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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알코올에 빠지다 2. 위반을 부르다 3. 인공낙원의 예술가들 에필로그 덧붙이는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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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장-폴 사르트르가 그에 관한 에세이에서 너무도 잘 보여주었듯이, '상징적 지위실추'를 최초로 인식했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모든 문학 패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상징적 지위실추'의 희생자였다. 그 지위실추를 알리기 위해 그가 찾아낸 방식은 댄디즘이었다. 그는 요란한 색채의 벨벳 옷을 입었고, 보란 듯이 실크 조끼 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외알박이 안경을 걸쳤으며,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기도 했고, 일부러 동성애자처럼 보이려고 했으며, 가는 곳마다 주변사람들의 경멸을 사려고 애썼다. 그가 작가수첩에 적은 글을 보면 남의 마음에 들지 않으려는 의도는 그의 계획의 일부였던 것 같다. "모든 것에 불쾌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때 나는 고독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댄디즘이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공장들을 건설하던 시대의 초연함과 기괴한 독창성을 주장하는 것이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귀족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눈에는 봉급의 효용가치와 그것이 전제하는 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믿음에 토대를 둔 부르주아의 생활방식만큼 추악한 것이 없다. "내게는 유용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이 언제나 더없이 흉측한 것으로 보였다'라고 그는 <벌거벗은 내 마음>에서 말하고 있다. 작가들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사회적 입지에 독창적인 생활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들은 부르주아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우지 않는다. 모든 시인들 가운데서 보들레르는 그 누구보다 시간활용 문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순간 우리는 시간에 대한 관념과 감각에 짓눌려 있다. 이 악몽에서 벗어날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쾌락과 일만이 시간을 잊게 해준다." 주말에 휴식하는 법도 없고, 휴가를 가진 적도 없으며, 고정된 시간표를 따르는 법이 없는 시인은 시간을 보내는 두 가지 방법, 즉 글쓰기와 폭음, 엄격함과 산만함, 철저한 자기통제와 인공낙원으로의 여행 사이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이 모든 생활방식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서로 상반되는 갈망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고통스런 내면의 싸움에서 그는 종종 스스로의 사형집행인이 되기도 한다. 최선책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것이요, 권태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책밖에 없다. 항상 취해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적 영감이 메말라가는 걸 보지 않기 위해 현실과의 괴리를, 현실로부터 유리되 상태를 항구적으로 유지해야 만 한다.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ㅇ서 들려주는 권고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작가의 사회적 입지와 노동자의 입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양쪽 모두 사회가 술을 마시게끔 부추긴다는 점이 그렇다. 부르주아 계층이 기막히게 고안해낸 여가생활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절제의 안락함을 알지 못하므로 주말의 저녁모임이나 만찬에서 부르주아처럼 적당한 음주에 그치지 못한다. 공장일을 마친 뒤 노동자는 근육을 풀어주고 노고를 보상해줄 술을 찾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작가도 섬세한 영감의 끄나풀이 끊어지면 고약한 인간이 된다. 더 이상 어떻게 시간을 죽여야 할지 알지 모샇고, 할 도리를 다한 데서 오는 선량한 책임의식 속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할 능력도 없는 그는 술에 빠져든다. ---pp 2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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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오랜 벗, 술
보건복지부가 성인 남녀 6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는 32.4%에 달하고 있다.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인 상습성 음주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맡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일상을 뒤흔들고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등,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과 해악만을 끼치던 술이 예술가와 만나게 되면 그 성분은 새로운 화학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면죄부를 얻곤 한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매몰된 기억들과 문장들을 끄집어내야 하는 현대 작가들이 연료 부족에 의해 기관이 정지된 상태’에 처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기보다는 아마도 대개는 ‘새 술병을 딸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의 발 아래로 심연을’ 열게 될 것이다. 기름을 채워야 굴러가는 차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떤 예술가들의 혈관 속을 흐르는 알코올은 그들의 타오르는 예술혼 위에 끼얹어진 기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은 작가와 예술가들 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술이다. 가깝게는 술을 주제 혹은 소재로 삼은 우리의 한시들만 꼽아봐도 쉽게 확인된다. 예술가들의 삶 속에도 비중 있게 등장해 예술가들의 삶을 흔들어놓고, 그들의 작품에 다채로운 무늬를 새겨넣었다. 그만큼 예술가들에게 술은 떨쳐버리기 어려운 매혹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술의 힘을 빌려 걸작을 만들어낸 예술가가 있는 반면 타고난 천재성을 술로 마셔버린 불행한 예술가들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탐닉했으며, 수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어쩌면 작품의 탄생을 막았을지도 모르는 술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과연 얼마나 되며, 예술은 술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을까? 