으로 접근하고 있다. 1. ‘카잔차키스’가 그린 알렉산더 ‘청년 알렉산더’의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북방의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알렉산더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법학을 배웠고, 파리에서 베르그송과 니체의 철학을 공부했다. 카잔차키스는 그동안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주제로 한 비극을 많이 썼는데, 그 중에서도 이 알렉산더의 전기 소설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버금가는 영화적 구성의 재미를 주고 있다. 그 구성미는 충분한 고증을 통해 알렉산더의 청년기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흥미 있게 그렸는데,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물론, 짧은 시간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방법과 이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부왕 필리포스 왕으로 부터 전투전술과 병참행정을 지도 받았고,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과 윤리학 그리고 정치학과 문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워, 그는 무술과 학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추게 되어,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부왕이 암살 당하자, 군대의 추대를 받아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어, 마케도니아군과 그리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를 시작으로 이집트, 북인도 등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했다. 그 극적인 과정을 이 책은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2. 건설과 문화향상을 위한 정복 이 책에서 인지하게 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알렉산더는 야망에만 불타거나 무지한 정복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원정길에 늘 학자들을 대동했다. 이는 적을 무력으로만 정복하지 않고, 학문으로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정복은 새로운 도시의 건설과 중요한 문화를 형성했다. 즉, 알렉산더가 정복한 제국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70여 개나 건설했는데,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를 동방으로 옮기는 거점이 되었고, 헬레니즘 문화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알렉산더는 오늘의 유럽통합과 세계화에 버금가는 동서양 통합을 꾀했다. 즉, 세계 시민주의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동방의 문화와 그리스의 문화를 융합하기 위해서 수십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 원정을 폈다. 알렉산더는 이런 세계 시민주의를 위해서 많은 그리스인을 터키로 이주시켰고, 그리스인과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을 결혼시켰으며, 페르시아 출신의 관리들을 등용했다. 그 자신도 페르시아의 군주이자 적이었던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했으며, 아시아 여성과 자신의 군인들 간의 결혼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의 통합은 실패했다. 많은 이유 중에서 결정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주요 관직을 그리스인들이 차지했고,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공용어가 그리스어였던 것이 피정복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샀고, 그리스인들과 피정복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 심각한 신분의 벽이 생긴 것이다. 이렇듯 그의 원대한 계획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났지만, 알렉산더의 동서양 통합정책은 동방과 서방문화가 융합되어, ‘간다라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냈으며 불교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그의 문화사적 큰 업적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