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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가 있는 골목
2.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3. 엄마의 무릎 4. 보일러실 쟁탈전 5. 잔치 6. 결승선에서 7. 우리들의 화장실 해설 - 시장 언어의 유쾌한 카니발 / 강상희(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작가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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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똥할매가 뛰쳐나간 비상구를, 그 위에 앉아 똥할매가 머리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던 탈의실의 마루를 바라봤다. 할매! 할매는 언제부터 화장실에서 살았어? 화장실엔 왜 왔구? 할매! 화장실 앞에,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지겹지 않어? 거기서 한평생 뭘 보고 있었는데?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할매 눈은 또 왜 그렇게 반짝거리는 거고. 뭘 보면, 누굴 보고 있으면 그렇게 반짝거리는 눈을 갖게 되는데? 할매! 할매는 거기서 정말 뭘 본 거야, 응? 할매?
나는 똥할매한테 묻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똥할매는 그러나 내가 그 옆에 다가가 앉아보기도 전에 아주 멀리, 달아나버렸다. 나는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마저 아스라한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똥할매, 그녀가 앉아 있던 마루 위에 가서 앉았다. 거기 놓여 있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은빛 눈동자에는 여기 아닌 다른 데말고, 내가, 똥할매 당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 분명, 똑똑히 어려 있었다. ―「우리들의 화장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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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위에 서서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으며 박씨 할머니가 장내의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젊음과 건강은 죄다 어디서 뜯기고 왔는지, 남은 거라곤 주름과 한숨과 병밖에는 없어 뵈는 노인네들을 재빠르게 훑어내려가다 장터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자 박씨 할머니는 여봐란 듯이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박씨 할머니의 눈동자에는 복수심마저 어려 있었다. 고물장사와 설거지로 한평생을 꾸려오면서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 같이 흉을 보고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댔던 삼오식당 집 세 딸년들, 그중에서도 제일 지랄맞은 저 둘째년, 고물이나 주우러 다닌다고 사람 말을 말 같지도 않게 듣던 고 괘씸한 구멍가게 영석이네의 반병신 딸년, 어, 그리고 저기 앉아 있는 저 할망구, 당진상회 할망구, 야, 니까짓 게 그래 그렇게 대단하니? 뭐 그렇게 대단하게 사는 것도 아니면서 월급 받아다 주는 남편 하나 있는 걸 가지고 지가 무슨 대단한 감투라도 쓴 것처럼 사람을 깔보더니만 인제는 아주 길거리에 나 앉게 생긴 이 할망구야! 이것들아, 그래 어떠냐! 니들은 몰랐지? 나한테도 이렇게 쨍! 하고 해뜰 날이 있을지 니들은 생각도 못해봤지?
―「결승선에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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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기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저희들이나 우리나 어차피 남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 털어내서 먹고사는 장사꾼이 아닌가. 이곳, 장터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루도 거르고는 살 수 없는 밥을 팔아먹고 사는 건 최하빠리 장사고, 꼭 먹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과일을 팔아서 먹고 사는 건 그나마 밥장사, 막걸리장사보다는 나은 장사라고 뻐기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사고방식인가? 이곳, 장터길에는 과일장사, 밥장사, 야채장사, 양말장사, 생선장사까지 온갖 장사꾼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들 온갖 장사꾼들 중에서는 과일장사꾼을 최고로 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까지 여기 장터길에서 생선장사를 하던 김씨 아줌마는 아들며느리 성화에 장사를 때려치웠다. 한 석 달, 집에 있나 싶더니, 집 안에만 있는 게, 그게 아주 생지옥이라고 다시 시장에 나왔다. 803호 앞자리를 얻어서 과일 소매장사를 시작했다. 이력난 생선장사를 하지 왜 해보지도 않은 과일장사를 하냐고 묻자, 생선장수 김씨 아줌마 왈, “과일장사는 고상하잖어”였다. 생선장사, 밥장사, 야채장사와는 다르게 손에 비린내 안 묻히고 설거지물, 흙 안 묻힌다는 거,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과일장사는 개중에 그래도 고상한 장사로 취급받는 것이다.