시인 고은은 근래 들어 술 마시는 문인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또한 알코올과 예술가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문인들의 술자리 풍경이나 술과 관련된 기행들을 스케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의 역동적인 저서『알코올과 예술가』(원제『Se noyer dans l'alcool?』)에서 알코올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설가, 시인, 화가, 철학자들과 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알코올과 예술가의 유기적이고 신비로운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비로소 예술 및 예술가와 술 사이의 비밀, 그 불가해한 수수께끼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술, 영감을 불어넣는 묘약인가 파멸의 독약인가 예술가와 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의 하나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예술가에게 술은 과연 묘약인가 독약인가.’ ‘술은 우리 사회가 대량으로 공공연히 사용하는 커피나 수면제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향정신성 물질에 속한다. 따라서 술이 소비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한 사회의 전반적 상태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요, 그 사회가 허용하는 합법적 일탈행위의 최대치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 저자는 역시 술이 소비되는 방식을 통해 깊이 있는 통찰을 펼쳐나간다. 1부 <알코올에 빠지다>에서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예술가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상습성 음주와 금주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2부<위반을 부르다>에서는 간헐성 음주가 불러오는 난폭한 행동과 위반이 예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정당화되는지 살피고 있다. 3부 <인공낙원의 예술가들>에서는 자신을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상습성 음주와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 그리고 예술가들의 육성을통해 그들이 취기로 쌓아올린 인공낙원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이 책에는 보들레르의『인공낙원』이후부터 에드거 앨런 포,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맬컴 라우리, 게오르그 트라클, 딜런 토머스처럼 생명을 재촉할 정도로 지독하게 술에 탐닉했던 작가들과, 잭 케루악, 기 드보르, 앙투안 블롱댕,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랜시스 베이컨, 부코프스키처럼 취기의 경험을 빌려 창작했던 이들, 그리고 제임스 엘로이나 윌리엄 스타이런처럼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가 금주로 가는 힘겨운 여정을 걸었던 작가들의 삶과 작품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폴 바울즈, 베르톨트 브레히트, 테네시 윌리엄스,, 에밀 졸라, 조르주 바타이유, 모파상, 스타인벡, 보후밀 흐라발 등과 같은 작가들을 탐구 대상으로 삼아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변화된 술꾼의 위상과 취기의 양태, 술과 성(性 ), 술과 죽음의 관계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비상과 추락을 거듭하며 인공낙원을 건설한 예술가들 저자는 보들레르가『인공낙원』을 출간하고, ‘알코올 중독’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전에 실린 1858년을 기점으로 현대문학과 이전 세대의 문학을 가른다. ‘술’이라는 같은 테마를 다루었다 하더라도 현대문학과 이전의 문학과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고전 텍스트들에서 취기는 쾌락과 관능과 연결되는 반면 19세기부터는 신체와 정신을 위협하는 한계경험이 된다. 즉 이전에는 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였지만, 현대인은 내면으로 관심을 돌려 수수께끼와도 같은 인간의 내부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취기가 신이건 식물이건 어떤 외부의 힘이 영혼에 개입된 것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의식의 모험으로 체험된다는 점이다. 둘째, 술은 문화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추상적 요소요 수단이며, 그 소비는 오직 각자의 행동에 달린 것이지, 예전처럼 자연의 주기나 전통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 따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보들레르 이후 현대의 예술가들은 다채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공낙원을 건설해나갔다. 글쓰기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120피트의 종이를 이어 타자를 치고, 밥bop 양식을 글쓰기에 도입해 즉흥성을 살리고자 했던 잭 케루악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술에 취해 책상에 앉을 것을 권했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에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가졌던 프랜시스 베이컨은 보름 동안 만취와 숙취를 거듭하는 가운데 걸작을 완성했다. 마치 술을 마시지 않으니 글이나 써볼까 하는 태도로 소설을 쓴 앙투안 블롱댕은 결국 술이 좋아 죽음을 앞둔 20년간 절필했다. 신이 없는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하루에 포도주 6리터씩 마셔가며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유와 그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단번에 천국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알코올을 선택한 예술가들에게 과연 술이 묘약인지 독약인지를 묻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글을 쓰기 위해 유기체의 기계장치를 고장내야 하고, 자아를 살짝 흔들어놓아 교란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균열을 키우고 그 흔적을 좇아야 하는’ 작가들에게 그 모든 단계와 과정을 한번에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알코올의 부름은 불가피하고도 필연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술은 보들레르 이후 문학의 혁신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한 취기의 경험을 통해 보다 크고 깊은 세계의, 한 장을 열었으며,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주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