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하면서도 치밀한 추리의 즐거움 - 1930년대 경성에 다시 살아난 홈즈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경성의 탐정 설홍주. 그의 친구인 한의사 왕도손.
주인공의 이름만 들어도, 추리소설을 조금 읽은 독자라면 단번에 눈치를 챌 것이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영국의 명탐정 셜록 홈즈와 조수인 와트슨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그뿐이 아니다. 최초의 법의학자 탐정이라고 할 손다이크 박사의 이름을 딴 손다익 박사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하숙집 주인 허드슨 부인은 허도순으로 바뀌었고. 그렇다면 한동진의 『경성탐정록』의 의도를 넌지시 추리할 수 있다. 셜록 홈즈의 무대를 영국 런던에서 일제시대의 경성으로 바꾸고, 고전 추리의 핵심인 수수께끼 풀이를 전문으로 하는 명탐정의 활약이 펼쳐지는 작품일 것이라고.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할 에도카와 란포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 포우가 창조해낸 추리, 공포, 괴기의 세계를 일본식으로 재현하겠다는 의도에서 자신의 이름을 변형시켰다고 할 수 있다. 홈즈와 와트슨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꾼 『경성탐정록』은 전설적인 명탐정이 활약하는 공간을 1930년대 경성으로 옮겨 놓은 본격 추리물이다. 요즘 영화나 만화 등에서 흔히 쓰이는 패러디와 오마쥬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셜록 홈즈의 분위기를 가져오면서도 독창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선인 명탐정이, 합리적인 사고와 새로운 과학지식이 해일처럼 밀려들던 근대의 경성에서 활약한다. 그런 설정만으로 『경성탐정록』의 흥미 게이지가 올라간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 설홍주는 셜록 홈즈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다. 직감이 아닌 철저한 증거와 논리적인 추리에 근거하고, 복싱으로 단련된 육체로 직접 수사에 나선다. 그리고 대단히 냉소적이면서도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설홍주는 홈즈의 캐릭터를 성실하게 재연하고 있지만, 조금 변한 것은 지극히 건전하다는 점이다. 홈즈는 코카인 중독자였고 때때로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설홍주는 강건하고 견실하다. 홈즈에게 절대적인 애정을 가진 독자라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어둠을 직시했던 홈즈와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목도해야 했던 설홍주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어둠을 보고,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면 볼수록 설홍주는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일본의 폭력에 무참하게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에서 허무주의란, 결국 그 폭력에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냉소적이면서도, 「황금사각형」에서처럼 마약에 빠진 식민지 지식인을 설홍주는 준엄하게 꾸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도손 역시 와트슨의 캐릭터를 이어받아 소설의 화자이자 조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독자는 왕도손의 눈을 통해 설홍주의 천재적인 추리력을 볼 수 있고, 설홍주가 완벽한 추리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졌음도 확인할 수 있다. 조금 아쉽다고 한다면, 왕도손이 너무 관찰자의 위치에만 서 있다는 것이다. 5편의 단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주인공인 설홍주에게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왕도손의 중국 한의학 실력이 발휘되고 거기에서 단서가 드러나는 사건도 언젠가는 보고 싶다.
19세기 말에 등장했던 셜록 홈즈와 1930년대의 설홍주는 시간상으로 그리 멀지 않다. 자연히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의학과 과학에 대한 정보나 지식도 비슷해진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현재로 가지고 온다면 수사를 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설홍주에게는 새로운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추리 기법이 아니라, 셜록 홈즈를 완벽한 19030년대의 조선인으로 외양과 내면을 바꾸는 것이다. 한동진은 1930년대의 경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시대의 풍경을 대략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요정의 상세한 내부 풍경이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혼란스러운 당대 사람들의 심리까지도 신중하게 묘사한다. 평이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풍경을 이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성탐정록』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기존의 어떤 소설 이상으로 당대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또한 「운수 좋은 날」, 「광화사」, 「천변풍경」, 「소나기」는 각각 현진건, 김동인, 박태원, 황순원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황금 사각형」은 아르센 뤼팽의 소설 제목이다.) 한국 근대소설 대표작의 제목을 빌려서 새로운 고전 추리의 에피소드로 바꾸어내는 것도 꽤 매력적인 장치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소재인 광기의 화가나 청계천 등을 튼재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의 제목을 통해서 나름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변풍경」에서는 ‘남과 북을 가르고 근대와 전통을 구분하는 경계선, 청계천’의 풍경을 보면서 식민지 시대만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슬쩍 건드리고, 「광화사」에서는 미친 화가가 아니라 친일파의 추악한 이면을 한껏 풀어놓는다.
설홍주가 활약하던 경성은 대단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동양과 서양 일반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갖가지 문물과 사상 등이 구체적으로 혼재되어 있던 기묘한 공간이다. 또한 영화 「모던 보이」가 보여주는 것처럼, 민족이나 독립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던 ‘모던 보이’조차도 부지불식간에 역사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공간이기도 하고. 자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타의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어가고 있는 사회가 바로 30년대의 경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노 후유미의 『동경이문』보다도 더욱 기묘하고, 더욱 뒤틀린 인간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다만 『경성탐정록』의 원류는 셜록 홈즈이기 때문에, 설홍주가 추구하는 것은 비이성과 광기가 아니라 합리성과 논리다. ‘마술은 눈속임이지만 추리는 강철 같은 논리에 입각한 과학일세.’,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확한 결론을 유추해내기 위해서는 세밀한 관찰력과 냉정한 추리력을 겸비하고 있어야죠.’라는 발언처럼 설홍주는 철저한 근대주의자이며 계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지나쳐 ‘사랑이란 감정은 분노나 슬픔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변덕이고, 여성과의 연애는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고전 추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경성탐정록』은 어린 시절 추리소설 읽기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유쾌한 수수께끼 풀이에 능수능란한 행보를 보여준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연관성을 찾아내기도 하고, 족보를 이용한 암호 풀이도 하고, 교활한 지식인과의 두뇌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남자의 비밀을 밝혀내기도 한다. 수수께끼 풀이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던져주고, 독자가 참여하게 만드는 게임의 법칙도 충실하게 지킨다. 셜록 홈즈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산뜻하면서도 치밀한 추리의 즐거움을 『경성탐정록』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고전 추리는 단지 퍼즐의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다. 셜록 홈즈의 소설에서도, 당대의 풍경은 물론이고 그 시대의 모순과 고통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본격과 사회파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설홍주는 1930년대의 경성에서 ‘오늘날의 세상은 정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네. 마약, 살인, 전쟁, 탐욕과 무절제, 그리고 오만함이란 이름의 광기 말일세.’라고 말한다. 철저하게 논리와 합리성에 근거하여 추리를 하는 설홍주이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광기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설홍주는 그 광기와 싸우기 위해, 논리적인 추리를 선택했다. 광기에 인간이 사로잡히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설홍주는 탐정이 된 것이다. 비록 지금 한국에는 탐정이 없지만, 진정한 탐정은 자신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무기를 선택한 이를 말한다. 논리적인 추리이건, 마구 휘두르는 총이나 칼이건, 모든 탐정은 시대의 어둠, 광기와 맞서 싸우는 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