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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비애극의 원천
양장
새물결 2008.11.07.
베스트
서양철학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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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인식비판적 서설

1부 비애극과 비극
I 독일 바로크와 비애극
II 비애극과 비극
III 우울

2부 우의와 비애극
I 우의
II 비애극의 우의적 구조
III 우의의 반전


참고문헌

부록 1: 그림 자료
부록 2: 주요 작가와 주요

저자 소개 1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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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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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07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61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5592672

출판사 리뷰

오늘날 서구뿐 아니라 한국 지성계에 가장 심대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자 동시에 가장 모호하게만 알려진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 새물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현재 벤야민은 애초에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문화비평가, 에세이스트로서뿐 아니라 정치철학, 역사철학, 인식론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적 활로를 열어주는 사상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호출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논문과 에세이, 미완성 원고이면서도 대작이라는 역설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벤야민 사상이 본격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는데, 이번 '독일 비애극의 원천' 출간으로 벤야민 연구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910~1920년대 초의 언어론, 폭력론, 신화-운명론과 20년대 말부터 30년대 말에 이르는 자본주의-도시론의 경계, 그 연속과 단절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문제작이 바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다.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진리 인식의 가능성, 비애극과 우의(알레고리)라는 미학적 개념, 역사철학과 결부된 미학 이론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마도 이 책에서 전개되는 벤야민의 역사철학과 예술철학, 우의론을 참조함으로써 벤야민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사상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입구 ― 물론 이 입구가 독자를 또다른 미로에 빠뜨릴 가능성도 있지만 ― 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는 책?” 20세기 아카데미즘에 대한 21세기적 사유의 대반역

애초에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벤야민이 교수 자격 취득을 목적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제출한 논문이었다. 경제 활동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했던 벤야민으로서는 교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었고, 1928년 자신만만하게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논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논문은 심사 과정에서 ‘아무리 읽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채 반려되었고, 결국 그 후 벤야민은 대학과의 인연을 끊고 재야 지식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러한 이 책의 저술 배경을 통해 추측할 수 있듯이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대학이라는 제도권 학문공간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작성된 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아카데미즘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발상과 서술방식을 담은 문제작이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부분이자 이 책의 서설인 ?인식비판적 서설?에서 벤야민은 담대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인식론을 제시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서설?을 겨냥해 썼다고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진리와 학문적 인식, 개념과 이념의 관계, 철학이라는 학문의 기초와 가능성을 현대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체계 개념이 철학을 규정하는 한, 철학은 일종의 혼합주의에 안주할 위험에 빠진다. 마치 진리가 외부에서 날아와 몇 가지 인식들로 짜놓은 거미줄에 걸려들기를 노리는 듯한 혼합주의가 그것이다. ……방법은 우회로이다. 우회로로서의 제시, 이것이 논고의 방법적 성격이다.

사유는 인내심을 갖고 항상 새로게 시작되며, 침착하게 사태 자체로 되돌아간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숨고르기가 명상의 가장 독특한 현존 형식이다. 왜냐하면 명상이란 단 하나의 대상을 고찰하면서도 여러 의미 단계들을 밟고, 그럼으로써 항상 쇄신되는 발상의 추진력과 함께 단속적 리듬의 정당성도 얻게 되기 때문이다. …… 제멋대로 된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다는 데에 모자이크의 장엄함이 있듯이 철학적인 고찰 역시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벤야민은 19세기의 엄격한 체계 개념을 비판하고, 단편적·단속적 형식의 ‘논고(트락타트)’라는 새로운 철학적 서술방식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사유-이미지의 제시로서의 글쓰기, 몽타주적 글쓰기를 통한 진리의 제시라는 벤야민의 글쓰기 이념의 이론적 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 부분과 세번째 부분은 이 책의 본론격인 1부과 2부로서 각각 「비애극과 비극」, 「우의와 비애극」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서설」에서 제시한 글쓰기 형식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론이 시작된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벤야민의 목적은 독일 바로크 시기, 즉 16~17세기에 활기를 띠었던 비애극이라는 문학 조류의 특징적 면모들을 밝히는 것이다.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는 미적 시대구분에서 독일 비애극은 언제나 고대 그리스 비극의 조악한 모방 정도로만 간주되었다. 벤야민은 이러한 단순한 평가를 거부하고 ‘독일 비애극’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과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차이점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 비애극의 주요 모티브, 등장인물들 특유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비애극에 특징적인 구조적 틀, 그리고 다른 미학 이론가들의 판에 박힌 비애극 평가 비판 등을 통해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특수성을 하나하나,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고찰한다.
마지막 부분인 '우의와 비애극'에서는 비애극의 주요한 표현방식인 ‘우의(알레고리)’의 의미와 의의를 밝혀내고자 시도한다. ‘우의’는 벤야민의 시대까지 상징과 대비되어 2류 표현방식으로 폄훼되어왔다. 이전 시기의 거장들, 특히 빙켈만과 괴테, 쇼펜하우어, 니체 역시 우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벤야민은 세밀한 우의 분석을 통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서 이루어졌던 추상적인 ‘상징’과 ‘우의’의 대비를 극복하고 ‘우의’가 독자적인 미적 표현방식임을 드러낸다.