―「잔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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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는 말하다 말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느라고 들썩거리는 현미의 어깨를, 그 어린 등을, 나는 투덕투덕 두드려주었다. 어쩌면, 0번 아줌마도 어느 날 이렇게, 느닷없이 황씨 앞에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면서 눈물 흘려야 되는 날이야 얼마나 수두룩한가! 거북이처럼 생활을 등에 지고 있는 여자가 하나 그 고달픔을 토로하고, 사내는 여자의 생활에 불어터진 투박한 손을 어루만져주었는지도. 그 순간에 사내와 여자는 그저, 아주 잠깐 자연이었을 게다. 사랑도, 배반도, 불륜도 아니고, 슬픈 사람들끼리 서로의 쓰린 곳을 그저 한번 핥아주었을 뿐인 거라고. 살려달라고,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허공에다 대고 팔을 휘젓는 사람의 손을 꽉 붙들어주는 거야, 가슴에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이 아닌가. 0번 아줌마와 황씨의 처음은 분명 그러했으리라고, 나는 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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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이, 시상에 멍충이 같은 년이, 안적도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그랴. 몸땡이가 최고지. 그깟 돈 몇 푼 땜에 그라믄 니는 그놈한테 또 갈라 그랬냐? 그랑께 니는 에미가 딸년 송장 치는 꼴까지 봐야 좋겄냐? 워디, 엄마가 옛날 일 한나 지껄여볼까잉―? 옛날에 너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원라는 니 위로 언니나 오빠가 한나는 더 있었어라. 니도 알제? 엄마한테 에미가 있나, 애비가 있나. 그래도 니는 엄마라도 있제. 나한테는 엄마도 없었지라. 전라도 순천인가 거기서 내가 깜빡 미쳤었잖어.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애 섰다고 하니께 그 고냑시러운 놈이 나만 냅두고 튀었단 마시. 그놈 미워서 뱃속에 든 걸 그만 지웠구만. 그래야, 전라도 순천이 맞구마잉. 애 지우러 갔는디 거기 산부인과 의사가 묻대. 영양주사를 맞겠습니까, 안 맞겠습니까. 보통으로 맞겠습니까, 오천 원 더 비싼 걸로 맞겠습니까. 근디 주머니에 딱 오천 원 더 있었단 마시. 그래라, 내가 그랬제. 오천 원 더 비싼 걸로 놔주쇼잉―. 가물가물 정신이 돌아오는디 젤 먼저 눈에 들어온 기, 그게 뭔지 아냐? 저 링겔병이란마시. 저거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져서 내 몸땡이로 쏙쏙 기어들어와쌌는디, 잘했다! 참말로 잘했다! 오천 원 더 비싼 걸로 맞기를 참말로 잘했다! 그 생각이 퍼뜩 들더라 이거지. 돈이, 돈이 그거시 뭔대? 이거나 한 잔 쭉 마시고 한잠 자뿌려. 그라믄 다 잊어뿌랴. 암시랑토 안 해.”
―「어머니가 있는 골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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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공주치고는 참 더러운 팔자를 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 빼어난 미모. 그 덕에 죽지 않고 살다가 백설공주는 마침내 왕자랑 결혼한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에도 더럽게 박복한 팔자를 타고 태어난데다 시선만 마주쳐도 고개를 외로 틀어야할 만큼 혐오스러운 외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그들의 세상살이에는 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인생에‘그러나’로 시작되는 히든카드도 하나 감추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生)을, 그 박복한 운명을 견디어내는 것일까?
연작소설 『삼오식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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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답지 않은 치열한 언어 구사와 풍부한 이야기성으로 주목받은 소설『꽃을 던지고 싶다』의 작가 이명랑. 그가 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연작소설『삼오식당』은 인간 내면의 가장 솔직한 목소리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는‘재래시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인간의 사랑과 욕망의 서사를 재미있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작가 이명랑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시선이 못난 인생들의 비루한 개인사들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삶에 대한 색다른 숭고함마저 선사한다.
『삼오식당』의 소설적 무대는 사람 냄새 강하게 나는 영등포 시장으로, 상업 자본주의의 속성을 지닌 대형 할인마트의 합리적이고 기계화되고 근대화된 모습이 아닌 여전히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삼오식당』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제각각의 불운한 경험과 좌절당한 욕망의 뿌리 깊은 사연들을 안고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중풍으로 십 년 가까이 자리보전하고 있던 남편을 두고 악착같이 밥장사를 하여 세 딸을 키워낸 삼오식당 여주인에서부터 노름빚으로 달아난 무능력한 남편을 둔 과일가게 O번 아줌마, 일수꾼 특유의 곤조를 자랑하는 로타리 할머니, 술집 여자의 마지막 순애보를 처절하게 대변하는 노랑머리, 동네의‘걸어다니는 생중계 소문 전파 라디오’ 고물장수 박씨 할머니, 반 평도 안 되는 평상 위에서 아들딸 공부시키고 살림 밑천 마련한 봉투 아줌마, 번쩍거리는 눈동자를 굴려가며 공중 화장실을 지키는 똥할매 등……. 삼오식당 여주인의 둘째딸이기도 한 화자가 이들의 삶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과 진실을 추적하면서 별볼일 없는 인생들의 사연 많은 눈물과 악다구니가 한바탕의 소란처럼 펼쳐진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이란 바로‘산다는 것’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삶이라는 본연의 태(態)에 가까울 정도로 솔직하고 리얼한 모습이다. 날고기처럼 생생한 언어 구사와 다채로운 삶의 넋두리를 통해 비루하고 초라한 우리네 일상을 기발한 웃음과 즐거움으로 풀어낸 작가 이명랑. 일곱 편의 연작으로 이뤄진『삼오식당』에서 이웃들의‘가난과 불우’의 기원과 행로를 좇아가다보면 어느새 얼어붙어 있던 마음마저 애잔하게 녹아드는 독특한 감동과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폐적 독백과 나르시시즘에 함몰되어 있는 한국문학의 한계 속에서 개성 강한 이야기꾼으로서 한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새롭게 주목하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이다. |