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저자서문
역사법정, 재판은 시작됐다 제 1법정 김유신 제 2법정 신돈 제 3법정 어우동 제 4법정 임꺽정 제 5법정 광해군 제 6법정 박정희 여론조사 |
함규진의 다른 상품
|
김유신 / 신돈 / 어우동 / 임꺽정 / 광해군 / 박정희 !!
이들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6명의 역사인물을 천상의 법정에 세웠다. 과연 그들은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역사법정』은 우리 역사의 인물 중에서 현재까지도 역사적 평가에 상극의 논쟁을 일으키는 인물들을 가상법정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내 그 논점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재판장'은 단군이 맡고 김유신, 신돈, 어우동, 임꺽정, 광해군, 박정희 등 6명의 역사인물을 피고로 세운다. '검사'와 '변호사'는 신채호, 김부식, 정도전, 무학, 인수대비, 황진이, 박문수, 홍명희, 이항복, 허균, 장준하, 박종홍 등이 맡아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인다. '증인'으로 원술, 최영, 성종, 이옥봉, 체게바라, 전태일 등등이 등장한다. 과연 하늘 위의 가상법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역사는 평가 속에서 발전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현대사에서의 박정희 문제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과거 신라의 김유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판과 옹호로 양분되는 인물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인물 논쟁은 항상 풍요로운 인문학의 배경이 되며,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져오는 장점으로 자리매김한다. 「역사법정」은 이러한 인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역사인물을 풍부한 사실적 자료와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하여, 가상법정을 통해 독자의 앞에 세운다. 저자는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반된 주장을 모두 싣고 독자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도이다. 천상에서 벌어지는 가상 법정은 단군이 재판장을 맡고, 피고 6인과 관련된 인물들이 검사와 변호사를 맡아 법정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 법정' 피고: 김유신 / 검사: 신채호 / 변호사: 김부식 ‘김유신을 변명’하는 사람들은 당시 삼국에는 민족의식이 없었으며 삼국통일을 계기로 비로소 민족의식이 뿌리내렸고, 삼국간의 전쟁은 너무나 치열하여 민생의 피해가 극심했으며, 신라만이 아니라 삼국 모두가 승리를 위해 외세와 결탁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삼국간에 동족의식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만주와 한반도가 고스란히 이어지며 민족의 생활권이 넓게 유지되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일리가 있고, 신라의 경우 단순히 외세의 힘을 빌린 정도가 아니라 법제에서 땅이름, 복식까지 고스란히 중국의 본을 받음으로써 한반도와 한민족이 결정적으로 중국 문화권에 포섭되도록 만들었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제 2 법정' 피고: 신돈 / 검사: 정도전 / 변호사: 무학대사 공민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신돈은 염제신 등의 권신, 경복흥을 비롯한 문신, 최영을 비롯한 무신들을 숙청하며 조정을 일신했다. 하지만 권문세족이나 무신을 모두 쓸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또 개혁세력의 대표였던 이제현도 “문생이니 좌주니 하며 도당을 만들기에 급급하다”는 비판과 함께 탄압을 받았다. ‘인적 청산’에 이은 ‘제도적 청산’은 전민변정도감 설치, 순자격제와 산관 통제, 성균관 중영, 과거제도 개혁 등으로 권문세족의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일련의 개혁 조치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신돈 자신의 정책이었는지, 공민왕의 뜻을 대행했을 뿐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신돈은 6년간의 집권 기간에 권력에 취해 스스로 문수보살이라고 내세우고, 각종 뇌물과 성상납을 받으며 타락의 극치를 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를 제거한 세력들의 모함이라고 보는 쪽도 있다. '제 3 법정' 피고: 어우동 / 검사: 인수대비 / 변호사: 황진이 ‘조선시대 최대의 성스캔들.’ 어우동이라는 이름에 따라다니는 이 타이틀이 그리 과장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조선조에는 음부(淫婦)의 대명사로만 통용되던 어우동의 이름은 현대에 들어와 재조명된다. 70년대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어우동」에서 방기환은 어우동을 ‘인형의 집을 나간 노라’에 대비했으며, 1985년 제작된 이장호의 영화 '어우동'에서는 ‘권력자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희생된 여자’라는 개념까지 추가되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페미니즘적 역사해석에서 그녀는 불합리한 남성중심적 · 봉건적 사회모순에 항거하며 ‘개인독립’을 향유한 선각자로 부각된다. '제 4 법정' 피고: 임꺽정 / 검사: 박문수 / 변호사: 홍명희 임꺽정 사건에 대해 실록의 사관은 이렇게 평한다.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재상들의 탐오가 풍습을 이루어 한이 없기 때문에 수령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권요(權要)를 뚼기고 돼지와 닭을 마구 잡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런데도 곤궁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에 몸을 던져 요행과 겁탈을 일삼으니, 이 어찌 백성의 본성이겠는가.” 임꺽정의 봉기는 민중적, 역사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개인의 불만을 비생산적으로 터뜨린 ‘객기’에 지나지 않았을까. 아니 그것이 ‘객기’일지라도 우리는 그의 자유정신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홍명희와 박문수의 공방을 통해 짚어본다. '제 5 법정' 피고: 광해군 / 검사: 이항복 / 변호사: 허균 광해군은 조선왕조가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세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조선조 내내 폭군으로만 취급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일제시대의 식민사관 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가 그 선두였는데, 그는 광해군의 외교를 ‘중립외교’로, 내치를 ‘실용적 개혁’으로 평가했다. 그의 해석을 1950년대 말 사학계의 거두 이병도가 다듬어 내놓으면서 일찍부터 광해군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1980년대부터는 “광해군은 개혁과 중립외교를 추진했다”는 내용이 국사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미국과 중국,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의 인기를 다시금 높이는 듯하다. '제 6 법정' 피고: 박정희 / 검사: 장준하 / 변호사: 박종홍 1979년, 박정희의 영구차는 많은 국민의 눈물 속에 광화문을 지났지만 이후 상당 기간 그에 대한 평가는 별로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에 들어 박정희를 재평가하는 ‘박정희 붐’이 이는데, 그동안 대안으로 여겨져 온 ‘민주화세력’이 87년 이후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컸다. 6.3 투쟁이나 유신반대투쟁에서 앞장서서 싸웠던 일부 소장 지식인들까지 그의 재평가 대열에 합류했고,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심지어 ‘단군 이래 최고 지도자’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후 소강 국면에 들었다가, 최근에 와서 다시 박정희의 재평가를 놓고 시끄러워진 상태다.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