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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피노 13세 _ 1998년 5월 필리핀 세부섬
자피노 14세 _ 1999년 5월 필리핀 세부섬 자피노 15세 _ 2000년 5월 필리핀 세부섬 작품 해설 _ 후나도 요이치 작품 세계의 새로운 수맥이자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수한 교양소설 |
Yoichi Funato,ふなど よいち,船戶 與一,본명 : 하라다 겐지(原田 建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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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도시오 마나한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다. 자피노가 무슨 의미인지는 4년 전에야 알았다. 필리핀인과 일본인 혼혈이라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화가 불끈 치밀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그렇게 부르고 싶은 녀석은 부르면 된다. 별로 화도 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컵 속의 물을 목구멍으로 흘려 넣었다.
얼굴 같은 것은 기억도 못 하지만, 나는 세 살 때까지 어머니와 마닐라에서 살았다. 10년이나 지난 일이라서 어떤 곳에 살았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내 아버지는 도시오 마쓰모토라는 일본인이다. 어머니가 애를 밴 것을 알자, 그 일본인은 마닐라에서 사라져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일본인을 잊지 못하게 내게 도시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 p.13 무지개 골짜기에 혼자 사는 호세 만가하스는 리베르타 할머니의 아들이다. 할머니의 나머지 자식들은 딸뿐이니까 아들은 호세밖에 없다. 호세는 옛날에 신인민군 네그로스섬 부대의 부지휘관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12, 3년 전에 신인민군한테서 추방당했고, 그 후 혼자서 무지개 골짜기에서 살고 있다. 경찰이나 군대에서 호세에게 현상금을 건 것 같지만,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호세와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이다. 그때 그는 지구 변두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해가 뜨고 난 직후였다. 커다란 바위 옆에는 차가운 샘이 솟는다. 나는 물 긷는 것을 깜빡해서 눈 뜨자마자 바로 그곳으로 갔다. 어깨가 넓고 듬직한 체격에 구레나룻이 있는 남자가 배낭을 지고 자동소총을 무릎 위에 껴안은 채 바위 옆에 앉아 있었다. 그가 호세 만가하스였다. 그는 짙은 녹색 셔츠와 바지에 새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때의 광경은 지금도 똑똑히 떠올릴 수 있다. 왼쪽 장딴지에 총을 맞은 호세는 바지 자락을 걷어 올리고 나이프로 직접 총탄을 꺼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던 호세가 나를 보았고, 우리는 눈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왼쪽 장딴지에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지만, 호세의 눈은 내 온몸을 찌를 것처럼 강렬했다. 뭔가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아, 뭐라고 하면 좋을까, 묘하게 피가 부르는 느낌이었다. 과장이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 p.95 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웃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테리가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마이크도 지미도. 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울었다. 호세가 거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을 것이다. 눈물은 분한 탓일까?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아보라고 해도, 어릴 때부터 게릴라로서 살아왔으니 그렇게 간단히 될 리 없다. 그 불안 때문일까? 어쨌든 안됐다. 받아들여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호세에게는 호세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세 사람은 게릴라 훈련을 받아왔을지는 모르지만,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다. 때때로 무지개 골짜기를 빠져나가 경찰서나 군의 주둔지를 습격하는 호세에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쓸데없는 말참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마른 입술을 오른손으로 닦았다. 우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 p.323 무지개가 떴다, 동그란 무지개가. 바깥쪽은 빨갛고, 안쪽은 보라색인 일곱 빛깔 무지개가. 납빛의 하늘을 등지고 야자와 바나나 숲 사이에 동그란 무지개가 떠 있다. 우기도 아닌데 비가 내렸다. 그 탓에 호세 만가하스와 함께 바라보던 무지개가 지금 선명하게 떠 있다. 뭐라고 했더라, 그래, 호주에서 온 식물학자 찰스 스튜어트의 말에 따르면 지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륜 현상이라고 했다. 그 동그란 무지개가 지금 나와 메그의 눈에 또렷이 비추고 있다. …… 그때 무지개를 등지고 커다란 새 두 마리가 날았다. 호세의 동굴 옆, 가냘프게 뻗은 몰라브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있는 필리핀 독수리이다. 열대우림의 감소로 필리핀 독수리는 지금 멸종 직전이라고 하던데, 멸종되지 마, 절대로! 계속해서 새끼를 키우는 거야! 가슴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어느 쪽이 수놈이고 어느 쪽이 암놈인지 모르지만 호세는 아사무, 또 한 마리는 다간이라고 불렀다. 타갈로그어로 아사무는 희망, 다간은 긍지를 의미한다. 그 필리핀 독수리 두 마리가 지금 날고 있다. --- p.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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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역사, 아시아인의 삶에 눈뜨게 하는 감동의 모험소설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한 소년의 고난, 역경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후나도 요이치의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은 필리핀을 배경으로 혼혈아 도시오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일본 최고의 모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일본에서는 모험소설의 일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후나도 요이치의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하며, 웅진씽크빅 문학 브랜드 시작의 일본문학 전문 레이블 ‘미도리의 책장’에서 네 번째로 소개하는 작품이다. 