역사철학과 예술이론의 결합을 넘어, 역사철학적 예술론 그 자체를 쓰기

그렇다면 벤야민이 ‘비애극’과 ‘우의’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비애극과 우의가 중요한 것인가? 비애극과 우의에 대한 벤야민의 관심은 순수하게 ‘미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인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비애극과 우의를 ‘이론적으로 구원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새로운 미학적 이념이나 개념을 산출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미적 이념과 표현양식에 관한 벤야민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각인’과 관련되어 있다. 벤야민에게 비애극과 우의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16~17세기의 이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이 관점에서 ‘비애극’은 쇠락의 시대를 특징짓는 미적 이념, 예술적 성취보다는 ‘예술 의욕’이 주도하는 시대의 예술 형식이다. ‘비애극’에서 ‘역사적 윤리’는 붕괴하고, 등장인물들은 ‘우울(멜란콜리)’에 빠져 있으며, ‘성자인 동시에 음로가’로서 우유부단함에 머물러 있다. 형식적으로도 독일 바로크 비애극은 비슷한 형식을 대표하는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스페인의 칼데론의 작품이 성취한 것과 유려함과 화려함을 결코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투박함, 분절화를 바로크 시기의 독일 비애극, 더 나아가 독일 극예술의 후진성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미학 형식은 언제나 역사적 상황과 얽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벤야민의 비애극 연구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도이다.
16~17세기 유럽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그리고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으로 폐허나 다름없는 세계가 되어버렸다. 유럽인들의 물질적 생활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고방식마저도 황폐화시킨 것이 30년 전쟁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예술형식이 바로크 비애극과 같은 특징을 띠게 된다는 것이 벤야민의 생각이다. 종교개혁의 여파가 특히나 드셌던 독일에서 등장했던 독일 바로크 비애극은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 결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술형식이 역사에 결박되어 있음은 ‘우의’라는 표현방식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상징과 대비되는 우의는 고정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상징이 ‘다른 것을 통해 이야기하는’ 형식이라고 할 때, 상징을 사용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공통언어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중세에는 의미의 안정성을 보증해주는 것이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의 ‘신’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의 위신이 붕괴된 16~17세기에는 모든 이에게 의미를 보장해주는 보편적인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예술가들은 ‘의미화’ 작업을 위해 비유를 끌어들이지만, 그 비유는 고정된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며, 결국 이를 설명하기 위해 또다른 비유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끝없는 의미화의 연쇄 과정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벤야민이 생각하는 ‘우의’가 바로 이러한 연쇄적인 의미화 과정, ‘은유의 은유’이다. 따라서 ‘우의’를 단순히 하나의 표현방식, 그것도 2류 표현방식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비역사적이며 추상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벤야민에게 ‘우의’는 이 세계가 획득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의미, 규범, 가치관이 붕괴되는 몰락기의 언어형식이며, 그 시대의 진리를 드러내주는 예술적 표현방식이다.

우회로로서의 제시, 과거를 포착해 현재의 진리를 드러내기

벤야민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쓰면서 동료이자 여자친구였던 아샤 라시스에게 비애극이 정말로 슬픈 연극이며, 우의가 진리를 비춰주는 표현방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벤야민이 16~17세기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단순히 그 자신의 골동품 수집 취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추측해볼 수 있다. 비애극과 우의에 대한 숙고는 벤야민의 시선을 통해 그 자신의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그의 시대인 20세기 초엽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이상하리만큼 유사한 분위기였다. 19세기가 경제적으로 끝없이 팽창하던 시기, 진보에 진보를 거듭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 시기였다면, 20세기초는 자본주의의 몰락이 서서히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였다. 게다가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해 말 그대로 전 ‘세계’를 황폐화시켰으며, 강력했던 독일의 공산주의 운동은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문턱에서 좌절해버렸다. 기존 세계의 붕괴 조짐이 보이는 시기, 새로운 역사의 무대가 열릴 것만 같았던 바로 그 시기에 독일에서 발발한 예술 조류가 바로 표현주의이고, 벤야민은 표현주의와 바로크 비애극의 유사성을 ― 두 조류의 차이점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다. 두 예술 형식을 만들어낸 시대 모두 이 세계에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는 시대, 나를 포함하는 세계가 일종의 총체성으로 존재한다는 신념이 있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파편화되고, 의미라고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일상적 생활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말 그대로 ‘16~17세기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학문적 탐구인 동시에 자신의 시대를 사유하려는 벤야민의 현재적 관심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새롭게 벤야민을 들여다보기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벤야민 사상의 주요 모티프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주요 저작 중 하나이다. 지금껏 제대로 알려진 바 없는 ‘우의론’을 비롯해, ‘우울’, ‘주권론’, ‘언어철학’ 등이 이 책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더불어 총체성의 붕괴, 주체와 세계의 파편화, 고정되고 안정된 의미의 불가능성을 사유했다는 점에서 20세기 후반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 원천을 선취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물론 총체성의 불가능성을 선언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려 한 일부 포스트 담론의 손쉬운 작업들과는 달리, 벤야민은 여전이 진리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들 담론과 차별화되며,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그만큼 더 심층적이고 또 난해하다. 이 지점에서 역자의 빛나는 노고가 돋보인다. 역자인 조만영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벤야민 번역이라는 험난한 길에 임해 그의 사유를 엄밀하게 측정해 정확한 한국어로 옮기려 노력했다. 또한 16~17세기 독일 바로크 비애극이라는, 한국에서는 마냥 낯설기만 한 문학사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꼼꼼한 역자 주,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림 해설’, ‘주요 작가와 주요 작품 해설’을 부록으로 싣는 등, 번역본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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