필리핀 세부섬의 가르소본가 지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투계용 싸움닭을 키우며 살아가는 13세 소년 도시오는 혼혈아라는 이유, 그리고 에이즈로 죽은 어머니가 매춘부였다는 사실로 사람들의 멸시와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란다. 가혹한 성장환경 속에서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약한 사람을 향한 깊은 슬픔과 악惡에 대한 강한 거부로 가득 차 있다. 도시오가 부정과 부조리, 돈의 힘으로 썩어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것은 후쿠발라하프(항일인민군)였던 할아버지, 신인민군의 영웅이었으나 노선의 대립으로 인해 무지개 골짜기에서 혼자 투쟁해가는 호세 만가하스라는 인물의 영향이 크다. 그들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으로 다가올 정도이다. 돈에 매수되어 스스로 악에 물들어버린 정부 즉 욕구에 물들어버린 사람과 자신의 신념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무지개 골짜기의 5월』. 작품의 배경은 필리핀의 세부섬이지만, 도시오가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로 현대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은 자피노(필리핀인과 일본인의 혼혈이라는 뜻) 도시오가 13세부터 15세까지의 5월에, 무지개 골짜기에서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13세 5월 | 할아버지와 함께 싸움닭을 키우며 살아가는 혼혈아 도시오 마나한은 가끔씩 리베르타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무지개 골짜기에서 홀로 투쟁하고 있는 신인민군 게릴라 출신의 호세에게 담배와 럼주를 갖다주는데, 무지개 골짜기로 가는 길은 도시오만이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화가와 결혼해 성공한 퀸이 일본에서 돌아와 도시오에게 무지개 골짜기로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하고, 정체 모를 남자 네 명이 그 길에 동행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14세 5월 | 돈으로 점철된 부정선거에서 가르소본가 캡틴에 당선된 바르바스는 바야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데려오는데, 사실 이 남자는 국가경찰군 특수부대 중위로 반정부 운동을 하고 있는 호세를 살해하러 온 것이다. 한편 정부군의 폭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신인민군 출신 젊은이 세 명이 호세가 살고 있는 무지개 골짜기로 데려다달라고 도시오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그들을 미행했던 바야보와 호세 사이에 격전이 펼쳐진다. 15세 5월 | 발릴리 읍내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는 일본인 닥터 나카노가 납치된다. 그는 현지인과 결혼해 자피나를 낳았으며,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닥터 나카노는 도대체 누가 납치한 것일까. 도시오의 할아버지는 호세의 도움을 받아 그를 구해내기로 하고, 도시오는 할아버지가 호세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무지개 골짜기로 향한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최초의 1위 수상 작가 일본 모험소설의 거장, 후나도 요이치의 제123회 나오키상 수상작! 1988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도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책을 고를 때 기준을 삼을 정도로 미스터리 작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첫 1위 수상작은 바로 후나도 요이치의 『전설 없는 땅』이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최초의 1위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후나도 요이치는 모험소설 외에도 도유라 시로, 소토우라 고로라는 필명으로 극화의 원작부터 르포르타주와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리는 작품은 제3세계나 소수민족에 대한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과 그 참상의 실태를 호소하는 다이내믹한 작품이 많다. 현대사 흐름에 맞춰 세계사의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작품마다 적절하게 드러내는 후나도 요이치. 그가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마치 능력을 증명하듯이 수많은 상을 받고 있는데, 대표작을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문학상 수상작 1985년 - 『산고양이의 여름』으로 제3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제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1988년 - 『거친 방주』로 제6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1989년 - 『전설 없슴 땅』으로 제7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제4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1992년 - 『모래의 크로니클』로 제10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제5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1996년 - 『에조치 별건』으로 제14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2000년 - 『무지개 골짜기의 5월』로 제123회 나오키 상 2004년 - 『꿈은 황무지를』로 제22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988년 - 『전설 없는 땅』 1위 1991년 - 『불길 흐르는 저편』 3위 1993년 - 『모래의 크로니클』 1위 1996년 - 『에조치 별건』 3위 1997년 - 『이처럼 짧은 잠』 14위, 『게 먹는 원숭이 푸가』 15위 1998년 - 『오후의 행상인』 14위 2001년 - 『무지개 골짜기의 5월』 6위 1998년~2000년에 걸쳐 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은 생생한 취재를 통해 정확한 정보로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 덕에 시종일관 필리핀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가 『무지개 골짜기의 5월』로 나오키상을 받을 때 “지금까지 후나도 요이치가 나오키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다!”, “이제 와서 그에게 나오키상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평을 받을 만큼 일본 내에서는 ‘일본 활자문화에서 현대사의 이야기꾼으로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칭송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 작가의 필력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아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소년, 도시오의 시점으로 한층 더 선명하게 독자의 마음에 다가간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도시오가 미래를 향해 품는 희망은, 잿더미 속에서 소생하는 불사조나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겨진 희망처럼 사람이 갖고 있는 숭고함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